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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받은 책 권수가 부족해 다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김진광 시집<<시가 쌀이 되는 날>>제 1부소개
시가 쌀이 되는 날
김진광
벨이 울린다
택배 상자를 받아들고
에이, 하고 아내가 말한다
또 책이구먼, 한다
상자 속에 쌀이 들어있었다
원고료로 철원 오대쌀을 보냈다
순수문학잡지 가난한 살림살이
꾸려나가기도 어려운데
가난한 시인들 굶을까봐,
가난한 농민들 쌀을 사서 보냈다
기름진 철원평야를 잃고 김일성이
며칠 배를 앓았다는 철원 쌀이다
어둡던 아내의 얼굴이
하얀 쌀 빛으로 밝아온다
시가 쌀이 되느냐, 하는 아내에게
오늘은 시가 쌀이 되었다
다비식 茶毘式
아이들의 나라에
사람이 죽었다
문상 오는 사람이 없어
겨울햇살이 대신
다비를 하고 있다
나뭇가지에
참새 한 마리 날아와
짹, 짹, 짹,
몇 마디 울다 간다
한 사람의 짧은 생애가
연기 한 점 없이 타고 있다
깨끗하게 살다
깨끗하게 떠나는
눈사람의 다비식이다
겨울 폭포
실족한 사람들이 다 여기 모여 있구나
떨어지지 않으려 절벽을 잡고 몸부림 친
흔적이 햇살에 아름답다
죽을 힘 다해 절벽을 기어오르다가
얼어 죽은 미라의 몸속에
실핏줄 흐르는 소리 들리는가
세월호 캄캄한 절벽을 잡고
끝까지 바깥세상을 믿었던 사람들
그 눈물도 여기 함께 얼어붙어 있구나
아직도 세상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햇살 좋은 봄 오면 다시 환생할까
흰 목련처럼 몸에 감았던 붕대를 풀고
봄꽃처럼 환하게 웃는 날 올까
떨어지지 않으려 절벽을 잡고 몸부림 친
투명인간의 흔적이 햇살에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실족한 우리 젊은 날들이 여기 다 모여 있다
봄동
울둘목 다리 건너 진도에 가거든
곡식 거두어들인 빈들에
겨울 지낸 봄동 배추밭을 보아라.
진도 보리처럼, 마늘처럼,
울둘목 바닷물처럼,
매서운 추위에 납작 엎드려 울다가
북 장구 꽹과리 징 소리에
열 두발 상모 돌아가는 햇살
울둘목 함성으로 섬마을 들판이
저리도 파랗게 살아나는구나.
해풍을 먹고 사는 봄동처럼
세상에 엎드려 사는 섬사람들
통통한 알배기는 없지만
봄동겉절이 같은, 봄동 된장국 같은.
울둘목 다리 건너 진도에 가거든
명량해전 함께한 울둘목 바닷물처럼,
매서운 추위에 납작 엎드려 울다가
파랗게 살아나는 진도 봄동을 보아라.
상사화 밭
전라도 고창 선운사나 영광 불갑사
상사화 밭을 한번 가보세요
좋아하면서도 만날 수 없는
사랑이 핍니다
좋아하면서도 헤어져야하는
그런 사랑이 핍니다
짝사랑으로 홍역을 앓은
또 그런 사랑이 핍니다
살아생전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너와 나 어긋나는 만남이
여기에 다시 꽃으로 피어납니다
그대 생각하면
아직도 솥으로 이마가 끓는…
*상사화(相思花) : 꽃무릇이라고도 부르며, 여느 꽃과는 달리 꽃과 잎이 피는 시기가 달라 서로 만나지 못함.
