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의 왕
신 17:14-20
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신 17:14-20 / [왕에 대한 규정]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하고 살다보면 여러분도 주변의 다른 민족들처럼 왕을 세우고 싶어질 것입니다. 15) 그러면 반드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뽑아 주시는 사람만을 왕으로 세우십시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동족이 아닌 외국인을 왕으로 세울 수는 없습니다. 16) 또 왕은 말을 많이 보유하려고 해서도 안되고 말을 많이 도입하기 위해서 백성을 애굽에 용병 노예로 팔아서도 안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 노예가 되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17) 또 왕은 아내를 많이 두어서도 안됩니다. 아내가 많으면 왕의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나게 됩니다. 또 왕은 자기를 위하여 은과 금을 너무 많이 쌓아도 안됩니다. 18) 또 그는 왕위에 오를 때부터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보관하는 이 율법책을 베껴다가 19) 항상 가까운 곳에 두고 평생 동안 읽어야 합니다. 왕은 이 책에서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며 이 규정들을 실천해야 합니다. 20) 그렇게 하면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얕잡아 보는 마음도 생기지 않을 것이며 주님의 명령에서 좌로나 우로 빗나가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왕과 그의 후손들이 오래오래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주변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고자 한다면 이방 사람이 아닌 이스라엘 형제 중에서 택해야 합니다. 왕은 율법을 가까이하고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가 율법을 준행할 때 그와 그의 후손이 왕위에 오랫동안 있을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는 지도자(14-17) 지도자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거주할 때 왕을 세우고자 할 것을 미리 아시고 왕에 관한 규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형제 중에서 하나님이 택하신 한 사람을 왕으로 세워야 했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서 실현하는 대리인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왕은 말을 많이 두지 말고 말을 얻으려 애굽으로 백성을 다시 보내지 말아야 했습니다. 또한 마음이 미혹될 수 있으므로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자신을 위해 재물을 모아 두지 말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길 바라셨습니다. 지도자는 왕이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세상을 다스려야 합니다.
말씀을 준행하는 지도자(18-20) 지도자 위치에 있는 성도는 자신이 남들보다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졌다고 교만해선 안 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왕은 제사장 앞에서 율법서를 필사해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읽으며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율법을 지켜 행하여, 항상 말씀을 가까이함으로 주님의 계명을 좇아 겸손히 백성을 섬겨야 했습니다. 만일 왕이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그분을 경외한다면 그의 왕위를 오랫동안 유지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교과서는 바로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준행하는 것은 지도자가 보여야 할 가장 중요한 모습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 같은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적용: 지도자로서 내가 더욱 절제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이 땅의 위정자들이 사리사욕이 아닌 백성의 복리를 위해 섬기도록 기도하십시오. 성경을 곁에 두고 수시로 말씀을 묵상하며 행하고자 힘씁니까?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대로 나라를 이끌도록 기도하십시오.
대의멸친[大義滅親]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대의명분 앞에서는 사사로운 정을 버려야 함을 뜻합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백범 김구,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는 안락하고 행복한 삶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겸손과 공의로 살아가는 하나님 자녀의 모습을 이뤄가는 날 되기를 소망합니다.
< 설 교 >
말씀을 자기 옆에 두고
신 17:14-20, 딤후 3:15-17, 마 7:24-27 / 인명진 목사
여러분, 영양제나 비타민 하나쯤은 다들 복용하시지요? 그런데 그 영양제와 비타민을 어디에다 두고 드십니까? 찬장 깊숙이 넣어두십니까? 아니면 눈에 잘 보이는데 두십니까? 대부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실 것입니다. 저희 집에도 눈에 잘 보이는 식탁 위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저희 집에 보디빌딩을 하는 작은 아들 녀석은 몸 짱을 만들기 위해 단백질 보충제를 비롯해서 여러 영양제를 식탁 위에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면 가장 꺼내기 쉬운 곳에 닭 가슴살이 가득 차 있습니다. 어제는 의경으로 군대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닭 가슴살 주문해 달라고 엄마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관심이 있고, 좋아하는 것을 눈에 가장 잘 띠는 곳에 둡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다 두십니까?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손이 가장 잘 닿은 곳에, 몸 가까이 두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영양제나 비타민보다 우리 인생을 훨씬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비타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영향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손닿는 데 두어 가까이 하고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은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신명기 말씀은 40년 광야 생활을 회고하는 모세의 세 편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두 번째 설교, 아니 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모세의 마음은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남김없이 받게 하고 싶었습니다. 제발 복을 받으려면 이렇게 해야 된다는 간절한 마음이 녹아 있는 말씀입니다. 저 역시 2019년 갈릴리 성도들이 제발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이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은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나라를 만들고, 왕을 세우게 될 것인데 왕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대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세운 왕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너희가 복을 받고 번영할 수도 있고 벌을 받고 쇠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왕은 정말 잘해야 한다. 왕이 나라를 잘 다스려 너희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느냐?”
