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고 거두는 원리
고후 9 : 1 - 8
이솝 우화 가운데 「농부와 여우」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유달리 여우를 미워하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자신의 밀 밭에 나갔다가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여우를 한 마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여우를 가지고 마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 합니다. "내가 그토록 미워하던 여우를 잡았소. 보시오. 모진 고통을 주어 이 여우를 죽일 것이오"라고. 이 말을 들은 동네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며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그 농부는 사람들의 말은 들은 체도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여우의 꼬리에 기름을 묻힌 밧줄을 매고 거기에 불을 붙였습니다. 농부는 불이 붙은 여우가 놀라 산 속으로 도망가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농부의 생각과는 달리 여우는 온옴에 불이 붙은 채, 그 농부의 밀밭으로 들어가 추수를 앞둔 밀을 모두 태우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심은대로 거둡니다. 심은 만큼 수확합니다. 이 단순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이 엄연한 원리를 거역하고 거스리는 사람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것입니다. 불한당 (不汗黨)이란 말이 있습니다. 나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문자 그대로 땀 흘리지 않고 살겠다는 무리를 보고 불한당이라고 합니다.
땀을 흘리지 천국을 소유 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어떻게 보면 불한당이 측에 들어 갑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은 우리에게 '심은대로 거둔다'라는 이치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본문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일곱 가지의 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씨앗의 원리입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옛말처럼 좋은 일을 하면 선(善)이나고, 나쁜 일을 하면 악(惡)이 납니다. 심은대로 거둡니다. 그 종자는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분량(分量)의 원리입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정주영씨가 경작하고 있는 서산 농장을 보세오. 농장이 얼마나 넓은지 비행기로 씨를 뿌립니다. 이렇듯 많은 양을 심으니까 많이 거두는 것입니다.
세째는 정성의 원리입니다.
많이 심는다고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종자라고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정성을 기을이는 것입니다. 풀 한포기를 가꾸는 데도 얼마나 정성을 들여야 합니까?
네째는 기다림의 원리입니다.
아침에 심고 저녁에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봄에 심고 가을에 거둡니다. 금년에 심고 몇 년 후, 5년 혹은 10년 후에 거둡니다. 부모가 심고 자식이 거둡니다. 이 기다림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흔히 악을 행하고도 당장 거두는 것 같지 않아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거두 어야 할때가 옵니다. 선도 그렇습니다.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반드시 거두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할 것 없습니다.
다섯째는 심판의 원리입니다.
심을 때에 실수로 잘못 심을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둘 때는 실수가 인정되지 않습니다.바꾸려고 해도 바꿀 길이 없습니다. 심어놓았으면 거둘 수밖에는 없습니다. 심은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심는 것은 자유요 거두는 것은 심판입니다.
여섯째는 은총의 원리입니다.
우리의 수고란 아주 작은 것입니다. 하찮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종자도 주시고 땅도 주시고 비도 주시고 햇빛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건강도 주셨기에 추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피땀 흘려 수고하여 수확한 뒤에, 이 모두를 하나님께 돌리는 것은 이 은총을 감사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일곱 번째는 나눔의 원리입니다.
농사 지어서 나 혼자 먹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선진국은 전국민의 5퍼센트만이 농민이라고 합니다. 다섯 사람이 농사를 지어서 백 사람이 먹는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일터에서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나 혼자 먹고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수고해서 그 결과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도록 되어 있습니다. 추수한 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과 더불어 서로 베풀고 나누는 데에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심은대로 거둔다' -이 원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실천철학은 기독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행위는 추수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은 과 거에 심어놓은 것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은 미래를 향하여 심는 것으로 파종적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의 사건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이 사건은 반드시 미래에 그 결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심는 것이 곧 거두는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이 있듯이 우리의 행위도 씨앗이 됩니다. 내가 한 일, 내가 한 말이 남을 아프게 했다면 언젠가는 내가 아플 때가 올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배신했다면 언젠가는 내가 배신 당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선한 일을 했다면 언젠가는 내게 선한 일이 돌아 을 것입니다.
'심은대로 거둔다' ~사도 바울은 이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선과 악의 행위에는 거두어들이는 가을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명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녀들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자식이 언젠가 때가 되었을 때에 무엇을 거둘것 같습니까?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점검하십시오. 나의 인격을 점검하고, 도덕성을 점검하고, 영성을 점검하십시오. '나는 무엇을 심고,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나의 후손은 무엇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심은대로 거두며, 많이 심은 자가 많이 거둘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말씀합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심고 거두는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이어서 말씀합니다."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씨앗을 아끼면 가을에 거들것이 없습니다. 농사꾼이 억지로 씨앗을 뿌리는 것 보셨습니까?