옥수수밭
여인들이 아이들을 업고 서 있다
정을 준 사내가 누구인지
기억이 아리송한 엄마 등에
울며 보채며 하나 혹은 두세 명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슬픈 아이들이 업혀 자란다
마을 누나가 임신을 한 적이 있었다
누나의 아버지가 어느 놈의 짓이냐
욕하며 시퍼렇게 매를 대었지만
온몸 수수 대궁처럼 피멍이 들어도
누나는 바람에 마른 옥수수 잎 소리만 냈다
난 蘭
난, 말이야
살짝 그늘진 구석이 좋아
쨍하고 해 뜨는 곳보다
메마른 한 뼘 돌밭이 더 좋아
기름진 땅은 다 가져가고
깨끗한 물 한 바가지 떠다오
깨끗한 사람 하나 찾기가
새로운 별 찾기보다 힘든 세상이라서
별지는 새벽녘이면 눈물만 맺히는구나
언젠가 이 세상 미련 없이 떠나기 쉽게
세상을 꽉 움켜잡지 않을래
햇살 따스한 날 오면 눈물 닦고
한 며칠 세상을 향해
활짝 웃어 볼 거야
그때, 내가 너에게로 갈 거야
창문을 조금 열어 줘
향기로 갈 거야
감동
아내가 루게닉병을 앓아
이십육 년을 누워 있다
남편은 식물이 된 아내를
화분에 심고 가꾼다
이따금 기타를 치며
아내를 위해 노래 부르면
발가락이 조금 움직인다
입술이 조금 움직인다
식물들도 음악을 들으면
좋아한다는 말
고개가 끄덕인다
오아시스를 생각하며
아침의 고향 수평선은 바다의 신기루지
다가간 만큼 저만치 달아나버리는
오래된 가죽 표지 성경 속 금단의 열매 같은
모래바람 부는 사막 길 오아시스를 찾아
혹 달린 낙타 한 마리 끌고 터벅터벅 걸어가면
골목을 막 돌듯 눈앞에서 사라지는 신기루
목마른 나에게 언제나 너는 오아시스
신기루 옷을 입은 환상이었나 보다
하늘이 비온 뒤 이따금 내걸어놓는
산 위에 올라도 만질 수 없는
고운 무지개 옷을 입었나 보다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너는
사람들 몰래 꿈속에서 만나주었지
행복하다가도 꿈에서 깨어날 때는 언제나 아쉬웠지
세월이 지나며 사막에도 포장길이 덮이고
사막 곳곳에 오아시스가 생기면서
너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모래 바람 속을 걷는 낙타의 눈처럼 자꾸 슬퍼진다
별 다방
사람들이 싫은 날
별 다방에 간다
별에서 온 여자들이
잠시 머무는 우주정거장
어느 별에서 왔는지
서로 묻지 않는다
별자리를 옮길 때마다
이름이 바뀌는 별들
어항 속 금붕어처럼 꼬리치며
물만 먹고 사는 우주에서 온 여자
별들의 고향이 그리운지
밤이 되면 노래방에서
반짝반짝 별이 되고 싶어한다
음악이 흐르면 더 부드러워지는 살결
살은 외로움을 잠재워 준다
부드러운 살 속에 빠진 뼈는
죽어서야 빠져나온다
신발
세상 구경 처음 할 적에는
발에는 신발이 없었겠지
세상에 두 발로 서서 걸으며
부모님이 잡아주던 손을 놓고
예쁜 꼬까신 한 켤레 얻어 신었지
나비걸음이 조금씩 무거워지며
그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고
소처럼 묵묵히 앞만 보고 걷는 발
반가운 만남은 손에게 주고
웃음은 얼굴에게 주고
메달은 목에게 걸어주고
세상 구린 냄새 모두 가져가는 발
그 발을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말없이 감싸 안는 어여쁜 신발
햇살 좋은 오늘, 깨끗이 씻어 말려야겠다
꽃잠
돌에서 꽃 핀 다는 걸
경북 청송에 와서 보았다
캄캄한 돌도 천 길 낭떠러지
수천만 길 깊은 잠 속에 빠져
어둠을 살라먹고 꿈을 꾸면
절망을 베게로 수천만 길 꿈을 꾸면
돌의 가슴에 돌무늬 꽃이 핀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꽃돌을 보며 다시 생각한다
우리 집에 데려온 백장미석 하나
돌의 꿈속으로 놀러왔다가
수천만 길 잠 속에 꽃잠이 들었다
언젠가 나도 돌 속에 들어가
깊은 꽃잠에 들고 싶다
선물 받은 욕지도 欲知島 돌
