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천 개의 오물 풍선을 보냈던 북한이 지난 2일 밤 돌연 풍선 살포의 '잠정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표면상 이유는 "얼마나 기분이 더럽고 많은 공력이 소비되는지 (남측에) 충분한 체험을 시켰다"는 것이었는데, 실제 이유는 다르다는 분석들이 나왔습니다. 북한이 소위 '학을 떼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한국 정부가 재개하려 하자, 한발 물러섰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앞서 9·19 남북군사합의의 효력을 전면 중지했기 때문에 대북 확성기 방송은 언제든 재개가 가능한 상태가 됐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당장은 아니더라도 주효한 심리전의 한 카드로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실제 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을까요?
https://youtube.com/shorts/z9xQuI4dqrc?feature=shared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해 '일관된' 북한 반응?
저희에게 자문해 준 전문가들마다 위협의 수위에 대한 의견 차가 있긴 하지만, 북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데는 사실상 이견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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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15년 8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북한군이 설치한 목함지뢰로 우리 군 하사 2명이 중상을 입었고, 이에 우리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11년 만에 재개했습니다. 이때도 북한은 발끈하며 포 사격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그 이후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한국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당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관심사는 오로지 확성기 중단이었다", "확성기 문제에 집중하더라"라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박원곤ㅣ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목함지뢰 이후에 우리가 대북 확성기를 재개하니까, 북한이 거기에 조준 사격을 했고, 그래서 (우리가) 대응 사격을 했더니 북한이 먼저 대화를 제시했죠. 그렇게 해서 나온 합의에 자신들의 목함지뢰를 사과하는 유감 표명을 하는, 거의 첫 사례가 나타납니다. 그만큼 그들의 입장에서는 대북 확성기가 그렇게 불편하다라는, 부담이 된다라는 게 확인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죠.
게다가 김영철 북한 정찰총국장은 비슷한 시기에 외신 기자회견을 자처하고, 한국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대놓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김영철ㅣ당시 북한 정찰총국장 (2015년)
확성기 방송이나 삐라 살포는 우리 측 지역에 대한 노골적인 심리전입니다. 놈들의 무모한 도발은 기필코 값비싼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2015년뿐 아니라 2010년 천안함 피격과 2016년 4차 핵실험 등 북한의 중대 도발이 있었을 때도 정부는 대북 확성기를 재개했는데, 그때도 북한은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북한이 예민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렇게 북한이 그동안 민감하게 반응해 온 이유는 대북 확성기 방송 안에 담긴 내용들 때문입니다. 통상 K-팝을 비롯한 한국의 가요나 김정은 정권의 문제점들에 대한 적나라한 사실관계 등이 주로 담기는데, 이 내용들 자체가 북한으로선 반드시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불온함'을 넘어서는 '체제 위협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북한군으로선 자신들이 보위할 책임이 있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비판적 방송을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면 직무 유기를 하는 셈이나 다름없습니다. 즉, 소리가 잘 들리면 잘 들리는 대로 전방의 군인들과 주민들에게 반체제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대응을 해야 하는 것이고, 반대로 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해도 마냥 손 놓고 지켜볼 수가 없는 겁니다.
임을출ㅣ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김정은의 우상화 수준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단 말이에요. (중략) 근데 남한에서 흘러나오는 김정은 관련된 소식들이 '아, 내가 알던 거 하고는 다르다' (중략) 이런 걸 깨달으면서 사상적으로 오염이 될 수 있는 가능성, 이런 것들이 북한 당국이 굉장히 경계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죠.
대북 확성기는 최전방 지역 24곳에 고정식으로 설치돼 있었고 이동식 장비도 16대가 있었지만,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 따라 고정식은 철거돼 창고에 보관 중이고 이동식 장비인 차량도 인근 부대에 주차돼 있습니다. 그리고 확성기 가청 범위에 대한 의견은 전문가들마다 조금씩 다른데, 야간의 경우 최대 20km 이상 북측에 가닿을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북녘에 송출된 내용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인 2016년과 2015년에 실제 북한 전방 군인들과 주민들을 향해 송출이 됐던 방송의 일부입니다.
대북확성기 송출 방송 (2016년 1월 21일)
북한 동포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기 싫은 비밀이란 게 있죠. 하지만 독재국가에서는 그런 인간의 본능까지도 통제하는데요.
