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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과 제사장의 분깃
신 18:1-8
1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2 그들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기업을 가지지 않을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으니라
3 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몫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소나 양이나 그 앞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4 또 네가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네가 처음 깎은 양털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
5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6 이스라엘 온 땅 어떤 성읍에든지 거주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가 사는 곳을 떠날지라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 이르면
7 여호와 앞에 선 그의 모든 형제 레위인과 같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
8 그 사람의 몫은 그들과 같을 것이요 그가 조상의 것을 판 것은 별도의 소유이니라
신 18:1-8 / [제사장들의 생활대책] 제사장 지파로 구별된 레위 지파에게는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처럼 땅을 나누어 주지 마십시오. 그 대신에 제사장들은 여호와께 바치는 제물 가운데에서 자기들의 몫을 받아먹고 살게 하십시오. 2)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주께서 친히 그들의 몫이 되시어 그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시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동족들과 같이 땅을 나누어 줄 필요가 없습니다. 3) 소든 양이든 누가 여호와께 제물을 바치면 제사장은 그 제물을 바친 사람에게 그 제물의 앞다리 하나와 두 턱과 위를 자기 급료로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에게 주어야 합니다. 4) 또 여러분은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즙과 기름과 처음 깎은 양털도 제사장들에게 주십시오. 5)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 가운데에서 레위 지파를 선택하여 그들이 자손 대대로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6) 온 이스라엘의 성읍들 가운데에 흩어져 살던 레위 사람들도 원하기만 한다면 여호와께서 지정하실 그 성소로 찾아가서 7) 이미 그 성소에서 제사장으로 봉직하는 자기의 형제인 레위 사람들과 똑같이 제사장의 직책을 수행할 수가 있습니다. 8) 그들도 성소에 있는 제사장들과 똑같이 제물의 몫을 나누어 받을 권리가 있고 그 밖에 자기의 재산을 판 돈도 그대로 가질 수 있습니다.
본문의 주된 핵심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지 않고 오직 성직을 감당할 때 생기는 생계에 관한 규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실 때에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게 하셨습니다. 즉 레위라고 불리는 땅은 없습니다. 반면에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의 기업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전체 지파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과 화제물 중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주어질 몫을 받아 살게 하셨습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재산이나 제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의 기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몫은 이러하니(3-5) 백성이 하나님께 소나 양을 제물로 바칠 때에는 반드시 제사장이 받을 몫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앞다리와 턱과 위장과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처음 깎은 양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모든 지파 중에서 레위 지파를 택하여 내셨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에게 살도록 베푸시고 공급하신 것처럼 오직 여호와가 분깃이고 기업인 레위인에게 베풀고 공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레위 지파의 후손들이 영영히 주의 이름으로 주 앞에 섬기게 하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는 곳을 떠날지라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 이르면(6-8) 레위 지파에 속한 레위인이나 제사장들은 성소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각지에 흩어져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스라엘의 온 땅 중에 어느 성읍에 사는 어떤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서 살던 곳을 떠나가고 싶었던 곳, 곧 주께서 택하신 곳에 이르면, 그 곳이 어디든지, 그곳에서 섬기는 다른 모든 레위인과 똑같이 주 하나님을 위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혹 그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수입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개인 소유이며, 그곳의 다른 레위인과 똑같이 대우받아야 합니다(신 18:6-8).
적용: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무하는 사역자들이 이 땅에서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는 레위인에게서 배울 근본적 영적 원리는 무엇입니까(갈 6:6)?
인간은 오직 사고의 산물일 뿐이다. 생각하는 대로 되는 법이다. -마하트마 간디. 우리의 일상은 원인과 결과를 반복하며 이뤄집니다. 원인 없이 결과가 나타날 수 없지요.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가 씨를 뿌리는 일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온전히 삶을 맡긴 사람일지라도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들이 타락하거나 세속화되지 않도록, 주변의 목회자와 선교사들의 삶을 돌아보며 그들의 삶의 문제에 함께 기도해주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설 교 >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
신 18:1-8 / 양인국 목사
1. 18장은 레위인들과 선지자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다른 민족의 가증한 행위를 제하라고 말씀해 주심으로(9-14), 오직 영적 지도자들의 인도함에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 것을 강조하여 말해 주고 있다.
