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八道)의 명칭(名稱), 그리고 기질(氣質)
예로부터 우리의 입에 잘 오르내리는 ‘남남북녀(南男北女)’,‘서울깍쟁이’,‘보리 문둥이’ 등의 속어(俗語) 등은 지역적인 주민의 공통적 성격을 대변한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 나라에는 조선초기(朝鮮初期)에 이미 ‘팔도(八道)’라는 행정구역이 있어 그 후 약 5백 년간 이 제도가 존속(存續)되어왔다.
즉 경기도(京畿道), 충청도(忠淸道), 전라도(全羅道), 경상도(慶尙道), 강원도(江原道), 황해도(黃海道), 평안도(平安道), 함경도(咸鏡道)의 8도가 그것인데, 이들 각도 사람들은 고래(古來)로부터 그 칭호에 있어서 오늘의 14도 보다 더욱 친밀감이 있고 그 성격에 대한 평가도 많이 행하여졌다.
8도의 명칭이 생겨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경기도(京畿道)는 서울(京)과 궁궐주위 500리 이내(畿)의 지역을 뜻하는 기(畿)를 합쳐 경기라 하였고,
충청도(忠淸道)는 충청도는 그 대표적인 고을인 충주(忠州)와 청주(淸州)가 있어 충청으로,
전라도(全羅道)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가 있어 전라로,
경상도(慶尙道)는 경주(慶州)와 상주(尙州)를 경상으로,
강원도(江原道)는 강릉(江陵)과 원주(原州)에서 강원이 되었고,
황해도(黃海道)는 황주(黃州)와 해주(海州)를 지칭하여 황해로,
평안도(平安道)는 평양(平壤)과 안주(安州)에서 평안(平安)으로,
함경도(咸鏡道)는 함흥(咸興)과 경성(鏡城)에서 이름을 따 함경이라 하였다.
조선 태조는 즉위 초에 정도전에게 명하여 팔도(八道) 사람을 평하라고 한 일이 있다.
이에 정도전은
“경기도는 경중미인(鏡中美人),
충청도는 청풍명월(淸風明月),
전라도는 풍전세류(風前細柳),
경상도는 송죽대절(松竹大節),
강원도는 암하노불(岩下老佛),
황해도는 춘파투석(春波投石),
평안도는 산림맹호(山林猛虎)”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태조의 출신지인 함경도에 대해서는 평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태조는 아무 말도 좋으니 어서 말하라고 거듭 재촉하였다.
이에 정도전은 “함경도는 니전투구(泥田鬪狗)”라고 말했다.
태조는 이 말을 듣고 이내 얼굴이 벌개졌는데, 눈치 빠른 정도전이 이어 말하기를“그러하오나 함경도는 또한 석전경우(石田耕牛) 올시다”하니 그제야 용안(容顔)에 희색이 만연해지면서 후한 상을 내렸다고 한다.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地理學者)인 청담(淸潭) 이중환(李重煥 1690∼?)은 택리지』에서 우리나라 산세와 위치를 논하고 있으며, 팔도의 위치와 그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즉, 경상도는 변한(弁韓) 진한(辰韓)의 땅이고 함경 평안 황해도는 고조선(古朝鮮) 고구려(高句麗), 강원도는 예맥(濊貊)의 땅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팔도라고는 하지만 원래 경기에는 도(道) 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 정칙(正則)이고 경기도에는 이칭(異稱)이 없다.
나머지 7도에 대한 이칭과 기준은 다음과 같다.
호서(湖西)는 충청도로서 충북 제천 의림지호(義林池湖)의 서쪽이라는 뜻이고,
호남(湖南)은 전라도로서 전북 김제 벽골제호(碧骨堤湖)의 남쪽이라는 뜻이며,
영남(嶺南)은 경상도로서 조령(鳥嶺) 죽령(竹嶺)의 남쪽을 말함이요,
강원도를 영동(嶺東) 관동(關東)이라 함은 대관령 동쪽이라는 뜻이고,
해서(海西)는 황해도로서 경기해의 서쪽이라는 뜻이요,
관북(關北)은 함경도로서 철령관(鐵嶺關)의 북쪽을 말함이요,
관서(關西)는 평안도로서 철령관의 서쪽이라는 뜻이다.
