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찌 제7 초급학교(일본 아이찌 현에 있는 조선학교) 6학년 아이들이
연극놀이 수업을 담당한 전희련 단원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를
옮겨 싣습니다.
오늘은 고맙습니다!! 참 재미있었습니다!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고양이와 쥐입니다.
나는 졸업하지만 다시 제 7에 와주세요.
- 6학년 리애실, 리경화, 오미래, 리홍선
재미있는 놀이를 가르쳐주시고 참으로 고맙습니다.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고양이와 쥐의 놀이가
참 참 참 참 재미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놀이를 가르쳐주세요.
우리들은 이제 졸업하지만
래년도 하급생들에게 재미있는 것을 가르쳐 주세요
- 6학년 김유미
오늘은 고맙습니다.
다시 올 수 있으면 와주십시오
- 6학년 정신일(일본학교를 다니다 조선학교로 편입한 학생)
안녕하십니까? 외우고 있습니까?
나는 고양이와 쥐의 놀이 때 인디언이라고 말하며
등을 많이 강하게 때리기 당한 박장윤이라고 합니다.
다시 기회가 있으면 우리 학교를 찾아와주십시오.
PS)안경이 아주 얼굴에 어울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전희련 선생님!
- 6학년 박장윤
[우리연극 이야기]
2월호에 이어서
우리연극 덧뵈기 카페에 회원이신 조은성님과 제가 주고 받은 글을 싣습니다.
연재를 허락해 주신 조은성님께 감사드립니다.
조은성(초록)님
음, 어떻게 글을 열어야 하나 많이 고민해봤는데 답이 안 서네요.. 음,음, 그냥 생각나는대로 두서없이 옮겨 보겠습니다.
글쎄요. '배우'가 마냥 퍼주는 사람이다라는건 좀 논의의 소지가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표현의 욕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근원이 외로움이 될 수도 있고, 과시욕이 될 수도 있고, 인정받고 싶음이 될 수도 있고,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 근본적으로 인류는 보편적으로 '대화와 소통'을 욕망하지 않을까요. 관객이 없이도 연극하겠다는 배우가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가 무인도에 따로이 떨어져 산다면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생겨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 대화와 소통을 풀어내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어떤 이는 연애나 가족애,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어떤 이는 노래나 그림을 통해, 또 연기를 통해서도 일을 통해서도.. 혹은 이렇게 풀어내는 방식을 몰라 꽁꽁 싸매고 있다가 혼자 술독에 빠지게 될 수도 있구요.
관객의 고민과 가치관, 삶을 자극하는 것이 영화나 연극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이런 주제로 문학계에서도 열띤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배웠던 것 같습니다. 순수예술과 실천예술..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그건 각자 나름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특정/불특정 타인의 생활이나 명예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고유의 양식대로 인정하는 것을 관용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관용할 수 없는 대상이 있을 수 있을텐데 대표적으로 일제강점기 시기에 일본을 찬양하고 우리 젊은이들의 죽음을 종용한 이들이 잠시 떠오릅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하였는데 '글을 쓸 때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을 항상 염두해둬야 한다. 그 사람들이 상처입지 않도록.' 참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을 할 때나 삶을 살아갈때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듯이 '백조의 노래' 역시 '배우론'이면서 '관객론'이란 생각 잠깐 해봅니다. 그들이 외롭지 않도록, 자기 안에 침참하여 너무 오래 헤매지 않도록 관객들은 지지하고, 격려하고, 던지는 질문에 대답해줘야 할 것 같다는 이상한 의무감? 이 생기네요. ^^
몇십 몇백의 이목을 받다가 혼자 골방에 들어가면 참 묘한 기분이 들껍니다. 뿌듯함과 성취감 이면에 반성도 되고 외롭기도 하고.. 저역시 조금은(?) 비슷한 감정을 느껴봤는데 학생 시절 1년 임기로 학생회 간부를 했었습니다. 격동의(?) 1년이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니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다들 자기 삶을 찾고 전화기는 순식간에 얼어붙더라구요. 저와 비슷한 상황의 많은 친구나 선후배들은 깊든 얕든 어느정도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한경우 자살충동까지 느꼈단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배우에게 대중은 계륵 같은 존재인것 같네요. 더 좋은 표현은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악취미라고 놀림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든 연극이든 책이든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게 좋습니다. 이상하지 않은 것중에서 매력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편안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그것을 볼때뿐.. 내 삶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다고 해야할까요 하하하. 사실 불편하고 이상하고 미심쩍고 찜찜해야 생각이라는 것도 하게 되는 것 같구요.