2. 이처럼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특별한 말씀을 모든 시대 믿음의 사람들이 적용하며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레위인들에 대한 해석이 요청된다. 이와 같은 해석이 요청되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들 가운데 한 지파로서 그들의 부르심이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고 또한 현재 구약에서 언급하고 있는 레위인들의 직무가 이미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내외적인 여러 요인들로 인하여 발생한 전란(戰亂)들은 성전의 파과를 가져왔고 이로 인하여 제사의 중단과 레위인들의 직무도 중단되었다. 따라서 복음으로 인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가로 막혀 있는 담이 무너진 지금 이스라엘이라는 특별한 민족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레위인들에 대해 주신 말씀들을 모든 시대 믿음의 사람들이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말씀으로 들을 수 있기 위해서는 레위인들에 대한 해석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러면 레위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언급한 것처럼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들 가운데 한 지파로서 특별히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를 치실 때 애굽에 있는 짐승으로부터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장자를 치셨지만 그 땅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의 장자만은 제외하셨다. 이처럼 마땅히 죽어야 할 것들을 하나님께서 살리셨기 때문에 그때부터 이스라엘의 모든 초태생 즉 짐승으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처음 난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후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짐승의 첫 새끼는 하나님께 회생으로 드려야 했고,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대속해야 했다(출13:11-16). 여기 레위인들 가운데 남자로 태어나서 일 개월 이상 된 자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대속할 자들이다. 만일 계수된 이스라엘의 장자수가 레위인들보다 많을 경우 한 사람에 해당하는 오세겔의 성전세를 냄으로 그들을 대속했다(민3:11-13,40-51). 이처럼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속한 레위인들은 온전히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어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만을 위해 온전히 헌신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의 이와 같은 특별한 삶은 대속 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상징하고 있다. 즉 레위인들의 삶 자체가 대속 받은 이스라엘의 삶인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대속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레위인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계시의 말씀인 성경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장자가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처럼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하여 멸망당할 수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자는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초태생에 대하여 내 것이라고 선포하셨던 것처럼 동일하게 모든 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내 것이라고 선포하신 것이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7:23)” 이처럼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속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구약의 레위인들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라고 할 수 있고 또한 그들의 삶은 이스라엘 모두의 삶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에게 주신 말씀들은 모든 시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에 주시는 보편적인 말씀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본문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오늘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을 수 있다.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그들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기업을 가지지 않을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으니라(신18:1,2)”레위인들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이 말씀을 볼 때 이 말씀이 주는 교훈들 가운데 하나는 모든 시대 믿음의 사람들이 레위인들처럼 부르심에 따라 산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이다. 여기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라는 말씀에서 “분깃” 또는 “기업”은 다른 지파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말해 준다. 그들은 자신의 소유 또는 기업을 가지고 그것을 경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레위인들에게는 이런 것들을 허락해 주지 않으셨다. 이것은 레위인들에게 허락해 주신 삶의 방식은 다른 지파의 사람들에게 허락해 주신 삶의 방식과 다른 것이라는 것을 것을 말해 준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라는 말씀이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을 말해 준다. 실제로 이스라엘 가운데 특별한 일로 부르심을 받은 레위인들은 다른 지파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어주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사람들도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기업이 되어 주심으로 그들의 삶을 책임져 주시는 것이다(마6:33, 시37:25).
