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운동회에서 코끼리 업고 달리기 종목에 출전하였다가 죽을 뻔한 젊은 도덕 선생 이야기>
나는 다시 삼례 내려가는 기차에 앉아 있다. 자정이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월요일 늦은 저녁이다. 어제(일요일) 열린 총동창회 주최 가족산행대회는 잘 치루어진 것 같다. 우리 12회는 참석 인원 수(36명?)에 있어서나 찬조금 액수에 있어서나 다른 기수를 압도하였다. 이제 12회의 단합과 화목은 동창회에서 거의 공인된 듯한 느낌이다. 어제도 우리는 인근 오리고기집으로 2차를 가고, 또 구파발 역 앞의 생맥주집으로 3차를 가면서 단합과 화목을 과시하였다.
단합과 화목의 평판에 흠이 될 만한 사건은 (내가 알기로는) 단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밖에 없었다. 덕영 회장이 재한 반장의 뺨을 깨물었단다. 재한이가 내 눈 앞으로 뺨을 디밀면서 아파죽겠다고 자꾸 하소연하기에 한번 자세히 보아주었는데,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기에 “야, 반장, 엄살 좀 그만 부려”라고 말했더니, 이 친구, 이번에는 나를 공격한다. “내 편을 들어 주지 않다니, 니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도 진지하게 따지고 들기에 우리는 재한이가 진짜로 화를 내는 것으로 오해를 하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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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대회는 일종의 운동회이다. 어제 운동회는, 그러니까, 아주 좋았던 운동회였다. 나에게는, 나빴던 운동회도 있다. 다음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제일로 나빴던 운동회, 다시 말해서, 내 평생 최악의 운동회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학교에 발령받은 첫 해니까 1982년도의 가을이었다. 영서중학교(구로동)는 남녀공학이었으며 학년 당 학급수가 15학급이 넘고 교사수도 80명 가까이 되는 큰 학교였다. 그 날은 그 많은 인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운동장으로 나왔다. 다시 말해서 그 많은 인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나의 부끄러운 행동을 목격한 것이다. 운동회가 열리면 남부교육청 소속 장학사들과 인근의 동장, 파출소장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과 육성회장을 포함한 일부 학부모들까지 초청된다. 그러니 위에서 말한 영서중학교 식구들만이 아니라 이들 유력 인사들까지 모두 나의 이상한 행동을 목격한 것이다. 이 분들을 모신 본부석은 대형 천막을 쓴 채 교사(校舍)를 등지고 시상대 옆에 마련되어 있었으며, 학생들은 학급별로 무리를 지어 운동장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학생들은 땅바닥에 앉았으며 각 반의 담임 선생들은 자기 학급 주변에 학생용 의자를 놓고 거기에 앉았다. 학급별로 의자를 두 개씩 가지고 나와 하나는 담임 선생에게 주고 또 하나는 물주전자 받침대로 썼다. 빌어먹을 물주전자......
하늘에는 만국기가 나부끼고 아이들은 꽃술을 흔들면서 응원가를 불렀다. 제법 운동회 분위기가 났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햇볕이 점점 더 따가워졌지만, 운동장 한 가운데에서 벌어지는 백군과 청군 사이의 각종 경기 가운데에는 재미있는 것(오재미로 박 터뜨리기)도 없지 않았고 게다가 우리 반 아이들도 간간이 출전하였으므로 나는 그런대로 운동회를 즐기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하루 종일 수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어딘가? (선생님들은 수업 빼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는 것 같은데, 교육에 관한 생각 가운데에서 그 생각만큼 분명하게 그릇된 것은 없다. 한 가지 더 폭로해버릴까? 선생님들이 ‘몸이 불편하셔서’ 결근했다고 하면, 그 중 최소 30%는 전날 밤의 과음 탓이라고 보면 된다.)
운동회의 열기가 한창 고조되던 어느 때 여학생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운동회의 꽃은 달리기다. 선수들은 응원단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면서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꺼내어 트랙을 달렸다. 그러던 중 가벼운 돌발 사고가 한 건 일어났다. 잘 달리던 한 학생이 실족하여 엎어져버린 것이다. 한 쪽 응원단은 실망의 신음 소리를 내고 다른 쪽 응원단은 환호성을 질렀다. 엎어진 학생은 엎어진 그대로 어쩔 줄을 모르고, 아마도 훌쩍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때 또 다른 돌발적인 사건, 진짜로 돌발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젊은 사람 하나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본부석 앞의 사고 지점으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이었다. 손에는 거대한 물주전자를 든 채 말이다. 그 자는 그 해 봄에 초임발령을 받은 도덕 선생 조선생이었다.
이 청년, 아무래도 축구를 너무 많이 보았던 모양이다. 축구 경기에서는 선수가 쓰러지면 코치가 무슨 상자 같은 것을 들고 달려가지 않는가? 물론 지금의 이 상황은 축구의 그 상황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냥 여학생 하나가 달리다가 엎어진 것인데, 약간 놀라고 크게 창피해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조선생은 그 아이의 담임 선생도 아니고 체육 선생도 아니고 양호 선생도 아니지 않은가? 물주전자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을 들고 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동장을 가로질러 한참이나 달려가다니...... 그래, 그것을 들고 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도덕 선생 조선생은 푼수끼가 있다. 이 자는 푼수 중에서 돌발형 푼수로 분류될 수 있다.
