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좋아하는 까닭은
눈빛이 맑아서만은 아니야
네 뱃속에는 늘 흰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는 게 보이기 때문이야
흰 뱃속에서 우러나온
네 생각이 참 맑아서
네 분노가 참 순수해서
네 생활이 참 간소해서
욕심마저 참 아름다운 욕심이어서
내 속에 숨은 것들이 그만 부끄러워지는
환한 뱃속이 늘 흰 구름인 사람아
- 박노해, <뱃속이 환한 사람>
-----------------------------------------------
‘이웃’.. 서로 접하여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집, 지역을 일컫는 말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웃의 어원을 찾아보니 1461년 『능엄경언해』에 기록된 단어 ‘이웆’에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능엄경언해』는 조선전기 불교 경전인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을 풀이한 언해서로 중국 송나라의 승려 계환이 주해한 『능엄경』을 세조 때 한계희(韓繼禧), 김수온(金守溫) 등이 한글로 번역한 책입니다. 모든 생명은 존재의 의미를 타자와의 관계에서 찾게 됩니다. 이유는 우리는 본디부터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웃의 존재는 나를 있게 하는 이유가 되겠지요.
한 주간 좋은 이웃에 대한 생각이 깊었습니다. 이웃들의 은은한 사랑도 받았고, 주기도 했습니다. 서로의 온기를 주고 받는 방식은 다양했습니다. 어떤 이는 애써 키운 열매를 살며시 교회에 두고 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살아온 여정을 책으로 엮어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다정한 말로 인사를 건네고, 수화기 너머로 안부를 전해오는 이도 있었지요. 전국적으로 폭우가 내려 어려움에 처한 이를 안타깝게 여겨 발 벗고 나서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에 안김힘을 쓰는 이도 보았고, 또 어떤 이는 갑작스레 닥친 비 피해를 입고는 지난 수해에 더 큰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도 있었습니다. 좋은 이웃을 두고 있다는 것은 우리 생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직간접적으로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웃에 대한 단상에 젖어드니 지금 사는 곳에 이사하여 첫 인사떡을 전해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이사떡에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담은 스티커를 붙여놓았더랬습니다. 지금 더불어 사는 이웃들에게 제가 좋은 이웃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그렇기를 바랍니다.
스승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됨을 좋은 이웃이 되는 것임을 가르쳐주셨지요(눅 10:25-37). 그리스도인을 그저 교회 다니는 사람쯤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의 자녀됨의 표식은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은 좋은 이웃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우리의 존재가 곁에 있는 이웃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얼굴이 찡그려진다면 우린 하나님과 먼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메말라가면서 이웃은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자신의 평온한 삶을 깨뜨리는 훼방꾼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혀를 내두르는 잔혹한 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면서 우린 서로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인식하게 되었으니 참 슬픈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이기에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이 더 귀히 다가옵니다. 율법의 강령이자 스승 예수의 가르침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박노해 시인이 노래한 ‘뱃속이 환한 사람’은 좋은 이웃이 어떤 모습일지를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당신이 있어 세상은 참 살만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좋은 이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4.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