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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시인 이원규!
11년만의 신작
시사진집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
시집 ‘달빛을 깨물다’ 출판 기념회 및
「The starry Tree _ 별나무」 사진전에 다녀왔다.
- 8월 16일 19시에 광주 '뜨락'에서 -
- 사회자(뜨락 김태훈 이사장) -
- 케익 컷팅 -
- 이원규 시인의 능소화를 시인이 낭송하고 있다 -
능소화
- 이원규 -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라면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 축하하는 피아노 연주 -
- 신희지(고rpm여사) 시인(이원규 시인 부인)도 축하곡을 -
- 사회자도 축하곡을 -
- 축하 퍼포먼스(performance) -
- 별 사진에 관한 대화의 장(아래의 글 참조) -
- 지리산 가수 고명숙님도 축하곡을 -
- 낭송시도 들려줬다 -
- 이원규 시인과 인연이 깊은 키타 동호인들이 흥을 돋구웠다 -
- 2년 만에 만남을 인증한 컷 -
- 여수에서 횟감을 들고와 손수 세팅을 해준 손민식님(지리산 문화예술학교 학우) -
별 볼 일 없는 세상, 별을 보여드립니다-
하늘의 시간(天時)에 토종나무를 찾아오는 별들
지난 5년 반 동안 별이 빛나는 밤이면 지리산과 전국 오지를 찾아 밤마실을 다녔다.
청명한 밤마다 ‘별사냥’, ‘은하수 사냥’을 나갔다.
나의 흑마 모터사이클을 타고 낮에 미리 봐둔 우리 토종나무를 찾아갔다.
그 이전의 5년 동안은 안개와 구름 속의 야생화를 찾아다녔다.
그동안 나는 한반도 남쪽에서 3만 리를 걷고, 110만km를 달렸다.
이따금 사람들이 물었다.
“왜 안개와 구름 속의 야생화냐?
별을 찍으려면 히말라야나 몽골에 가면 좋지 않겠느냐?”.
그럴 때마다 한마디로 대답하기에는 심사가 좀 복잡했지만 그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별 볼 일 없는 세상, 별을 보여드립니다”.
우리는 갈수록 너무 밝아져서 별들이 잘 안 보이는 나라에 살고 있다.
모두들 말로만, 글로만, 노래로만 별들을 얘기하지 스스로 직접 보려하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히말라야나 몽골처럼 수많은 별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대한민국은 너무 환하다.
밤이 없다. 빛 공해(光害)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은 이미 우리나라의 풍경이 아니다.
모두들 별을 까맣게 잊고 살아간다.
역설적이게도 ‘별들의 적은 불빛’이다. 빛은 사물을 더 잘 보이게도 하지만 때로는 공해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별이 뜨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일반적인 천문 사진이 아니라 주로 우리나라 토종나무를 중심으로
별들이 떠오르는 ‘별나무’(The starry Tree) 사진에 집중했다.
밤에도 매화며 오동나무 꽃은 피고 늦가을의 감나무들은 외등처럼 홍시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안 보인다고 아예 보려 하지 않으니 밤의 꽃나무는 그동안 없는 셈이었다.
물론 네팔이나 몽골의 별밤이 더 선명하겠지만 그 또한 상투적이지 않은가.
누구나 볼 수 있는 별밤이라면 굳이 지난한 작업을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막상 몽골이나 바이칼 호수 등에 가보았지만 구도가 그리 좋지 않았다.
한 마디로 별만 많이 쏟아졌지 심심하고 밋밋했다.
지평선 위 하늘의 3분의 1쯤은 광해로 너무 밝았다.
나무나 산 능선의 구도는 우리나라가 훨씬 좋았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낮의 사진은 내려놓았다.
오히려 잘 안 보이는 밤의 별사진에 집중했다.
카메라가 찍어주는 낮 사진, 수동적인 자세의 사진이 아니라, 내가 카메라를 제어하는 능동적인 자세,
그 수많은 실패가 더 소중했다.
밤눈에 익숙해지면서 그 희미한 빛과 그늘을 빨아내고 보듬어 안았다.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별들을 잊고 사는 이들에게,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천년 별빛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작업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일단 별과 더불어 주 피사체가 되는 ‘토종나무 모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낮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때로는 도둑놈(?) 취급을 받으며 전국의 오지를 어슬렁거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맑은 밤이면 4월부터 8월까지 선명한 은하수가 떠오르고, 수시로 별똥별들이 쏟아졌다.
지난 5년반 동안 밤마다 반경 40km 이내에 도시가 없는 오지들을 찾아다녔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나 이미 유명한 나무들은 절대 찍을 수 없다.
