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우리와 같은 생명을 가진 소에게 친절하세요.”
템플 그랜딘의 과학적 능력이 처음 발휘된 것은 앤 고모네 목장에서였다. 차에서 내려 문을 여닫아야 하는 불편한 문을 고쳐서 차에 탄 채로 문을 열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렇게 템플은 불편함을 보면 해결한다. 템플이 남다른 점은 이때 해결하는 불편함이 나의 불편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템플이 하는 일을 보자. 템플은 동물들이 불편해하는 점을 개선하고 해결하는 일을 한다. 소가 구슬피 울고 고집을 피우는 것을 보면 누구든 소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소가 왜 불편한지 알아보려고 한다든지, 불편함을 덜어 주려 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템플은 소의 눈으로 불편함을 알아보고, 생명을 가진 소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소의 편안한 삶과 죽음을 위해 애쓴다.
“나는 내 일과 내가 만든 것들에서 기쁨을 얻어요.”
템플이 하는 일은 소들이 죽기 전에 머무는 비육장과 도축장 설비를 소들에게 편안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소가 죽는 것을 막는 일이 아니다. 소를 죽이는 도축장 설비를 만든다고 해서 템플이 동물들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템플은 곧 죽게 될 동물이라고 해도 죽는 순간까지는 편안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템플이 새로운 시설을 하나씩 만들 때마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동물들이 하루에 수십 마리에서 수백 마리가 느는 것이다. 이것이 템플이 생명을 가진 동물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노력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나아지기는 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일주일에 하루만 고기를 먹지 않는 날을 정하고, 고기 대신 채소로 만든 가짜 고기를 먹는다든지, 음식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고기를 덜 소비할 수도 있다. 이런 노력들은 모든 소의 생명을 구하지도 못할 뿐더러, 템플이 북미 지역 소의 3분의 1에게 친절함을 베푸는 것에 비하면 아주 미미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동물들의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그 속도가 아주 느리다고 해도, 어떤 식으로든 나아지기는 하는 것이니 말이다.
*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 Temple Grandin
우리 눈에 동물들이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인 것이 보인다면 템플의 눈에는 동물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나아가 왜 힘든지, 어떻게 해야 힘들지 않게 할 수 있는지도 보인다. 템플은 이 어마어마한 능력이 자폐인의 특성이라고 말한다. 템플은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교수이며, 탁월한 설계자이고, 훌륭한 과학자다. 수많은 자폐인들이 사회에서 어울려 살기 힘들어하는 데 반해 템플은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가치를 실현하고, 세상을 바꿔 가고 있다. 템플은 자폐증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폐인이어서 자신의 일을 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 추천의 글 동물자유연대 대표 조희경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사람이 소중하고, 반려 동물들이 소중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한 해에 10억 마리 이상의 동물들이 식용으로 죽임을 당한다. 이들의 생명은 소중하지 않을까? 템플은 소들이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말하고, 우리가 어떤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 준다. 고통과 공포를 느끼는 존재에 대한 관심은 생명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관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축산업은 일상과 동떨어져 있어 ‘소’와 ‘비프스테이크’의 관계를 떠올릴 수 없어진 지 오래다. 들판의 소는 그냥 소고, 접시 위 비프스테이크는 그냥 음식일 뿐이다. 이렇게 ‘생명 감수성’이 메마른 사회에 살면서 우리는 ‘인성 갈증’을 떠안고 살게 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자비심이 책상 위 과제로만 굳어 가고 있는 것이다. 생명 감수성의 실종을 함께 걱정해야 할 이유다.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세상에서 동물들을 이해하는 삶을 살아온 템플 그랜딘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사는 삶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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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체 마시니 글 | 빅토리아 파키니 그림 | 김현주 옮김 | 동물자유연대 추천 | 발행 책속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