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이 표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여호와를 경외함을 나타내 보이셨던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을 가지고 갈대아 우루를 갈 바를 모르고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완전한자는 아니었습니다, 흉년이 드니까 하나님의 허락도 없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바로에게 팔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바로의 꿈에 나타나서 그 아내를 다시 아브라함에게 돌려주셨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이었지만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받쳤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런 시대에 아브라함 같은 전폭적인 믿음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노아시대는 노아가 표본이 이었습니다, 늙은 영감 노아는 그 시대 사람들이 볼 때는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하늘도 맑고 구름 한 점 없는데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 한다고 말 하면서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닌 100년 동안이나 날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도 아니했습니다, 그는 한 번도 뒤로 물러 선적도 없었습니다, 오직 말씀을 따라 앞으로 진행만 했습니다, 믿음이 약해져서 의심이 들만도 한데 완전히 사로잡혀서 미친 사람처럼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물로 세상을 심판 하실 때에 자기를 비롯한 자기 가족 여덟 식구만 구원을 받았던 것 입니다
이런 자들이 그 시대들의 표본입니다 그 외에도 이삭 야곱 여러 선지자들, 또한 바알에게 무릅을 꿇지 아니한 칠천 명 이런 자들이 세상과 뒤 섞기지 아니하고 오로지 세상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자들인데 세상의 풍습에 밀려 요동하지 않고 자기중심을 지켜 시대의 표상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 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시대의 표상이 될까요?
언제나 마찬 가지지만 온 세상이 그야말로 물질 만능 시대가 되었습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돈 벌어 잘살고 자식 잘 가르쳐 출세시키기 위해서 고전분투하고 서로 죽이고 죽고 하는 아귀다툼의 세상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향락과 쾌락으로 타락할 대로 타락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마지막 황혼 길에 뒤를 돌아보며 잘 살아 왔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딤전 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모데 전서에서 바울 사도는 복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죄인 중에 괴수 같은 자기를 구원 하시려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의 은혜가 예수 안에서 믿음과 사랑과 함께 풍성하게 넘쳤다고 말 합니다
바울 사도를 이렇게 되게 하신 것은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오래 참으신 것을 말씀 하십니다
진리의 말씀 안에서 사는 우리 또한 죄악 중에서 구원하시고 주님이 우리 안에 오시고 평강과 안식으로 말씀을 통한 영원한 생명으로 넘쳐나게 하신 것은 나보다 더 연약한자들의 본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빚진 자들입니다 빚이란 반듯이 갚아야 할 것입니다
빚을 갚지 아니하면 채무로 계속 남아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 복음에 빚진 자라,
그래서 그는 이 빚을 갚기 위해서 일생동안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고 구분되어 그리스도께 사로잡혀 사는 삶 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반듯이 바울사도처럼 되어야 하겠기에 이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고 구분 되어야 할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하는 노아시대처럼 세상 속에 빠져 이들처럼 똑같이 살 것이 아니라 깨어 근신하여 천기를 분별 할 줄 아는 지혜 있는 자들이 되어 이 세상 유혹에 빠지지 않고 날마다 우리들의 생활이 연약한 자들의 거울이 되어 그들의 본이 되는 것을 언제나 관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하나의 몸의 지체들이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본이 된 자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
바울사도께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 속에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말입니다
그는 복음 때문에 옥에 갇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분토처럼 여기고 자기의 골육친척을 위하여는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들을 구원 하고자 하는 애끓는 심장으로 원하고 어린 자들 앞에서는 그들을 실족하게 하지 않기 위하여 아무것도 아닌 고기까지도 먹지 않았으며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자였습니다, 그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의 군사였습니다,
우리도 신랑을 맞이할 예비 된 신부처럼 깨끗한 세마포, 즉 그리스도로 옷 입고 날마다 나 자신 스스로가 말씀 안에서 거룩해져서 나의 영향을 받는 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본받아 라고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이 시대의 표본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이 고후 2:15에서는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 합니다
