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인물 한국사]25ㅡ2.
범털은 달라도 다르다②
경종을 윽박질러 연잉군을 세제(世弟) 자리에 앉힌 노론 일파. 이제 남은 건 연잉군의 세제 책봉을 청나라로부터 받아내는 일이었다.
"소론 놈들이 들고 일어날게 뻔한데, 쇠뿔도 당김에 빼라고 후딱 책봉 받고 시마이 하자."
"그래 빨랑 받고, 대리청정하자고 들고 일어나면 지들이 어쩌겠어?"
사대교린(事大交隣)을 국가의 외교정책으로 지켜오던 조선이 아니던가? 일단 왕이 되던가, 세자가 되던가 하면 중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당시 조선의 관례. 더구나 정통성이 결여된 세제라는 비상식적인 후계구도라면(조선의 종법 상 부자세습이 적법한 승계방식이었다. 형제간의 승계는 아무리 좋게 봐도 비정상적인 승계였다) 뒷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뒷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청나라로부터 세제책봉을 빨리 받아야 했을 것이다. 당시 노론들이 이 세제책봉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는, 주청사 파견비용을 책정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전하,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행뢰(行賂 : 뇌물을 쓰는 행위)가 좀 많이 들 거 같은데요."
"꼭 그렇게까지 뇌물을 먹여야겠냐?"
"원래 떼놈들이 떡고물을 좀 밝히잖슴까?"
"야, 우리가 떳떳하면 되는 거지 굳이 뇌물까지 써 가면서…"
"그런 게 어딨슴까! 대 조선의 국본(國本)을 세우는 일인데! 그깟 돈 몇 푼이 아깝겠슴까?"
"네들 마음대로 하세요다."
이 당시 조정대신들은 머리를 쥐어짜내 계산한 주청사 파견비용은 7만 냥, 이중 2만 냥을 공식적인 '뇌물'비용으로 책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 마저도 불안했던지, 당시 주청정사(奏請正使)로 뽑힌 좌의정 이건명(李健命)이 경종에게 추가비용을 요구하게 된다.
"전하가 잘 모르셔서 그런데요. 떼놈들이 또 뇌물을 엄청 밝히거든요."
"그래서?"
"2만 냥으로는 좀 간당간당해서요. 전쟁터 나가는데, 총알이 부족하면 좀 그렇지 않슴까?"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게 또… 2만 냥에서 끝나면 좋겠지만, 이게 또 사람 맘처럼 딱딱 떨어지는 게 아니잖슴까? 오고가는 떡값 속에 커가는 장학생이라고… 밑밥을 충분히 뿌려놔야 결과가 나오는 거라… 제가 되도록이면 2만 냥에 맞추도록 하겠지만, 혹시라도 총알이 부족하게 되면 제가 재량껏 뇌물을 써도 될는지 해서요."
"그래, 네 마음대로 하세요. 떡값을 주든, 떡집을 지어주든 네 하고 싶은 데로 해라."
결국 모든 걸 포기한 경종은 이건명이 원하는 '뇌물 무차별 살포권한'을 허용하게 된다. 그렇게 뇌물 무차별 살포권한을 확보한 주청정사 이건명은 부사인 윤양래(尹陽來)를 데리고, 경종 1년(1721년) 10월 28일 세제책봉(世弟冊封)을 청하러 베이징으로 출발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부사 윤양래이다. 글씨를 하도 빨리 써서 비주서(飛注書)라는 별명까지 붙은 윤양래…. 이 인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다. 승지, 병조참의, 우부승지에 충청도관찰사까지 내외직을 두루 거쳐 착실히 캐리어를 쌓아가던 윤양래! 그는 노론의 차세대 주자였다.
"양래야. 북경 가면, 예부(禮部 : 외교를 담당하던 관청)로 곧장 달려가는 거야 알았지? 가서 방귀깨나 뀌는 놈들은 전부 맨투맨으로 떡을 먹이는 거야. 가래떡, 무지개떡, 바람떡 가리지 않고 먹여. 안 먹겠다면, 입을 찢어서라도 먹여. 이번일은 우리가 얼마나 떡값을 잘 먹이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있어."
"걱정 마십쇼. 공무원 생활 원투 합니까? 조선 돈은 먹어도 뒷탈 나지 않는다는 걸 이번에 확실하게 보여주겠슴다."
"네가 참…. 공무원 생활 제대로 했구나? 어쨌든 우리가 어떻게 먹이느냐에 따라 우리 노론과 세제 저하의 운명이 뒤바뀐다. 알지?"
"에이, 대감도…. 옛말에 이런 말이 있잖슴까. 떡은 오래되면 못 먹지만, 떡값은 오래 되도 제값을 한다고. 이 정도 뿌리는데, 설마 안되겠슴까? 맡겨주십시오."
뇌물 2만 냥+α를 사과박스와 쇼핑백에 차곡차곡 담아 넣은 이건명과 윤양래는 북경에 도착하자마자 떡값 살포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이 정도면 밑밥은 충분하겠지?"
"충분하다 뿐입니까? 북경에 벌써 소문이 쫙 돌았습니다. 조선 사신에게 뇌물 못 받은 놈들은 공무원도 아니랍니다."
"오케이 거기까지, 이제 그럼 슬슬 세제책봉을 해달라고 말을 꺼내도 되겠지?"
북경을 '떡의 도시'로 만들어 버린 이건명과 윤양래는 보무도 당당히 청나라 조정으로 향하게 된다. 어느 누가와도 이렇게 뿌리진 못할 거란 자신감이 이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묘하게 꼬여버렸다.
"이상하다 해. 어떻게 세자(世子)가 아니라 세제(世弟)인가 해? 아들이 없다 해?"
"아들이 없으니까, 세제를 세우는 거 아닙니까? 저기… 제가 보내드린 사과박스는…"
"지금 사과가 문젠가 해?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해."
"그게 저희 사정이 좀 급해서…"
"너네 왕 나이 서른넷이라 들었다 해. 인생 창창한데, 자식 낳으면 어쩌려고 그러나 해?"
아무리 떡값을 뿌려도 이상한 건 이상한 것이었다. 청나라 정부의 난데없는 딴지! 과연 이건명과 윤양래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야기는 다음회로 이어진다.
첫댓글 예나 지금이나 정치에 발담은 사람들의 교묘 술책
만연하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