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26. 큐티
누가복음 2:15 ~ 24
아기 예수의 정결예식
관찰 :
1)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목자들
- 15절.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a. 천사들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천사가 진짜로 하늘로 올라가 하늘의 어떤 공간에 들어갔다고 보기 보다는 시공을 초월하는 지각초월의 상태로 변화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의 독특한 표현입니다.
b. 영의 눈이 열린 목자들이 서로 베들레헴으로 가서 천사가 전해준 사실을 보고자 하게 되는 큰 동기가 부여된 것입니다.
- 16절.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a. 베들레헴 빈들에서 천사를 만나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하늘의 공연을 목격한 이들은 한시라도 기다리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달려가 마리아와 요셉을 만나게 되고,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 경배하고자 했습니다.
b. “찾아서”(ἀνευρόν, 아뉴론)는 원어상으로 ‘끊임없이(부지런히) 탐색하여 찾다’는 의미입니다. 목자들이 쉽게 빨리 찾았다기보다는 아기 예수를 샅샅이 찾으러 다녔고, 결국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된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유에 누인 왕의 왕 아기 예수를 그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 17절.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a. 이 목자들은 당시에 가장 천한 자들이었고, 가장 타락한 종교인들의 하수인에 해당하는 이들이었지만 바로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첫 번째로 증거하는 증인이 된 자들이었습니다.
b. 이들은 수많은 천군과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는 찬양을 한 것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즉, “다윗의 동네(베들레헴)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다”는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위대한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 18절.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a. 여기서 듣는 자들 중에는 동방박사들도 포함되고, 동네 사람들 중에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다 들었을 것입니다.
- 19절.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a. 마리아는 목자들의 그 메시지에 다시 한 번 감명을 받았고, 아이를 잉태하면서 시작된 일련의 기적들과 이어서 목자들의 증거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신 것에 대한 더 큰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b. 마리아는 더욱 하나님의 깊은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 20절.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a.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구유에 뉘이신 예수를 본 목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습니다.
b. 그렇다면 이 목자들은 이 사건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이 목자들은 남은 생애 속에서 자신들이 경험한 놀랍기 그지없는 그 사건을 가십거리로 여기고 살았을까요? 아니면 구주의 오심을 기대하며 목자로서의 삶을 살았을까요? 분명히 자신들이 증거한 이야기들이 어떤 결말을 가져오게 될 것인지를 궁금해 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c. 그리고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과 초대교회의 시작에 대해서 직, 간접적으로 동참하는 목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그 때 천사들을 통해 전달받았던 그 메시지의 주인공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바로 그분이라고 말입니다.
2) 난지 팔일 만에 할례 받으시는 예수님
- 21절.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a. “예수”라는 이름은 요셉과 마리아가 지어놓은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잉태하기 전부터 그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그것은 구약의 여호수아나 호세아 등을 통하여 이미 주어졌던 이름이고, 그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속에 주어진 이름입니다.
b. 세례 요한이 할례받을 때는 이웃들과 친족들의 환영과 축복을 받았지만(눅 1:57 ~ 63), 예수님이 할례 받으실 때에는 그런 환영과 축하가 없었습니다.
3) 정결예법을 행하시는 예수님
- 22절.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a. 유대의 모든 산모는 자녀를 낳은 후 율법에서 정한 기한이 지나면 제사장에게로 가서 규례대로 예물을 드려 속죄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녀를 해산한 산모는 부정하게 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이다.
b. 율법에서는 부정하게 된 산모와 아이들을 위해서 정결케 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이 명시한대로 정결케 되는 기간이(남자 아이 40일, 여자 아이 80일, 레 12:1 ~ 5) 다 된 산모는 최종 정결 예식으로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번제는 출산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마음을 표하기 위하여 드렸고 속죄제는 출산에 따른 부정을 제거하는 뜻에서 드렸습니다. 이때 각 예물은 번제로 양, 속죄제는 비둘기였으나 가난할 경우 번제로 양 대신 비둘기 둘로 대치할 수 있었습니다(레 12:1-8).
c. 본 절에서 누가는 어머니 마리아의 정결 예식과 아기를 바치는 행위를 함께 묘사하고 있습니다. 피는 곧 생명을 상징하는 것인데, 아이를 낳으며 피를 흘린 것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의 죽음을 깨닫게 되고, 그 피를 흘림으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만, 그 생명 역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서 나아가는 것이 이 정결예법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도록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되는 것입니다.
d. 여기서 아기 예수를 위해 제사장을 찾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만, 사실 이 예수는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시며(히 3:1),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분이 아니시며, 우리의 모든 일에 한결 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십니다.