욕지도에 나는 간 적이 없다 가면
야 이놈아 너 왜 태어났니 하고
한 바가지 욕 얻어먹을 것 같은 섬
욕지도의 돌을 하나 선물 받았다
반질거리지 못하고 석질이 물러서
마음이 좋은 섬사람 냄새가 묻어난다
밤 색깔 바탕에 화성의 분화구 같은
작은 구멍이 여러 개 숭숭 뚫린 게
묵호항 횟집 욕쟁이 할머니 입을 닮았다
숭숭 뚫린 여러 개 입에서 금방이라도
욕이 꽃게처럼 마구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야 이놈아 남자 놈이 술을 한 병 시켜놓고
반병이나 남겼냐, 술값은 반병 값만 내놔
욕을 안 하면 입이 근질거려 못 참는지
욕쟁이 할머니가 한 바가지 욕을 끼얹고 간다
욕을 먹어도 화가 나기는커녕
몸속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껄껄껄 욕지도의 파도가 내 등을 두드린다
변명
내 구두 뒤축은 늘 삐딱하다
그래서 나는 늘 불만이다
바로 서서 걸어가려 하지만
한 번 굳은살 박인 발은
더 이상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바깥으로만 살아온 세월인가
바깥으로만 닳아있고
내 안쪽 길은 신발축이 말짱하다
제 길을 바로 걷지 못했다고
세상을 골고루 바라보지 못 했다고
신발장에 신다가 둔 삐딱한 구두들이
나를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다
삐딱한 세상을 걸어가서 그래
그렇게 나는 삐딱하게 변명한다
구두 닦는 날
일요일, 오랜만에 구두를 닦는다
장마철 어두운 신발장에서
곰팡이가 살짝 묻은 신발들
햇살에 꺼내놓고 닦는다
뒤창이 벌어진 구두에 못을 박는다
아버지 옛날 징 박힌 구두를 신고
저벅저벅 집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골목길 저쪽에서 들려왔지
다시 먼지를 털고 구두약을 칠하고
침을 뱉어가며 수없이 문지른다
근처의 교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경의 말씀을 닦는 소리가 들리고
장마를 건너온 참매미들이 감나무에서
하느님의 하늘을 파랗게 닦고 있다
매미가 닦아놓은 파란 하늘에
교회의 십자가가 더욱 높게 걸리고
구두에 햇살이 미끄럼 타는 일요일 오후
빛에 대하여
어머니 이승에 남겨둔 은가락지 금가락지도 빛이다
세상의 빛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꽃을 빚는다
바람에 꽃이 너울너울 날갯짓을 한다
빛은 꽃이 되고 꽃은 팔랑팔랑 나비가 된다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나비의 춤사위
아이들이 무지개다리를 딛고 나비를 따라 간다
빛은 꽃이 되고 꽃은 나비가 되고 나비는 아이가 된다
아이는 무엇이 되는가, 아이는 어두운 어른을 비추는 빛이다
굴렁쇠를 돌리며 태양을 쫒아가는 꽃과 나비와 아이들…
빛이 지하수처럼 누수된 숲 속으로 가볼까
골짜기 개울물소리는 누수된 빛줄기이다
새들이 나뭇잎 사이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빛을 먹고
밝고 맑은 초록빛의 피리소리를 낸다
호수 속의 별들을 건져 먹는 고니 몇 마리
고니들도 동동 연꽃처럼 떠다니는 빛이다
호수 마을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도 빛이다
어젯밤 하늘의 별 하나 땅으로 내려온 걸 보았지
저것 봐, 달이 대낮에 태양을 먹고 있다
야금야금 살과 뼈 몸은 모두 먹어치우고, 어머니
약지에 끼었던 금가락지 하나 하늘에서 반짝인다
세한행 歲寒行
겨울 시장 흐린 시력의 난전에 좌판을 벌리고
유영하는 물위의 오리처럼 보이지 않지만
수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시린 발이 보인다.
