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심" 여호수아 1장 1-9절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이런 부분이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사랑의 교회 고등부에
부임하셨을 때입니다.
이전 사역자가 너무 사역을 잘해서
부담이 컸다고 해요.
본인은 시골 출신이고 뒷배경도 없고
사투리도 심한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고 해요.
저도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신대원에 입학하면서
새로운 사역지로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초등학교 3, 4학년 아동부를 맡았습니다.
저 역시 선임 사역자가 기독교 교육학과 출신에
사역을 굉장히 잘하신 걸로 정평이 나 있었어요.
모든 교사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런 분이셨죠.
굉장히 부담되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학교 뒷산에서
울며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황에서
뭔가 일을 맡아 진행할 때
우리는 혼란스러워합니다.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직장에서,
갑작스러운 승진이나 개업과 같은 일로 고민하죠.
특별히 이런 일이 없더라도
우리는 아빠로서, 엄마로서
여러 가지 일들 속에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란
질문을 하기 바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도
이와 비슷한 고민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는 모세의 죽음 이후에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자그마치 20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집안의 가장으로 한 가정을
이끌고 가는 것도 버거운데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저라면 너무 큰 부담감 때문에
매일 밤을 뜬눈으로 보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각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의 고민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시죠.
과연 그 말씀은 무엇이며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어떤 것일까요?
말씀 속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여호수아는
갑작스러운 변화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일단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요단강을 건너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요단강을 건너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40년 동안 광야를 빙빙 돌며
약속의 땅만 바라보고 왔는데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인 모세가 죽었습니다.
이제 200만 명의 시선이,
400만 개의 눈이 여호수아를 향하고 있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지
고민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여호수아를 향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절과 4절입니다.
여호수아 1:3, 4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쪽에서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여기서 먼저 주목할 단어는 “주었노니”입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나탄”입니다.
영어로 ‘give’죠.
그런데 이 단어가 미래형이 아닌
완료형으로 쓰였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가보지도 않은 그 땅을
이미 ‘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무 황당한 말씀 아닌가요?
아직 여리고의 견고한 성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요단강도 건너지 못했습니다.
가나안엔 이방 민족들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저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그냥 ’줄 것이다‘라고만 말씀해 주셔도 돼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주 확실하게 선언하세요.
“내가 그 땅을 주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여호수아가 보기엔 이제 시작인데,
하나님께서 보실 땐 달랐어요.
이미 가나안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여호수아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그 문제를 이미 해결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맡기실 때는
그 일을 감당할 힘도 허락하십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기드온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는 사람들의 낯을 피해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었어요.
얼마나 소심했는지, 조심스럽게 일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그에게 말씀하시죠.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그러더니 그를 이스라엘의 사사로 명하십니다.
그리곤 미디안과 전쟁을 하라고 하시죠.
기드온은 백성들을 모아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합니다.
처음에 32,000명이 모여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너무 많다고
갈 사람 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남은 자가 만 명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도 많다고 하십니다.
그러더니 물가로 가서 그들을 시험하여
300명만 남게 하고 다 돌려보내십니다.
당시 미디안의 군대는 성경에 따르면
메뚜기 떼와 같았습니다.
그 소심한 기드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하나님. 지금 저랑 장난하세요?
이 사람들 데리고 어떻게 전쟁해요?
저 못해요!”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날 밤, 겁에 질린 기드온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죠.
우리 함께 사사기 7장 9절을 읽겠습니다.
사사기 7:9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
넘겨주었다.
아직 싸운 것도 아닌데 이미 넘겨주셨답니다.
군사는 고작 삼백 명밖에 안 돼요.
그런데 이걸로 이기시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게 말이나 됩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말이 돼요.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이에요.
이들은 항아리 안에 횃불을 감추고
나팔만 들고 적진으로 침투합니다.
깜깜한 밤에 항아리를 깨면서 나팔을 불었어요.
그리고 외칩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나요?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서로 아군끼리 치게 하셔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정복 해야 할 땅들이 많습니다.
나가서 싸워야 한다는 것도 알겠는데,
나의 부족함이 먼저 보여요.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어요.
누구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요.
전쟁의 승패가 누구에게 있는지 알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면 돼요.
왜요?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거든요.
이미 우리에게 넘겨진 땅이에요.
그걸 믿고 나아가서 승리하시는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또 다른 마음을 만지세요.
우리 함께 5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수아 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모세가 누군가요?
하나님의 그림자를 보며
주님과 독대했던 사람아닙니까?
그가 지팡이를 들면 홍해도 갈라지고
전쟁에서 이겼어요.
