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하나의 문제, 친일과 독재를 기반으로 하는 수구 기득권 세력의 반동.
바로 어제, 2013년 9월 10일에는 별로 크지도 않은 이 나라에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무리 '다이나믹 코리아'라고는 해도 너무 지나칠 정도로 연이어서 큰일들이 벌어졌고, 숫제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중요한 이슈들이 마구 온 나라를 뒤덮었다. 수많은 뉴스 기사의 쓰나미 속에서 그저 언론이 던져주는 대로만 받아먹기도 바빴고, 아예 경중을 따질 만한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사건사고들이 이토록 빈번하게 발생하는 나라가 과연 또 있을까?
진짜 정신 없이 돌아가는 한국에서, 그래도 하루를 무사히 살아낸 모든 국민은 박수 받아 마땅한 듯싶다. 물론 이런 한국에 사는 게 힘들어서 소위 말하는 '안정되고 조용한 나라'로의 이민을 매일 꿈꾸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여전히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 않나? 어쩌면, 조용하고 안정되어 있다는 북유럽 사람들이 한국을 보면 입을 쩍 벌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놀라서 뒷걸음칠 테고, 다른 누군가는 '흥미로운 사회'라고 말할지도..
아무튼 어제 하루 동안에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이 네 가지 이슈가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무려 16년간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전두환이 아들의 사법처리를 앞두고 마침내 납부 의사 표명, 조선일보가 제기한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과 관련한 당사자(어머니)의 해명, 지난 8월 30일 검정을 최종 통과한 교학사 교과서의 총체적 부실과 역사 왜곡,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를 단 이틀 만에 상영중단했던 메가박스의 석연치 않은 행동과 보수단체들의 발뺌. 사실 이 4개는 하루에 하나씩만 터져도 굉장한 사건인데, 어찌된 게 9월 10일에 모두 한꺼번에 뉴스를 장식했다.

[사진자료: 머니투데이, 한겨레]
전두환의 추징금, '자진' 납부도 아니고 '완납'도 아닌 까닭
이상하게 언론에서는 어울리지도 않게 자꾸 '자진 납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또 이제 겨우 납부할 의사를 밝혔을 뿐인데도(국고 환수는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다) 마치 벌써 '완납'이 된 것처럼 어처구니 없는 기사를 쓰고 있는데, 보다 냉정하게 말하면 '체념에 의한 항복'과 '면죄부를 받기 위한 쇼'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6억 원에 대한 문제는 전혀 처리하지도 못했으면서 도리어 '전 정권들에서는 뭐했냐'라고 적반하장격으로 말하는 박근혜, 국정원 대선개입 사태의 국면전환용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국가 사정기관 총출동,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한 자기들의 위신을 세우기 위한 검찰의 발빠른 대처 등등 이 모든 것들이 한 데 뒤엉키면서 전두환 일가의 '억지' 체념으로 귀결된 셈이다.
게다가 전두환 아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코앞에 다가왔고, 내란죄·반란죄에 대한 대법원의 무기징역과 추징금 판결 이후 자그마치 16년이나 지나서 그 동안의 이자만 해도 추징된 원금을 상회하기 때문에, 전두환으로서는 아예 이번 기회를 통해 면죄부를 받으려고 하는 것 같다. 박근혜 정권으로서도 특별히 손해볼 일이 없는 게, 어차피 추징금을 다 받으나 못 받으나(최종 낙찰가를 단정할 수 없는 '경매'를 해야 하기에, 실제로 현금이 얼마나 환수될지는 현재 아무도 모른다) 언론을 총동원해서 정권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에는 이미 충분히 활용했고, '김대중이나 노무현은 못했던 걸 박근혜는 했다'는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전두환 일가와의 정치적 타협이든 검찰을 통한 압박이든 별로 상관이 없는 것이다.