신명기 본문에는 왕이 하지 말아야 할 것 두 가지, 반드시 해야 할 것 한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군대를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말은 전차나 탱크와 같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북한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습니다. 보병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던 국군은 신식 병마인 탱크 앞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런 강력한 무기를 두지 말하는 것입니다. 왜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는 것입니까? 자기 힘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힘으로 출애굽 했습니까? 자기 힘으로 홍해바다를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까? 자기 힘으로 가나안 땅을 점령했습니까? 아니잖아요? 너희는 하나님이 도우시고,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나라요, 백성이라는 것을 한시라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병마를 의지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돈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돈만큼 힘이 있는 것이 없습니다. 돈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습니다. 제가 잘 아는 선배 목사님이 추자도 한 교회에 집회를 갔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자기 친구가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계시는데, 나이도 구순 가까이 되었고, 앞도 안 보이고, 다리도 사용할 수 없어서 늘 집에만 계신 분이랍니다.
그래서 육지에서 무슨 선물을 사갈까 하고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어머니 뭘 좋아하시냐?”고 물었더니 “좋은 것 추자도 다 있어 그냥 와.” 하더랍니다. 미안해서 그러는 모양이다 생각하고 재차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추자도 친구가 “우리 어머니 돈 좋아하셔.” 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봉투에 돈을 담아 드렸더니 그렇게 좋아하더랍니다. 눈도 잘 안 보이고, 다리도 불편해서 다니지도 못하는데 돈을 어디다 쓰겠습니까? 육지를 나가는 배를 탈 수 있겠습니까? 옷을 사 입겠습니까? 먹을 것을 사 먹겠습니까? 쓸데도 없잖아요?
그래도 사람은 돈을 좋아합니다. 가지고만 있어도 배부르고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추자도 할머니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 아닐까요? 문제는 좋아하는 것까지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돈을 의지하고, 돈을 믿게 되면 그 순간부터 사람이 변합니다. 주님은 이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오늘 우리가 병마를 의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은 나에게 힘으로 작용합니다. 더군다나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힘 있는 사람은 크나큰 권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힘 있는 사람을 의지합니다. 주님께서 누누이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편 146편 시인은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니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였습니다.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보다 힘 있는 사람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쾌락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지요. 사람이 자기 즐거움에 심취되면 다른 사람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왕이 자기 즐거움에 빠지면 백성들의 아픔과 눈물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레위 인에게도 이와 비슷한 요구를 합니다. 레위 인에게 거처할 수 있는 집은 주었지만 기업인 땅은 분배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라고 말씀합니다. 레위 인이 어떤 사람입니까? 백성들의 죄를 씻어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축복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 배부르고 만족하여 백성들의 아픔과 눈물을 공감하지 못하면 어찌 그 사역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레위 인에게 재산을 주지 않았습니다.
저도 저 옛날 레위인의 전통을 이어받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저 역시 물질적인 재산은 하나도 없습니다. 솔직히 살 집만 있으면 당장 그만 두고 싶을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참으로 비참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또한 은총이었습니다. 이 땅에 가지지 못한 자들의 아픔과 눈물을 공감하게 하셨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어서 당당한 것이 아니라 나의 기업이신 하나님께서 저를 당당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에게 또 다른 소명이 있다면 돈이 없으면 못산다는 세상 속에서 재산이 없어도 당당하고 멋있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없는 자, 실패한 자, 기죽는 자에게 보이지 않는 소망을 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도자에게 백성들의 아픔과 눈물에 공감하라고 자기 쾌락에 빠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 하신 후에 반드시 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해야 할 것을 하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왕은 율법 책을 등사하여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읽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 뜻대로 나라를 다스리게 되고 그러면 온 나라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어디 왕만 그렇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한 영혼과 가정과 교회가 바로 서게 해 주는 비결입니다.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제발 복 좀 받으라고 간청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망하지 않고 생존하는 길이고 우리가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이와 반대로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나도 망하고 가정과 교회와 나라도 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왕이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나중에는 영이 흐려져서 제사장이 드려야 하는 제사까지 드리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블레셋에게 패하여 자기도 죽고 가족 전체가 몰살을 당했습니다. 또한 많은 백성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니 분별력이 없어지고,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면서도 겁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가 너무도 처참했습니다.
이와 달리 말씀을 가까이 한 다윗 왕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남김없이 받았습니다. 그의 후손에게서 왕위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백성들도 더불어 행복했습니다. 나라도 부강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수많은 시편을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말씀이 시편 1편 말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 하는 도다.”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분명하게 화와 복을 선언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은 시냇가의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로다. 그러나 말씀을 멀리하고, 율법을 어기고 죄를 짓는 사람은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망하고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사울과 다윗의 실례를 통해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가까이 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시편 1편은 두 가지를 가르쳐줍니다. 첫째,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둘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우선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말씀을 즐거워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말씀이 자기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유익합니까? 오늘 서신서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생을 줍니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 유익을 준다는 것을 알면 좋아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성경을 좋아하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설교를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사모하여 깊이 묵상하게 되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유익을 준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물론 성경이나 설교에서 듣고 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약합니다. 내가 직접 경험해 보아야 합니다.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번 순종해봐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는 말씀이 얼마나 유익한지 체험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환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말씀이 얼마나 유익한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온 몸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마지막 말씀에 모래 위에 지은 집을 사람과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 때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말씀을 좋아하게 됩니다. 간절히 듣고 싶어 하며 들으면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자기를 사랑해주는 분의 말이라면 즐겁게 듣습니다. 특히 자기를 사랑한다는 내용의 말이면 얼마나 좋아하며 듣는지 모릅니다. 제가 하루에 한번 정도는 컴퓨터를 열어서 저에게 온 메일을 확인합니다. 제가 원하지 않은 광고 메일이 10통 이상은 와 있습니다.