- 23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a. 이것은 출 13:2 ~ 16에 제정된 율법입니다. 이 율법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처음 난 자들을 죽이실 때에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들은 어린 양의 보혈을 문설주에 바름으로 말미암아 그 죽음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들을 자기에게 바치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 난 자는 죽어야 마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출13:13 ~ 16).
b. 예수님은 율법을 만들어 주신 분이시지만 자신이 이 규례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사람의 법에 매일 필요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마는 자기 백성을 대신 속죄하시기 위하여 사람들이 지킬 모든 법 아래 들어가 율법을 지키고자 하신 것 때문입니다.
- 24절.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a. 레12:8을 보면, 이러한 제물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이 없는 자가 드리는 제물이었습니다.
b. 예수님은 어렸을 때부터 가난과 곤고 가운데 계셨습니다. 당시 비둘기의 가격은 어린 양의 대략 1/10 가격이었습니다.
가르침 :
1) 목자들이 예수님을 경배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었습니다. 아구스도 때에 호적을 정리하게 했던 사건과 마찬가지의 비중으로 목자들이 천사를 만나 천사의 예언을 정언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목자들은 천사를 경험하고, 하늘의 메시지를 받은 너무나 확신한 상황 속에서 아기 예수를 찾고 찾아서 경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당대의 많은 사람들 중에 목자들이 천사들로부터 부름을 받고 마리아에게 가서 경배하는 특권을 누리게 된 특별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낮은 자들이었기 때문일까요? 그 목자들이 대제사장 가문 소속이기에 아이러니하게 그 집안의 가장 낮은 이들이 마땅이 그들의 주인이 영접해야 할 메시야를 영접하게 하신 것일까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역사속에서 분명히 가장 소외되고 낮은 위치에 있던 이들 목자들을 사용하셨고, 이들은 그 부르심에 자발적으로 순종했습니다.
3) 지체하지 않고 빨리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해 달려가는 목자들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들판에 잠자는 양들을 버려둔 채, 천사의 메시지를 받은 이들이 아기 예수께 달려갔습니다.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Christ + mas 로써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를 이라는 의미의 용어가 중세 영국에 와서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렇기에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 경배하지 않고서는 의미가 상실되는 날입니다. 천사가 가르쳐준 대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다윗의 동네에 아기로 오신 만군의 주,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함으로 장차 다시 오실 그 분을 기다리는 것이 핵심입니다. 목자들은 그것을 알고 아기 예수께 달려가고 경배하고자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를 찾아다니고 결국 찾아서 경배한 것입니다. 향후 이 목자들은 세례 요한의 활동을 목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복음 사역에 동참한 사람들 중에 이 목자들 혹은 이들이 증거한 메시지를 들은 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4)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시는 분이시고, 율법에 매이실 필요가 없는 분이셨지만, 나신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으시고, 이름을 그 때 지으시며 당대의 흐름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세례도 받으시고, 성전세도 내시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것에 매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안배이자 준비이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참된 겸손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생명을 찾는 헤롯의 손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하셨습니다.
적용 :
1) 아기 이신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이 땅에서 경배를 받으셔야 하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반복되어지는 것이 언제나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만이 경배의 참된 대상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를 열심히 찾아다니며 그 아기께 경배하고자 한 목자들의 마음을 품고 주님을 경배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2) 율법의 아래에 있지 아니하셔도 되시는 분이 율법의 아래에 자발적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아기였을 때 뿐 아니라 예수님은 그 평생에 자발적으로 율법의 요구에 모두 순종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 주님은 도리어 겸손히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성도가 따라야 하는 예수님의 겸손입니다. 섣부른 어떤 지식 때문에 함부로 자신의 생각이 법도와 전통을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