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이 아쉬운 한해였다. 대망의 2000년을 맞아 부푼 기대로 시작한 시즌이었다. 이광은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하여 코칭스탭을 개편하는 한편 해리거, 경헌호, 최원호 등을 영입, 선발 투수진을 대폭 보강했으며, 거포 양준혁을 중심으로 이병규, 김재현, 유지현 등 막강 타선을 구축, 의욕적인 출발을 했다.
페넌트레이스 결과 67승 3무 63패(.515)로 매직리그 1위를 달성,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두산과 7전 4선승제로 열린 플레이오프에서 후회없는 한판 승부를 펼치며 매경기 접전을 벌였으나 아쉽게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였다.
지난 시즌엔 특히 다승 2위에 올라 팀의 에이스로 우뚝 선 해리거와 2년 연속 시즌 최다안타상을 거머쥔 이병규의 활약이 돋보였으며, 2군 선수들도 많은 기량 향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살아있는 전설' 김용수 선수는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오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LG트윈스는 잠실야구장 직영 첫해를 맞아 야구장 시설을 보수하고 편의시설을 대폭 늘리는 등 보다 쾌적한 야구장 만들기에 주력하였다. 또한 다양한 팬서비스와 이벤트, 공익사업 등을 펼쳐 더욱 사랑받는 야구단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신임 사령탑, 이광은 감독 취임
LG트윈스는 제 4대 사령탑으로 이광은 감독을 영입했다. 1991년 LG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1992년부터 코치로 활동해온 이광은 감독은 "혼이 살아 숨쉬는 호쾌한 야구로 야구명가의 전통을 이어가겠다."며 취임 의지를 밝혔다. 먼저 새로운 코칭 스태프 구성과 함께 팀의 분위기 쇄신과 체질개선에 중점을 두면서 훈련을 강화, 의욕적인 출발을 하였다. 한국시리즈 진출은 좌절됐지만, 초보감독으로서 상호신뢰와 솔선수범을 기반으로 한 '자율야구'를 펼쳤던 이광은 감독의 리더십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해리거, 양준혁 영입으로 투타 보강
2000시즌을 맞이하면서 LG트윈스는 외국인 우완 투수 해리거를 영입, 마운드를 강화했고 해태 타이거즈로부터 거포 양준혁을 영입하여 타선을 보강했다. 미국 뉴욕 메츠와 신시네티 레즈 등에서 활동했던 해리거는 개막전을 승리로 장식, 상쾌한 출발을 했다. 시즌 내내 완벽한 제구력으로 17승을 획득, 다승왕 2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 LG트윈스의 확실한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또 전반기 중반부터 경기에 나선 양준혁은 특유의 정교한 타격과 장타력으로 8년 연속 3할 타율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LG타선의 중심으로 거듭났다.
2000 시드니올림픽 출전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시즌이 중단되었다. 9월 8일부터 20여일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올림픽 참가를 위해서였다. 해태 김응룡 감독을 사령탑으로 프로 선수들이 주축이 된 '드림팀Ⅲ'는 온 국민의 기대를 안고 올림픽에 참가했다. LG트윈스에서는 아쉽게도 이병규 선수 혼자 출전했지만, 일당백의 역할로 한국팀 동메달 획득에 혁혁한 수훈을 세웠다. 올림픽 휴식기동안 선수들은 자율훈련을 하며 시즌 종반에 대비했다.
매직리그 1위로 플레이오프 진출
페넌트 레이스를 마친 팀의 성적은 67승 3무 63패(.515). 매직리그 1위의 성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 드림리그 2위인 라이벌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7차전을 벌였다. 10월 20일부터 7전 4선승제로 열린 플레이오프에서 LG트윈스는 매경기 접전을 벌이며 후회없는 한판 승부를 펼쳤으나 2승 4패로 아쉽게 져서 한국시리즈 진출의 꿈을 접었다.
김용수 선수 은퇴
'살아있는 전설', '늘 푸른 소나무'로 불리며 철저한 자기관리로 야구선수의 모범으로 인정받아온 김용수 선수가 은퇴, 16년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1985년 MBC청룡에 입단 프로에 데뷔 한 뒤 1986년부터 3년간 구원 1위를 기록했으며, 1990년과 1994년에는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1999년에는 통산 100승-200세이브라는 대기록을 수립하였으며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등번호 41번이 영구결번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2000 시즌에도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꾸준히 활약, 통산 6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16년 동안 통산 613 경기에 출장, 126승 227세이브 방어율 2.98의 성적을 올렸다. 김용수는 은퇴 후 미국으로 코치연수를 떠났다.
이병규 선수 최다안타상, 골든글러브 수상
이병규 선수가 욕심낸 건 200안타 기록이었다. 그러나 올림픽 출전 등 여러 변수로 인해 200안타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총 안타 170개를 기록, 1999년에 이어 시즌 페넌트레이스 최다안타상을 두산의 장원진과 공동으로 수상했다. 이어 2000 시즌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외야수부문상을 수상, 1997년과 1999년에 이어 세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