마치 저에게 대단한 유익을 줄 것처럼 선전합니다. 저금리로 돈을 쉽게 대출해 준다든지, 주식을 투자하면 쉽게 돈을 벌게 해준다든지, 비아그라를 싸게 판다든지, 예쁜 여자를 소개시켜 준다든지 대부분이 이런 메일입니다. 제가 이런 메일을 읽겠습니까? 스팸 편지함에 보내거나 읽지도 않고 지워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 없이 보낸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가뭄에 콩 나듯이 친구 목사가 보낸 편지나 성도님들의 편지가 보이면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이런 편지는 결코 그냥 지우지 않습니다. 꼭 읽습니다. 그러나 이런 편지도 시간이 지나면 휴지통에 버립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한 번 더 읽고 버리는 편지가 있습니다. 어떤 편지일까요?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편지, 나에게 용기를 주는 편지입니다. 그것을 읽으면 정말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나에게 말할 수 없는 용기를 주는 영혼의 비타민입니다. 낙심해 있는 나를 일으키는 영혼의 영양제입니다. 저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전환기를 맞이할 때마다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실 때 주신 이사야 43장 말씀을 펼쳐서 읽습니다. 때로는 하루에 몇 번씩 읽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저는 이 말씀에서 사람이 줄 수 없는 용기와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나를 부르신 하나님을 다시 바라봅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힘이 저를 붙들어줍니다. 이것은 저에게만 주시는 은혜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버지라 믿고 그 말씀을 믿고 따르는 모든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입니다. 말씀을 가까이에 두십시오. 제발 말씀을 사랑하십시오. 바로 거기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복이 시작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복이 결론을 맺습니다.
여러분, 말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많이 들으셨지요?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고래도 칭찬해 주는 말이라면 춤을 춘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들을 때 우리 신체의 모든 조직이 그런 방향으로 준비를 갖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말씀을 통해 온 몸이 새 힘을 얻고 온 몸의 세포와 조직이 강력한 투지를 가지고 말씀이 가르쳐주는 선하고 의롭고 복된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복된 길을 가르쳐주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몸을 새로운 힘과 활력으로 채워주는 것입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에 제 나이 정도 되는 소아과 여의사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척추 디스크가 심해서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었습니다. 제가 병원 심방을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성경을 일독하겠다고 목수를 불러다가 침대에 누워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독서대를 맞추었습니다.
제가 심방을 가니 MP3를 들으며 누워서 책장 넘기며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제가 감동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이 집사님은 다시는 허리 아프지 않았습니다. 병원도 환자들로 붐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정신으로 살아가겠다는데 막힘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또한 막힌다 한들 넘지 못한 어려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물론 성경을 읽는다고 난치의 병이 다 낫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혹시 병은 낫지 않는다고 해도 이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 우리의 마음과 태도와 몸의 구조까지 축복의 방향으로 바뀌게 됩니다. 사람이 스스로 긍정적인 말을 해도 어느 정도 바뀌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듣고 입으로 시인한다면 얼마나 크게 바뀌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사람은 말씀대로 살도록 바뀌어 갑니다. 한 번 선을 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과 구원의 축복을 풍성히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축복의 길을 모르니 죄악에 빠져 살 수밖에 없지요. 더욱이 죄에 젖은 생각과 몸에 생명의 말씀이 역사할 기회가 없으니 정말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이 가르쳐주는 대로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무런 축복도 없고 열매도 없는 비천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들은 말씀을 강한 의지로 순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냥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자기 옆에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으로 인해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습관이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몸까지 축복의 길을 가도록 준비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 또한 그 복을 세상에 나누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갈릴리 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영양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비타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십시오. 그리하면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말과 행실과 습관과 삶이 변하여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또한 주님이 내려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풍성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복 있는 생을 살아가기로 소원하는 갈릴리 성도들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규례를 지키는 좋은 일꾼이 됩시다
신 17:18-20 / 강성찬 목사(전주동부교회)
미국이 진실을 말하던 날(The Day America Told Truth) 이란 책에서는 지금 현재 미국 사회는 옛날 서부 개척시대보다도 더 못하다, 거칠고 타락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합니다. 도덕적인 면에서 어떤 일치된 견해도 없고 다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십계명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합니다. 전부 자의적으로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미국 사람 중의 77%는 “내가 왜 안식일을 지켜야 되는지 모르겠다.” 고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킬 필요를 느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또 미국 사람들의 74%는 “나는 부자에게서는 죄책감을 별로 느끼지 않고 물건을 훔칠 수 있다. 부자니까.” 라고 말했고, 또 64%의 사람들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언제든지 거짓말을 하겠다.” 라고 말했고, 또 56%의 사람들은 “나는 내가 스스로 절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음주운전을 할 수 있다.” 라고 말했다합니다. 음주운전해서 사고 내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100이면 100, 자기는 안 그럴 줄 알았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또 53%는 “나는 바람을 피울 것이다. 사실 내 아내도, 내 남편도 기회가 있으면 그렇게 할 텐데 뭘.” 하고 말했다합니다. 이것이 현재 미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말씀,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서는 믿지 않고 사는 면이 미국 사회에 팽배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담은 율법인 “양심”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양심이 기준이 되지만 양심이 정지될 때가 있습니다.
