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49)의 불멸의 기록 가운데 이런 것도 있다. 그가 3라운드 54홀까지 단독 선두에 나섰다가 우승을 내준 것은 46차례 가운데 두 번에 불과했다. 마지막 날 선두로 나섰을 때 승률이 96%였다. 첫 쓰라린 경험은 루키 시즌인 1996년 오크우드 CC에서 열린 쿼드시티 클래식(현재 존 디어 클래식)에서 한 타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에 나섰다가 72타를 쳐서 공동 5위를 했고, 에드 피오리는 67타를 쳐서 우승했다.(AP는 4타 차로 뒤졌다고 보도했다)
또 한 번 우즈가 역전 우승을 내준 것은 무려 13년 뒤의 일이었다. 양용은(53)에게 메이저 대회에서 무릎을 꿇은 2009년 PGA챔피언십이다.
그렇게 대단했던 에드 피오리가 6일(현지시간)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PGA 투어가 다음날 밝혔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PGA는 암과의 싸움에 스러졌다고 밝혔지만 더 이상 구체적인 내용을 제공하지 않았다.
프로 데뷔 후 세 차례 대회를 치르고 PGA 투어에 데뷔한 약관 스무 살의 우즈는 오크우드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피오리에 한 타 앞서 있었다. 우즈는 4번 홀에서 쿼드러플 보기를, 7번 홀(4퍼트)에서 더블 보기를 저질렀다. 43세의 원숙한 프로 골퍼로서 경륜을 보여준 피오리는 훗날 회상하며 “갤러리의 시선이 집중된 젊은 선수와 함께 플레이를 하면서 집중력이 생겼다”며 “그것이 나의 경기력을 끌어올렸다”고 돌아봤다.
리 웨스트우드도 우즈에 뒤졌다가 역전 우승을 한 적이 있는데 2000년 독일에서 열린 유로피언 투어 대회에서였다.
고인이 PGA 투어에서 우승한 것은 네 차례였다. 연장 접전 끝에 명예의전당 입회자 둘을 물리친 적이 있다. 1979년 10월 서던오픈에서의 톰 웨이스콥프, 1982년 1월 밥 호프 데저트 클래식에서의 톰 카이트였다. 다른 한 대회는 1981년 7월 웨스턴오픈이었다.
밀러 브래디 PGA 투어 챔피언스 회장은 “그의 네 차례 PGA 투어 우승 가운데 세 차례는 미래의 월드골프 명예의전당 입회자들을 물리쳤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1996년 타이거 우즈다. 헤아릴 수 없는 역경 앞에서 그 투지와 결의는 삶의 모든 면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존경스럽다. 그리고 난 그가 끝까지 암과 싸웠다는 것을 안다”면서 "투어의 우리 모두가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오리는 50세를 넘겨서도 시니어 무대 대회에 58차례나 출전, 2004년 멕시코에서 우승했다. 그는 2019년 골프 닷컴 인터뷰를 통해 "몇 년을 더 매달려 시니어 투어에서 경기했다. 하지만 등이 늘 문제였다”면서 "난 2005년 척추유합수술을 받았다. 그 때부터 난 80타수를 깨려고 안간힘을 썼다"고 털어놓았다.
계속 그의 말이다. “내게 미안해 할 필요 없다. 난 내가 좋아하는 게임에서 대단한 삶을 살았다. 절대 쉽지는 않았다. 많은 시간, 난 금요일 밤마다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하지만 난 어떤 것이든 거래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까지 사람들은 날 보고 타이거 킬러라고 한다. 그들은 항상 팩트대로 얘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난 존 디어의 그 주말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피오리는 1953년 4월 캘리포니아주 린우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골프에 입문했으며 ‘연습 벌레’라는 말을 들을 만큼 집념이 대단했다. 휴스턴 대학 골프팀에서 활약한 그는 대학 졸업 후인 1977년 프로 골퍼로 전향했다. 이듬해 PGA 투어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