추위에 언 몸을 맞대고 껴안고 누운 고기들
선한 눈빛이 퇴근길 물결을 따라 헤엄치고 있다.
사람들보다 소주 몇 잔의 따뜻한 위안이 그리운
지하철 통로 골판지 덮고 누운 노숙자 등뼈 속으로
지하철 기차가 뿌앙- 봄을 꿈꾸며 지나간다.
몇 번이고 시험의 눈길에 미끄러진 젊은이들
폭설의 무게에 우지끈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따뜻한 위로도 눈물도 금세 하얗게 얼어붙는 세상
눈보라 속에 앞으로 걸어가는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유영하는 물위의 오리처럼 보이지 않지만
밀려오는 잠에 손발을 움직이는 겨울 나목들이
추위에 언 몸을 맞대고 껴안고 누운 고기들이
눈감고 아주 잠들면 안 된다고
서로 흔들어 깨우고 있다.
김진광 시집<<시가 쌀이 되는 날>>제 6부소개
미안미안미안
김진광
한 칠년쯤
어둠 속에서 면벽참선한
참매미 한 마리
그래도 뭐가 부족한지
세상에 나와 다시
허물을 벗는다
허물 벗어놓고
동네 당상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동네 사람들 들어보라고
째랑째랑째랑 아침부터
마이크 잡고 운다
미안미안미안미안미안미……
풀지 않는 짐 보따리
살다보면
자꾸 늘어나는
시시콜콜한
살림살이들
이사할 때마다
풀지 않는
짐 보따리가
늘어난다
그런 짐이 아닐까
나도 이 세상에서
아주 풀지 않아도 좋을…
발뿌리병
날을 잡아 난 분갈이를 한다
화분 속 뿌리가 많이 썩어 있다
알맞게 물을 줘야하는데
물을 주었는지, 언제 주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또 아리송하다
지난 번 세 번 째 허리수술 때
발가락 신경이 죽는 발뿌리병이 났다
고쳐달라고 해도, 의사는 웃으며
평지 길 걸어 살아가라 한다
썩은 난 뿌리는 가위로 잘라내고
조금 성한 뿌리는 분속에 묻는다
내 발뿌리에도 새 촉이 돋아날까
연못 속에서 만난 부처
운이 좋은 날은 불영사 산 위 부처바위가
절 연못에 비춰진 걸 볼 수 있다지
그 부처를 보면 소원이 이루어 질 수 있다지
함께 갔던 아내가 연못 속 부처님 만나보고
연못 거울 수련 한 송이로 곱게 피어난다
저렇게 우리도 해질녘 한 번쯤은
누군가의 연못 거울에 곱게 비춰졌으면…
좀 지나친 욕심이겠지만 언젠가
노을과 함께 아주 산을 넘어간 뒤에도
누군가 꺼내 든 마음의 손거울에 문득
연못 속 부처처럼 얼굴이 떠올랐으면
연못 수련처럼 웃는 모습으로 비춰졌으면
우물물
넘쳐 나오는
샘물이 아닙니다
목이 마를 때
줄을 내려서
퍼 올려야지요
운이 좋은 날은
두레박으로 별을 건져 올려요
이고 가는 물동이 속으로
동동 아침 해가 함께 따라가요
퍼가도 퍼가도
언제나 그 자리인 우물물
그게
사랑입니다
밥 그릇
그릇들도 싸운다
달그닥 달그닥
신혼살림 살이 같은
저녁 설거지
서로에게 한 말들이
찐득한 밥풀이 되어
그릇에 달라붙어 있다
우리와 함께 하던
따뜻한 밥그릇이 어느 날
한 귀퉁이가 깨어지며
칼날이 되던 눈빛
우리도 밥그릇이다
깨어지면 아픈 밥그릇이다
목줄을 매고
우리의 식사를 기다리는
개밥 양재기보다 못한
자기 밥그릇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
펭귄처럼 하늘을 잃은 노인들이
깔깔깔 거리면서
껄껄껄 거리면서
내 나이가 어때서 하고 묻는다
사랑에 나이가 없다고 대답한다
등잔불 심지를 다시 밀어올리고
수틀 속에 오색실로 수를 놓을 때
텃밭 옥수수들의 하모니카 소리
노래를 부른 가수의 아내는 정작
공주로 살다 육십 한창 예쁜 나이에
등 돌려 저 세상으로 돌아눕는데
너도 나도 백 세 사는 세상이 왔다고
신바람 나서 노래를 부르며
노을 고운 하늘로 날개 짓 한다.