(딤전 4:1-2)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가축의 경우 소유를 확인하기 위해 화인을 찍습니다. 그러면 찍힌 그 부분의 감각은 사라집니다. 그런 것처럼 양심이 화인 맞았기 때문에 양심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양심이 마비된 상태를 묘사한 말이기에 두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저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있고, 내 마음속에는 반짝이는 도덕률이 있다.”(임마누엘 칸트)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 도덕률은 양심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도덕률이 빛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전 8:11)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화인 맞은 양심은 하나님의 주신 은총, 주의 뜻대로 살라고 주님이 주신 물질, 건강, 기회, 이 모든 것을 악용한난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이 알기는 뭘 아셔?” “보기는 뭘 보셔?” 하며 자기 스스로 의식화 한다고 합니다. 악한 쪽으로 마음이 담대해 진다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런 일들이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이 세워지지 않으면, 양심 외에 또 다른 법이 세워지지 않으면 인생이 올바로 하나님 앞에 설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진정 성공한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답게, 인간답게, 성도답게, 직분 자답게 살기 원하시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광야 생활 하게 하신 것이 고생시키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갖추라고 40년간 광야 생활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광야 생활이 다 끝납니다. 드디어 가나안 땅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한 후에 왕정, 왕의 시스템을 갖기를 원한다면 그 왕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서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서 호화호식하며 사는 것만이 하나님의 자녀의 증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규례를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증표임을 교훈하시고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는 사람은 율법서를 등사본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으라고 합니다.(신 17:18)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위의 척도로 삼아야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행위의 척도로 삼아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왕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왕을 비롯해서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위의 척도로 삼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통치를 하시는 신정 국가의 백성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신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께서 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세우신 대리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을 비롯해서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위의 척도로 삼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백성을 다스립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 2:3)고 했습니다. 이는 솔로몬 왕에게만 국한된 말씀은 아닙니다. 모든 왕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적었습니다. 이 율법서를 등사본을 책에 기록하여 개인적으로 주의 말씀을 가지라고 합니다. 왜 개인적으로 소장합니까? 늘 말씀을 가까이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가까이 할 때 변화의 역사가 임하게 됩니다.
영국 왕 제임스 1세는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독실한 신자였는데 그는 작은 범죄도 엄하게 다스렸습니다. 한 번은 암스트롱이라는 좀도둑이 양을 훔치다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때 암스트롱은 사형을 피하기 위해 한 가지 묘안을 짜낸 후 간수를 불렀습니다. “나는 어차피 죽을 몸, 마지막으로 성경을 읽고 싶소. 임금께 내 뜻을 전해주시오” 제임스 1세는 그 소식을 듣고 대답했습니다. “참 기특한 죄인이로군. 그에게 성경을 주어라. 그리고 성경을 모두 읽은 후에 사형을 집행하라” 암스트롱은 그날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사형을 집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루에 딱 한 절씩만 성경을 묵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임스 1세는 그를 풀어주며 말했습니다. “집에 가서 성경을 읽어라” 암스트롱은 그 후 새사람이 되어 봉사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항상 지혜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마음에 새기는 지혜로운 자는 말씀이 주는 교훈을 열린 마음으로 듣고 순종하여 더욱 지혜로워집니다. 또한 선악과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는 명철한 자는 말씀을 통해 모략을 얻습니다. ‘모략’이란 인생의 진로를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의 역할을 합니다. 말씀은 명철한 자의 인생을 성공의 길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설 때까지 평생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친근히 하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신 17:19) 우리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 가까이 모실수가 있을까요? 그 비결은 주님이 허락하신 주님의 말씀을 친근히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모두에게 임하게 됩니다.
어떤 총각이 여자 친구와 결혼할 것을 결심하였지만 그 총각은 부끄러움이 많아서 여자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매일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3주 계속된 다음, 드디어 그녀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결혼한 사람은 편지를 보낸 그 총각이 아니라, 매일 편지를 배달한 우체부 였다고 합니다. 계속적인 접촉이 사랑에 이르렀고 결국 결혼으로 골인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접촉하게 되고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인자하심이 어떠한지, 그 맛을 보게 되면 더욱 말씀을 갈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맛을 말씀으로 보고 말씀을 더욱 갈구하면 그 결과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장의 순환입니다. 죄악을 통한 세상의 맛이 쓰다는 것을 느껴야 말씀을 통한 주님의 맛을 갈구하게 됩니다. 말씀을 통한 주님의 맛을 보고 나면 죄악을 통한 세상의 맛이 시들해집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기, 위선, 시기, 비방 등 모든 악독을 버리고 순수한 말씀의 젖을 갈구해야 합니다.
부모가 어린 자식이 위험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에 무조건 그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장난감을 주면서 그것을 버리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한 인자하신 주님의 맛을 대안으로 내어놓으면서 옛 사람의 달콤한 죄악들을 버리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평생토록 옆에 두고 살면서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배우는 일, 그 말씀대로 살라고 하십니다.(신 17:19) 여호와의 율법은 평생에 지킬 규례입니다.
(신 12:1) 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복을 위해 말씀의 규례를 주셨습니다. 이 규례를 주신 것은 주님을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라는 고백하며 삶으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까이 하는 하나님 말씀마다 우리의 마음이 담겨야 합니다. 마음이 담기면, 삶의 변화가 뒤따라오고 빛을 발하게 됩니다.