대북확성기 송출 방송 (2015년 8월 21일)
3대에 걸쳐 북한 주민 모두를 정신적인 노예로 만들어놓고, 단지 수령의 아들이라서 나도 수령이 되어야 한다는 전대미문의 세습 독재체제에 기생하는 자, 인민의 원수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김정은 정권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늘날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있는 북한의 인권 유린과 핵미사일 개발, 테러, 납치, 마약, 위조 달러, 해외 근로자의 노예 노동 등 북조선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는 김정은 세습 정권의 독재성과 연관되어 있다.
대북확성기 송출 방송 (2016년 1월 11일)
새해를 맞아 금연 결심하신 분들 계실 텐데요. 최근에 금연 결심을 더 깊게 할 소식이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폐가 약해지거나 감기에 자주 걸린다고 합니다.
김정은 정권에 대한 비판적 사실들은 물론 소녀시대나 김범수 등 한국 유명 가수들의 인기곡들, 북측에 대한 날씨 예보도 담겼습니다.
"북한의 대남 제압 방송까지 더해지면 '소음 생지옥'"
다만, 이런 내용들이 얼마나 정확히 전달이 됐는지는 북한의 날씨와 지역, 거리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달랐던 걸로 보입니다. 탈북민들 사이에서도 여러 상반된 증언이 나오는 이유로 추정됩니다.
임을출ㅣ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탈북자들에게 물어봤더니 북한은 음악이라는 게 너무 획일적이고 선전선동적인, 그런 음악이 많은데, 자기가 최전방에 오니까 이게 전혀 다른 세상에서 듣는 음악처럼 들렸다고 합니다. 안 듣는 척하면서도 음악에 심취된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게 많은 청년들, 북한 청년 군인들의 평가예요.
김영호(가명)ㅣ북한 인민보안성 7총국 출신 탈북민
제가 7총국에서 운전수로 근무할 때인데요. 출장 차로 철원까지 저희가 갔던 적이 있는데, 그날은 바람이 북쪽으로 부는 날이었어요. 그때 웅웅하면서 방송 같기도 하고, 전신주가 우는 소리 같기도 한 소리가 났는데, (철원 주민들이) 대북 방송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북한에서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가 하는 것은 그 주변 사람들이 계속 시끄럽기 때문에... 좋은 소리도 세 번 들으면 안 좋다고 하는데, 안 좋은 소리를 계속 들어 대니까 혈압이 솟는 거예요. 남한에서 그걸 틀면, 또 북한에서도 같이 튼다고 그러면은 아예 그 지역 주민들이 완전 생지옥이래요. 무슨 소리 하는지도 하나도 안 들리고...
물론, 북한이 얼마만큼 큰 위협으로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의견이 분분합니다.
김동엽ㅣ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확성기 문제는 최고 존엄에 관련된 문제예요. 누가 들어서가 아니라 최고 존엄에 대한 것들은요, 넘길 수가 없는 거예요. 모든 면에서 북한이 뭔가 목소리를 내면 '저게 되게 효과가 있네', '되게 뭔가 있겠네' 생각을 하시는데 아니에요. 본인들 전술이에요. 그거를 (한국에) 왕왕거리고 그렇게 해야 우리를 나쁜 놈 만드는 거고, 나쁜 법 만들고 그거에 대해서 반대급부로 본인들이 뭔가 행동을 하고 이렇게 하는 거에 대해서 본인들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다만, 확실한 것은 확성기 방송이 대북 심리전 수단으로 현재 주효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재개 여부에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박원곤ㅣ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이 도발을 한다든지 할 경우에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있는, 한국이 북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핵심 수단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사용하고 북한의 더 심각한 도발을 막거나 거기에 대응 형태로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을 합니다.
김동엽ㅣ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실질적으로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접경 지역에 있는 주민들이죠. 북이 조준 사격을 하겠지만, 그것이 오발이 나서 마을로 떨어질 수도 있는 거고 자기 집에 떨어질 수도 있는 겁니다.
우리 군도 대북 확성기를 지금 당장 재개하려는 기류는 아닙니다. 적어도 북한의 추가 도발 여부를 지켜보면서, 재개 시점을 저울질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확성기 방송 카드'는 우리가 쥔 유효한 카드 중 하나여서 최대한 사용 직전까지 레버리지를 활용할 필요가 있기도 하지만, 현재 남북 간 소통 통로 부재로 우발적 충돌이 확대될 수 있는 만큼 보다 신중히 사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더 이상 일상 속에서 불안이 가중되지 않도록 확고한 대비 태세를 갖추는 데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https://youtu.be/4jJ2YsIiTq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