레위인들과 관련하여 주신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모든 시대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교훈들 가운데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 중에는 베풀어 주신 은혜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도록 주신 예물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몫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소나 양이나 그 앞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또 네가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네가 처음 깎은 양털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18:3-5)”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들 가운데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고 또한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것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것을 레위인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것이 바로 “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몫”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 나올 때는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들 가운데는 그들의 필요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들에 대하여 감사하도록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릴 예물까지 포함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다음은 신명기16:16,17절의 말씀이다.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여기 무교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매년 지키는 삼대 절기들이다. 이와 같은 절기 때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나와 절기에 합당한 제사를 드려야 했다. 이를 위하여 그들은 반드시 제물을 준비해야 했다. 왜냐하면 제물이 없이는 제사를 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절기 때마다 하나님께서 드릴 제물의 크기 또는 양은 그들이 받은 복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어야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복의 크기에 따라서 하나님께 드릴 예물의 량도 더해 주셨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물을 드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따라 그 힘대로” 드려야 할 것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합당한 예물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허락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고후9:6-11)”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는 것을 씨앗을 파종하는 것에 비유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할수록 더 많은 씨앗을 뿌리는 것이 되고 이로 인하여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예물까지 포함하여 주시는 것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려 하심이고 또한 의의 열매를 더해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언급한 말씀에 대하여 반복되는 감은 있지만 레위인들과 관련하여 주신 말씀들을 통하여 주시는 교훈들 가운데 한 가지를 더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제물 중의 일부를 제사장에게 주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은 자신의 것을 우리에게 위임해 주시고 그것들을 자신의 뜻에 따라 사용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말해 준다.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이 이렇게 살 때 그들 가운데 창조의 싸이클이 이루어져서 시간이 더해 갈수록 더욱 복되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방식에 따라 레위인들의 필요를 채워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고 이것은 결국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보다 더 온전히 세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온전히 세워질수록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더욱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씀에 따라 살 때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창조의 싸이클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사용하고자 할 때 무엇보다 먼저 어떻게 또는 무엇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묻을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따라 사용할 것이다. 우리가 언제나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곳에 샬롬이 있고, 더불어 사는 삶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슨 일을 새롭게 시작하려고 할 때 그 일은 현재라는 시점에 기반을 두고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할 때 현재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에 있다면 바로 그 상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고 영적으로 침체 가운데 있다면 그 상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어떤 상태에 있든지 바로 그 상태에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신 말씀에 따라 살 수 있다. 우리가 부르심에 따라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 가운데는 베풀어 주신 은혜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주신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으로 우리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며 살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해 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며 살자. 이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심으로 시간이 더해 갈수록 더욱 복되고 형통한 삶을 살 것이다.
3.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 주신 말씀에 따라 살게 해 주시고 그 말씀에 따라 사는 자들에게 허락해 주신 복을 누리며 살게 해 주옵소서. -아멘-
선민의 특권과 의무
신 18:1-8 / 송기정 목사(정동교회)
‟아 하나님의 은혜로”
유대인들에게는 아브라함 이래 오늘날까지 그들 고유의 선민의식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민족이라고 자부합니다. 선민의식은 일종의 특권의식입니다. 선민의 특권에는 반드시 의무가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선민으로서의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채 우월감을 가지고 교만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을 멸시하며 선민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렸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유대인의 선민의식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유대인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배타적으로 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유대인으로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만민의 구주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유대인이 아닌 우리들까지 선민이 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내신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가졌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선민의식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민의 특권과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신명기 18장1-8절의 말씀을 통해서 선민의 특권과 의무를 마음에 깊이 새기고 하나님께서 택하여 내신 선민답게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1. 선민은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에서 레위 지파를 제사장 지파로 선택하셨습니다. 레위 지파는 그 직책상 둘로 구분되었습니다. 하나는 ‘제사장’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레위인’입니다. 제사장은 레위 지파 중에서도 특별히 아론의 후손들만 될 수 있었습니다 (출 40:12-15). 그런데 문제는 다른 지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땅을 기업으로 분배 받았는데, 레위 지파에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시지는 않았지만 대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레위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셋째 아들로서 레아의 소생입니다. 장자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원칙에서 보면 하나님의 기업은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에게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르우벤은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그의 서모 빌하와 동침하는 불륜을 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사장 지파로 택함을 받고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은 자는 셋째 아들인 레위였습니다. 사실 레위도 그의 누이 디나가 세겜에게 강간을 당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강간을 한 자 세겜을 비롯해서 모든 남자들을 칼로 쳐죽여 버림으로 아버지 야곱에게 화를 끼쳐 온 집이 멸망 당할 위기에 처하게 한 자였습니다 (창 34:30). 이로 인해서 레위인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하고, 이스라엘 전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될 것이라는 저주가 내려진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레위를 택하여 내시고 하나님을 그들의 기업으로 받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저주받을 죄인을 선택하여 제사장으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기업이 되어 주십니다. 선민의 특권, 교만하거나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다만 겸손하고 감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선민의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만하거나 불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을 그들의 기업이 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직장사역연합 대표 방선기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1980년대 초반 미국 유학 시절, 대학원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그는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습니다. 주로 아내가 일을 했지만 그도 온갖 종류의 힘든 노동을 다 해야 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일 중의 하나는 야간에 빌딩을 청소하는 일이었습니다. 일주일에 네 번 정도, 밤 8시부터 자정 넘는 시간까지 혼자서 큰 빌딩을 다 청소를 하던 어느 날 밤 그는 청소 도구를 내동댕이치며 하나님께 투덜댔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곳에 청소하러 왔습니까? 언제까지 이런 일로 시간을 낭비해야 되겠습니까?”