1960년대 말 어떤 부부가 뉴욕 교회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연고자가 없는 환자들을 돌보는 자원봉사자로 일했다합니다. 이들은 그 곳에서 철제 호흡 보조기로 약을 투여 받고 있는 22세 된 여인을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6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합니다. 그녀는 비록 자신의 머리를 20도 가량 밖에 돌릴 수 없었지만 병원에서 가장 명랑한 환자였다합니다. 그녀는 어떤 사람에게도 동정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말할 수 있고 볼 수 있고 또 들을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자원봉사자 부부가 병실에 대해서, 특히 부부의 어린애들에 대해이야기 듣기를 원했다합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시기하는 일이 없었다합니다. 그녀를 만난 사람은 누구나 영감을 받았고, 그녀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다합니다. 그녀는 삶을 사랑하며 성령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삶의 변화를 가져와 교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고 합니다(신 17:20)
왕이 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조백관을 거느리면서 용상에 앉아 호령하면 처음에는 ‘하나님이 나를 왕 되게 하셨구나,’ 겸손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자기도 모르는 새 교만해 집니다. 백성들을 섬김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통치와 억압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마음이 변질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아셨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늘 주의 말씀을 가까이 하므로 하나님의 심정으로, 목자의 심정으로 양떼를 인도하는 심정으로 백성들을 인도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일을 통해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나를 왕 삼으신 하나님! 백성들을 섬기게 하신 하나님께 겸손”하게 나아가 섬기게 됩니다.
태평양 가운데 있는 섬나라에서 벌리부쓰라는 사람이 예수를 믿고 전도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에 훌륭한 군인이었으나 예수 믿기 전에 자기가 얼마나 포악했던가 하는 것을 늘 반성하기 위해 자기가 군에서 차고 다니던 큰칼을 걸어놓고 그 앞에서 성경을 읽곤 했습니다. 어느 날도 전도를 하러갔는데 전도하다가 그는 집 주인에게 질그릇으로 머리를 얻어맞았습니다. 머리도 아프지만, 특히 그 나라에서는 질그릇으로 얻어맞는 것은 여자나 있지 남자는 맞지도 때리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남자가 질그릇으로 맞았다는 것은 큰 수치였습니다. 그래서 몇 번씩 벽에 걸려 있는 칼을 붙잡고 쫓아가서 복수를 하려 했으나 예수 믿는 사람인데 참아야지 하면서 성경을 읽으니 마5:10-12을 읽게 되었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0-12) 그는 부엌에서 제일 좋은 그릇 하나를 가져다가 그 집을 다시 찾아가 "당신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상을 받게되었다."고 하면서 그릇을 주었다합니다.
(시 10:17)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카나리아는 매우 아름다운 노래 소리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마을의 부자가 그 카나리아를 사서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카나리아는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부자도 그 카나리아를 동네 사람들에게 칭찬하기에 바빴습니다. 카나리아는 우쭐해졌습니다. 그래서 밤이 되어도 노랫소리를 그칠 줄 몰랐습니다. 카나리아의 노랫소리를 칭찬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시끄럽다고 항의를 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그 부자는 그 카나리아를 헐값에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더 이상 그 카나리아를 사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신 17:20)
왕은 정점에 있는 자이므로 극단에 치우칠 수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끌려 다니든지, 아니면 백성들에 대하여 왕권을 가지고 억압을 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는 것을 가리켜 실족한다고 합니다. 실족치 않으려면 왕의 마음에, 하나님 백성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법이 있을 때에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습니다.
(시 37:31)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18세기 말에 이 성경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한 사건이 미 동부의 벌티모어시에서 있었다합니다. 벌티모어에서 가장 큰 여관의 지배인이 한 농부의 옷차림을 한 손님의 숙박을 거절하였습니다. 이유는 만약 그런 누추한 옷차림의 손님을 받으면 그 여관의 명성에 흠이 갈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래서 거절당한 그 손님은 다른 여관을 찾아서 나갔고 얼마 후에 그 여관의 지배인은 그 거절당했던 손님이 바로 토마스 제퍼슨씨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배인은 그 유명한 제퍼슨씨에게 즉시 사람을 보내어 자신의 여관에 돌아와 무료로 유숙하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제퍼슨씨는 심부름을 온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해 주시오. 호의는 매우 감사하지만 나는 이미 방을 얻었으니 그대로 여기 묵겠소. 지배인이 누추한 옷차림의 미국 농부에게 방을 내줄 마음이 없다면 그들이 선출한 미국 부통령에게도 방을 내줄 마음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미국의 농부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거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율법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됨됨이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까? 그 법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신 17:20)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이 말씀을 지킬 때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복된 약속이 따릅니다.
말씀의 규례의 준수 자에게 하나님은 복 주십니다. “그와 그의 자손이..” 복을 받습니다.
말씀 규례를 지키는 당사자가 복을 받으리라는 원리입니다.
(시 128:1-2)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의 규례 하나님의 도를 지키면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자손이 복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부모님, 그리고 그 부모에게 딸린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은 결코 소홀히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를 채우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부모의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로다라고 합니다.
(잠 14: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우리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준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정말 잘되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주의 말씀에 견고하게 서야 될 줄 믿습니다.
미국의 어느 법관이 취임석상에서 '나는 한 때 무신론자였지만 내가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은 내 아버지의 성경 말씀과의 일관된 생활로 인해서입니다. 그 후로 차츰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되었으며, 성경이 내 삶의 나침반이 되었습니다'라고 신조를 말하였다고 합니다.
