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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라.”
삼위일체 대축일: 나해
복음: 마태 28,16-20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이다. 부활시기가 부활의 가장 큰 결실인 성령강림 대축일을 지내면서 끝났다. 이렇게 부활시기가 끝난 후 바로 삼위일체 축일을 지내는 것은 모든 구원질서의 원천은 삼위일체이며, 세상의 구원업적은 바로 삼위일체의 업적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는 창조와 역사를 통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의 강생과 파스카 신비, 그리고 성령강림의 신비가 발하는 빛들이 삼위일체에서 구원의 업적이 이루어졌음을 이해할 수 있다. 시인 단테는 “신곡” 천국 편 제33곡 85-87에서 내세에서의 상징적인 모험 여행의 결론으로 모든 것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에 귀결시키고 있다: “그 깊이 속에서 나는 보았노라. 조각조각 우주에 흩어져 있는 것들이 사랑으로 한 권에 엮어져 있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신학적인 삼위일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신비를 전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신명 4,39). 주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랑의 책임을 충만히 지고 계신 분으로 나타난다.
사도 바오로는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즉 우리가 ‘하느님의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아버지라 부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에 함께 하므로 하느님의 생명에 함께 참여한다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의 생명에 신비롭게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아들의 차원으로 우리가 들어갔고, 그 때문에 우리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즉 아버지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서 부르고 계신 그 이름, “아빠!”를 우리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 신비에 참여하고 있다면, 이제는 그 때문에도 “삼위일체”가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거처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우리가 “새로운 인간”(갈라 6,15; 2코린 5,17 참조)으로 “변화”하고 우리의 생활이 윤리적, 영적으로 변화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삶 속에서 항구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노력에 성령의 이끄심을 우리는 체험할 수 있을 것이며,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기쁨을 언제나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아버지”로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그분께 우리 마음을 열어놓는 자세가 필요하다.
복음에서는 명확하게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고백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라.”(19절)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세례성사는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고백과 함께 그 신비를 기념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께 종속되는 그런 멍에와 같은 것이 아니라, 성 삼위께로 가는, 그 신비에 참여하는 움직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개인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가 이 신비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을 예수께서는 하시고 계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을 가르쳐라!”(19-20절). 이렇게 이루어진 공동체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봉헌된 믿음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의 신비에 참여하여 그 생명을 누리는 이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알리고 생활의 증거로써 온 세상에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우리의 삶이 그러해야 한다. 영광을 받으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20절)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임마누엘”로서 우리를 아버지께로 성령 안에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우리에게 베풀어진 구원의 은총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자기 확산적 사랑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완전한 사랑은 하나가 되어, 서로가 주고받는 사랑이 완전한 모습이며, 그 사랑은 당신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창조와 구원의 역사로, 그리고 아들의 강생과 파스카 신비로, 그리고 성령강림으로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다. 이 구원의 신비를 다시 한번 묵상하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날이다.
이제 우리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 진정한 친교를 나누려면, 우리의 삶이 삼위일체적인 삶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셋이면서 동시에 하나라는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여러 식구로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있다. 분명하게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고, 아들은 아버지가 아닌데,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이시다. 즉, 사랑 안에서 하나라는 것이다.
우리의 가정에도 우리 가족 사이에도 진정한 사랑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여럿이라도 사랑 안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사는 것이며, 그 신비를 체험할 수 있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이다. 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우리의 삶 속에서 깨달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조욱현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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