타향살이의 설움까지도 물려온 탓인지 서글퍼진 그는 그 자리에 엎드려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국에 있을 때 암송했던 성경 구절 하나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로새서 3장 23절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청소하는 그의 자세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는 순전히 경제적 필요 때문에 일을 했으니, 일을 계속하게 해 줄 사람들에게만 잘 보이려 했습니다. 청소 일을 하면서 그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의식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날 이 말씀이 그의 존재 전체를 흔들었다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정말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공부든, 청소든, 주께 하듯 정성을 다해야 함을 깨달았다. 이후로 육체 노동을 할 때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전에는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청소는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과업이 되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 성도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 자세를 회복해야 한다.”아멘!
베드로전서 2장 9-10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여 내신 사람들을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셔서 긍휼을 얻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선민의 특권입니다. 선민은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선민은 하나님께서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간 자로서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하나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께서 택하여 내신 자로서의 선민의식을 가지고 선민의 특권을 잘 활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한 신앙적 가치와 의미가 넘치는 생활을 하시기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선민은 하나님을 지성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레위 지파를 택하여 내신 데에는 거룩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레위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레위인 중에 제사장이 제사를 집례할 때 일반 레위인들은 제사장들을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민 3:9;8:19). 제사장과 일반 레위인, 그들의 직책과 역할은 분명히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와 관계에는 결코 차별됨이 없었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분배 받지 못한 레위 지파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48 지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들이 사는 곳을 떠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 중앙 성소에 이르면 그들도 여호와 앞에 선 그의 모든 레위인과 같이 여호와를 섬길 수 있게 하였습니다. 선민으로서의 특권을 받은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그 의무도 차별 없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서서, 항상 하나님의 이름으로 섬기되, 간절한 소원을 품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민의 의무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사람 앞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겸손한 마음으로,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으로 설 것입니다. 그리고 간절한 소원을 품고 섬기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인간적인 소욕이나 불순한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열심과 열정을 쏟아 헌신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선민의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선민으로서의 의무를 잘 수행할 때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빛과 소금」, 2020년 1월 호에 실린 아나운서 김재원이 만난 원로 영화배우 신영균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1928년 황해도 평산 필대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란 그는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서른셋에 혼자되신 어머니 사랑을 많이 받고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열 살 때 삼남매를 데리고 서울로 오셨습니다. 돈독한 믿음으로 올곧은 삶을 강조하는 어머니를 따라 부지런히 교회에 다닌 그는 어렸을 때 교회에서 성극을 했습니다. 그때 그 어설픈 연극 맛을 보고 배우의 꿈을 꾸었으니 결국 3백여 편의 영화 작품을 찍었습니다.
그는 그의 인생에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을 꼽는다면 누가 생각나시는지요?라는 물음에 “당연히 먼저 떠오르는 분은 하나님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 하나님을 내 인생에 초대해 주신 어머니겠지요. 서른셋에 혼자 되셔서 자식 셋 키우며 평생을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신 나의 어머니의 기도는 내 삶의 바탕입니다” 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아울러 그는 “치과의사와 결혼했다가 영화배우의 아내로 평생을 살며 남편 뒷바라지를 해 온 아내 또한 내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사람이지요”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0년 전, 5백억 원 상당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그는 “평범한 신앙인으로서 인생에서 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에 “저는 제 욕심을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어요. 그냥 모든 사람이 착하게 살고 주님의 은혜를 받아 화목하고 따뜻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사실 그때 그 일도 어찌 보면 부끄러운 일이고, 당연한 일입니다. 단지 제가 영화를 통해 사랑받으면서 그만큼 빚을 졌으니 그 빚을 되갚는다는 뜻에서 한 일일뿐입니다. 그냥 한 움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고, 그래서 내가 제일 아끼던 명보극장을 내놓은 것뿐이지요”라며 당연한 일을 하였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영균 장로님, 그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지켜주더군요”라면서「빛과 소금」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그날, 당신의 관 속에 무엇을 넣고 싶습니까?”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성경을 읽고 또 읽어가면서 살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는 하나님 접근법을 알게 됩니다. 성경 이상의 진리는 없어요. 그래서 나는 눈을 감으면 내 관 속에 낡은 내 성경책만 넣어달라고 자식들에게 부탁했어요. 50년 손때 묻은 성경책이 천국 가는 길에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아요. 여러분은 무엇을 갖고 가시겠습니까?”
