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간 박사' 서울 의대 지정용 교수는 B형 간염 백신 개발에 한창 열을 내고 있었다.
연구하려면 간염 환자 피가 무척 필요했지만 조달에 문제가 없었다.
인구 10% 이상이 B형 바이러스 보균자인 데다 피를 팔고 사는 매매혈(賣買血)을 하던 시절이었다.
주사를 맞고 한 달에 한 번씩 5cc를 뽑아주면 헌혈한 값만큼 돈을 주겠다는 김 박사의 제안에
피 팔러 온 사람이 줄을 섰다.
그렇게 해서 백신이 나왔고 비로소 'B형 간염 왕국'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많은 이가 A형과 B형 간염은 백신이 있는데 왜 C형은 없는지 의아해한다.
간염 바이러스는 발견된 순서대로 A.B.C.D..로 이름을 붙는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A.B.C다.
C형은 A.B형과 달리 형태가 변화무쌍한 RNA 바이러스다.
변하지 않는 원형의 항원이 없어 항체 백신을 만들기 어렵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도 같은 유형이어서 백신이 없다.
독감 인플루앤자도 매년 항원이 바뀌어 겨울마다 새 백신을 맞아야 한다.
이왕 병에 걸릴 거면 미국 사람이 많이 앓는 병에 걸리라는 말이 있다.
돈 많은 미국에서 언젠가는 좋은 치료제가 개발되기 때문이다.
에이즈도 결국 완치에 아르렀다.
C형 간염도 미국 제약 회사들이 혁신적 약물을 최근 내놓아 완치율이 100%에 가깝다.
석 달에 1억원이 드는 그치료제를 무상으로 받는 임상 시험이 국내에서 진행될 때 환자들 사이에선
'신약 로또'라고 불렀다.
시판 후 약값은 2700만원까지 떨어졌다.
예전부터 감염 내과 의사들은 이발소에서 면도를 받지 않았다.
대중목욕탕에 놓인 손톱깎이도 쓰지 않는다.
앞선 누군가가 C형 간염보균자일 수 있고 면도칼이 제대로 소독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작은 상처에서 나오는 극소량 피에도 바이러스가 묻어 나와 상처를 통해 감염될 수 있다.
일회용 기기가 아니면 문신이나 피어싱도 안 된다.
C형 간염 감염자와 콘돔 없이 100번쯤 관계하면 미세 상처를 통해 전염될 수 있다.
요즘 여기저기서 C형 간염 무더기 감염 사고가 터진다.
의료진 부주의와 돌팔이 의료 탓이다.
국내에서 25만명 가량이 C형 간염에 걸린 줄도 모르고 지낸다.
그러다 60~70대에 간암.간경화 진단을 받는다.
누가 C형 감염자인지 의료진.환자 서로 모르니 부주의하게 지내다 사고 난다.
이참에 정부가 하는 40세와 66세 '생애 전환기' 검진에 C형 간염 검사를 넣자.
전 국민 감염 현황을 알아야 제대로 된 방역과 치료 대책이 나오지 않겠는가.
김철중 논설위원, 의료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