조선 정조 때의 문신 석재(碩齋) 윤행임(尹行恁: 1762-1801)은 대사간. 도승지. 이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한 규장각 학사(學士)로 어느 날 정조 임금과 각도인(各道人)의 성격에 관하여 한담소일(閑談消日)할 때 재학(才學)이 뛰어난 그가 8도의 인물을 평하는 적절한 함축미를 내포한 사자단구(四字單句)가 오늘에 전해오는바 소위(所謂) 그 사자평(四字評)은 다음과 같다.
경기도 - 경중미인(鏡中美人)
경기도의 지형을 말하기 보다 그 지방 사람의 성격을 말한 것이다.
중앙집권의 중심지로 교제술이 능란하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는 듯 하면서도 속으로
는 찬물 속의 술과 같아 거울에 비치는 미인처럼 바라볼 수만 있지 접촉할 순 없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또한 거울 앞에 선 미인 격으로 이지적이고, 명예를 존중한다.
충청도 - 청풍명월(淸風明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처럼 부드럽고 고매(高邁)하여 풍류를 즐기는 고상한 면이 있다.
그 지형이 산세가 수려하다거나 거세지 않고 금강처럼 평온하고 구수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타인에게 지나치게 경쟁을 하지도 않고 대자연의 순리대로 떠나가는 것과 같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전라도 - 풍전세류(風前細柳)
바람결에 날리는 버드나무처럼 멋을 알고 풍류를 즐기며 시대에 민감하게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옛말에 전국이 흉년이 들어도 전라도만 풍년이 되면 식량걱정이 없다고 할 정도로 곡창지대로 유명했다.
이곳은 땅이 좁은 데 사람이 많아 동요가 잦고 그런 반면 의지가 그다지 강하지 못하여 확고한 주장이 부족한 성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경상도 - 태산준령(泰山峻嶺), 태산교악(泰山喬嶽) 또는 설중고송(雪中孤松)
큰 산과 험한 고개처럼 선이 굵고 웅장하고 험악한 기개가 있다.
경상도 사람 셋이 모여 이야기를 하면 동네가 다 시끄럽단 옛말이 있다.
경상도인은 성질이 우락부락하고 고집이 세어 사람 맘이 조용하고 경솔함이 적다 하여 설중고송(雪中孤松)이라 하였다.
강원도 - 암하고불(巖下古佛)
큰 바위아래 있는 부처님처럼 어질고 인자하여 누가 알아 주든지 말든지 자기 할 일을 해 나간다.
땅이 넓지만 사람이 적어 접촉의 기회가 드물어 사람들의 마음이 순진하고 정직하다는 뜻으로 암하고불(巖下古佛)이라 한다. 하지만 그 속엔 부처를 앉혀 높은 형상으로 하잘것없는 우두머리란 속뜻이 있기도 하다.
황해도 - 석전경우(石田耕牛)
돌밭을 일구는 소와 같이 묵묵하고 억세어 고난을 이겨내는 근면성이 있다.
돌 많은 밭을 소가 갈고 있는 형태로 토지가 척박한 까닭에 사람들이 부지런하면서도 특별한 인물이 없다는 뜻이다.
평안도 – 맹호출림(猛虎出林)
숲 속에서 나온 범처럼 중국인과의 접촉이 잦고 호랑이가 자주 출몰한다 하여 맹호출림(猛虎出林)이라 하였던 평안도는 매섭고 사나워 용맹하고 과단성이 있는 관서(關西)인의 기질을 표현했다.
전투의욕이 늘 강했고 생과 사가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 되기도 하여 섣부른 결정을 내리기도 하는 단점이 있다.
함경도 - 니전투구(泥田鬪狗)
전국에서 동토가 척박하기로는 함경도가 제일이다.
세종 때는 경상도인 30만 가구를 이민시켜 살게도 했으니 워낙 사람이 살기 싫어했던 곳인가 보다.