깔깔깔 거리면서
껄껄껄 거리면서
못 박는 소리
밤중에 누가 못을 박고 있다
달랑 못 하나 박는 소리에
잠자던 아파트가 모두 긴장하고 있다
아래층인가 위층인가 어디인가
왜 한 밤중에 일어나 못을 박을까
한 건물에 살면서 무표정한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시위인가
내가 못을 박을 때도 저러했을까
남이 못 박는 소리는 그 것도 한참
단꿈 꾸어야할 밤중에 못 박는 소리는
정말 함께 들어주기가 어렵다
자다가 깨어나 천장을 보며 누구인가
못 박는, 못 박히는 소리를 듣는다
나도 누군가의 가슴에 저렇게
잠 못 들게 못 박은 일이 있겠지
가슴에 박힌 못 하나가 이 밤에
다시 시퍼렇게 눈뜨고 있다
꿈 속에서 커텐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니
우리들이 박은 크고 작은 못들이 반짝인다
수족관 활어
양어장의 주인이 다 자란 고기들을
그물 족대로 떠서 수족관으로 옮긴다
뭐라 하지 않아도 수족관의 고기들이
이따금 화를 내며 펄쩍펄쩍 뛴다
양어장에서 살 때보다도 고기들은
더 신경질적이고 더 말을 많이 한다
진갑이 지난 나도 누군가의 그물 족대에
떠내어져 수족관에 옮겨진 활어이리라
살아있다고 펄쩍펄쩍 뛰어보기도 하고
수족관 고기처럼 자꾸 말이 늘어난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야
고기들이 요양원 노인들의 말을 한다
절대 짖지 마
정선 두문동에 숨어살던 고려말 7인의 유신들
정선 낙동리 거칠현동 사당을 모셔놓은 촌마을에
정선 전씨 본관인 대통령님이 방문하신다고
동네 개들이 아이 좋아라 짖기 시작 했는데
그게 문제가 되어 모두 형장의 이슬이 되었지
일본 시대에 놋쇠 공출 송진 공출 처녀 공출
개 공출이 있었는데, 우리 집안 형님이 개 공출 때
쌀 창고에 숨긴 개가 일본 순사 냄새 맡고 짖었지
개가 새끼를 베었으니 좀 봐달라고 손발 싹싹 빌었지
그래 몇 개월 되었냐 묻자 한 7개월 되었다 했다가
개는 3개월이면 새끼를 낳는다며 끌고 갔다지
갑자기 정선 전씨 대통령의 방문이 취소되었지
개들만 억울한 개죽음을 당하였다고
정선동네 개들이 짖지 못하고 수군수군 그렸지
정선 조양강물들이 혀를 껄껄 차며 한양으로 흘렀지
저 독한 것들 좀 보게
산불만한 바람둥이는 없다
잿더미를 쓰고 나오는
독한 것들 좀 보게
땅 속 아득한 세월을
화석처럼 숨죽이고 있다가
전쟁처럼 화마가 쓸고 간 자리
꺾어도 다시 꺾어도
지구상에 끝까지 남을
저 독한 것들 좀 보게
모가지며 몸뚱이 채 꺾어버려도
어디 해볼 테면 한 번 해보자
머리 구부리고 세상을 치받는
고사리만 뜯어 먹고 살던
고사리보다 더 독한 사람
백이숙제도 따라 나왔다
풍경소리 좋다며
풍경소리 좋다며
하늘가에 매어달고
해와 달과 별을 보며
두 손 모으는 할머니
뎅그렁!
