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과 월요일은 잠만 잤습니다.
원래 예정은 당일 내려가지 않으면 월요일 부산에 있는 친구집을 방문하려고 했었는데, 그냥 여기서 잠을 자기니까 너무 편해서 연이틀동안 잠만 잤습니다.
설에 오니까... 이모가 잘 해 주셔서 집에 있는 것보다 좋았습니다. 하루종일 자도 잔소리 안하시고 해서 ㅋㅋㅋ^^ 그래서 쭉 ~~~있을렵니당. 제친구가 그래서 완젼히 삐져가지고 ㅋㅋㅋ^_^
월요일은 창덕궁 가려고 했는데, 휴관일이라서 그냥 잠만잤구요.^^
화요일은 드뎌 창덕궁에 갔습니다.
돈화문을 들어서는 순간 ~~~
인정전이 근정전보다 더 멋있는 것 같앴어요.
책에서만 보던 부용정은 너무 멋있었어요.
역시 우리 전통양식 정원은 아름다웠습니다. 자연과 조화된 자연을 거의 해치지 않고 약간의 벽돌만 쌓아둔 .....
앤공주가 살았다는 퐁테플루?? 궁전이나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은 기하학적 미학의 극치라면 우리전통양식 정원은 그대로의 자연이었습니다. 정원을 거대한 캔버스라고 생각하고 잔디고 나무고 과감하게 난도질 한 프랑스정원 나무를 원추형으로 절지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무가 아플것 같애요. 프랑스정원이 한치의 오차도 없는 기하학적 무늬 좌우전후대칭의 잘 다듬어 놓은 아가씨라면, 우리나라 정원은 자연속에서도 질서를 찾으려는 시골 할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봄에도 꽃이 피고, 여름에도 꽃이 피고, 가을에도 꽃이 필거여요. ^^
어제 아침은 사실 눈이 내렸답니다. ^ ^ 눈 내린 정원은 더욱 더 아름다웠습니다.
다음은 창경궁을 가려고 거의 2km정도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리석은 릴리는 창덕궁이 휴관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고, 창경궁은 당연히 휴관이 아니겠지 했는데, 휴관이었습니다. 흑흑흑^^
다시 되돌아기가는 너무 힘들고 어쩔까나 어쩔까나 하다가 독립문에 가기로 결정하고 차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광화문을 거쳐서 어리도 가는데, 알고 보니, 시립박물관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렸어요.
시립박물관 참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 건물이^ ^ 기증전시관에 17세기 16세기 세계지도들이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서구에서 만든) 조선인들의 세계관을 짐작하게 할 수 있는 천하도도 재미있구요. 실학자들의 세계관을 넓혀주었다는 곤여만국전도도 있었습니다. 참 흥미로운 사실은 서구에서는 이미 우리나라의 지리의 객관적인 자료를 17세에 이미 만들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진 지도보다 오히려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에 영천이나 창천과 같은 요즘도 쓰고 있는 지명들이 흥미로웠습니다. (17세기 서양지도에~~~ 창천이라는 지금은 아주 시골~~)음음 동해나 한국해라고 표시되어 있는 부분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 도자기 전시관도 괜찮았는데, 자세한 설명은 귀찮아서 안봤습니다. 사실 참 좋은 내용인데, 다리도 아프고 해서리...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조선백자는 왕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경국대전에 명시되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전기의 이야기 이겟지만요. ^^ 그 뒤에 설명은 귀찮아서리 기냥.. 다음에 다시 박물관을 찾게 되면 자세히 ~~~ (사실 그때~~ 직장에서 전화가 왔는데, 뭐라 뭐라하면서 뭐를 하라고 해서 스트레스받아서 그냥 그 전시관을 ~~~~나와버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립미술관으로 향해습니다. 그런데 시립미술관 찾아가다 덕수궁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덕수궁으로 들어갔습니다.
덕수궁은 원래 성종의 형 그 무슨 대군이더라... 아! 월산대군 사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임란이후 궁궐이 불타서 행궁으로 쓰다가 결국 고종이 아관파천이후 거쳐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덕수궁 석조전은 르네상스양식이라고 들었는데, 사진으로는 억수로 괜찮은데요. 진짜 가보니까.. 솔직히 별로에요. 작년에 유럽에서 눈을 너무 버려나가지고 왠만한 것에는 전혀 감흥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앞에 분수는 스페인계단앞에 왜 분수 있잖아요. 이름은 까먹었는데, 그 분수를 닮았어요.