제가 좋아하는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소설을 스스로 해석하는 것은 살아있는 소설의 목을 조르고 대중의 상상력을 억압하는 행위라 생각하여 자기 작품의 해설을 극도로 자제한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이 낳은 아이가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건 그것은 나의 삶과 근본적으로 별개의 일이듯(물론 상호간의 교류와 소통, 환경을 만들어주는 기본적인 책임을 전제하고 말이죠) 내가 전혀 의도치 않은 해석을 대중이 한다고 해도 그건 내 손으로 낳았지만 이제 자기 나름의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있는 작품 자체가 한 일이니 그대로 또 관용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에 입각해볼때 2월 10일 오늘까지의 제 물음에 대한 제 결론은
막내는 나혜란에게서 부정하고 싶은 자신의 미래를 보지 않았을까요?
내가 미친듯이 노력하는 이 길의 끝에 저런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해봅니다.
뭐, "못해먹을 일이야. 때려치울테야!" 하는 것보다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나름의 애정일지 모를 일이죠..
아 나혜란 님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막내 연기하신 분 있잖아요.. 사실 막내다운, 적당히 어색한 연기와 함께 진지한 눈빛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참 좋은 눈빛을 가지신 것 같았어요. 모두들 화이팅입니다! 계속 덧뵈기와 좋은 인연 맺고 싶습니다. 저도 더 많이많이 공부하고 많이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해요.
아, 마지막으로 주제넘는 이야긴데요, 굳이 관객을 충만하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건 너무 스스로 부담스러워질 우려가 있는 것 같아요. 어차피 이 세상은 적당히 부족하고 적당히 못났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감싸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 저 역시 이런 글로는 제 감정을 다 못 전하겠고, 두서없는 이런 글 너무 부끄럽거든요. 그래도 이해해줄거라는 믿음이 틀리진 않겠죠? ㅎㅎ
덧뵈기 대표(장길산)님
즐겁습니다. 너무 유쾌하고 행복할 따름입니다.
모니터로 나누는 대화가 무척 아쉽군요.
사실, 배우는 마냥 퍼주는 존재라는 의미는 배우의 존재론이나 운명론 이전에
연기라는 예술의 기술적 측면이 더 강합니다.
연기, 演: 멀리 흐르다. 통하다. 스며들다. 技: 재주. 기술, 장인
으로 해석됩니다.
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흐르는 기술이란 의미로 쏟아 붓거나 주전자로 따르는 행위가 아닌 자연스럽게 흐르는 형태로
자연스러움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기술을 말합니다. 이는 대부분 아는 의미지요
두 번째로 제일 중요한 의미인 통하는 기술, 스며드는 기술을 말합니다.
이것이 연기의 핵심이자 최고의 미덕입니다.
통하고자 하는 기술, 스며들고자 하는 기술.
누군가와 통하고자 한다면, 누군가에게 스며들고자 한다면
내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주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관객과 통하지 않으면, 관객에게 스며들지 않으면 그건 연기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낌없이 주기 위하여 배우는 스스로 많은 것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많은 것들을 갖기 위해 배우는 끊임없는 정신적 육체적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표현의 욕구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배우들은 이 표현의 욕구가 남들보다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표현의 본능은 배우에게 있어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는 위험하지요. 자동차를 만들고 파는 사람들은
자신의 기술적 욕구와 판매에서 오는 만족뿐만 아니라
그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의 안전에도 신경 써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일 겁니다.
그렇다고 배우들이 관객들의 인생을 책임질 수는 없겠지요.
