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에 강한 동양, 활용에 강한 서양
中서 폭죽놀이용으로 만든 화약, 서양은 바로 무기에 적용
종이·인쇄술도 발명 후 민간 보급 속도가 동서양 운명 갈라
팔만대장경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어릴 때 한번쯤 해봤을 유치한 질문이지만 이것을 역사에도 던져볼 수 있다. 과거에 동양과 서양이 싸웠다면 누가 이겼을까? 지금이야 아무래도 서양 문명이 강하겠지만 이렇게 된 지는 사실 몇백 년밖에 안 된다. 한 500년 전까지는 서양은 동양에 속된 말로 게임이 안 됐다.
동양은 서양에 비해 인구도 많았고 경제력도 앞섰고 군사력도 더 강했다. 유럽에서 르네상스, 지리상의 발견, 종교개혁 같은 대사건들이 한꺼번에 터지고, 특히 아메리카를 발견하면서 동서양의 관계는 역전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동양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인구·경제·군사력 같은 지표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앞섰다.
이른바 고대와 중세의 4대 발명품이라고 말하는 종이·화약·나침반·인쇄술이 다 동양에서 발명됐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정작 그것들을 발명한 동양보다 수입한 서양이 더 잘 활용했다는 점이다.
나침반은 비교적 원리가 간단한 만큼 서양에서 별도로 발명해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동양에서는 고대부터 나침반을 만들어 썼지만 사실 폭넓게 활용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나침반이 정말 필요한 때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을 때인데, 동양에서는 먼바다를 항해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화약은 10세기에 중국에서 발명됐으나 처음에는 무기가 아니라 폭죽놀이에 주로 사용됐다. 서양은 화약을 뒤늦게 도입했는데도 일찌감치 무기로서의 쓰임새에 눈을 떴다. 서양에서는 화약 제조법을 깨우치자 즉각 총포와 대포를 발명했고 그것을 함선에 장착해 강력한 무기로 활용했다.
발명은 동양, 사용은 서양이라는 공식이 더 명확히 드러나는 사례는 종이와 인쇄술이다. 이 두 가지는 별개로 발명됐지만 문헌의 인쇄와 출판에 함께 관련된다. 교회가 사회의 모든 영역을 관장했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구석구석까지 감독했던 중세 유럽의 천 년 역사를 흔히 기독교의 시대라고 부른다. 당연히 중세 유럽에 살았던 모든 사람을 기독교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의 기독교도와 크게 달랐다. 무엇보다 그들은 성서를 읽지 못했고 갖지 못했다. 실은 가지고 있어도 읽을 수 없`었는데 90% 이상이 문맹이었고 성서는 사제나 일부 귀족들만 아는 라틴어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성서는 귀한 책이었다. 성서만이 아니라 일반 서적도 귀했다. 종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세 내내 성서의 낭독과 해석까지 교회가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종이가 도입되고 인쇄술이 발명되자 사정은 확 달라졌다. 15세기에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하고 맨 먼저 인쇄한 책은 당연히 강력한 베스트셀러 후보인 성서였다. 그로부터 50년이 못 돼 유럽 전역에 200여 개의 인쇄소 겸 출판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앞다퉈 성서를 찍었다.
바로 이것이 종교개혁의 원동력이었다. 성서를 읽어보니 어디에도 성직자가 세속의 재산이나 권력을 가져도 된다는 말은 없었다. 그동안 성서를 독점하고 온갖 부패를 저지른 교회에 속아왔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들불처럼 들고 일어났다. 전 유럽이 종교개혁의 회오리에 말렸고 세계사적 변혁으로 이어졌다.
이에 비해 동양에서는 훨씬 일찍 종이를 사용했고 인쇄술도 발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양에서는 문헌을 인쇄해 일반 백성들에게 지식을 보급한다는 관념이 매우 약했다. 그 발달한 인쇄술로 제작한 문헌은 지식을 보급하는 용도가 아니라 주로 지배층이 지식을 보관하고 소장하는 용도였을 뿐이다. 종이와 인쇄술만이 아니라 나침반과 화약까지, 4대 발명품이 모두 동양에서는 발명만 했을 뿐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 그에 비해 서양에서는 발명의 성과들이 도입되자마자 널리 활용됐다. 바로 이것이 서양에 비해 훨씬 앞섰던 동양 문명이 역전당하게 된 문명사적 계기였다.
첫댓글 잘 알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