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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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흔히 '지상명령' 이라고 불리는 이 구절에서 동사를 찾아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다', '제자를 삼다' , '세례를 베풀다' ,' 가르쳐지키다' 를 찾는다. 우리나라 성경에는 이렇게 동사가 많지만 사실 헬라어 성경에는 동사 하나 '제자를 삼다'에 나머지는 분사형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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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것, 세례를 베푸는 것, 가르쳐 지키게 하는 모든 것이 제자 삼는 과정을 수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상명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는 것'이 아니다. 선교적 교회의 핵심을 '가다' 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마이클 고힌은 <열방에 빛을>에서 지상명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제자가 되는 삶이며, 그 제자의 삶을 통해 제자를 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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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구절을 해석할 때 릭 워렌은 <목적이 이끄는 교회>에서 이 구절과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합쳐서 위대한 계명과 위대한 사명은 위대한 교회를 만든다고 말하면서, 가는 전도, 세례를 베푸는 교제, 제자를 삼는 훈련, 하나님 사랑이라는 예배, 이웃사랑이라는 사역을 교회의 5가지 존재목적이라고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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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의도 나름의미가 있지만 문제는 5가지 정의가 모두 동일한 무게를 가진 1:1:1:1:1 의 의미로 본다. 그러나 지상명령은 전도, 훈련, 교제가 동일한 무게의 동사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 세례를 베푸는 것,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은 모두 '제자 삼는 것'이라는 중요한 주제에 귀결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두 동일한 무게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제자 삼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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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크 데버는 <지상명령 바로 알기>에서 또 한 가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지상명령이 '제자 삼는' 과정이라면 이 제자를 삼는 것, 가르치는 것, 세례를 베푸는 주체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다. "제자 삼는 일은 누가 하는가?" " 세례를 주는 것은 누구인가?" 이 지상명령을 개인적 사역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이 지상명령은 결국 지역교회의 개척과 성장으로 완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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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데버는 지상명령을 이루는 주체는 개인이 아닌 지역교회라고 말하면서 교회 공동체를 통한 비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권세도 개인이 아닌 교회의 권세이고 세례를 주는 주체도 보통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권위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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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상명령에서 '가다'는 복음 전도의 의미를 포함하지만 교회를 개척하라는 의미까지 나아가야 한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도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가르침이 필요하고, 또한 성도들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는 상호책임 (Accountability) 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성도들이 목회자를 인정하고 지원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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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지상명령은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가 회복되는 과정이다. 이제 교회는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는것을 사명으로 알아야 하고, 제자화의 문화를 만들어야 하며, 복음 전도의 문화와 세계선교까지 함께 이루어가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지역에 있는 다른 교회들까지 함께 강화하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이루는 것이 바로 이 지상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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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크 데버의 메세지는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메세지이다. 개인주의가 발전하면서 교회 안의 구원까지도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하나님과 일차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교회와 연결은 이차적인 연결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삼위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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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손가락 , 발가락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몸에 붙어 있지 않으면 그 기능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그래서 마크 데버가 지상명령을 지역교회의 관점으로 해석한 것은 적실성이 있으며 또한 성경을 해석하는데도 더 유용해진다. 선교단체의 전유물이었던 지상명령이 복음 전도의 사명으로 해석하는 것은 뜨거운 비전일지 모르지만 개인적인 신앙으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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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상명령이 무엇이냐 물으면 어떤 분들은 '이 땅에서 주시는 명령' 이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지상'을 '땅'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상명령'은 영어로 The Great commission 이라 부른다. '지상' 이라는 말은 '이를 지'를 써서 '가장 최고의' ' 가장 위대한'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칸트의 정언명령을 부를 때도 사용하는 말이기에 반드시 해야 할 명령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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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을 '이 땅'으로 오해해도 그 의미는 동일하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내가 죽기 전까지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해야 할 중요한 목표가 바로 지상명령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이 땅에 살아가는 이유는 성공과 성취와 결혼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지엽적인 목표일 뿐이다. 지상명령을 이루는 과정에서의 목표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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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는 개인적으로 지상명령을 이루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지역교회를 통해 함께 지상명령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지상명령 바로알기는 제목 그대로, 공동체적 적용과 비전을 이야기 해준다. 자세히 보면 성경에서 개인적 적용은 그리 많지 않다. 구약은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 즉 교회에게 주신 메세지이다. 신약성경도 바울이 교회에서 준 서신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존재하지만 또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서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