그만큼 신중히 연기를 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저 역시 연출가이자 배우로서 어린 시절(지금도 어리답니다^^)
아낌없이 주어야 하는 존재인 배우를 슬퍼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이 배우인걸!
지금은 관객으로부터 받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초록님께도 많은 것을 받았구요(아까우신가요?^^).
아! 그리고 연극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말한 것이
순수예술과 실천예술의 구분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철지난 논쟁이며
요즘 예술계에서 그런 얘기 했다가는 왕따 당하기 쉽습니다.
다만, 예술은 인간에게 유익해한다는 것입니다. 초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그저 편안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그것을 볼때뿐..
내 삶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다”
독일의 연출가이자 극작가인 베르톨드 브레히트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예술들에 의문을 던졌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찾을까?
혹시 편안함과 아름다움 속에 뭔가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편안함과 아름다움은 대중을 향한 사기 아닐까?
그래서 그는 꾸준히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관객들을 불편하고 이상하고 미심쩍고 찜찜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편안함과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대중들을 현실인식으로 멀어지게 하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미국의 3S정책(screen, sex, sports)을 그 옛날 브레히트는 간파하고 있었을까요?
하긴 브레히트는 미국의 많은 영화들에 대해 비판하며 채플린의 영화를 칭송했습니다.
결국 채플린과 같이 미국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지만요.
불편하고 이상하고 미심쩍고 찜찜하게 만드는 기법.
우리의 탈춤과 마당극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기법들입니다.
아! 또 얘기가 길어지는 군요. 짧게 하려 했는데....
다시 배우 이야기로 돌아가서...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이란 소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중 현재는 사라진 부분인 희극론이 소재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연극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바이블같은 존재였습니다
(요즘은 많이 안보지만요^^)
현재 시학에는 비극론만 존재합니다.
움베르토 에코도 사라진 희극론을 무척 아쉬워 했나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중 비극론은 연극 중 비극의 구성방법과 원리 등등에 대해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아마 르네상스 이전 즉 중세 암흑기나 그 이전 시대에 비극이 아닌
희극, 즉 웃음이 인간에게 주는 해방을 종교계에서는 두려워 했나 봅니다.
그래서 목적의식적으로 희극론을 금서로 정했고 결국 의도적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에코는 추측한 것입니다.
더욱 더 아쉬운 건 비극론에는 배우가 퍼주는 방법만이 나옵니다.
아마 희극론에서는 배우가 받는 방법, 그래서 다시 충만해지는 방법이 있었을 거라는
저만의 추측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조은성(초록)님
정말 뜬금없고 우발적으로 한번 선표 앞세우고 놀러가봐야겠어요 ㅋㅋ
아, 사는건 참 재밌는 일입니다. 그치요?
덧뵈기 대표(장길산)님
그러게요... 재밌죠...언제든지 대환영입니다...^^
그 이후,
조은성님은 저희 연습실에 방문해 주셨고,
덧뵈기 후원회원이 되셨답니다.
조은성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단원글]
오하이오 고자이 마스
매년마다 가지만 갈 때 마다 적응이 안 되는 나라 일본! 올해에도 어김없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알고자 인천공항을 나섰다.
“나섰다”를 끝으로 다시 십 분의 시간이 흐른다.
글도 써 본 놈이 쓴다고 며칠 일본을 갔다 온 경락이형은 주구장창 일본 탐방기를 써대는데 한 달이나 갔다 온 나는 아무생각이 안나니...
쩝- 쩝- 어쨌든 쓰기는 해야겠고, 해서, 아~ 또 십 분이 흐른다ㅠㅠ
이번에 일본에 간 것은 나에게 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지난 3년간 관계를 맺어온 일본에 있는 극단에서 한국의 마당극을 배우고자 워크샵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간 것이기 때문이다.
사전에 한국에서 나름 많은 준비를 하였지만 일본인을 상대로 한국말로 워크샵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으로 준비한 것이 별로 미덥지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든든한 통역을 믿으며)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공항에 도착하여 숙소로 가서(홈스테이) 돼도 않는 바디랭귀지를 하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놀다가 주말에 워크샵을 하였다.