가까이 외등이 켜져 있거나 나무를 보호한답시고 주변에 철조망이나 간판 등이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프레임 속에 나무 그 자체의 온전한 모습이 훼손되니 제대로 찍을 수 없다. 그
리하여 더 오지의 유명하지 않은 ‘왕따나무’를 찾아나서야 했다. 도시나 고속도로 등의 빛 공해가 없는 지역,
가까이 시골 마을의 가로등 불빛마저 가까이 침범하지 않는 곳에 홀로 서 있는
감나무, 오동나무, 매화나무, 자작나무숲, 산벚나무, 소나무, 능수버들, 수양벚꽃, 수달래 등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런 나무들을 찾았다고 해서 모두 별나무 사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막상 다시 밤에 찾아가보면 어디선가 안 보이던 불빛이 급습한다.
더구나 비가 오거나 흐린 날, 달빛 좋은 밤에는 아예 포기해야 한다.
날마다 수시로 기상청 예보를 주시하며 그 옛날 농부나 어부처럼 육감으로 밤하늘을 보다 보면
한 달에 겨우 사흘 정도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런 날이 오면 밤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밤을 지새워야 한다.
미리 봐둔 나무를 찾아가 벅차오르는 감흥을 억누르며 카메라를 잡고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어둡다 보니 카메라 초점 잡는 것도 쉽지 않고 모든 것을 수동조작으로 해야 하니 실패 또 실패, 새로운 세팅을 하며
찍은 뒤에 사진을 확인하는 등 무한 반복을 해야 한다.
산짐승들을 친구삼아 나만의 별나무 사진 노하우가 축적됐다.
인생도 그렇듯이 화무십일홍이다.
열흘 이상 붉은 꽃이 없다는 옛말처럼 환하게 꽃이 피는 별나무 사진을 찍으려면 같은 모델을 두고도 적어도 3-5년 정도 걸린다.
일단은 꽃이 피는 나무를 찾아야 하고, 그 나무가 꽃을 피울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 꽃이 다 지기 전에 별들이 쏟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하늘의 시간인 ‘천시’(天時)가 아닐 수 없다.
꽃이 피었다가 질 때까지 밤마다 찾아가 기다려야 한다.
날이 흐리거나 달이 떠오를 무렵 꽃이 피면 너무나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감나무 또한 격년결과의 해거리를 하니 실패하면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안개와 구름 속의 야생화처럼 또 하나의 간절한 기다림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지리산 오지마을의 감나무를 찾아갔다.
해발이 높다 보니 영하의 밤길, 왕복 600리 길이었다.
이 감나무를 찍다가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습도가 낮고 추운 밤의 별들보다 습도 65% 정도의 밤에 찍은 별들이 더 잘 나온다는 사실이다.
영하 5도, 습도 40% 정도의 쾌청한 밤의 별들은 파란 하늘 속에서 거의 같은 크기와 같은 빛의 세기로 나왔다.
그런데 살짝 안개가 낄 정도의 밤에는 굴절 현상 때문인지 별들의 크기와 빛의 세기가 저마다 다르게 찍혔다.
큰 별은 더 크게, 밝은 별은 더 빛나는 것이었다. 이 또한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천시의 기운’이었다.
대마도의 반딧불이를 본 뒤 너무 부러워 밤마다 지리산 골짜기를 다 뒤진 적도 있다.
결국 반딧불이와 별과 은하수를 2년 만에 사진으로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별비 내리는 겨울 폭포. 영하 7도의 밤에 물보라 맞으며 3년 동안 집중해 겨우 1장을 건진 적도 있다.
나는 몽골, 히말라야, 바이칼 호수 알혼 섬,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이 부럽지 않다. 한국 최초의 별나무 사진이다.
그것도 우리 토종나무이니 세계 최초의 별나무 사진인 셈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미천한 외국어실력으로 구글 검색하며 해외사진들을 일별해보니
딱 두 장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
바오밥 나무 위로 떠오른 은하수 사진이었다.
그리고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소개된 적이 있는 별이 쏟아지는 폭포사진이었는데,
나와 비슷한 시기인 3년 전의 작품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별사진의 디테일에서는 절대 밀리지 않아보였다.
굳이 그 먼 곳, 먼 나라에 가지 않고도 나는 ‘별소년’, ‘은하수 소년’으로 살았다.
때로는 ‘별나무’ 대신 은하수 아래 내 몸을 밀어 넣었다.
은하수가 희미해지는 새벽 4시까지 옷을 훌훌 벗고 20초씩 연이어 한밤의 춤을 추고 또 추는 밤도 있었다.
5년 반 동안 온몸으로 집중했던 별나무가 단 33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갈 길은 멀지만 여한이 없다.
나 홀로 밤의 별 농사가 흉년인 듯 풍년이다.