여호수아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 백성에게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는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24:14-15)라며 마지막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여 내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셔서 하나님만을 섬기게 하십니다. 그리고 섬기는 사람들을 존귀하게 해 주십니다. 선민은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따라서 선민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께서 택하여 내신 자로서의 선민의식을 가지고 항상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간절한 소원을 품고 선민의 의무를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을 섬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고 하나님께 칭찬과 상급도 받게 되시기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선민’은 히브리어 ‘암 세굴라’와 ‘암 나할라’의 번역어입니다. ‘암 세굴라’는 ‘귀한 백성’을 뜻하며, ‘암 나할라’는 ‘상속받은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선민 곧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은 귀한 백성일뿐만 아니라 상속받은 백성입니다. 중요한 것은 선민의 특권과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민의 특권은 하나님께서 기업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민은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민의 의무는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민은 하나님을 섬기되 간절한 소원을 품고 항상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섬겨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민의 특권과 의무에 충실함으로써 하나님의 귀한 백성, 상속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신명기 18:1-8
[찬송가] 217장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 이대은 목사
늘 말씀은 레위인이 어떠한 성격을 지닌 존재인지를 규정하고 그들의 책임과 이동에 따르는 원칙을 설명합니다. 레위인은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에 정착하여 그 소산을 누리는 것과 달리 그 땅에 잠시 머무는 자처럼 체류자로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1-5)] / 레위 사람은 제사장뿐 아니라 그 온 지파가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는 자로 정의됩니다. 그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농작물을 기르거나 가축을 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만 기업으로 받은 자라고 합니다. 민수기 18장 19절, 20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민수기 18:19-2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물이 그들의 영원한 몫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분깃과 기업이 되어 주시리라 하신 이 약속을 소금 언약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레위인은 처음부터 하나님만을 기대하고, 하나님만 의지하여 먹고 살도록 규정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땀 흘려 농사를 짓고 가축을 치며 거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레위인들은 다른 이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 완전히 의존해야만 합니다. 4절에서 보듯이 먹는 것뿐만 아니라 입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른 사람한테 의지해서 먹고산다는 건 참 쉽지 않고 종종 치사한 일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뜨겁게 하나님을 믿을 때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이후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그 믿음이 약해지고 시원찮을 때는 생존이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레위인의 기업은 하나님 자신이며, 레위인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구출하실 때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이 죽음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처음 난 모든 것을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민수기 3장 41절을 보면 사람의 장자를 구별하는 방법으로,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라고 하십니다. 모든 짐승의 첫 새끼는 제물로 죽여 하나님께 바친 것처럼, 레위인도 실상은 죽여져 하나님께 바쳐진 하나님의 소유인 것입니다. 이렇듯 레위 지파는 처음부터 계수에도 들지 못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자, 살았으나 살아있지 않은 자로 여겨졌습니다.