그리고 릴리 현대미술관 분관에서 고암 이응노 전시회를 관람했습니다. 너무 늦게 가서 30분밖에 관람을 못했는데, 25분만에 관람을 마쳤습니다. 다리도 아프고 ^^
4관으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1관은 수용와 모색이라는 관인데 초기 작품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전통 동양화(요즘 공식명칭으로는 한국화)작품인데요 대죽과 풍경화 민화풍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작품은 ㅋㅋㅋ 난을 그려놓았는데, 화분을 그렸더라구요. 화분에 명암표시를 해두었더라구요. 그 느낌이 제가 초등학교때 그렸던 화분이었습니다. 미숙한 원근법과 미숙한 명암 덧칠과같은 것^^ 이때부터 서양화법이 좀 들어 왔나봐요. 그리고 그 이후 그림은 산수화에대가 수묵담채화를 넣어서 담백한 시골모습 그리고 시대의 아픔을 담고 있는 현대화같은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더랍니다. 그 중 가장 끝그림은 바로 양색시를 그려놓았지요. 수묵담채화로~~~
2관은 운필의 확장이었습니다.
해방이후 부터 도불까지의 작품을 모아둔 곳이었는데, 수묵담채화가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여기서는 자세한 한국화 수묵화라기 보다는 약간은 추상적인 아니 과감한 생략의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특히 취야?? 작품제목이 맞나? 그 작품이 가슴이 와닿는데요. 술마시는 그림인데 수묵담채화였습니다. 민중들의 고달픈 생활을 선술집에서 한잔의 술로 푸는 것은데, 피카소의 청색시대를 연상하게 하였습니다. 피카소의 청색시대는 정말 한없이 슬프지만 여기의 표정은 좀 묘해요. 뭔가 희망을 발견하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그런 종류의 몇점의 그림... 그리고 재건이라는 그림은 한국전 이후의 국가적 테제를 그렸다는 생각이 드는데, 일하는 분들의 고단함이 녹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금강산을 그려놓은 커다란 그림 두점도 소개하고 싶네요. 전통적인 수묵담채화가 아니고, 추상과 생략의 수묵담채화였습니다. 특히 절이 들어간 그림은 한국화도 아닌 것이 서양화도 아닌 것이 수묵담채화이면서도 과감한 생략이 들어가 하여튼 묘한 그림이었습니다. 그리고 2관인지 3관인지 조금 헷갈리지만, 추상화 3점도 보였어요.아마 2관일듯 바다 하늘 뭐 그런 주제였는데,좀 많이 예뻣어요.
그리고 2층 3관은 꼴라주및 문자추상이었습니다.
이분은 꼴라주를 했어요? 뭘로 했을까요? 한지하고 먹하고를 이용해서 아주 이쁘게 꼴라주를 만들었어요. 한국적 재료를 사용하고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설명에는 한자로 문자추상을 했다고 하는데, 물론 한자도 있지만 대부분이 로마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여튼 묘하게 이쁜 문자추상을 나서서 드뎌... 4관으로.
4관은요 자유 통일 염원을 나타내는 작품이었습니다.
주로 그림은 사람을 단순화시킨 표상들을 하나를 그리거나 여러명을 빼곡히 그리는 것이었는데, 독창적인 현대미술같애요. 음흠.. 뭐 이런 종류의 그림은 어찌 생각해보면 고암선생말고도 많이 그린 것 같은데, 노동을 하는 모습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 많은 다수의사람들 ~~ 무슨 철학적 해석이 있어야 할 작품들인 것 같습니다. 하여튼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대중 속에서 인간은 아주 작은 부분인 것 같습니다.
25분 보고도 말이 되게 많지요? 사실 더 하고 싶은데, 손가락이 아파서요. 근데, 하여튼 그 분의 작품들은 서양화의 기법을 한지와 먹등에 투영시킨 것이라고 생각을 해여~~~
아이고 잠온다 그 이후로도 이야기가 있는데, 손가락이 아파서 그만하렵니다. 끝~~~
첫댓글 지난번에는 팔로 치시더니 이번엔 손으로 쳤군요...ㅋㅋㅋ
릴리님, 서울에 오래 계실거면 국토대장정 끝나는 날 광화문에 오세요. 의석이도 보시고 저도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번에 1:1 이야기 나눈적 있는데 그날 보시면 압니다. 꼭 뵙 길 바랍니다. 맛있는거 사드릴께요..
저 금요일날 내려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