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차은량
모내기를 끝낸 구이장댁 논에서 개구리 합창소리가 시원스레 들려온다.
아침에 빨아널었던 이불 호청을 걷어 꿰메고 공주엄마가 '따 준 애호박
을 썰어 노릇하게 호박전을 부치고 났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원주에 계
신 친정어머니셨다. 왜 이렇게 통화하기가 힘이드냐며 걱정스레 건네는
음성엔 꾸짖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몇일 전 호되게 몸살을 겪은 후 어머니가 보고싶어 전화를 했을 때 계
시질 않아 전화 좀 해 달라는 부탁을 동생에게 해 놓고는 바쁜 일상에 묻
혀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만큼 나이를 먹어도 아프고 나면 왜 그렇게 어
머니가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괜찮니?”하시는 그 부드러운 음성에 금새 눈시울이 젖어든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아프다고 엄마를 찾느냐며 혀를 끌끌 차시면서도 싫지는
않으신 모양이다.
어려선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다. 어디가 표가 나게 아픈 것도 아니면
서 못된 소갈머리 탓인지 늘상 두통에 시달렸고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여
체하는 일이 잦았다. 어머니는 내가 체할때마다 실이 꿰어진 바늘을 두어
번 머리에 긁적이고 콧김을 ‘흥흥'쏘이시고는 양쪽 엄지 손톱밑을 따 주셨
다. 검붉은 색깔의 피가 금방 구슬만큼 맺힐때는
“얘가 되게 체했구나.” 하시며 무릎에 머리를 눕히고 배를 쓸어 주셨지
만 선홍빛 맑은 피가 조금 나오다 말게 되면 엄살인지를 금방 알아내시고
는 ‘탁’소리가 나게 엉덩이를 때리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엉덩이를 때리시
던 그 매운 손길마저 달콤하게만 느껴지니 꿈에라도 그 시절로 다시 한
번 돌아가고 싶다.
두해 전, 여름내 하혈을 하다가 추석을 이틀 앞두고 급하게 수술을 받
게 되었다. 옆에서 간호를 하던 남편은 추석날 밤이 되자 나를 어렵게 구
슬러놓고 오랜만에 모였을 형제들을 보러 잠시 집으로 가고 병실 창밖으
로 대보름달이 휘영청 밝을 때 어찌나 사무치게 어머니가 보고 싶던지 소
리를 내어 울어 버렸다. 놀라 뛰어 온 간호사가 연유를 물어 어머니가 보
고 싶어서 울었다는 얘기를 하고는 둘이 얼마나 웃었는지 웃다가 보니 그
녀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추석이 이틀이나 지나고서야 어머니가 오셨다. 늦게 오신 어머니가 야
속하여 벽쪽으로 돌아누워 아는 체도 하지 않았으니 사십이 가까운 나이
는 다 어디로 먹었는지 생각할수록 회한이 가슴을 친다.
그리고 그해 겨울에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증상을 설명하는 동생의 전
화를 받고 몇일동안 내가 한 일은 주방 구석에 앉아 어머니가 계시지 않
은 세상을 상상하며 운 것 밖에는 없었다. 몇일 후 어머니의 증상이 호전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정밀검사를 받고 계시는 서울로 달려갔다. 어
머니는 더 이상 그 씩씩하던 평양기질의 젊은 어머니가 아니셨다. 겁을
집어먹은 듯한 희미한 눈빛과 어눌해진 말투, 자신을 잃으신 나약한 몸짓
이 육십이 훌쩍 넘어버린 완연한 할머니의 모습이셨다.
세상의 다른 어머니는 다 늙어도 내 어머니만큼은 늙지 않을 줄 알았던
철없는 소견이 부끄럽고 죄송하여 끝내 어머니의 눈을 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결혼하고 몇년쯤 지나선가 남편과 크게 싸웠다. 남편은 처음으로 내게
손찌검을 했고 나는 득달같이 어머니께 전화로 알렸다. 그리고 두시간이
조금 넘었을까, 어머니는 내 집 현관문을 벼락같이 밀고 들어오셨다. 그
당시 친정이 있던 서울의 상도동에서 택시로 총알같이 달려 강남터미널에
서 고속버스를 타고 청주에 도착하여 우리집까지 도착하기에는 기적에 가
까운 시간이었다.
“짐 싸라."
