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시에 온생 맡긴 지산스님
조급함 벗으니 청정한 보리심이‥
△ 경기도 남양주 봉인사 선원장 지산스님. 법랍 17년 동안 간화선, 위파사나, 티베트 불교 수행을 두루 거친 그는 이제 자신의 깨달음을 얻기보다는 남의 수행을 돕기 위한 보살행으로 수행을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법보시에 온생 내맡긴 지산스님
절로 가는 길은 무상하다. 산인 듯 싶다가 물이 보이고 가파른 길을 넘으면 평지가 나온다. 산기슭에 작게 붙은 절 표지판을 믿고 무심하게 따라가다 보면 너른 마당이 나온다. 산문도 없고, 경계도 없지만 입구에 쓰인 ‘밝게, 바르게, 착하게’라는 경구가 이곳이 사찰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경기도 남양주 진건읍 송능리에 자리한 봉인사. 절터를 에워싼 나무둥치에는 각종 법구가 붙어있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남을 위하라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다.
봉인사는 법공양으로 유명하다. 지난 2000년께부터 위파사나, 아바타 등 각종 수련법에 대한 대중 강좌가 자주 열린다. 그 가운데서도 위파사나 수행법은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행법으로 알려져있다. 미얀마, 스리랑카, 태국 등의 상좌부 불교의 수행법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세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세계적 위파사나 수행자 찬미예 사야도와 우 판디타 사야도 등 유명 고승들도 이곳을 찾아 한국인들에게 행법을 지도한 바 있다.
매주 일요일 봉인사는 불교의 이해를 위한 강좌를 연다. 안내자는 지산스님(47·봉인사 선원장). 법랍 17년 동안 간화선, 위파사나, 티벳 불교를 거친 수행자다.
서울대 불교회장 출신인 그는 출가 전 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리시의 <나는 누구인가>를 번역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라즈니시의 <세속과 초월>, <과학시대의 불교>와 <일본의 10대 선사> 등의 책도 번역했다. 처음 불교를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도서관에서 금강경을 보면서 까닭모를 환희심이 솟았다. “이건 진리다” 싶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곧바로 불교학생회에 들어갔다. 학생들의 반독재 시위가 한창이었지만, 그는 좀더 먼 미래를 내다보기로 했다. 사회운동으로 새 사회를 건설하더라도 인간의 생노병사와 존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완전한 변화를 이룰 수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1988년, 서른 한 살 때 송광사에서 출가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가 생각했습니다. 자유에 대한 갈망, 사랑을 베풀고 받고 싶은 욕망, 아름다움에의 추구, 진리(다르마)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출가를 하게 됐지요.”
자유·진리 등 한꺼번에 깨치려 서울대 졸업 후 불가입문
자유, 사랑, 아름다움, 진리. 네 가지를 모두 얻고 말리라. 청년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무엇보다 이번 생에 삶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출가한 뒤 10년 동안 선방에 틀어박혔다. 100일 용맹정진을 여러번 거쳤고 6개월 동안 토굴에서 참선도 했다. 하루 한끼 먹으며 문을 걸어잠그고 앉아 화두만 드는 무문관 수행도 5개월 동안 했다. 가히 목숨을 건 수행이었다. 어느날, 참선을 하다 엄청난 희열과 함께 화두의 의심이 확 풀렸다. 환희는 잠시였다. 이상하게도 맥이 탁 풀리며 허탈했다. 이번엔 다른 화두를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두가 풀리긴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끝인가. 깨달음인가. 아닌 듯했다. 가까스로 닿은 목적지였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삶이 폭발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깨달았다는 모습이 비단 그런 것은 아니란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선지식(큰 스승)의 모습이 깨달음의 궁극은 아닌 듯했습니다.”
화두 잡고 10여년 처절한 정진
깨달음의 궁극 이게 아닌데‥
갈증은 더해만 갔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귀의할 수 있는 진정한 스승을 만나고 싶었다. 1997년, 눈길을 돌려 인도로 떠났다.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서 차로 3시간 걸리는 타시종. 그곳에 티벳 절이 있었다. 이곳에서 6개월간 티벳 불교 수행을 배웠다. 전신투지(오체투지) 10만배, 업장참회 진언 10만번, 만달라 오퍼링 10만번, 구루요가 진언 10만번 등 수행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마음을 돌아보니 간화선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 있었다. 여비가 떨어진 김에 귀국했다. 98년이었다. 그 때 불교학생회 후배가 그를 찾아왔다. 미얀마에서 위파사나를 수행하고 돌아온 길이라고 했다. 방대한 티벳 불교 수행은 1~2년 안에 끝을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처 미얀마로 떠났다. 마음과 몸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단계마다 스승에게 점검받는 위파사나는 무척 세밀하고 논리적이었다.
“2년 동안 집중력을 키우고 호흡을 바라보니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됐습니다. 마음이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는 것을 바라보고, 순간순간 일어나는 현상에 초점을 맞췄더니 의식의 대상과 현상이 놀랍게 분명해졌습니다.”
마음 속 분노, 질투, 기쁨, 슬픔이 생멸하는 것이 보였다. 청정한 의식이 이어졌다. 마음의 꺼풀을 벗겨내니 자비행만이 남았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은 채 혼자 깨닫고자 하는 욕망은 도리어 보리심을 막을 뿐이었다. 견성은 첫번째가 아니었다. 자신이 무엇 되기보다는 남을 위한 통로가 되는 것이 진짜 부처의 길이었다. 이타심을 갖게 됐고 계율이 저절로 지켜졌다. 갈등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인간 관계도 원만해졌다. 남 탓이 줄고 시빗거리에서 벗어났다.
이 생 넘어 ‘영원’ 생각하니
부처는 처음부터 내안에 있더라
“이 생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앞에 영원이라는 시간이 주어져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급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깨달음의 마음을 놓자고 수행자의 길을 정리한 것이지요.”
20대에 궁구했던 자유, 사랑, 아름다움, 진리의 길을 어슴푸레하나마 찾은 듯했다. 이 모두를 구현한 이는 먼 데 있지 않았다. 바로 석가모니 부처였다. 부처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중생들 속에, 자신의 마음 속에 처음부터 있었다. 자신이 막연하게 아는 것을 놓아버리고 몸과 마음을 건실히 들여다보았을 때 비로소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법보시를 계속하기 위해 그는 내후년께 10년에 걸친 티벳 불교 수행길에 오르려 한다. 선불교, 위파사나, 티벳 불교에 이르는 불교의 세가지 흐름을 자세하게 조망하기 위해서다.
“문제가 있어 괴로운 사람 가운데 수행하러 절에 오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먼저 해결할 수 있도록 절에서 포용해야 합니다. 회향(자신의 공덕을 돌려 중생에게 도움이 되게 하는 일)하게 되면 수행을 지도하되, 근기에 따라 각자 다른 수행법으로 지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하고 싶습니다.”
석가모니는 오롯이 자신을 챙기고, 비우고, 놓으며 남을 위한 자비행으로 평생을 살며 나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지산 스님의 만행도 그렇게 조금씩 부처를 따르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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