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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기도
주님...
내 영은 주를 찾기를 갈망하오나 나의 육신은 세상의 소욕을 구하나이다.
주님의 뜻보다 세상의 방법을 찾아 행하는 이 종을 심판하소서.
조금만 시련이 임하고 고난이 닥치면 무언가 그만두려는 이 마음을 징계하소서.
그리하여 영적 하루살이가 참된 양식을 먹고 오직 주님만 바라기 원하나이다.
이 종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를 불구자, 거룩한 장애인이 되게 하시어 세상의 소욕에 대하여 이제는 지나간 때로 족하오니 기능정지 되게 하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케 하옵소서.
주여, 내 안에 새 영과 새 마음을 창조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민 11:10-23
제목 : 언약을 이루시기까지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0.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11.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12.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13.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14.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 한 자 70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17.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18.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19.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20.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21. 모세가 이르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22.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 나의 묵상
출애굽 한 지 석 달이 채 안 될 때부터 만나를 먹기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 먹을 때 그 만나의 맛을 꿀 섞은 과자 같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것을 1년 정도 먹고 나니까 물렸던지 이제는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같다고 하면서 옛날 애굽에서 먹던 생선 오이 수박 부추 파 마늘들이 생각난다고 불평을 쏟아낸다.
그러면서 모든 백성들이 자기 장막 문에서 울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 역시 마음이 심히 불편하였다.
이를 본 모세가 하나님께 대하여 하소연을 하기 시작한다.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심이 어찌 된 일입니까?
주님은 왜 이 종에게 은혜를 주지 않으시고 이 모든 백성들의 짐을 나에게 지게 하십니까?
내가 이 백성을 잉태하여 낳았나요?
주님은 왜 아버지가 젖 먹이를 품에 안 듯 그들을 내 품에 안고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까?
이 수많은 백성들에게 내가 어떻게 고기를 줄 수 있습니까?
그들은 내 앞에서 울며 고기를 달라고 보채고 있습니다.
나는 그로 인하여 이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차라리 나를 죽여주시고 이런 고통을 내 눈으로 보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지도자와 장로가 될 만한 사람들 70명을 뽑아서 회막 문 앞에 너와 함께 서도록 하라고 하신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모세와 이야기 할 것이며 너에게 준 영을 그들에게도 줄 것이므로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들의 짐을 나누어 질 것이다.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전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내일 고기를 먹게 해 줄 것이므로 백성들로 하여금 몸을 거룩히 하고 기다리라고 하신다.
너희가 울면서 보채기를 누가 도대체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느냐면서 차라리 애굽에 있을 때가 더 좋았다고 하는 말이 하나님께 들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인데 하루 이틀 닷새 열흘 20일만 아니라 냄새가 역겨울 정도로 계속 먹을 수 있도록 한 달 간 줄 것이라고 하신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 앞에서 울면서 애굽에서 나온 것을 후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께 말하기를 자기와 함께 하는 이 백성들이 장정만 60만 명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한 달 동안 고기를 먹게 하시겠다고 하시는데 가지고 있는 모든 양 떼와 소 떼를 다 잡는다고 그렇게 먹을 수 있겠으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다 잡는다고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면서 하나님께 묻는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나의 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것”이라고 하신다.
백성들은 가장 원초적인 문제, 곧 먹는 문제로 마음이 상하여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며 울고 있다.
이에 대하여 모세는 자기에게 그렇게 한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리지만(13절),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하나님께 대하여 하는 것이라고 하신다(20절).
문제는 백성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모세까지 마음이 흔들려서 하나님께 대하여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11-15절).
모세 왈, 백성들의 이런 모습이 곧 하나님이 자기를 괴롭게 하시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기는커녕 오히려 그 짐을 지우시냐고 호소하고 있다(11절).
이 백성을 자기가 배고 자기가 낳았느냐고, 어린 젖 먹이 자식을 품에 품듯 그들을 품고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시느냐고 자신의 불만을 토로한다.
자기 자신은 이들에게 줄 고기를 도무지 얻을 자신이 없단다.
그러면서 모세가 볼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를 달라고 울면서 투정을 부리는 것이 자기에게 하고 있다는 식으로 하나님께 하소연하고 있다.
자기는 그 책임이 너무 무거워서 도무지 감당할 수 없으니 차라리 자기를 죽여 달란다.
그래서 이런 고난당하는 것에서 구해달라고 하소연 하고 있다.
모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마치 1년 전 모세를 보는 것 같다.
40세의 나이로 자기 형제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본 모세는 그들을 구원하려는 마음을 먹고 거사를 행한다.
그러나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그리고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 40년을 양들과 보내면서 자기의 눈으로 볼 때는 자기 인생이 썩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40년이 지난 후 어느 날 모세는 양들을 데리고 호렙산에 갔다.
거기서 어머니께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만난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제 내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의 학대당하는 것을 보았고 그들의 근심도 안다고 하시면서 그들에게로 가서 그들을 구원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 때 모세는 심하게 열을 받고 하는 말이 ‘미아노키’, 곧 ‘내가 뭔데 나더러 가라고 하느냐?’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아주 도발적으로 대든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 대한 어떠한 변명이나 이유를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저 허허하고 너털웃음을 웃으시면서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의 항변하는 모습에 화를 내실 법도 한데, 하나님은 화를 내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짐을 져주신다.
그리고 백성들이 너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그러는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20)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하나님)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 모습을 통해서 요셉의 형들의 모습을 본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고 굉장히 미워하였다.
하루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불러서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는 형들에게 가서 안부도 살피고 보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겜까지 갔다.
그런데 세겜에서 형들이 보이지 않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도단으로 갔다는 것이다.
요셉은 그 말을 듣고 도단까지 갔다.