토지가 넉넉지 않거니와 먹고 살길이 막막하여 이들은 조그만 이익에도 달려들어 마치 진흙탕 속에서 싸우는 개처럼 맹렬(猛烈)하고 악착스럽고 강인한 의지와 인내력이 있다.
임진왜란 때. 이여송(李如松)의 지리참모로 조선에 왔던 두사충(杜師忠)의 사위인 나학천 (羅鶴天)은 조선팔도의 형상을 인체와 동물에 각각 비유하여 팔도의 인물평을 하였다.
나학천은 중국 남경의 건주(建州) 출신으로 장인과 함께 조선에 귀화한 인물이다.
1) 경기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가슴(胸, 흉)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범이다.
경기도 사람은 앞에는 억세고 뒤로는 부드럽다. <선용후유(先勇後柔)>
2) 충청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배(腹, 복)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까치다.
충청도 사람은 행동이 경솔하지만 용맹스럽다. <부경용호(浮輕勇豪)>
3) 전라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발(足, 족)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원숭이다.
전라도 사람은 속임이 많고 교활하고 가벼우나 예술성이 있다. <사교경예(詐巧輕藝)>
4) 경상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다리(脚, 각)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돼지우리다.
경상도 사람은 어리석고 순하고 질박하지만 참된 기질이 있다. <우순질신(愚順質信)>
5) 강원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갈빗대(脇, 협)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꿩이다.
강원도 사람은 자기 거처에 가만히 있고 아는 것이 부족하다. <칩복지단(蟄伏知短)>
6) 황해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손(手, 수)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소다.
황해도 사람은 느리고 어리석어 옹골차지 않다. <우준무실(愚蠢無實)>
7) 평안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얼굴(面, 면)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매다.
평안도 사람은 의지가 강하고 용감하며 날쌔다. <견강용예(堅剛勇銳)>
8) 함경도는 인체에 비유하면 머리(頭, 두)이고, 동물에 비유하면 장어다
함경도 사람은 우직하지만 지혜를 가졌다. <우직지협(愚直知夾)>
이중환(李重煥)은 그의 역저(力著) 팔역지(八域誌: 일명 택리지(擇里志))에서 8도의 인심을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무엇으로서 인심을 말할 것인가?
공자께서 "마을의 풍속이 착하면 아름다운 것이 된다.
아름다운 곳을 가려서 살지 아니하면 어찌 지혜롭다 하리오." 하시었고, 옛날.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집을 옮긴 것(孟母三遷)은 아들을 훌륭하게 가르치고자 함이었다.
사람이 살 고장을 찾을 때에 그 착한 풍속을 가리지 않으면 비단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자손에게도 해가 있어서 반드시 좋지 못한 풍속이 스며들 우려가 있다.
그러니 살 곳을 가리는데, 그 땅의 세상 풍속을 보지 아니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팔도 가운데
평안도 인심은 순후(醇厚)하여서 제일이요,
다음은 질실(質實)한 경상도 풍속이다.
함경도는 오랑캐와 접경하여 백성이 모두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산수가 험악한 까닭으로 백성들이 거의가 사납고 모질다.
강원도는 산골짜기 백성으로 몹시 불손하고,
전라도는 오로지 교활함을 숭상하여 그른 일에 움직이기 쉽다.
경기도는 도성 밖의 야읍(野邑)은 백성들의 재물이 시들어 쇠하였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재리(財利)에만 따른다.
이것이 팔도 인심의 대략이다.
그러나 이는 서민을 두고 논한 것이요, 사대부의 풍속에 이르러서는 또한 그렇지 않다.
이러한 평설은 그 당시엔 어떠했는지는 몰라도 요즘처럼 인적, 물적 교류가 빈번하고 복잡한 현대엔 들어맞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개개인의 성격 별로 이러한 점을 한두 가지씩은 지니고 있다고 보는데, 오늘날처럼 대인관계와 화합이 중요시되고 국제적 감각이 요구되는 때엔 스스로를 반성해 보는 계기로 삼아봄직은 하겠다
좋은 참고 문헌이 되었으면 합니다. 비젼21
첫댓글 재미밌는 좋은 참고 문헌이군요, 팔도 인심 잘 헤아려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