예전에 저는 때 이르게 돌아가시는 분들 소식을 들으면 참 안 되셨다는 생각만 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는 일찍 세상을 떠나가시는 분이나 많이 아프신 분들이 나의 죽음과 나의 고통을 대신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즉, 인류 또는 내가 속한 공동체가 공통으로 겪어야 하는 죽음이나 고통의 총량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마음이 더 여리고 기꺼이 희생하려고 하시는 분들이나 집단이 먼저 죽음과 고통을 감내하여 남은 자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이 향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무리하면 몸의 제일 약한 부분이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듯이, 물이 더러워지면 1급수에만 살 수 있는 물고기들이 먼저 사라지듯이, 우리 중에 가장 아름답고 고결한 분들이 그런 아픔과 죽음을 당하지 않는가 하는 자각입니다. 하나님은 애초에 레위 지파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러한 존재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연약함과 부정함을 책임지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이스라엘을 살게 하는 자들 말입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먼저 떠난 자신의 동료들을 그리며 썼다고 합니다.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살아남아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간혹 살아남아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많습니다. 때로 내가 살아남은 것이 자랑스럽거나 떳떳하지 않고 오히려 미워지는 것은 어찌 보면 인지상정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실제로 이미 죽은 자들, 연약한 자들의 죽음과 고통을 전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병들어 아픈 분 때문에 의학이 발전했고, 먼저 사고로 죽은 분 때문에 환경이 개선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과연 하나님을 배제하고 이러한 생각을 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경쟁에 앞선 강한 자들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 생명까지 길게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세속적인 관점에서는 이렇게 반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브레히트는 오직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표현합니다만, 하나님을 상정하지 않은 인간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는 바로 표현하자면 모든 인류는 운이 좋았던 덕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처음부터 대속자이신 예수님을 예비해 두셨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보다도 훨씬 깊고 강력한, 죽으려는 자의, 죽은 자의 기쁨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그 예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넘어서 죽은 자의 기쁨을 기꺼이 감당하는 자들입니다.
레위인들, 특히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예표하기 위해 허락하신 자들로서 존재 자체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죄를 대속하는 역할이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기업 삼는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말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져다주는 것으로 먹고 산다는 의미인데, 만약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이 약해져서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고 제물을 드리지도 않는다면 그들은 먹고살 도리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의 타락상을 그리는 미가 3장을 보면 제사장은 삯을 받고서야 교훈을 가르친다고 하며, 선지자는 이에 물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한다고 일침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자신은 하나님 앞에 죽은 것과 같다고 믿으며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들이 먹고살려고, 아니 오히려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직분을 이용할 때 사회는 타락합니다. 레위인의 임무는 5절이 잘 설명합니다.
[(5)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그들의 존재 이유는 항상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서 섬김에 있었습니다. 서서라는 말은 언제든지 기꺼이 행동할 준비가 되었음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명령을 기다리며 들은 그대로 실행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 섬김은 양방향입니다. 하나님 섬김과 동시에 사람 섬김입니다. 우리는 모두 거룩한 백성이자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동시에 이 땅을 섬깁니다. 이 땅의 더러움을 모두 닦아내는 걸레처럼 그 모든 아픔을 싸매는 붕대처럼 그 존재는 기억되지도 않고 오히려 부정될지라도, 이곳을 깨끗하게 하고 치유하며 섬기는 자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걸레와 같이 우리의 더러움과 추함을 다 닦아내시고, 붕대와 같이 우리의 아픔을 감싸주시고는 결국 가장 추하고 보잘것 없는 모습으로 사라지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공로로 우리가 살아있습니다. 예수님은 레위 지파, 제사장, 대제사장의 온전한 모범이자 완성자로서 우리 역시 그러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약함으로 강함을 이기는 삶, 환난을 당하지만 진정한 평안을 누리는 삶 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지만, 세상에서 빛나는 삶을 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이겼지만 그 이김은 세상의 기준으로 더 잘 되어 다른 이들을 압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죽게 하시면 이 세상의 죽음을 대신 죽게 하심을 감사하고, 살게 하시면 이 세상의 아픔을 감당하게 하심을 감사하며 사는 삶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우리가 자랑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누가복음 17:9-10)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우리가 어떤 명령을 받아 어떤 섬김을 했을지라도 우리는 그저 무익할 뿐입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었다는 고백이 마지막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살아남았다면 그것으로 하나님께 할 일이 있어 감사하다고 고백하며 살고, 죽는다면 죽음으로 하나님께 할 일이 있어 감사했다고 말입니다. 우리 모두 이 땅에서 레위인과 같습니다. 이 땅에서 분깃도 없고 몫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하고 유일한 몫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유일한 생명이 되시기 때문에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승리자로 살아갑니다.