요셉이 도단에 도착할 때 형들이 요셉을 먼저 발견하고 하는 말이 이렇다.
(창 37:18-20)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가 꾼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는 것이다.
이들은 요셉이 꾼 꿈이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적 꿈이라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입애굽의 언약을 무시하고 짓밟으며 모독하는 행위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행위가 바로 요셉의 형들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짓밟고 모독하는 행위이다.
(20)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인데, 그들은 그런 하나님의 언약도 모르고 하나님의 뜻도 모르는 무지랭이에 지나지 않았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직접 언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언약에 대하여 문외한인 것은 형들만 아니라 요셉도 마찬가지였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하여 입애굽의 언약을 이루시고자 하는 뜻을 전혀 몰랐다.
그는 형들의 볏단과 열한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고 신이 나서 좋아했지만, 그는 그 이후에 그 꿈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형들에게 팔려 애굽에 가서 보디발의 종으로 살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곳에서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 주는데, 3일 후면 나가서 복직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술 맡은 관원장에게 부탁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당신이 복직되거든 바로에게 잘 이야기해서 자기를 꺼내 달라고 한다.
한 마디로 그에게 청탁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입애굽이라는 언약을 이루시고자 그를 감옥에 가두어 두셨는데, 요셉은 그런 하나님의 언약을 모르기에 자신의 상황을 해결하려고 사람에게 청탁을 하기까지 한다.
어찌 보면 하나님의 뜻인 입애굽의 언약을 모르고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는 요셉을 향하여 화를 내셔도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은 화를 내시지 않고 침묵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때란, 두 차원이다.
단기적으로는 바로가 꿈을 꾸고 그것을 해석할 사람이 필요하게 하시는 때로써 요셉이 청탁을 한 뒤로 2년이란 세월이 지나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입애굽을 완성하는 그 때이다.
더 나아가 입애굽을 넘어 출애굽과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기다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요셉이나 형들이나 동일하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께 항상 신실하였고, 형들은 하나님을 전혀 신뢰하지 못했다.
나는 언약도 하나님의 뜻도 전혀 모르던 무식하기 짝이 없는 자였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하나님의 언약이나 뜻을 전혀 깨닫지 못하였다.
신학을 했고 목사가 되었으면서도 하나님의 언약과 뜻을 몰랐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무엇을 설교해야 할지 늘 고민이었다.
목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그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언약도 하나님의 뜻도 모르니 맨 날 헷갈리고 혼미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하나님의 언약은 창세전에 아들과 맺은 언약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언약의 내용이 곧 영생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있는 생명을 아들에게 주어 아버지의 생명을 받아 태어나게 하셨다(요 5:26).
그 아들과 함께 약속하시기를 사람을 만들어 그 사람에게 영생을 주기로 하신 것이다(딛 1:2).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은 창세전에 있었던 일이며, 거기서 사람에게 영생을 주기로 하신 뜻을 세우셨다.
그런데 나는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하신 이 두 가지 일을 알지 못하였기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시점인 태초만 강조하였고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회개하고 돌아갈 곳이 에덴동산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에덴동산 역시 만물 안에 속한 존재물이 아니던가?
이제 나는 하나님의 언약과 뜻을 안다.
나 역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며, 특히 새 언약 백성으로써 날마다 영적 가나안인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영생이다.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나는 하나님의 언약과 뜻을 모를 때는 두 말 할 필요도 없거니와 심지어 이런 언약과 뜻을 알면서도 수시로 넘어지고 자빠진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그 뜻을 들어서 알지만 그들이 현실적으로 당하는 환난과 고난으로 인하여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때로는 하나님의 언약을 모독하며 짓밟기도 한다.
내가 왜 예수를 믿어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느냐며 때로는 후회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성도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내가 왜 목사가 되어서 이런 짐을 지느냐고 하나님께 대하여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의 모습이 우리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런 나는 죽어야 하며 죽기에만 합당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참고 기다리신다.
지금은 잘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바 되는 때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아니면 나는 지금 당장 진멸받아 마땅한 자이지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나를 새 언약 백성의 반열 안에서 넘어지고 자빠져도 다시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이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잘 안다.
내가 어떠한 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런 나를 목사로 선생으로 삼아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직분을 주셨으니 이 또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은혜임을 알고 있다.
현재적인 고난과 상황으로 인하여 자괴감에 빠지곤 하는 나를 붙드시고 일어서게 하시는 주님께 송구한 마음과 함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언약도 하나님의 뜻도 모르던 무지랭이 같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 마음대로 자행자지했던 지난 날, 아니 지금까지의 내 삶을 주님의 공의로 심판하여 주소서.
그 심판이 나를 살린다는 것을 진리로 아오니 이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주목하여 손으로 만진 바 된 생명의 말씀이 현재적으로 임하게 하소서.
생명의 말씀이신 주님...
날마다 주의 말씀이 아니면 나는 넘어져 일어설 수 없사오니 연약하고 무지랭이 같은 나를 불쌍히 여기사 일으켜 세워주시고 오직 복음을 위하여 정진하게 하소서.
그것이 내게 주신 사명이기에 그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더하소서.
상황과 문제에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나를 강권적으로 붙드소서.
그래서 날마다 언약 안에서 주의 뜻인 영생을 누리는 자 되게 하소서.
주님의 유언과도 같은 영광을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그 영광이 내게만 아니라 오늘도 지쳐 쓰러져 힘들어 하는 주의 사랑하는 성도들에게도 비춰주옵소서.
그들이 주님을 힘입어 다시 일어나 아버지께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소서.
오늘부터 포항캠프가 시작됩니다.
참석하는 영혼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주님의 언약과 뜻을 깨닫고 영생을 누리는 이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