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침, 비가 겁나게 쏟아졌지요.
장구 치러 가는 길,
비가 사방에서 차창으로 몰려와 와르르 와르르 쏟아지고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굵어졌다...
비의 속마음을 참으로 모르겠더군요.
아침부터 뭔 변덕이 불어 이리도 요동을 치나 싶은게....
장구 치는 시간은 그야말로 무상무념의 시간입니다.
집중하고 몰입해야 서로 잘 어우러질 수 있고 가락을 놓치지 않거든요.
기본장단 휘몰이, 자진몰이, 굿거리, 오방진, 진오방진, 세마치를 모두
끝냈고 장구잽이들중 고수들이 친다는 설장고 가락을 들어갔습니다.
휘몰이가락만 35가락이 됩니다.
그중에 9가락만 우선 배웠는데 그전에 배운것과는 정말 그 느낌이
사뭇 다른게 이제 비로소 장구를 치는구나 싶데요.
(그 느낌 덕분인지 어제는 가족들과 남양주 시우리로 반딧불이체험 가서도
잠깐잠깐 무릎장단도 하게 되는게, 이런 느낌 처~~음 입니다)
그렇게 금요일 아침부터 무심히도 비가 퍼붓는 바람에
저녁에 가려고 예정하고 있던
용문산 상원암 산사음악회에 못가겠구나...했지요.
몇번을 가나, 못가나 하느라 그예 출발시간을 넘겨 오후 5시가 되어
출발했고 시작시간 6시를 넘겨 연수리에 도착, 스님들 봉고차에 꼽사리
껴서 가파른 산길을 올라 7시가 다 되어 상원암에 도착했습니다.
비는 마침맞게 그치고 깊은 골마다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사이로 어둠이
내리고 있었지요.
한영애의 노랫소리가 대웅전 앞뜰을 가득메운 사람들 가슴을 채우고
멀찌기 나앉은 대웅전 부처님의 귓가를 시원스레 울릴즈음
나도, 함께 간 지인도 얼추 끼어서 섰습니다.
장사익님이 조그맣게 마련된 무대에 올랐지요.
오른손에 작은 종을 들고 개량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이윽고 김규형님의 북소리와 함께 들릴듯 말듯 종이 흔들릴 즈음
"여행"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듣던 노래임에도 어찌 그리도 새롭고 좋던지...
이어 "아버지"라는 노래가 이어졌는데 허..참..
자꾸만 눈가가 뜨거워져서....
겨우 마음을 다스리고 있을즈음 장사익님이 시를 한 수 읊는데
어??? 저, 시...
아!!!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2편에서 보았던,
그리고 제일 마음을 울리던, 그래서 좋아하게 된
서정춘시인의 시가 아니던가요!
어찌나 가슴에 사무치고 절절하던지...
이 시입니다.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30년 전> 전문
눈물나데요....
그렇게 용문산 상원암의 밤은 깊어 가고
비가 그친 밤하늘로 달님이 살짝 얼굴을 내밀고 하는 사이
장사익님의 노랫소리는 시나브로 이어졌습니다.
대웅전 앞이며, 요사채 툇마루며 가득가득 메운 사람들.
때로는 숨죽여, 때로는 노랫소리에 맞춰 추임새도 넣으며
한데 어우러지는 시간이 세시간여...
내려오는 길,
마을까지 만개의 등을 달아 길을 밝힌 밤길을 밟아
1시간 남짓 걸어 내려 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장사익님의 음악을 들으며 씨디자켓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또 놀랐지요.
"여행"이라는 노랫말이 바로 서정춘시인의 시
<죽편(竹篇)1-여행>이라는 시더군요.
장사익님의 노래를 올리고 싶었는데 오랫동안 찾아도 링크할 곳을 찾지
못해서 그냥 시를 올립니다.
"여행"이라는 노래를 찾게 되면 누구라도 올려주세요. 함께 들으면 좋겠네요.
여기서부터,----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죽편(竹篇)1- 여행> 전문
서정춘시인의 시입니다.
도봉1기 식구들은 좀 남다른 느낌이 있을것 같네요.
첫댓글 좋은 여행을 하셨네요. 안그래도 보면서 가까이 살면 같이 가자고 졸라보고 싶은 계획이었습니다. 여전히 님의 향기를 맡는 글이었습니다. 항상 마음만 있는 꽃신입니다.
'자신에게 예술을 선물하라'는 조언을 들었던 차에 영난님이 추천하고, 게다가 밤, 산사의 음악회라니... 정말 가고 싶었습니다. 헌데, 쐬고 오신 것들을 겨우 이정도로 나눠주시는 건가요? 만나면 더욱 진하게 뿌려주실거죠? 내일 회의가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