그 한마디에 당황한 남편은 손이 발이 되게 빌었고 얼마 후 장모와 사
위지간에 한참 웃음꽃이 피더니 버스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리겠다던 남편
은 처갓집까지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돌아왔다. 자식을 잘못 가르쳐 손
찌검을 당하게 했으니 다시 데려가 잘 가르치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사
실은 사위에게 한 것이 아니라 못난 딸에게 하신 말씀임을 그 때는 왜 몰
랐을까?
자라면서 유난히 험한 꿈을 많이 꾸었다. 전쟁의 화염속에 공산당에게
쫓겨 낭떠러지에서 추락하는 꿈은 날마다 연속극처럼 꾸었고 포도를 좋아
하여 욕심을 내며 포도를 먹어댄 날이면 꿈 속에 내 머리에서 포도나무가
자라 사람들이 그 포도를 따먹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그런 날이면 너무
도 무섭고 두려워 방바닥에 머리를 박은채 엉금엉금 안방으로 기어가 어
머니의 고쟁이 자락을 붙잡고서야 다시 잠이 들곤 하였다.
간혹 언니에게 덤비거나 동생들을 울렸을 때 어머니는 내게 벌을 대청
마루에 꿇어앉아 양손을 쳐들고 있게 하셨다. 처음 얼마간은 어머니가 미
워 야속한 생각을 하다가도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뉘우치는 마음
이 되어 한바탕씩 반성의 눈물을 쏟아냈다. 그때쯤에야 어머니는 한시간
예정이던 체벌에서 풀어 주셨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마당의
수돗가에 나가 씻고 나면 왜 그렇게 세상이 달라 보이던지. 눈물로 회개
하고 난 후 느껴지던 그 개운하고도 정결했던 기분을 정말이지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
지나간 시절은 다시는 되돌리지 못한다는 것을 조금만 일찍 알았던들
어찌 그 많은 불효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내가 아플 땐 나보다 더 아파하고 내가 행복할 땐 나보다 더 행복에 겨
워하시는 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 나절 칠월의 태양에 제 몸을 달군 강변의 조약
돌처럼 그렇게 뜨거운 어머니, 어느 순간 갑자기 귀청을 때리며 지나가는
구급차의 경적음처럼 그렇게 느닷없이 가슴이 저려오는 어머니.
아! 내가 죽을 죄를 지어도 그래도 나를 사랑하실 내 어머니.
1999.
첫댓글 지나간 시절은 다시는 되돌리지 못한다는 것을 조금만 일찍 알았던들 어찌 그 많은 불효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내가 아플 땐 나보다 더 아파하고 내가 행복할 땐 나보다 더 행복에 겨워하시는 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 나절 칠월의 태양에 제 몸을 달군 강변의 조약돌처럼 그렇게 뜨거운 어머니, 어느 순간 갑자기 귀청을 때리며 지나가는 구급차의 경적음처럼 그렇게 느닷없이 가슴이 저려오는 어머니.
아! 내가 죽을 죄를 지어도 그래도 나를 사랑하실 내 어머니.
지나간 시절은 다시는 되돌리지 못한다는 것을 조금만 일찍 알았던들
어찌 그 많은 불효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내가 아플 땐 나보다 더 아파하고 내가 행복할 땐 나보다 더 행복에 겨
워하시는 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 나절 칠월의 태양에 제 몸을 달군 강변의 조약
돌처럼 그렇게 뜨거운 어머니, 어느 순간 갑자기 귀청을 때리며 지나가는
구급차의 경적음처럼 그렇게 느닷없이 가슴이 저려오는 어머니.
아! 내가 죽을 죄를 지어도 그래도 나를 사랑하실 내 어머니.
지나간 시절은 다시는 되돌리지 못한다는 것을 조금만 일찍 알았던들
어찌 그 많은 불효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내가 아플 땐 나보다 더 아파하고 내가 행복할 땐 나보다 더 행복에 겨
워하시는 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 나절 칠월의 태양에 제 몸을 달군 강변의 조약
돌처럼 그렇게 뜨거운 어머니, 어느 순간 갑자기 귀청을 때리며 지나가는
구급차의 경적음처럼 그렇게 느닷없이 가슴이 저려오는 어머니.
아! 내가 죽을 죄를 지어도 그래도 나를 사랑하실 내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