여러분 인색이 무엇입니까? 내가 해야 할 시간에 그 마음을 억누르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선행은 기쁘게 해야 합니다. 기쁜 마음 이것이 중요 합니다. 기쁨이 따르지 않는 다면 모든 행위는 소용이 없습니다. 또 한 선행은 미리 준비 해야 합니다.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기도 하면서 정성껏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8절에는 " 은혜를 넘치게 하신 하나님 , 모든 것을 넉넉하게 하신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넉넉하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리면 안됩니다.
금년 한해가 우리에게 매우 어려운 한해라고 해서 감사를 잊으면 안됩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감사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감사의 씨앗을 심어야 감사를 거둘 수 있습니다. 감사도 심고 거두는 법칙이 통합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여러분 미국을 개척한 청교들을 아시지요 청교도들이 미국 대륙에 도착했지만 그들은 병들고 쇠약하여 상륙할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이들을 발견한 왐파노그(Wampanoag) 인디언들은 청교도들이 타고온 메이플라워 호까지 가서 낯선 백인들을 육지로 상륙하는 것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리고 플리머스 마을을 건설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백인의 싫어한 인디언 부족도 있었는데 왐파노그들은 그들의 공격에서 청교도들을 지켜 주었고 옥수수 심는 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수확을 거둔 후 청교도들이 왐파노그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만찬을 베푼 것이 오늘날 추수감사절 식탁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백인들의 감사는 너무 짧았습니다. 백인들은 토지를 확장해 나갔고 부유한 나라를 만들어 갔습니다. 백인들은 생명의 은인이며 자기들을 도와 준 왐파노그 부족을 완전히 잊어 버렸습니다..
미국 정부는 "왐파노그는 없어진 부족이다. 그들의 땅은 없으며 그들의 언어나 문화도 찾을 길이 없다. "라고 염치없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왐파노그를 자칭하는 인디언들이 플리머스에 모여 조상들을 애도하는 추도회를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미국인이 즐겁게 먹고 노는 이 날을 '통곡의 날(The Day of Mourning)'로 선포하고 울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백인들이 추수감사를 즐기는 그 날에 감사를 잊고 살아가는 백인들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인디언들의 <통곡>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역경 속을 걸어오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오늘에 이른 그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시편 107편4절을 보면"사막 길에서 방황하고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피곤하였던 일들"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난날을 기억하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닫는 것이 감사입니다.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소망을 발견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이 "감사절을 국가 공휴일로 선포하고 전 국민이 감사할 것을 호소한 것도 그 당시 미국으로서는 가장 치열한 남북전쟁의 와중이었습니다. 링컨은 감사절 선포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때가 오면 나무는 과일을 맺고 넓은 들에는 곡식이 여뭅니다. 이 맑은 하늘과 공기를 주신 하나님, 우리의 죄를 참고 용서하시는 하나님,그분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건지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 모으셨도다."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각 처로 흩어져 생사도 모르던 가족이 살아 남았다가 사방에서 모여오는 기적을 보고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감사는 역경 중에서도 역경과 고난 중에 있는 형제들과 함께 해야 진정한 감사요, 내일의 축복을 기약하는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노르웨이에서 전해 내려우는 한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에 사탄이 지구에 내려와 하필이면 노르웨이에다가 창고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창고에는 각종 씨앗들, 미움, 슬픔, 눈물 등의 씨앗들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이 씨앗들은 누구의 마음속에 뿌려도 잘 싹이 나는데 한 동네만은 효력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동네의 이름은 '기쁨'이라는 동네 입니다. 어떤 슬픈 상황과 절망적인 처지에서도 그들은 언제나 감사했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이 씨를 뿌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아주 긍정적인 생각입니다. 불만을 가지면 사탄의 좋지 않는 씨앗을 뿌릴것입니다. 꽃을 세는 사람은 잡초 세지 않습니다. 축복을 세는 사람은 불만이 보이지 않습니다..기쁨의 추억을 세는 사람은 눈물의 양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세는 사람은 미움을 저축하지 않습니다.
가장 어려운 수학은 내가 받은 은혜를 계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보다 더 아름다운 예배(제사)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우리의 최고의 예물은 감사입니다.(시 95:2) 감사하는 마음이야말로 위대한 덕일 뿐만 아니라 모든 덕의 어머니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가치있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시편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성경은 감사를 믿음의 최고의 표현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참된 기도는 감사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고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요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하루 앞두고 자기의 피와 살을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주게 된 사실을 감사하셨습니다. 그는 항상 심고 거두는 원리를 아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나 감사의 씨앗을 심어 감사의 열매를 많이 거두는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