[간절한 소원 (6-8)]
[(6-8) 이스라엘 온 땅 어떤 성읍에든지 거주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가 사는 곳을 떠날지라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 이르면 여호와 앞에 선 그의 모든 형제 레위인과 같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 그 사람의 몫은 그들과 같을 것이요 그가 조상의 것을 판 것은 별도의 소유이니]
레위인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우선 48개의 성읍을 할당받아 전국으로 흩어져 각 성읍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살피고, 가르치고, 인도하는 영적인 책임을 담당하는 레위인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 즉 중앙 성소에서 제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레위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방에 거주하던 레위인도 자기 지역을 떠나 하나님이 택하신 유일한 성막, 즉 중앙 성소에서 섬기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면 자유롭게 그곳에서 레위인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몫도 똑같이 받는다고 하십니다. 성경은 현실적인 면을 간과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생겨날 수 있는 갈등을 원천 봉쇄하고, 그가 마땅히 누려야 할 조상의 몫도 넘보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조상의 것을 팔았다는 말씀은 토지가 아닌 가옥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하나님은 고착화된 체제를 무조건 고수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그들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돌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혼의 간절한 소원을 주셔서 사는 곳을 떠나게 하시고, 새로운 곳을 향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으며, 하나님은 절대로 사랑하는 자녀를 손해 보게 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맺겠습니다. 레위인은 그 존재가 부정된 자 같았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가장 큰 인정을 받은 자였습니다. 또 죽은 자 같으나 살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았지만 가장 많은 것을 누린 자들이었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레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역시 이와 같이 역설적인 정체성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이미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후서 6장 8절에서 10절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고린도후서 6:8b-10)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레위인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는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는 나그네처럼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업이 되시고 생명 되시기에 항상 서서 섬김의 자리에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미 이기신 예수님을 기리며 진 것 같은 이 삶에서도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담대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참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을 좇아 살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를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있음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2. 이 땅에서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는 레위인과 같이 살아가고 계십니까? 하나님만 기업으로 삼고 살아가십니까?
3. 이 땅의 더러움을 닦는 걸레로, 이 땅의 아픔을 싸매는 붕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4. 하나님이 간절한 소원을 주시는 곳이나 대상이 있습니까? 나는 믿음으로 반응하고 있습니까?
제사장의 직분
신 18:1-8 / 의정부중앙교회
하나님께서 인간과의 소통을 위해서 주신 직분이 셋인데, 그게 바로 왕, 선지자, 그리고 오늘 본문의 제사장입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이란 존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 있는 중보자, 중개자란 말입니다.
1. 중보자의 역할
본문 1-2절을 보면,“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그들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기업을 가지지 않을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으니라.”제사장들은 그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업을 가지고 농사를 지으며 생업에 마음과 시간을 뺏길 여유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의 삶은 백성들이 책임져주고 제사장은 오직 제사장적 역할 즉, 중보의 역할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중보자가 없으면 스스로 자기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 그 영혼이 고갈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손에서 어린 양이 보혈의 피를 흘릴 때에 죄 사함의 은혜가 그런 인간에게 임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가 그런 인간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2. 제사장 직분의 완성자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약에 오면, 구약의 이 제사장 직분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됩니다. 히2:17을 보면,“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히4:14에 보면,“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예수님이 우리 죄를 속량하신 큰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에 이 도리를 굳게 잡고 그분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짐승의 몸과 피를 드렸지만, 신약에서는 성자 예수님이 자기 몸을 드린 것입니다. 구약 제사장은 계속 반복적으로 제물을 드리고, 또 드렸지만, 예수님은 자기 몸을 단번에 드렸습니다. 그렇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심으로써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 막힌 죄가 치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언제든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함께, 벧전 2:9절 말씀과 같이 예수를 믿는 우리 성도도 제사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롬15:16에도 보면,“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라고 바울은 말씀합니다. 따라서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들입니다.