(신 26:16-19) 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라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이것이 신명기의 골격과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신 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미국에서 20여 년 살다가 귀국한 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다니던 교회는 굉장히 큰데 교인이라고는 이삼십 명밖에 안되고 그것도 노인들이 대부분이며 여름이 되면 다들 휴가를 떠나 서너 교회가 연합해도 예배가 성립이 안될 정도로 힘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한국에 오니 여기저기 교회가 있고 또 교회마다 사람들이 가득하여 너무도 신이 났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서울에서 대단히 큰 어느 교회에 금요일 날 철야 기도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거의 천명이 넘는 성도들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밤새도록 기도하는데 이 목사님은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하나님 이 민족을 이렇게 사랑해 주셔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고 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고 밤새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는 감사 기도만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회가 끝나자 밤새도록 산천이 뒤집어지도록 기도했던 그 많은 사람들이 귀가를 하는데 바로 옆에 있는 육교를 사용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몽땅 그 밑으로 우르르 건너더라는 것입니다. 밤새도록 감사기도 했던 이 목사님은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고 합니다.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육교하나 제대로 건너가지 못하는가, 한국 성도들의 신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한탄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법만 지키겠다고 아우성을 떨 것이 아니라 세상의 법도 준수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미덕입니다.
제헌절을 맞으며 나라의 법에 따라 행동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재가 가해지고 심한 경우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권리까지 박탈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법은 하나님의 말씀인 을법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하나님의 선민인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위의 적도로 삼아 그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만일 스스로 성도라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며 마침내는 하나님께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즉 스스로를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행위의 척도로 삼아 그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행하여 할 것이며 세상 법도 잘 지키는 좋은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 헌법
신 17:18-20 / 오정호 목사
최근에 목격한 현수막에 씌여진 내용은 지금도 저의 마음에 아픈 흔적으로 남아있습니다.
“인삼밭 무단 출입하는 자를 신고하면 최고 100만원까지 보상합니다
도둑은 낮에도 인삼을 캐내어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담은 율법인 “양심”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양심이 기준이 되지만 양심이 정지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하므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딤전 4:1-2) 가축의 경우 소유를 확인하기 위해 화인(火印)을 찍습니다. 그러면 찍힌 그 부분의 감각은 사라집니다. 그런 것처럼 양심이 화인 맞았기 때문에 양심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양심이 마비된 상태를 묘사한 말이기에 두려운 말 이기도 합니다. 임마누엘 칸트라고 하는 우리가 잘 아는 철학자는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저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있고, 내 마음속에는 반짝이는 도덕률이 있다.” 이 도덕률은 양심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도덕률이 빛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8:11) 화인 맞은 양심은 하나님의 주신 은총, 주의 뜻대로 살라고 주님이 주신 물질, 건강, 기회, 이 모든 것을 악용합니다. “하나님이 알기는 뭘 아셔?” “보기는 뭘 보셔?” 그렇게 자기 스스로 의식화 합니다. 악한 쪽으로 마음이 담대해 지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런 일들이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이 세워지지 않으면, 양심 외에 또 다른 법이 세워지지 않으면 인생이 올바로 하나님 앞에 설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진정 성공한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답게, 인간답게, 성도답게, 직분자답게 살기 원하시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 신명기를 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땅에 정착해서 살기 전에 마지막으로 주님의 심정을 모세라고 하는 위대한 지도자를 통해 백성들에게 알려주신 것이 신명기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광야 생활 하게 하신 것이 고생시키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갖추라고 40년간 광야 생활을 주셨습니다. 이제 광야 생활이 다 끝납니다. 드디어 가나안 땅에 정착을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호화로운 집에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임의 표증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한 후에 왕정, 왕의 시스템을 갖기를 원한다면 그 왕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서야 하는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베드로전서 2:9). 이를 기초로 인생헌법인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그 원리를 찾아봅시다.
I. 인생 헌법인 하나님의 말씀을 친근히 하라.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18절) 옛날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적었습니다.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개인적으로 주의 말씀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왜 개인적으로 소장합니까? 늘 말씀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으라.”(1절) 주님 앞에 설 때까지 평생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친근히 하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 가까이 모실수가 있을까요? 그 비결은 주님이 허락하신 주님의 말씀을 친근히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II. 인생 헌법을 주신 하나님 경외하기를 실천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복을 위해 인생헌법을 주셨습니다. 이 헌법을 주신 것은 ‘내 주님을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그 고백을 담아 삶으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19절 하) 우리가 가까이 하는 하나님 말씀마다 우리의 마음이 담겨야 합니다. 마음이 담기면, 삶의 변화가 뒤따라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습니다. 그러나 그 정보가 삶의 변화로 열매 맺지 않으면, 그 정보는 단순하게 정보로서 끝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나의 삶의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20절 상) 왕이 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조백관을 거느리면서 용상에 앉아 호령하면 처음에는 ‘하나님이 나를 왕 되게 하셨구나,’ 겸손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자기도 모르는 새 교만해 집니다. 백성들을 섬김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통치와 억압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마음이 변질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아셨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늘 주의 말씀을 가까이 하므로 “그의 마음이 그 형제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20절 중) 왕은 정점에 있는 자이므로 극단에 치우칠 수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끌려 다니든지, 아니면 백성들에 대하여 왕권을 가지고 억압을 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양극단으로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심정으로, 목자의 심정으로 양떼를 인도하는 심정으로 백성들을 인도하라고 하는 말씀이 바로 주님의 말씀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일을 통해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나를 왕 삼으신 하나님! 백성들을 섬기게 하신 하나님께 겸손”하게 나아가 섬기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음이로다.”(시 37:38)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는 것을 가리켜 실족(失足)한다고 합니다. 실족치 않으려면 왕의 마음에, 하나님 백성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 하나님의 법이 있을 때에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음이로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사 51:7)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율법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됨됨이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까? 그 법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성경을 가까이 하는 강력한 은혜가 우리 모두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웁니다.
