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아름다워
이진순
사회 초년생이었던 때다. 여직원이래야 음악, 가정선생, 행정실 여직원 셋이었다. 남녀 공학인 중학교 학생 수는 600명 직원은 모두 18명이었다.
아침이면 교실마다 조개탄 난로를 피우느라 법석을 떨었다. 교실마다 노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온기가 따스해지면 직원회의가 시작된다. 정확히 9시 40분이면 첫 수업은 시작되었다.
교무실에 교감선생과 서너 명의 교사가 남아 있을 뿐 40분의 수업시간은 고요가 흐른다.
교실마다 수학 국어 과학 사회 한문 등을 배운다. 영어 단어를 선창하면 따라 읽는 소리가 복도로 흘러나올 뿐 수업은 순조롭게 매일같이 계속 되었다.
한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될 때면 학교는 버드나무가 우거지고 운동장 한가운데로 농수로가 흐르는 농로가 있었다. 군데군데 벤치를 만들어 아이들의 쉼터가 있는데 독서를 즐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지,
넓은 운동장 가장자리에는 칸나가 노랗고 빨갛게 피어 있었다. 교무실과 행정실 앞에는 주홍색의 능소화가 피어있고, 화단마다 동그랗게 붉은 닭 벼슬 모양의 맨드라미가 줄서있는 학교는 아름다웠다.
계단으로 된 화단에 배롱나무와 장미꽃이 항상 피어있었던 정든 교정은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뒤편에 샘이 있고 커다란 서고와 도서관 에는 지금 생각해 보면 열악하기 짝이 없는 말 그대로 창고였던 도서관을 참 많이도 들락거렸다.
그 때 읽었던 박경리의 토지, 펄벅의 대지, 여자의 일생, 이광수의 유정과 무정, 황순원의 소나기, 일본소설 원죄와 빙점은 페이지가 생각 날만큼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었다.
중국소설 무협지며 삼국지 또한 스릴을 느낄 만큼 즐겼던 소설이다. 내가 즐겨 앉아 있던 곳은 연못 근처였다. 좁쌀을 한주먹 들고 연못에 가서 손 벽을 치면 빨갛고 까만 붕어들이 나를 향하여 떠올랐다. 가지고 간 좁쌀을 던져주면 먹이를 먹느라 아우성치는 연못에 붕어를 보는 재미가 쏠쏠 했다. 뜨개질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붕어들과 놀던 때가 그립다.
멀리서 성당의 종소리가 들리면 고개 숙여 기도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길 드려진 기도 습관은 지금도 몸에 젖어 음식을 앞에 놓거나 잠에서 깨여하는 명상 습관이 내게는 있다.
앞 논에 벼 이삭이 머리를 숙이고 벼 베기가 끝나면 학교에도 김장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농업 선생이 가꾸워 놓은 배추를 따다 절이고 양념을 넣어 가사 실습을 했다. 땅을 파고 묻어 두고 직원들의 겨울 양식으로 삼았다. 그 때는 이이들이나 선생들이 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 때다 1970년대이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네 째 시간이면 복도는 음식 냄새가 붕붕 떠 다녔다. 교실마다 학생들이 싸온 도시락을 난로에 대우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끔 땔감으로 불쏘시개를 장만하러 산엘 오르기도 했다. 솔방울이나 솔가루 죽은 나무 가지를 구해 와야 아침마다 피우는 난로를 제대로 고생하지 않고 피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즈음 학교는 부러울 것이 없이 냉 온방 장치가 잘 되어 있지만 그때는 그랬었다.
눈이 많이 내리면 체육 선생과 함께 전교생이 사냥을 하는 날도 있었다. 산토끼나 꿩을 잡으러 산을 오르는 날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겨울방학이 왔다.
2학기를 마치고 종업식을 하는 날은 기성회장이 한턱을 쏘기도 했다. 돼지 한 마리가 도착하면 이글거리고 타는 조개탄 난로위에 돼지고기를 소금구이를 해서 직원들은 파티를 즐겼다. 교무실 난로를 빙 둘러 싸고 돼지기름이 뿌연 연기를 피워 올리며 타오르던 교무실은 기름 냄새로 하나 가득이었다.
먹을거리가 신통치 않았던 그때 직원들은 1년 내내 마신 백목가루를 씻어내는 날이라고도 했었다. 지금 같으면 큰일 날 일이지만.
그리고 겨울 방학 내내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쓰기 바빴다. 왜 그렇게 고등학교 가기가 만만치 않았던지.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의 진로 문제로 학부형과 상담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2월이 오고 봄방학을 할 때면 새 학기 준비로 바쁘다. 칠판에는 서울공고, 덕수상고, 서울여상, 대신고교 등등 백곡이 적혀있는 합격 소식으로 기쁨과 절망이 오가는 시간이었다.
학교생활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렇게 한 해 한 해 흘러갔었다. 그렇게 잔뼈가 굵은 학교에 사표를 내고 결혼을 했고 제3의 인생은 숨 가쁘기만 했다.
이제 나이 먹어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교실마다 있던 풍금은 모두가 내 장난감이었다. 도서관에 있었던 책들이 머리에 양식이었고 매일 날아오는 신문의 정보는 나를 새롭게 깨워주는 일상이 아니었나 싶다.
겁 없이 한세상을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부모님이 주신 육신을 다용도로사용 했으며 손재주가 뛰어나 무엇이던 보면 만드는 재주가 내겐 있었다. 인생살이는 연습이 없는 것.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듯싶다. 지난날들을 떠올리는 날이 많으니 말이다.
첫댓글 되돌아보면 힘든시기도 있었지만 모든게 추억으로 떠오르면서 잘 살아온 내 자신에게 감사하기도 하지요. 추억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개탄 난로에 도시락 데우던 모습,
백목가루 씻어낸다고 삼겹살 먹던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하나하나가 추억이고 그리움 입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 때는 김치 깐 도시락을 솔방울 난로 위에 올려 놓아 김치 냄새가 진동을 했지요
그때 읽으신 많은 책들이 지금 글을 쓰시는 자양분이 되셨으니 더 아름다운 시절이었네요
그리움은 아름다움이지요
추억에 잠기게 하는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그렇지요. 가만히 지난날을 떠올리면 아름다워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직에 계셨던 선생님들은 아마도 모두 공감이 가시리라 믿어요.
어쩌면 문학서적 한권한권에서 추억이 물씬합니다. 그때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지는 따뜻한 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때는 연탄불에 삼겹살이 유행이었지요. 시장 골목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