주식 권하는 사회 / 시원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야생화라는 모임이 있다. 꽃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점심 예약할 때 쓰려고 만든 이름이다. 세 명인데 한 명은 나와 동갑이고 다른 한 명은 늦둥이가 이제 중학교에 입학했으니 한참 나이가 적다. 작년 12월부터 만났다. 맛있는 점심 먹고 얼굴이나 보자고 한 것인데 몇 달 전에 막내가 뜬금없이 주식을 해야겠다고 하였다. 벌써 계좌도 개설했고 그 종목이 왜 좋은지 우리에게 이야기하였다. 두산 에너빌리티였다. 예전에 두산 중공업인데 이름도 바꾸고 사업도 소형모듈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원전 대장주로 꼽히는 종목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내 주위만 해도 이런 일이 벌써 세번째다. 다들 여성이다. 예전에는 주부들이 주식하기 시작하면 끝물이라는 유언비어도 있었다. 이번엔 다르기를 바라지만 무엇 때문인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발단은 정부다. 부동산보다는 건전한 자본시장을 만들어 지수 5000시대를 열겠다고 하였다. 부동산시장은 억제하고 주식시장에선 상법을 개정하고 세제를 개편해서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하였다. 전에는 투기였고 지금은 투자인가?
그리곤 한 달이 흘렀다. 다시 만났을 때 아직도 그 종목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확실했다. 하도 널뛰기해서 다 팔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성질대로 냅다 사고 파는 것이 사람 심리다. 이럴 땐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오죽했으면 내가 사면 내리고 팔면 오른다는 말이 생겼을까? 차라리 코스피 200을 기반으로 하는 이티에프를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한다. 이제 그가 진화를 시작했다. 여러 개별 종목을 한 바구니에 담는 이티에프도 역시 인버스나 레버리지를 이용하는 파생상품이 널려 있어서 잘 살펴서 투자해야 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지금도 있지만 이엘에스(ELS; 주가연계증권)가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금리가 낮았을 때 그 상품은 은행 창구에 적금 들려고 오는 고객들에게 이자를 좀 높게 쳐 준다고 가입을 권유하던 상품이었다. 그 이엘에스에 연계된 기초 자산은 두 가지로 주로 미국 에스앤피500 지수와 홍콩 항셍지수였다. 만기가 돌아올 때까지를 기준으로 설정해 둔 지수가 하나라도 낮으면 무조건 원금에서 손해 보게 되는 구조였다. 가입할 때는 그럴 리가 없다고 직원들이 말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내 친구는 만기일에 홍콩 지수가 올라서 손실이 없었지만 나는 그때 손해가 컸다. 그 덕에 파생상품은 하지 않고 직접 투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에는 일로에 있는 회산백련지에서 모였다. 연잎은 다 사그라졌고 그 대신 철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꽉 찼을 때도 좋았지만 허허로운 습지가 되어도 운치가 있었다. 막내는 한층 여유로워진 것 같았다. 요즈음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이제는 한국전력 주를 저금하듯이 모으고 있다고 하였다. 더 한층 투자에 가까이 가고 있었다. 많은 수익을 주지는 않지만 나라에 기본이 되는 주식을 꾸준히 모으는 것이 안정되고 바람직해 보였다. 이번 주식장은 지수가 많아 올랐다고는 하지만 계좌가 있는 사람이 모두 혜택을 누린 것은 아니다. 만약에 정부에서 주가 5000 시대를 열겠다고 한다면 투자자는 어떻게 이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까 마땅히 고민해 보아야 한다. 짧은 시간에 우리 기업들이 큰 이익을 내는 환경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러려면 큰 주식들이 움직여야 할 것이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게 하게 된다. 풀들은 제각기 바람 부는 대로 눕는다. 기관투자자와 금융에 관련된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모 공무원은 이번에는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면 좋다며 대 놓고 주식 하기를 권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조선과 방산과 원자력에 관련된 산업들이 우리가 잘하는 종목이라고 해서 시세가 났던 적이 있다. 그것은 그럴만 하다. 처음에는 상법을 개정한다며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지주사들을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몇 달 사이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로 간단하게 지수 4000을 넘겼다. 마음만 먹으면 이럴 수도 있는 것에 놀라웠다. 한편에서는 빚을 내서 투자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걱정이다. 환율도 오르고 인플레이션이 되면 돈의 가치는 점점 더 떨어질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마이너스다. 그래서 실물인 집이나 주식이나 금을 가지고 있으라고 한다. 주식 투자는 그것을 예측한 대안일까? 나랏빚은 점점 더 늘어나고 미국에 주어야 할 돈들은 또 어떻게 할지 어려운 숙제가 쌓여만 간다. 곧 추운 겨울이 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