III. 인생 헌법 준수자를 복 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이 말씀을 지킬 때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약속이 따릅니다. 인생헌법의 준수자에게 하나님은 복 주십니다. 인생 헌법, 하나님의 말씀의 준수자에게 하나님은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복을 주기 원하십니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20절 하) 이 말은 두 가지 의미입니다. 첫째, 당사자가 복을 받으리라는 원리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시 128:1-2)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도를 지키면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자손이 복을 누립니다. “그와 그의 자손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부모님, 그리고 그 부모에게 딸린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은 결코 소홀히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를 채우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은혜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잠 14:26) 여호와를 경외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로다. 약속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우리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준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정말 잘되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주의 말씀에 견고하게 서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네가 오늘날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 소리를 들으리라 확언하였고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셨은즉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신 26:16-19) 이것이 신명기의 골격과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18:1-6)
저는 이 말씀 그대로를 믿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가족 여러분!
진정 이 말씀을 그대로 받습니까?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인생의 법을 제정하시고
그 백성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서
인생경영에 참 성공자가 되자.”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은 여러 번 개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역사 이래로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일점일획이라도 변치 아니하리라.” 왜 그렇습니까? 완전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변화되는 헌법도 권위가 있다면,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 영원하신 하나님에게 인생을 건다면 하나님이 그 인생 책임지시고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묵상하는 왕
신 17:14-20
오늘 말씀은 신명기 17장:14절-20절 말씀입니다.
묵상하는 왕
인류의 역사 속에는 세계적으로 또는 각 나라별로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지금도 칭송을 받는 지도자들이 있는가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씻을 수 없는 아픔을 후대에 남겨 주어서 계속해서 비판을 받는 지도자들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도자는 당대의 권력을 손에 잡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떠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 정치를 하고 나라를 다스리느냐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한국에서 대통령이나 중요한 지도자들을 선출하는 과정은 모두가 관심을 갖고 살펴보게 되는 것이죠.
우리에게 있어서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관점일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와 신앙을 지켜줄 수 있는 지도자는 누구일까 하는 것을 관심있게 살펴보아야 하겠죠.
이스라엘에게도 그러한 지도자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살펴 볼 수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왕도 있었던 반면에 하나님의 뜻을 떠나 악한 길로 갔던 왕도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하는지에 따라 왕을 포함한 나라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평강을 누리는지 혹은 징계를 받아 어려움 가운데 처하게 됨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서 왕을 세우게 된다면, 그 왕들은 어떠한 왕들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여기에서 왕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바로 앞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신앙과 삶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래도 재판장은 하나님의 공의로 재판을 하여야 하고, 일반 시민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였죠.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말씀이 기준이 되는 나라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라의 지도자인 왕이 먼저 그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겠죠. 그리고 그 뒤이어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분깃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서, 지도자들은 통한 하나님의 공의를 따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제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모세는 왕이 될 사람은 3가지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첫째는 16절에서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합니다. 둘째는 17절에서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고, 계속해서 세 번째로 은금을 많이 쌓지 말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우리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죠. 하나님보다 세상의 권력을 사랑하지 말고, 음란한 것에 빠지지 않으며, 재물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죠.
그런데 반대로 왕이 열심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말씀을 가까이 두어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는 것이죠.
성경을 읽다보면, ‘묵상’이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함을 보게 됩니다. 대표적으로는 시편 1편의 말씀이 있겠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시편 1:2의 말씀인데요.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묵상’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묵상은 ‘명상’과 비슷한 의미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말씀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묵상은 히브리 성경이 말하는 묵상의 올바른 형태는 아닙니다. 성경에서 ‘묵상하다’라는 단어에는 맹수가 ‘으르렁 거린다’라는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마치 배가 고픈 맹수가 먹이감을 찾기 위해서 들판을 헤집고 다니다가 먹이감을 발견하고는 그 먹이감을 향해 ‘으르렁’ 거리며 돌진한다는 의미가 있는 단어인 것이죠.
