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보수당 정치인으로 마거릿 대처 총리의 자유시장 전환론을 강력 지지해 든든한 우군이었던 노먼 테빗이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AP 통신이 8일 가족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아들 윌리엄은 고인이 전날 늦게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고 밝히면서도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따로 밝히지 않았다. 테빗은 영국 노동조합의 파워를 약하게 하고 사회적 보수주의와 자유시장 견해로 유명했다. 그는 실직자라면 자전거를 타고 일자리를 찾으러 돌아다녀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크리켓 경기에 나선 인도나 파키스탄, 서인도 제도 등보다 영국 대표팀을 응원해야 이민자들은 비로소 진짜 영국인이 될 수 있다는, 이른바 '크리켓 테스트'를 1990년 주장한 것으로 이름 높다.
현 보수당 대표 케미 바데노크는 고인이 "영국 정치의 아이콘"이라면서 "그는 우리가 지금 대처주의로 알고 있는 철학을 옹호한 이들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그가 우리 나라를 개선하는 데 불굴의 기여를 함으로써 모든 보수주의자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그는 절대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야당에 무차별 공격을 퍼부은 것으로 알려진 정치적 터프가이로서 테빗은 반대자들로부터 '(런던의 한 동네인) '칭퍼드 스킨헤드'란 별명으로 불렸다. 1980년대 노동당을 이끈 마이클 풋은 그를 "반은 집에서 훈육된 족제비"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테빗을 비판하는 이들도 1984년 보수당 집회 도중 브라이튼의 그랜드 호텔에서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폭탄 테러에 대한 절제된 반응을 상찬했다. 대처 총리를 겨냥한 테러 때문에 5명이 목숨을 잃었다. 테빗은 중상을 입고 부인 마가렛은 목 아래가 마비됐다.
1970년 영국 하원 의원으로 선출된 그는 대처 총리 정부의 고용부와 무역부 장관을 역임했다. 1985년 보수당 의장으로 지명돼 대처 총리가 1987년 3연속 선거에 승리하는 데 도움을 줬다. 같은 해 그는 영구 장애를 얻은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며 정부에서 물러났다. 1992년 선출되지 않는 상원을 의미하는 귀족원 의원으로 지명됐다.
그는 영국이 유럽과의 관계를 차츰 밀접하게 하는 것에 회의적이어서 계속 큰 목소리를 냈다. 그는 보수당과 나라를 분열시킨 이슈인 유럽연합(EU)에서 영국이 탈퇴하는 것에 찬동한 것으로 유명했다.
1998년 평화협정이 체결돼 북아일랜드의 30여년 폭력 사태를 끝낸 뒤 많은 무장전사 출신들이 정치에 입문했다. 하지만 테빗은 용서하지 않았다. IRA 사령관 출신으로 북아일랜드 수석 부총리가 됐던 마틴 맥기니스가 2017년 세상을 떠나자 테빗은 "남은 영생 동안 지옥의 가장 뜨겁고 불행한 구석에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부인 마가렛과는 2020년 사별했으며, 두 아들과 한 딸을 유족으로 남겼다.
영국 BBC는 '하우스 오브 카드' 작가인 마이클 돕스 경의 고인에 대한 평가를 전했는데 돕스는 테빗 경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돕스는 BBC 라디오 4의 투데이 프로그램 인터뷰를 통해 고인이 "대단한 유머와 대단한 정치적 통찰, 엄청난 용기를 지닌 인물이었다"고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