바람에 흔들릴 적마다
사립문에 눈이 간다
내년에는 꼭 갈게요
안부 묻는 자식처럼
구름 속을 헤엄치는
지붕 끝 고기 한 마리
풍경이
저 혼자 울었다
누가 왔다간 것처럼
섬에서 섬으로
옹진군 선재리 서해안 바닷가
섬 속의 섬 하나 거기로 가는
바닷길이 기적처럼 열리고 있었다
자연의 섭리이라도 좋다 그래
아니 신이 내린 축복이라도 좋다
사내 하나 넋을 잃고 서서
내 속가슴에서 네 속가슴으로 걸어가
섬 속의 작은 섬이 되고 싶었다
갈매기 떼가 알 수 없는 손짓을 한다
우리는 모두 외로운 섬과 섬
파도로 너에게 그리고 나에게 다가가는
바람에 물결 같은 그리움인가
정작 너에게 가서는 하얗게 부서진다
수천의 기마병들처럼 밀물이 쳐들어와
섬에서 섬으로 가는 길과 발자국들이
거짓말 같이 바다 속으로 점령당하고
노을은 기름을 부어 하루를 화장火葬 한다
섬에서 섬으로 가는 길은 바다에 묻고 왔지만
나의 섬에서 너의 섬으로 가는 길이
가슴 속에서 물길처럼 다시 열리고 있었다
나는 진정한 강물의 소리를 모르겠네
나는 너를 보내놓고
다시 너를 기다린다
네가 나를 불렀을 때 돌아보지 않다가
네가 보이지 않는 강 굽잇길을 돌아선 다음
몇 걸음 되돌아가며 강울음소리로 너를 가만히 불러보았다
너도 나처럼 강 굽잇길 돌아 나를 그렇게 불러 보았을까
우리가 함께 걷던 길 따라 강물은 오늘도 바다로 흘러가는데
흐르는 강물은 울고 있는지 노래를 부르는지
그것이 슬픔인지 아름다음인지 추억인지
나는 이따금 흘러가는 강물을 보듯 너를 생각하며
아직도 나는 진정한 강물의 깊은 소리를 모르겠네
나는 흐르는 강물처럼 너를 바다로 보내놓고
바다로 가는 길목 강가 갈대로 바람에 서걱서걱 울며
이미 바다가 된지도 모를 아직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린다
폭포 앞에서
누구나 호기부리다가도
폭포 앞에 와서는 멈칫거린다
뒤에서 채근하며 밀어내기
강물은 뒤돌아 걸어갈 수 없다
젊은 나이에 명퇴한 사람들이
우우우! 누 떼가 강물을 건너듯
폭포보다 더 크게 속으로 울며,
흰 고무신 한 켤레 유서를 벗어놓고
깊이를 모르는 절벽을 뛰어내린다
아침 방송에서 누가 어제 밤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한다
일생을 안고 곤두박질치는 자
뼈가 온통 으스러지는 자
물안개가 아픔을 가려준다
해양 영웅 김이사부金異斯夫
날 좋은 날 산에 올라보면 삼척에서 울릉도가 보였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 동안 이승휴李承休를 비롯한 문인들의 시에도 남아 있다 바람 거세게 불어 파도와 갈매기 높이 일어서는 날 삼척 오화리산성吳火里山城 아래 오분리 자연항이나 고려시대 조선시대 동해와 울릉도를 관할하던 옛 삼척포진 정라진항과 육향산六香山에 서면 먼 신라 시대 실직주悉直州 군주로 바다를 다스리던 이사부 장군의 목소리가 파도 갈피에서 화살로 날아온다 푸른 고래의 등지느러미처럼 눈빛과 칼날이 번쩍인다 동해바다 우산국 왕 중에 가장 강했던 우해왕于海王은 기운이 장사요, 바다를 육지처럼 주름잡고 다녔다 대마도 수장의 딸 풍미녀를 왕후로 삼은 뒤부터 포악해져 풍미녀에게 선물할 물건을 바다 건너와 노략질 하였다 신라 지증왕은 이사부 실직군주에게 정벌을 명령했다 천혜의 자연항인 