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다음 주 월요일(9/9)은 '제 2차 삼위일체 하나님 특강 및 만찬 파티' 준비 및 진행 관계로 인해 '21세기 두란노서원' 등을 중심으로 한 페이스북과 홈페이지와 유튜브 상의 게시 및 공유가 어려운 상황이기에 참 죄송스럽고 미리 양해를 구하며..
혹 여러 이유로 그와 유사한 내용들이 필요한 분들은 페이스북('양범주' 검색), 홈페이지(Daum검색에서 '행복카페교회' 들어가서 '리바이벌 센터' 게시판), 유튜브('양범주목사의 두란노서원' 검색)에 대략 2년 정도 분량이 잘 보관되어 있고 그 누구든, 그 어디서든, 그 어느 부분이든 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게 되어 있으니 활용 및 참조해 주시길 원하고 부탁드리며,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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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는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우선 오해하거나 착각해서는 안 되는 부분은 행함이라는 것이 구원에 참예케 됨에 있어서는 그 어떤 경우에라도 내세울 수 있는 기준이라거나 방법일 수는 없다는 것인데..
바꾸어 말해 행함으로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다는 여지나 고려나 주장이나 연구 등에 있어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세계, 구원의 세계, 복음의 세계에 있어 완전히 오해함과 함께 생각 이상으로 무지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참으로 그러한 구원에 있어서는 오직 한 가지의 경우와 통로 외에는 달리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다름 아니라 말씀대로의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임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실상 전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인생들에 있어서의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원죄, 곧 죄악으로 인해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부분은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서 살아가는 동안 날마다 순간마다 범하게 되는 머리털보다도 더 많은 죄악들, 일만 달란트보다도 작을 수 없는 죄악들, 진정 억만 죄인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죄악들 뿐 아니라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랴,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부분들, 게다가 모든 인생들, 전 인류에 있어서 다 해당되고 포함되며 직결될 수 있어야 하고 해결까지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구원에 참예함인 것이기에..
오직 한 가지,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들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만이 유일하면서 전적인 길과 통로와 방법과 열쇠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게다가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바로 그 예수님을 말씀 그대로 구원자로 믿음으로 인해 실제로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이면서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 곧 정말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본질적으로는 더 이상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가 아니라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백성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진정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하시는 성령님까지도 반드시 함께 이어야만 하는 것이 구원에 참예케 됨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사실 직접적, 표면적으로 인간적인 행함이나 세상적인 공로 등은 구원에 참예케 됨에 있어 조금이라도, 잠시라도, 순간적으로 라도 내세울 수 있거나 끼어들 수 있는 여지 자체가 아예 없는 것입니다..
다만 처음에 구원에 참예케 되고 거듭나게 됨에 있어서의 믿음 뿐 아니라 모든 모양과 종류와 실체의 믿음에 있어서 그러한 믿음이 어떠한 믿음이고 얼마나 진정한 믿음인가가 중요하고 근본적이며 실질적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바로 그러한 제대로 된 믿음에 있어서,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정하시고 받으시며 기뻐하시는 믿음에 있어서 참으로 행함의 부분이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고 필수적이며 핵심적인 것임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돈벌이 등의 의도로 믿음이 없이, 또는 범죄를 은폐하거나 범죄에 악용하기 위해 교회에 오고 사람들을 속이면서 입술로만 믿는다고 얼마든지 고백할 수도 있는 것이고, 또한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대제사장들 등과 같이 독사의 새끼라고 까지 불릴 정도의 외식과 위선의 거짓 믿음도 있을 수 있는 것이며, 게다가 믿음의 공동체에는 함께 있으나 구원과 관계없는, 곧 알고 보면 가라지 신앙도 있는 것이고, 심지어는 사탄이 광명한 천사의 모양새로 악용하는 사례들도 적잖이 있을 수 있는 것이기에..
믿음에 있어서 행함의 부분은 많이 중요하고, 사실은 원론적으로는 따로 분리할 수 있는 사안 자체가 아닌 것이며,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따지고 보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까지 할 수 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제대로 된 믿음인 것은 맞지만 아직 행함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어린 신앙이거나 실제로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인 것은 맞지만 부족과 허물과 실수들 투성이의 연약한 신앙이거나 인간적, 세상적으로 볼 때 믿음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의 겨자씨 정도의 신앙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인데 실상 그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정확하게 다 아시는 것이며..
특히 시간과 공간들, 상황과 형편들, 시점과 기회들, 제한과 한계들 등에 따라 그러한 믿음이, 곧 행함과 관련해서 제대로 확인하기 힘들거나 표출될 수 있는 타이밍이 안 되거나 안 되었다고 해도, 특히 처음의 믿음에 있어서야 말로 대체로 행함의 부분을 잘 확인하기 힘들 수 있고 아직 시간과 상황과 여건들 등이 갖춰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시점일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모든 면들을 초월해서 그 중심을 보시는 것이고, 시간과 한계와 불가능들까지 뛰어 넘어 어떤 식으로든 행함의 부분까지 모르실 수 없는 것이며, 우리 인생들의 이성과 상식과 제한들을 넘어 어떻게든 감안하시는 것이고, 사실상 잘 통찰해 보면 원론적으로는 창세 전부터 다 아시고 뜻하시며 계획하시고 예정하시며 인도하시고 견인하시는 부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믿음의 세계에 있어서, 모든 믿음의 일들에 있어서, 그리고 그로 인한 생생하고 강렬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제대로 된 믿음,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그에 있어 어떤 식으로든, 얼마만큼이든 간에 행함과 별개일 수 없는 것이며, 정확하게 말하면 겨자씨만큼이든지 금강석과 같은 정도든지 간에 어쨌든 말씀대로의 행함인 것인데 그렇다고 쉽거나 인간적, 세상적인 힘으로 온전히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특히 아래 본문에서와 같은 야고보서의 주 대상들과 같이 이미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하루하루 살아감에 있어서 행함까지 고려된 진정하고 제대로 된 믿음,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됨에 있어 반드시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야 제대로 죄악들, 악한 세력들, 온갖 유혹과 시험들과 싸울 수 있고 이길 수도 있는 것이며,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참회하며 돌이킬 수도 있는 것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가장 최우선으로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증거하며, 실제로 어떤 식으로든, 얼마만큼이든지 간에 능히 행할 수도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좁을 길을 가고 십자가의 길을 가며 그 어떤 시련과 손해와 박해들, 심지어는 목숨까지 위태해 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말 철저하게 실천할 수 있는 견고하고 장성하며 강한 군사와 같은 믿음까지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2:26)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9월 7일(토)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