통역하는(서금실) 친구도 제시간에 도착하여 첫날 간단한 이론수업을 잘 마치고,
둘째날도 즉흥극을 통한 공동창작 수업을 너무나도 열광적인 호응 속에 진행했다.
“아- 금실아 고맙다” 뒤풀이에서 “수고했다”고, “정말 좋았다”고 모두 한마디씩 해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었으니 바로 금실이의 말이었다.
이번 워크샵이 진행도 매우 매끄럽고, 내용도 좋다고 하는데 더욱 좋았던 것은 “희련이가 항상 술취해있는 모습만 봤는데,
맨 정신으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정말 좋았다”는 그 말! 그 얘기를 듣고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쓰러졌다.
아무튼 이번 일본 방문은 참으로 열심히 사는 희련이의 모습을 일본 사회 만방에 떨치고 온 개인사적인 쾌거였다.(여기까지 쓰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
참고로 술꼬장을 안 부린 최초의 방문이었다. 아~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글로 하자니 영~~ 일본 방문 에피소드가 궁금하시면 연락하세요.
스키장간 사건, 교토투어 간사건, 우리학교 아이들 선생님이 된 사건 등등의 많은 얘기들을 해드릴 테니. 당연히 소주한잔하면서....
환절기 모두 몸 건강히 챙기시고 열심히 살아갑시다.
글_ 전희련 / 우리연극 덧뵈기 자율단원
훈기의 학교생활이어유
훈기는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있어유.
그리고 수요일, 금요일, 주말에는 극단에 와서 열심히 공연연습하고 있구유.
제 말투가 쪼매 이상하지유 지두 모르겠구만유.
하여튼 지는유 수업도 빠지지 않고 잘 듣고 있구유,
연습실이 비는 시간에는 장구도 치고 춤도 추고 그러고 있어유
훈기는 기숙사에서 살아유.
며칠 전에 쫓겨날 뻔 했구만유.
동기 두 명이 막차를 놓쳐서 제 방에서 자려고 왔는디,
그날 사감 선생님이 떠서 이 놈들을 숨겼다가 들켜버렸지 뭐에유.
한 놈은 화장실에 숨기고 , 그리고 다른 놈은 옥상에 숨겼는디 화장실에 있던 놈이 걸려부렸시유 .
그래서 퇴사 당할 뻔 했는디 지가 비굴하게 봐달라고 졸랐지유
그래서 벌점처리 당하고 아직 기숙사에서 살고 있구만유 .
서서히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봄이 오고 있지만, 3월의 덧뵈기 연습실은 아직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습실 밖이 훨씬 따뜻한 날도 많았고, 그래서 아예 근처 아파트 단지로 나가서 회의를 하기도 했지요. 덧뵈기 연습실도 하루 빨리 봄날의 따뜻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합니다. 난로를 켜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대표님 집 이사
3월 9일 대표님이 집을 이사하셨습니다. 동네를 멀리 옮기신 것은 아니고, 근처 동네로 이사를 하셨어요. 아직도 집 정리를 다 마치시진 못했다고 하네요. 대표님이 다량의 책을 소장하고 계신 관계로... 조만간 단원들이 나들이 겸 다같이 한번 쳐들어가야겠습니다.
지호가 잠깐 휴가를 나왔어요
3월 10일이었네요. 지호가 짧은 휴가를 나왔어요. 그 날은 노래패 우리나라 이혜진의 아기민재군의 돌잔치가 있어 몇 몇 단원들이 돌잔치에 갔었는데 지호도 그곳으로 와서 잠시 얼굴을 보았답니다. 이젠 군 생활이 많이 익숙해졌는지 얼굴이 편해 보이고, 몸도 건강해보였어요. 다음달에도 또 휴가를 나온다고 하니 성지호 단원의 소식을 자주 전해드리겠습니다.