그래서 묵상은 단지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 어떤 뜻일까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서, 얻어진 말씀의 의미가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지는 지를 삶에서 실천하고 연구함으로 확인하고 확신하는 모든 과정을 통 털어서 묵상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이 교만해지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되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의 백성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받는 백성으로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의 권력과 물질, 그리고 쾌락을 사랑하는 삶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찾아 발견하여 그 의미를 삶에서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영원한 가치를 누리는 삶이며, 그 안에서 진정한 평안과 생명을 누리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바라기는 세상의 없어질 헛된 것들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영원한 생명과 평안과 없어지지 않는 가치들을 발견하여, 그 가치들을 삶에서 실천하고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평안의 은혜 안에서 기쁨과 감사로 하루를 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왕의 선택과 기준
신 17:14-20
왕에 관한 규정은 사법행정의 규정에 따릅니다. 신명기 법전의 대부분이 모세 시대의 고대 법전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그 중간에 후대에 생긴 왕권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왕 제도는 역사적 사실이요 또 여호와의 인준을 받은 기구인 이상 신명기 법전의 제정자들은 왕권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래도 왕 역시 이스라엘 계약 공동체의 일원임을 강조하면서 왕권의 한계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본문은 재판관을 지명하는 규정 다음에는 왕을 선택하는 지시항이 나옵니다. 모세는 정치가다운 선견으로 이와 같은 우발성을 내다보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신권정치국가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는 하나님이시요 모세는 다만 주의 대리자였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자기 백성이 장차 이웃 나라들의 영향을 받아 왕국을 건설하기를 원할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권장한 바도 아니었고 금지한 바도 아니었습니다. 만일 이들이 원하는 바가 다만 한 동족간의 정부라는 특수형태라면 이것은 단순한 것으로서 그 왕은 다만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부왕격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제 1대 왕인 사울을 선택할 때와 마찬가지로 백성들이 왕을 세우기를 원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반항심의 말로이거나 주의 통치권에 대한 부정이거나 또는 하나님께 대한 불충과 불신앙의 근성을 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수백년 전에 백성들이 선택할 주권자의 성격과 태도를 명백히 말해 놓은 것입니다. 모세는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왕으로 세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형제 중에서 택할 것이요 형제가 아닌 타국인을 세우지 말 것이며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라”고 했는데, 말을 많이 두면 그것은 전쟁이나 남을 정복하기를 원함을 표시하기 때문입니다. 방종과 향락을 드러내던 동방의 군주들과 같은 풍습으로 “아내를 많이 두어도”안됩니다. 그런 풍습은 마치 솔로몬 왕의 경우와 같이 우상 숭배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왕은 또한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결국 백성들에게 중한 세금을 물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법전은 왕에 관한 규정에서 세 가지 금지사항을 규정합니다. 이같은 금지사항은 왕에 대해 비판적인 예언 심판에서 나왔을 것으로 보이며 신명기 법전은 이같은 정신을 법전 속에 반영시킵니다. 이스라엘 왕은 말, 아내, 금은을 많이 모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노새나 당나귀를 가축으로 쓰는 반유목민들에게 말은 전쟁에서 필요불가결한 존재이며 말을 소유한 자의 권위와 우월감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들 중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 원병으로 보내고 그 대신 말을 들여와 기마부대를 세운 이들도 있습니다. 이같은 행위는 군사적인 역량을 과신하게 되어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예언자들의 규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를 많이 얻으면 아내들이 가지고 온 이방신을 따르게 됨으로 우상 숭배에 빠지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며 금은 보화 등의 축척은 스스로 마음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 규정은 모두 종교적인 측면에서 여호와를 따르며 신뢰하는 대신 자신의 교만심이나 이방신의 도움을 얻으려는 폐단을 막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 제도 없이 신정정치만을 지속되기를 원했으나 백성들이 왕 제도를 원함으로 마지 못해 허락했던 것입니다. 삼상 12:6-25에 “만일 너희도 너희 주위의 나라들과 같이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왕을 세워도 좋다”고 했는데 그러나 왕을 뽑는 일과 왕의 혈통에는 여러 가지 제한이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곧 왕은 절대자가 아니요 여러 가지 계약을 받는 군주가 될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는 삼상 8장과 매우 비슷합니다.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뽑기 전에는 씨족의 연합체로서 먼저 국가가 조직되었으며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국민들간에 서로 충실하도록 굳게 결속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 성전에 모여 예배를 드렸으며 하나님께 충성하고 백성들끼리 서로 성실할 것을 정기적으로 다짐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스스로 말과 병거(16절, 왕상 4:25, 10:26-29)와 여러 아내들(17절, 왕상 11:1-8), 그리고 은과 금(17절, 왕상 10:24-25)을 모았습니다. 왕도 다른 모든 히브리인들과 다름없이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습니다(18-19절). 왕은 친절한 태도로 그의 신하들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는 오직 백성의 공복으로써 살아야 하며, 부를 탐하거나 무력적인 정복으로써 힘과 행운을 추구해서도 안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당시 유행하던 폭군을 본받아서도 안됩니다. 왕은 어떤 계승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통치권이 주어 졌기 때문에(15절, 삼상 10:24)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함으로서만 그와 또 그의 자손의 집권이 오래 계속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법전은 적극적인 예방책으로 왕은 법전을 옆에 두고 읽을 것을 당부합니다. 이같은 규정은 아마도 왕이 계약갱신제 때 계약을 갱신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여하간 신명기 법전에 따르는 계약사항에 충실하면 그 집안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 중에 이같은 규정을 충실히 이행한 사랑은 많지 못합니다. 18절에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라는 표현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발표한 첫번째 법을 다시 복사하여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신명기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레위인들이 법을 보관했다는 표현은 그들이 고대의 법전을 편집하여 복사하는 일을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왕에게 가장 적극적이며 중대한 요구조건은 자신을 위하여 “율법서”를 등사해서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이 모든 말과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하는 이 율법책이 곧 신명기였습니다. 곧 왕의 정부는 일시적인 개인의 기분이나 포학성으로 운영될 것이 아니라 율법을 기준삼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을 존중하게 생각하여 그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자기를 백성과 동등하게 여길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대리자로 생각해야 합니다. 20절에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그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고 했습니다. 영구히 왕위에 오르리라는 표현은 남왕국의 다윗의 집안을 두고 후대에 첨부한 표현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