오분리항 삼척포진 정라항을 출항 군사들의 노저는 소리와 대양을 향해 힘차게 나가는 사자선獅子船의 위용을 보라 우뚝 선 젊은 선각자를 보라 해신海神은 이 사람이구나 해양 영웅 이사부를 알아보고 삼척에서 울릉도 독도로 가는 뱃길을 열고 순풍을 주었다 바다를 잘 아는 거친 우산국于山國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 트로이 목마처럼 꾀를 썼지 그게 목우사자木偶獅子였지 우해왕은 듣거라 만약 항복을 하지 않으면 배에 싣고 온 사나운 사자를 모두 풀어 공격하겠다 우해왕은 항복하고서야 속은 줄 알고 투구를 벗어 던졌지 그게 울릉도 골개(南陽) 포구 투구바위이다 이사부 장군이 바다에 던진 목우사자가 사자바위가 되었다 실직주 하슬라주 군사들 승리의 나팔이 나팔봉이 되었다지 일백이십근 철퇴로 진시황에 대항했던 실직국 하슬라국 시대 사람 우리 민족의 고대 영웅 창해역사滄海力士를 닮은 해양 영웅이여 해상왕 장보고 장군보다 삼백년 전에 동해를 장악했던 선각자여 그래그래 천오백여년 전부터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 땅이었다 고려사 세종실록 지리지 만기요람에도 우산도와 울릉을 말했다 요즘도 남쪽 섬나라 파도가 밀려와 한반도를 툭툭 쳐대고 있다 남의 것 넘겨다보는 버릇 못 버리고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바람 거세게 불어 파도치는 날 우리나라 동해안에 서면 먼 신라 시대 출중한 무예와 지략으로 우산국을 정벌하고 병부령이 되어 국사편찬을 주도 한강유역과 대가야를 정벌한 김이사부 장군의 목소리가 무수한 화살이 되어 날아온다
간고등어
밥상에 간고등어 한 마리 놓고 침을 삼킨다
꿀꺽 침만 삼켰는데 입안이 바다처럼 짭짤하다
등 푸른 바다가 꼬리치며 마구 밀려온다
고등어 떼를 따라 분수처럼 물을 뿜으며
고래들이 우리 집 마당까지 왔다
싱거운 놈 같으니라고
천정의 알전구가 눈알을 붉힌다
나도 밥상 위 간고등어처럼
알맞게 간이 되고 싶다
간잽이 손에 소금이 적당하게 배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반찬이고 싶다
간고등어 한 도막이면 고봉밥 한 그릇
넉넉히 먹을 수 있었던 때를 생각한다
지금도 배고파 우는 아프리카 아이들
밥 한 그릇의 반찬이 되고 싶은 고등어
안동 간고등어처럼 세상에 택배로 배달되어
썩지 않는 소금의 말 한마디 전하고 싶다
제주도로 귀양가 소금이 된 최익현이 돌아온다
등 푸른 고등어 떼가 펄쩍펄쩍 함께 돌아온다.
*읽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늘 즐겁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
첫댓글 다비식을 비롯하여 몇 편 읽다보니 대관령 감자소주-서주가 생각납니다
백운 선생님 강원도 술 한 잔 하려 오세요. 환영^*^
실족한 우리 젊은 날.
겨울 폭포.
시어가 살아 펄떡입니다.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최미혜 시인님, 댓글 감사!^*^
새해 좋은 작품 기대합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