별빛 내시경
- 이원규 -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들
도시를 꺼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반딧불이 은하수 가물가물 첫 사랑의 눈빛
두 눈이 멀기 전에 캄캄한 곳으로 가자
예감의 더듬이 다 바스라지기 전에
오지마을로 별빛 사냥을 가자
네온사인 가로등 텔레비전 핸드폰
별 볼 일 없는 세계 최악의 빛 공해 나라
밝아도 너무 밝아 생각은 먹통이고
사랑과 혁명도 시청률이 다 정해져 있더라
한반도 밤의 위성사진이 캄캄한 곳
진안 봉화 영양 인제 개마고원 백두산
북간도의 명동촌 윤동주 생가에 가보자
고흐의 별이 빛나는 아를 카페거리
생레미 생폴 정신병원도 너무 밝아졌더라
나는 왜 무엇으로 언제 어떻게 어디로 가는지
동해선 종단열차를 타고 고성 원산 청진
북두칠성 삼태성에게 물어나 보자
울다가 휙 노려보던 당신의 눈초리
별빛을 사냥하다 슬그머니 별들의 포로가 되자
바이칼 호수에서 맨 처음 목욕재계 하듯이
산꼭대기에서 훌훌 옷을 벗고
기막힌 정수리에서 용천혈까지 별빛 샤워를 하자
하룻밤 굶으며 위 내시경 검사를 받고
오금 저리도록 별의 별의 별의 별침을 맞아보자
별빛 한 짐
- 이원규 -
두 눈이 나빠져도 별은 보인다
빗점골에 쏟아지는 별빛이 아까워
늦가을 다람쥐처럼 한 자루 가득 채웠다
이역천리 서울 가는 길
깡마른 몸 지게에 별빛 한 짐 지고 갔더니
와 이리 캄캄하노?
철지난 노래처럼 슬슬 눈길을 피했다
인사동 뒷골목엔 내다버릴 곳이 없었다
그래, 서울이 좀 더 밝아졌을 뿐이야
노안의 두 눈을 질끈 감고
풀이 푹 죽은 별빛 한 자루를 둘러맸다
지하철 3호선 심야고속버스 갈아타고
까무룩 섬진강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다람쥐꼬리를 감추며 말했다
에휴, 쌀자루에 쌀은 안 담아오고
전기밥솥 코드를 뽑아버렸다
며칠 굶는다고 아무데나 거미줄 치랴
자정 넘어 섬진강 백사장에 나가
풀이 푹 죽은 별빛 자루를 열자마자
호르르 반딧불들이 날아올랐다
쥐나도록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는데
어찔비칠 현기증이 일었다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 별들이 빛났다
빈손
- 이원규 -
겨울 산정에 올라 별 사진을 찍었다
일생 가난한 시인의 빈 손
밤새 별빛 어루만지던 차디찬 손
몸살의 그대 뜨거운 이마를 가만히 짚어줄 뿐
별다방
- 이원규 -
저 멀리 빛난다고 다 별빛은 아니었네
점촌역전 골목의 지하 다방
그녀의 청보라 스웨터에 별들이 반짝거렸지
한번 불붙으면 펄펄 뛰는 팔각 성냥갑
달달하게 녹기 전에는 날 세운 각설탕
오빠야, 내도 차 한 잔 마실게
옆자리 앉자마자 허벅지 쓰다듬으며
근데 얼굴이 캄캄한 오빠는 뭐 하는 사람?
나야 뭐, 지하 막장에서 벼, 별을 캐지
아, 죽어야만 2천만 원짜리 그 막장 꺼먹돼지!
그래 그래 별마담, 커피 두 잔 부탁해
철없는 시인이 되었다가 폐광하고
경제학 원론을 불태우던 그 시절
지하 1층 별다방에서 별똥별을 보았지
밤마다 9톤의 별들에게 다이너마이트 터뜨리며
지하 700미터 막장에서 운석을 캐냈지
오후 네 시에 팔팔 항목으로 들어가
자정 무렵 시커먼 포대자루로 기어 나오면
코피처럼 폐석처럼 쏟아지던 별빛들
세상도 나도 너무 밝아져 다 식어버렸네
지천명 넘어서야 밤의 지리산 형제봉
해발 1100미터 산마루에 홀로 누워
아득하고 아련한 별빛들을 소환하네
아주 가까이 빛나던 것들은 모두 별빛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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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양 평사리 부부소나무(이 작품을 구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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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악양 평사리 작품을 구입~?! 감축드리옵니다~~
넓은 집으로 옮기셔서~~작품을 걸을 날을 기다리며 ~~^^
육신의 쉼터인 공간이
약간 협소할 따름일 뿐!
영혼의 안식처인
'만학천봉'의 智異가
있음에~ㅎ
몹시도 끌리기에..
A2로 된 걸
덜컥 찜했지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