[출처: 이상호 기자 트위터(@leesanghoC)]
이렇듯 전두환은 자진해서 추징금을 낸 것도 아니고, 현금 환수가 원칙인데 지금 현금 자체를 다 낸 것도 아닌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언론 같지도 않은 언론 · 기자 같지도 않은 기자들이 괜히 설레발이나 치고 있을 따름이다. 여기서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두환 뒤에는 5공 독재 세력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친일과 독재의 아이콘' 박정희 독재 세력도 아직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더 최근인 5공 독재 세력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면 정말 큰 오산이 아닐까? 만약 우리가 전두환의 '억지 납부'를 보면서 바보같이 면죄부를 준다면, 박정희 독재 세력처럼 전두환 독재 세력들도 언젠간 반동을 일으킬 것이다. 요즘도 5.18 광주가 모욕을 당하고, 전두환은 지금까지 호의호식하지 않았는가?
[개인적으로는, 반란 수괴 전두환이 국립묘지에 묻힐까봐 솔직히 겁난다]
검찰총장 채동욱의 '혼외 아들 의혹', 조선일보의 존재 이유는?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 6일자 기사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이 1999년 한 여성과 만나 2002년 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아 기르고 있다고 보도했고, 이 아들이 최근까지 서울의 한 사립 초등학교에 다녔으며 지난 8월 말 미국으로 출국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9일자 후속기사에서 "학교의 기록에는 (아들의) 아버지 이름이 '채동욱'으로 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한 나라의 검찰총장에 대해 연이어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니, 만약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채동욱이 상처를 입을 것이고, 만에 하나 거짓 보도라면 조선일보는 제대로 된 언론으로서 대접 받는 걸 완전히 포기해야 될 만한 사안이다.
그런데 바로 어제, 이 사건과 관련해 아이의 어머니라고 스스로 밝힌 여성이 10일 한겨레 신문에 편지를 보내 '제 아이는 채동욱 검찰총장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조선일보도 편지를 받았단다). 한겨레는 이날 오후 대검찰청에 편지 내용의 사실 여부를 물었고, 대검 대변인은 "채 총장이 2000년대 초중반 검사들과 가끔 다녔던 가게의 주인으로 보이고, 검사들이 기억하는 정황과 상당히 일치한다. 그밖의 부분은 우리도 모르는 일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자, 그러면 이제 공은 조선일보로 넘어간 셈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9월 10일 밤에 입력된 기사에서조차 제대로 해명하지도 않은 채, 다음과 같이 비상식적이고 치졸한 제목으로 '낚시질'이나 하고 앉아 있다.

[조선일보 <채동욱 총장 혼외아들 母,"아들의 아버지 채모씨는 맞다" 기사(미디어다음 갈무리)]
도대체 이 사회에 조선일보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시대에는 친일을 일삼고, 독재시대에는 정권의 나팔수가 되었으며, 김대중 ·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온 힘을 다해 정권을 비방하고, 이명박 정권 때에는 말도 안 되는 (4대강 사업을 가장한) 한반도 대운하에 동조하다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지금은 정권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검찰총장을 모함하는 게 조선일보가 하는 일인가? 과연 이런 신문을 정상적인 언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조선일보는 친일, 독재 세력과 얼마나 공생관계인가? 아직도 조선일보나 보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다는 게 심히 우려스럽다.
교학사 교과서와 천안함 프로젝트도 결국 친일과 독재의 문제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는 9월 10일 서울 남대문로 대우재단빌딩에서 교학사 교과서 분석 결과를 공개하는 '뉴라이트 교과서' 검토 설명회를 가졌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검정 결과 발표 이후 역사학자들이 이 교과서 전체 내용을 분석해 정리한 자료로 내놓기는 처음인데, 그 결과를 보면 교학사 교과서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증거가 곳곳에 보인다고 한다. 사실 오류나 왜곡, 과장, 축소, 누락, 편파 해석, 용어 혼동 등 중요한 잘못만 298군데에 이르고, 시대별로 전체 6개 단원 가운데 특히 일제강점기를 다룬 근대사 부분의 오류가 40%를 넘는 것으로 파악됐단다.
게다가 현대사 서술에서도 어처구니 없는 오류들이 적지 않게 발견됐다는데, 과연 이런 책을 우리 아이들에게 내년 3월부터 가르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현재 중학교 3학년생들이 이 교과서로 공부하고 수능 필수가 된 한국사 시험을 보는 첫 세대다) 국사편찬위원회 검정위원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교과서 같지도 않은 교과서를 통과시켰는지 모르겠다.