당대 최고 스타는 모세였죠.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은 리더였어요.
얼마나 부담 되었겠습니까?
모세와의 비교 의식에 사로잡힌 그를 향해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또하나 더 있습니다.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 세상은 영원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헤어져요.
죽음이 그 사이를 갈라놓죠.
그리고 세상은 쓸모 없어지면 다 버립니다.
토사구팽이란 말이 있어요.
토끼 사냥이 끝나면
쓸모 없어진 개를 잡아먹는다는 의미죠.
세상에서 영원한 의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신가요?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세요.
이 약속은 다음 명령을 위한
든든한 기초가 됩니다.
6, 7, 9절에 반복되는 명령이 있어요.
강하고 담대하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라.
바로 이겁니다.
지금 여호수아는 자신의 주인과 같은 리더인
모세를 잃었어요.
거대한 비전은 있는데
이걸 이루어 나갈 용기가 없었어요.
그걸 아시는 하나님께선 그에게 명령하시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라!”
그 명령이 반복되면서
점차 확대와 강조를 이룹니다.
그렇다면 이 용기는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를 둘 때 얻을 수 있어요.
그 약속이 무엇일까요?
바로 “함께 하심”이에요.
우리 함께 9절 말씀 다시 한번 읽어볼게요.
여호수아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세요.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할 거야!”
이 말씀은 이미 모세에게 해주셨던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3:12a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두려워하고 있진 않습니까?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우리 삶의 전쟁에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8절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우리 다시 한번 8절을 읽어볼게요.
여호수아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형통이 뭘까요?
돈 많이 벌고, 넓은 집에서 사는 것인가요?
자녀들이 다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것입니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장수하는 삶인가요?
물론 이것도 형통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형통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여기엔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8절이 그 원리를 설명해 주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지킬 때
동행의 삶이 가능해요.
말씀이 우리에게 힘도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야할 길도 알려주십니다.
시편 119:105을 말하죠.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양식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사탄이 시험할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고 하셨어요.
이처럼 말씀은 우리의 힘입니다.
좌절과 낙심, 실패와 염려가 가득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바로 “말씀”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기적의 자리로 이끕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일화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찾아오기 전날 밤,
늦게까지 고기를 잡습니다.
그러나 단 한 마리도 건지지 못합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라.”
이 때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누가복음 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렇게 그물을 내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고기가 그물 안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컵에 든 음료수를 큰 빨대로
‘흡’하고 빨면
쭉하고 빨리듯이,
그물을 던지자 모든 물고기가
그리로 들어가는 겁니다.
상상이 가시나요?
결국 그물은 찢어지고 옆에 있는
친구의 배에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잠기게 됩니다.
말씀을 의지하는 자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한 걸음을 전진하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여호수아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모세와 약속한 그 땅을
내가 이미 너에게 주었어.
가서 밟기만 하면 돼.”
어떤 아빠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아들아, 우리 다음 달에 미국으로 여행가자.
가서 디즈니랜드도 가자!”
그럴 때 보통 아이들은
“네! 아빠! 정말 좋아요!”라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죠.
그런데 이 아들이
“아빠, 거길 어떻게 가요?
거긴 비행기 값도 비싸고,
숙소도 비싸서 돈이 많이 들 텐데
어떻게 가요?” 라고 낙심합니다.
아빠는
“그래도, 아빠가 데리고 간다니깐”
라고 하죠.
아들의 마지막 말
“아, 이 아빠 정말 부담되게 하시네.
저는 영어도 못하고 음식도 잘 못먹고,
돈도 없다니깐요! 어떻게 가요!”
라고 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으로 초청받고도
여전히 걱정하고 계시나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죠.
비록 지금 내 상황이 복잡하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다면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가진 게 없고,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의 근원,
복으로 삼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겁내고
염려할 이유가 없어요!
우리는 이미 주님의 시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복들입니다.
약속의 땅을 얻을
약속의 백성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함께 백성으로서 의무가 있어요.
그분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동행의 원리는 말씀 묵상과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대로 지키며 살아갈 때
우리는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친 세상 속에서 장애물들이
우리 눈 앞을 가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도저히 정복하지 못할 것 같은
가나안 땅은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주님의 말씀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요?
에콰도르 선교사였고 순교자인 짐 엘리엇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길에 의문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의문은 어느새 원망으로 바뀌지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쉬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고,
다시 한번 슬픔을 사랑으로
빛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 찬양합니다.
평안을 주신 그분을 찬양합니다.’
이 시간 여호수아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말씀과 가까이하며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러한 축복의 삶을 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