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노트
길상호
반쪽 몸의 사내는
침대에 누워 주문을 한다
딱딱해진 말의 언어 말고
신경이 살아 있는 문자언어로
머리맡 노트에 적는다
-올해 봄은 냄새가 어떤가?
여보, 목련꽃 좀 꺽어다 줘
주문서를 뜯어 간 아내가
들고 온 목련 한 사발,
봄맛에 빠져있는
반신불수 사내를 엎어놓고
아내는 또 물수건으로
짓무른 등을 닦는다
가운데 조르륵 박힌 등뼈가
몇 장 안 남은 노트의 스프링처럼
한층 더 불거져 있다
-올해는 냄새가 더 줄었네
표정을 넘길 때마다
거멓게 빛이 바라는 꽃잎,
사내의 봄 노트는
질긴 가죽표지만 남기고
또 한번 헐거워진다
월간현대시학 2010년 5월호
첫댓글 반신불수를 닦아주는 아내 모습이 거룩해 보입니다.
알고보면 세상은 거룩한 사람들이 많아요
길상호 시인의 오래전 신춘 당선시가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