전희련 단원, 일본에서 귀국
몇 년 전부터 교류하고 있던 일본 극단에서의 워크샵 관계로 일본을 방문했던 전희련 단원이 지난 3월 12일 건강하게 귀국을 했습니다. 전희련 단원의 일본방문이야기는 장시간에 걸쳐 전희련 단원이 작성한 [단원글] 코너를 읽어보세요^^
훈기 복학 및 운전면허시험 합격
안훈기 단원이 3월 개강을 맞이해 학교로 복학을 했습니다. 복학과 더불어 반가운 소식이 있었어요. 운전면허 시험(1종 보통)에 당당히 합격을 한 것이지요. 조만간 훈기가 운전하는 덧뵈기 봉고차에 탑승할 그 날을 상상해봅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공연연습과 훈련까지 열심히 해내고 있는 훈기단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수빈이 언니 결혼식에 갔었어요
지난 3월 17일, 수빈 단원의 언니가 결혼식을 했어요. 언니의 결혼준비를 도와주면서 여러 가지로 분주했던 수빈이가 결혼식 날은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더군요. 언니를 시집보내는 것이 못내 섭섭했던 것 같습니다. 이 날 몇 몇 단원들이 수빈 단원 언니 결혼식에 참가해 축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일본어 공부 시작
화, 목, 토 오전 11시! 일본공연, 일본극단과의 교류 등등의 이유로 덧뵈기 몇 몇 단원들이 모여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없고, 적당한 교재를 선택해 무작정 공부하고 있지요. 누구보다 제일 열심히인 사람은 전희련 단원이랍니다. 그 사연이 너무 감동적인데...
영화 <우리학교> 시사회 참가
혹가이도 조선학교 아이들의 희망다큐, 영화 <우리학교> 시사회에 덧뵈기 몇 몇 단원들이 다녀왔어요. 일본 땅에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들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였습니다. 적극 권해드리고 싶은 좋은 작품입니다.
범국민 촛불 문화제 참가
3월 30일에는 한미 FTA 협상 저지를 위한 범국민 촛불 문화제에 참가했어요.
굴욕적인 한미 FTA 협상 중단을 외치는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비가 오는 가운데도 밤 늦은 시간까지 그 간절한 외침은 계속 되었습니다.
[4월 공연]
4월 11일 <더 이상 빼앗길 순 없다> 한경대학교 초청공연
[같이 보러가요]
[영화 - 우리학교]
곱다고 봐주는 사람들도 없는데 어이하여 너는 여기에 피었는가?'
분계선 코스모스 같은 아이들... 볼수록 사랑스럽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우리학교'입니다.
해방직후 재일 조선인 1세들은 자녀들이 조국으로 돌아와 불편함이 없도록 스스로의 힘으로 '조선학교' = ‘우리학교’를 세운다.
처음 540여 개가 넘던 학교는 일본 우익세력의 탄압 속에 이제 80여 개의 학교만이 남게 되었다.
김명준 감독은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교원, 학생들과 3년 5개월이라는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일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아낸다.
"조선사람은 조선학교에 다녀야 한다"
일본땅 조선아이들의 '용감한'등교가 시작된다.
‘우리학교’의 학생들은 여느 10대들과 다름없이 명랑하고 밝다.
일본이라는 타국땅에서 조선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우리학교’라는 공동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아버지,어머니, 그리고 동무들에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기 위해 공부하고 운동한다.
북에 대한 적대감이 반영된 일본 우익세력의 무작위적 협박과 이로 인한 신변의 위협을 겪으면서도
‘우리학교’의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들은 ‘조선사람은 조선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그 평범한 진실을 어렵게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3월 29일 개봉
<상영관>
서울 : 하이퍼텍 나다, 씨네큐브, 스폰지하우스 압구정, CQN명동
중앙시네마, 프리머스 영등포, CGV인디관 상암, 메가박스 코엑스
인천 : CGV인디관 인천
부산 : CGV인디관 서면
대전 : 대전 아트시네마
광주 : 광주극장
대구 : 동성아트홀
전주 : 프리머스 전주
울산 : 롯데시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