자, 이제 어떻게 한다? 경기는 잠시 중단되었고 내외 귀빈을 비롯하여 전교생과 전교사는 조선생의 다음 행동을 예의 주시하였다. 그 기세를 보건대 후속 행동도 범상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관람자들에게 들었던 것이다. 그 때쯤 되어서는 조선생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그러니 그는 그 정도에서 멈추었어야만 한다. 아이를 일으켜 준 후, 들고 간 물주전자로 아이의 손을 씻게 해 주든지, 아니면 물을 먹이든지 하여 적당히 둘러대고, 폼은 좀 나지 않지만 조용히 물러났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할 정도로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도덕 선생 조선생은, 아직도 엎어진 채로 버티고 있는 그 여학생의 전방으로 가더니 그 덩치를 들쳐 업으려고 버둥대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그 상황은 절대로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고참 선생이 가까이에 있었다면 슬슬 다가가서 엎어져 있는 아이를 발로 툭툭 차면서 “빨리 일어나 이 놈의 새끼야. 너 때문에 우리 팀이 꼴지했잖아.”라고 말할 그런 상황이었다. 나는 어찌어찌하여 아이를 업는 데에 성공했고 일어서는 데에도 성공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달리기에 뽑힐 정도면 체격이 큰 아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때쯤이 되어서는 나로서도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제는 물러설 수 없는 형편이 아닌가? 나는 걸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나는 달려야만 하였다. 내가 지금까지 취한 일련의 행동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바이지만, 나는 이 상황을 일종의 위기 상황으로 규정한 셈이기 때문이었다. 이 여학생은 크게 부상을 입은 것이어서 촌각을 다투어 응급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달려야만 한다. 나는 이 학생을 들쳐 업은 채 이 학생이 달려 온 트랙을 역방향으로 달기기 시작하였다. 본부석 앞을 지나가다가는 하도 힘이 들어 짐을 추스르느라고 잠시 멈추기까지 하였지만, 동장님, 소장님, 육성회장님, 장학사님, 교장 선생님, 교감선생님(두 분) 그 누구도 달려나와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시상대 위에는 호루라기를 목에 건 체육선생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 나는 당시 이 사람들과 일 주일에 세 번 이상 술을 마셨다 -- 이들마저 나를 외면하였다. 그렇게 뛰다 걷다하면서 양호실에 도착해 침대에 아이를 눕히고 나니 숨은 턱까지 차고 다리는 후들후들 거리는 것이 나는 거의 초주검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그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되었으니 다행 아니냐 하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그 때의 내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정말로 양호실을 나오기 싫었다. 그 자리에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도덕 선생 조선생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양호실을 나와 유유히 자기 학급을 찾아가 의자에 걸터 앉았다. 다행히 달리기 종목은 완전히 종료되어 있었다. 하늘이 도운 것이다. 달리기가 계속 되었다면, 또 한 학생이 엎어지는 사건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그런 사건이 또 일어났다면, 조 선생은 어떻게 대응하였을 것인가? 스물 일곱 살 짜리 도덕 선생 조선생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 싫어 또 다시 운동장을 가로질러 사고 지점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물주전자 역시 손에 든 채 말이다.
첫댓글 도덕선생 조선생, 영태거사 깨침의 과정이 계속 그려지는데 갈수록 흥미있어지네. 나는 왜 도덕선생하면 황순만 선생님이 생각이 나지?
ㅎㅎ중학생이였기에 망정이지 고교생같았으면~~ㅋㅋ
ㅋㅋㅋ 젊은 도덕선생 조선생...글 읽으며 내내 웃었다.. 아니 근데 덕영이가 타이슨인가? 공포의 핵이빨?? ㅎㅎㅎ
조교수 멀리서 와서 늦게까지 어울려줘서 고마우이... 모처럼 조교수만나서 응석좀 부렸는디.... 애교로 봐주소... 근디 물리는 순간에는 뭉쿨하고 아프던디...ㅎㅎㅎ 차량문제는 잘 해결되어 다행이다... 조교수가 평소에 덕을 잘 쌓은 탓일 것일세...
덕분에 잘 먹고, 잘 놀고, 실컷 웃고, 그러고 보니 무는 사람이 또 있었구나. 공포의 타이슨 말이야. ㅋㅋ 그런데 회장이 더 높은 거야, 반장이 더 높은 거야? 고교생? 고교생 같았다면 정말 큰 일 날뻔 했지. 아, 썬데이 서울 황순만 선생님. 내가 그 분 동업자였구나. ㅎㅎ
누구나가 잊고싶은 창피했던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있지않을까? 다시생각해도 얼굴 붉어지는것들도 본인이외 다른이들은 그런건 기억조차없는게 대부분이겠지..암튼 재밋어~
역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않는 영태다운 순박한 바른 도덕 선생님다운 행동 이었네 ! 그런데 코끼리라니 그때 그 여제자가 이 글을 본다면 뭐라 그럴껴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