[이 정도로 부실 검증이 사실로 드러났으면, 하루 빨리 검증을 취소해서 일선 학교의 혼란을 막아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국사편찬위원회 수정보완권고에 의한 수정사항 개수 비교
- 두산동아(왕현종): 225개
- 천재교육(주진오): 208개
- 미래엔(한철호): 207개
- 교학사(권희영): 479개
- 리베르스쿨(최준채): 302개
- 지학사(정재정): 207개
- 비상교육(도면회): 283개
- 금성출판사(김종수): 267개

[2013년 9월 10일 한국일보 보도]
그리고 어제, 미디어워치·뉴데일리·조갑제닷컴 등 보수우파매체들의 연합체인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는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를 단 이틀 만에 상영 중단한 메가박스 측에 보낸 공문을 공개했단다. 이들은 메가박스가 보수단체의 협박 때문에 상영을 중단했다고 말한 것에 대해 "협박한 적 없다"며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 중단과 보수단체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메가박스 측에 협박한 단체를 공개할 것과 보수단체의 명예를 더럽힌 것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게 당연한 사기업인 메가박스가 도대체 왜 이런 엉뚱한 핑계를 대며 영화 상영을 중단했을까? 설사 그런 협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사회의 일원으로서 공권력의 도움을 받는 게 당연하지, 어째서 곧바로 상영 중단이라는 전무후무한 악수를 뒀을까?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반드시 실상이 밝혀져야만 하고, <천안함 프로젝트>의 재상영도 이뤄져야 한다.
[일각에서는 메가박스의 대주주가 제이콘텐트리(중앙일보+JTBC 계열사)라는 점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대로, 전두환의 추징금 납부 의사 표명과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 그리고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과 교학사 교과서의 부실한 검증은 결국 하나의 문제로 귀결된다. 친일과 독재를 기반으로 하는 수구 기득권 세력의 반동! 내란 수괴가 면죄부를 받기 위해 벌이는 쇼, 정당성을 의심 받고 있는 정권에 부역하는 언론의 폭력, 역사 왜곡을 위한 친일 독재 하수인들의 도발, 겨우 영화 한 편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반민주적인 만행.. 2013년 9월 10일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이 모든 일들은 다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에 수렴하는 셈이다. 대한민국은 일제 36년에서 독립한 뒤에 현재까지도 '친일'을 청산하지 못했고, 오랜 군사독재의 잔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강력하게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채동욱과 전두환의 인연이다. 관련 기사에 의하면 두 사람은 전두환이 군형법상 반란·내란 및 뇌물 등 혐의로 수사를 받던 1995년 말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평검사였던 채동욱은 '12.12,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에 차출됐고, 전두환의 구속영장 집행과 피의자 심문, 공소유지 업무를 맡았다. 특히 채동욱은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한 걸로 유명한데, A4 50쪽 분량의 공판 논고초안을 직접 작성하기도 했단다. 그리고 올해, 채동욱 검찰총장은 땅에 떨어진 검찰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지난 5월말 서울중앙지검에 전두환 일가 미납추징금 환수 전담팀을 꾸리기에 이른다.
한편 이미 다 보도가 됐다시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검찰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과 함께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문제 때문에 박근혜 정권의 초대 법무부장관인 황교안과 검찰총장 채동욱은 충돌을 빚었고, 아마도 이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같은 보수 신문들이 '채동욱 까기'에 나선 직접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2005년에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X파일 당사자들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모두 불기소 처리하는 한편, 이를 보도한 이상호 기자와 노회찬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장본인이 바로 황교안이다. 결국 노회찬은 의원직을 상실했고, 이상호는 MBC에서 쫓겨났다]
전두환과 채동욱, 채동욱과 조선일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중앙일보와 삼성 이건희 일가, 삼성과 JTBC, JTBC와 메가박스, 메가박스와 천안함 프로젝트, 천안함 프로젝트와 보수세력, 보수세력과 교학사 교과서, 교학사 교과서와 친일 독재 미화, 친일 독재 미화와 수구 기득권 세력.. 결국 이런 게 다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는 셈이다. 물론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를 '친일'과 '독재'로 환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인간 사회는 근본적으로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친일과 독재를 빼놓고는 전두환 · 채동욱 · 교학사 교과서 · 천안함 프로젝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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