향기란 내가 가지고 있는 자태에서 풍겨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형상에 따라서 악취가 날수도 있고 아름다운 향기를 풍길 수도 있습니다. 내 형상이 그리스도의 것이냐? 아니면 가이샤의 것이냐에 따라서 향기냐? 악취냐? 입니다, 아무리 적은 꽂이라도 향기가 강한 꽃이 있습니다, 그 강한 향기는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벌 나비들이 모여 듭니다
이렇게 우리도 세상 적으로는 연약하고 비록 보잘 것 없는 작은 자라 할 찌라도
하나님 앞에서나 구원 얻을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그래서 그들의 본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망하는 자들에게는 아주 강한 향기로 그들에게 강하고 담대함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이런 향기들을 고후3:3에서는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편지는 반듯이 다른 사람에게 읽혀지는 것입니다 편지가 편지로써 그 역할을 못하고 그냥 있다면 이것은 편지가 아닙니다, 그 져 종이쪽지에 불과 합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라 했습니다, 그것도 먹으로 쓴 것이 아닌 육에 심비에 기록된 편지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말씀하신대로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새운 언약과 같지 아니한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새운 두 번째 새운 언약이 성취된 편지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으로만 되어지는 것이지요,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에 주의 말씀이 기록 되고 새겨져서 주야로 묵상 되어지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말씀이 가까워 내 마음에 있고 내 입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어진 편지들을 고후 5:20에서는 그리스도를 대신 한 사신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 하라,
우리나라 대통령의 사신이 미국의 버락오바마 대통령을 방문 했다고 해 봅시다 그는 분명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오바마를 만났을 겁니다, 자신의 이름으로가 아닌 이명박 이름으로요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한 사신은 내 이름이 아닌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지고 사신으로 보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신의 내용이 뭐냐?
하나님과 화목 하라,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우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 고로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화목이라는 단어가 katallavssw(카탈라쏘) 인데 이 말뜻은 교환하다’, 즉(상징적으로) 상이점을 ‘혼합하다’, 화목케 하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두 단어 합성어죠 kata(카타)+allavssw(알락소) 인데 allavssw(알락소)의 뜻이 다르게 만들다, 변경하다,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 하라는 말씀은 혼합해서 완전히 다르게 만든 것, 즉 완벽하게 변화된 것이 화목 입니다
무슨 말이냐?
옛날의 내가 주님과 함께 혼합되어져서 그분의 생각과 그분의 의식으로 완전히 다르게 변화되어 그분의 속성 화된 것을 하나님과 화목이라고 말 합니다
이것을 바울사도는 디도와 자기관계로 고후 8:23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 이니라
그리스도와 혼합되어져서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되면 바울사도가 말한 것처럼 처음에는 동무가 되고 그 다음은 동역 자가 되며 그리고 교회의 사자들이고 그리스도의 영광 인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벧전 1장7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금보다도 더욱 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타나실 때라는 단어가 ajpokaluvptw(아포칼루프토)인데 뜻이 덮개를 제거하다, 폭로하다, 나타내다, 입니다,
그리고 얻게 하시는 것도 얻다 라는 단어가 e[cw(에코) 라고 따로 있는데도 여기서는 에코를 쓰지 않고 euJrivskw(휘리스코)를 썼습니다, 그 뜻은 발견하다, 찾자, 인지하다 입니다,
그래서 덮여진 것이 열려지므로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한 상태에서 이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것처럼 밝히 드러날 것이며 부분적으로 알던 상태에서 온전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자라가게 됩니다,
이렇게 된 것이 영광과, 칭찬과, 존귀를, 발견하고 인지한 상태입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은 사랑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랑의 힘이 구원 얻을 자들의 본이 되고 향기가 되고 편지가 되며 사신이 될 것입니다
다시 정리 합니다,
1,구원 얻을 자들의 본이 되라
2,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되라
3,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다
4,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다
5,너희는 그리스도의 사신이다 (사신이 가지고 간 말씀은 하나님에게 완벽하게 변화하라 이다)
6,이런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덮여있던 것을 완전히 열고 계시해 주심으로 이 시대의 본이 되고 결국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발견하게 된 영광의 실체들입니다,
첫댓글 말씀 감사함니다 .....
설교자료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자료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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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