3. 제사장의 삶
그렇다면,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첫째, 제사장은 사람을 대표해서 사람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는 존재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제물 위에 손을 얹고 안수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제사장이 죄인과 하나 됨을 몸으로 실천하고 고백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히4:15을 보면,“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이 말씀은 예수님은 우리 연약함을 다 아시고 동정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은 성육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육신의 결론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나와 예수님이 하나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원리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제사장이 된 성도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는 누군가를 체휼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화해했으면 이제 나 자신이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신자라고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 막혀 있다면 그것을 뚫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등장하는 곳은 그 어디든지 막힌 것이 뚫어지는 그런 존재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신명기 18:1-14 / 코너스톤장로교회
하나님은 이스라엘 열한 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분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직 레위 지파만큼은 땅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로 하여금 가나안의 전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하나님께 봉사하며 살아가도록 지정하셨습니다. 그러다보니 레위인에게는 농사를 지을 땅도 없었고, 농사를 지을 시간적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레위인들의 생계는 누가 책임졌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을 레위 지파에게 주어 그들이 그것을 먹고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1절 말씀을 봅시다. “(신 18:1)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1절에 기록된 ‘여호와의 화제물’이란 하나님께 바친 각종 제물 가운데 불살라 하나님께 드린 후 남은 부분을 가리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치는 십일조와 가축이 처음 낳은 새끼와 곡식의 처음 익은 열매를 레위 지파가 갖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레위 사람들에게 논밭을 가꾸는 땅이나 기업을 따로 갖지 못하게 하시고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게 하신 것은 레위 지파로 하여금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역시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교회가 그들의 삶을 도왔습니다. 물론 바울과 같이 자비량 선교사로 일한 사람도 있습니다만, 교회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사역자들의 경우 복음사역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3-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의 생계를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몫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보면 제물의 앞 넓적다리와 두 볼과 위 입니다. 또 처음 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처음 깍은 양털을 레위 지파에게 주어 그들이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생긴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 지파의 생계를 돕는 책임을 등한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의 몫으로 정한 것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 지파들은 레위 지파를 돕지 않음으로 그들은 생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결국 말씀을 가르치고 제사를 드리는 일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진 레위 지파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소홀해지고, 제사 드리는 일보다 다른 일을 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레위인들 중 일부는 중앙 성소에서 봉사하였으나, 나머지 레위 지파 사람들은 이스라엘 전역에 분산되어 있는 마흔 여덟개의 성읍에 흩어져 거주하여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가 전국에 흩어져 삶으로서 전국 방방 곳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도록 하신 것이죠. 그런데 레위 지파 사람들 가운데도 이사를 가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것을 허락하시며, 새로운 성읍으로 이사 온 레위사람이 있으면 그 역시 기존에 그 성읍에 살고 있던 레위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격이 있으며, 그 사람 역시 제물의 몫을 나누어 받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레위 지파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9-14절까지는 가나안 족속들이 행하던 가증한 행위들을 소개하며, 이러한 것들을 본받지 말것에 대한 경고 입니다. 10절을 보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란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아들이나 딸을 불태워 죽이는 이방 의식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도 심청전을 보면 용왕님께 바치기 위해 심청이를 인당수에서 물에 빠트리지 않습니까? 이런 비슷한 미신이 가나안 땅에도 있었던 것이죠. 신에게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자녀를 불로 태워 바치면 가나안 사람들이 만든 몰렉이라는 우상이 마을에 병이나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다고 믿는 미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일을 가증히 보시며 절대로 용납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점치는 복술자, 길흉을 말하는 자(구름, 징조 살피는 자), 요술하는 자, 진언 자(주문을 외우는 자), 신접자(점을 치기 위해 죽은 사람의 영을 부르는 자), 박수(남자 무당, 점쟁이), 초혼자(죽음 자들을 부르는 자) 입니다. 12-13절을 봅시다. “(신 18:12)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 내시느니라 (신 18: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든 가증한 세력들을 가나안 땅에서 쫓아버리고, 그러한 일을 가나안 땅에서 끊어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절대로 이러한 가증스러운 형태의 삶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용납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간이 흐른 뒤에,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점쟁이, 무당, 박수, 신접자를 찾아가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걱정과 염려 때문에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마음 속 염려와 불안을 제거하고 싶었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보실 때 가증한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필요를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점보러 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현재 우리의 삶을 보호하시고, 우리 미래를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박수나 무당 찾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현실 속 삶과 미래에 대한 염려와 걱정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레위 지파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고 약속하신 것과 같이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자녀들의 삶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붙드시고 그들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