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7일(수, 고난주간)
* 시작 기도
(요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주님...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아들에게 주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는 세상의 힘과 권력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그런 파워와 힘이겠지만 오히려 아들에게 주신 권세는 죄를 대속하는 죽음이었습니다.
그 죽음이 곧 마귀를 멸하는 권세임을 이 죄인은 미처 알지 못하였습니다(요일 3:8).
나는 안다고 하면서도 눈이 멀고 귀가 멀고 생각이 우준했던 당시의 제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나를 잘 되게 하려는 죄인이었으며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제2의 아담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합니다.
주께서 당신의 공의로 나를 심판하셨고 사방이 깜깜한 영적 어둠에 빠진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덤은 나만의 무덤이 아니라 주님의 무덤이었음을 복음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그 복음이 나를 살렸습니다.
거기서 나의 무화과옷을 벗기시고 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셨습니다.
그 옷을 입고 이제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어 주님과 한 몸 됨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고난주간 셋째 날, 이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는 날 되어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눅 23:13-25
제목 : 예수는 넘겨주어(파라디도미)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17 (없음)
18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21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24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주고 예수는 넘겨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 나의 묵상
가룟 유다가 예수께 입을 맞추는 것을 신호로 하여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보낸 하속들과 성전경비대가 예수를 끌고 가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겼다.
예수를 넘겨받은 그들은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이 사람이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할 뿐 아니라 자칭 왕이며 그리스도라 한다고 고발한다.
빌라도는 넘겨받은 예수를 갈릴리를 관할하는 헤롯에게 보낸다.
헤롯은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였는데 그의 소문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터에 그를 통하여 무슨 이적 행하는 것을 볼까하여 좋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다만 침묵하시자 헤롯은 예수님을 희롱하고 난 후에 빌라도에게 다시 보냈다.
한편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을 다 모았다.
너희가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예수를 내게로 데려왔는데 내가 이 사람을 심문하여 보니 죄를 찾을 수 없다.
또한 헤롯도 죄를 찾지 못하여 나에게 도로 보냈다.
따라서 나는 그를 때려서 놓아 줄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모였던 무리들이 이 사람을 없애고 대신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소리 질렀다.
바라바는 민란과 살인으로 옥에 갇혀 있는 자이다.
그럼에도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고자 애를 썼지만 무리들의 소리 곧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소리가 빌라도의 결심을 이겼다.
이에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대로 바라바를 석방시키고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주어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였다.
요셉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형들의 시기와 음모로 인하여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는 형들이 깊이 파인 구덩이에 요셉을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 마침 이스마엘 장사꾼들이 지나가자 형들은 요셉을 죽이는 것보다 그들에게 돈을 받고 팔기로 하였다.
그래서 대상들에게 은 20개를 받고 팔았다.
아버지 야곱에게는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속였다.
한편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팔려간 요셉은 신실하게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또한 주인인 보디발 또한 잘 섬겼다.
그는 그곳에서 형통하여 종들을 관리하는 가정총무가 되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자 그 여인은 요셉에게 누명을 씌워 남편 보디발로 하여금 감옥에 처넣도록 하였다.
요셉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 왔고, 보디발의 아내의 누명으로 옥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고 그가 석방되어 바로에게 가거들랑 자기의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좀 풀어달라고 청탁을 하였지만, 그것마저 술 맡은 관원장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만 2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해석할 자가 애굽에는 없었다.
바로 그 때 술 맡은 관원장의 머리에 요셉이 생각났던 것이다.
바로에게 이야기하여 요셉을 데려왔고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애굽의 총리가 되어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하나님의 지혜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팔레스틴의 전역에 기근이 옴으로 결국 아버지 야곱의 집도 먹을 양식이 없어서 애굽으로 양식을 사러 올 수밖에 없었다.
형들이 양식을 사러 애굽에 왔고, 우여곡절 끝에 형들과 요셉은 상봉하였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언약하신 입애굽을 성취하게 하신 것이다.
한 사람 요셉의 인생은 억울함으로 점철되었으나 그런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되었다는 것은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의 죽음은 극히 억울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빌라도가 여러 차례 심문하였으나 예수님에게서 어떠한 죄목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게 무죄를 언도하고 석방시키는 것이 옳다.
그러나 빌라도가 유대 백성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유대 백성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어 소동을 피우는 것을 로마 정부가 가장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소동이 일어나면 자기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것이므로 그는 자기의 소신대로 하지 못하고 유대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결국 예수님은 빌라도의 허락과 함께 유대인들의 요구대로 십자가에 넘겨지게 되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라디도미’이다.
파라디도미는 ‘넘겨주다’란 뜻의 헬라어로서 25절에 빌라도가 예수를 넘겨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였다.
(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예수님을 파라디도미 한 것은 맨 먼저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은 30을 받고 넘겨 준 일이다.
(마 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30을 달아 주거늘
또한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파라디도미 하였다.
(마 27:1-2)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빌라도는 유대 백성들과 군병들에게 예수님을 넘겨주어 못 박게 내어주었다.
그런데 이들의 파라디도미는 역사적 사실일 뿐 복음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이다.
파라디도미가 복음이 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일이며, 또한 나의 죄로 인하여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준 일이다.
(행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그가 죽을 수밖에 없는 자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살리시고자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기로 작정하셨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이 육신적으로 십자가에 달리게 되신 이유는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들 그리고 빌라도가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담 자신의 범죄로 인하여 영 죽을 아담을 하나님께서 살리시고자 아들을 내어주시기로 작정하셨다.
무엇보다 아담의 죄악은 결국 우리들의 죄, 아니 나의 죄로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세월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죽지 않으면 안 되셨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창세전 언약인 영생을 이루시고자 나의 죄를 대속하시는 아들의 죽음으로 대신하신 것이다.
나는 오늘 목록적인 죄로 인하여 주님 앞에서 내 가슴을 치며 후회도 하고 아파하며 회개한다.
그러나 셀 수 있는 목록의 죄, 행위적인 죄 이전에 죄의 세력에 내가 사주를 받아 거기에 놀아난 그 자체가 더 큰 죄임을 깨닫는다.
나는 죄악덩어리 그 자체이다.
생각하는 것이 죄요, 보는 것이 죄며, 만지는 것 듣는 것이 모두 죄이다.
그런 죄악덩어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주님은 그 모질고 험하며 참혹한 십자가를 지셨다.
오늘 나는 내가 져야할 십자가 앞에 서 있다.
이제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자이다.
그런 나를 살려주셨기에 희희낙락하며 바퀴달린 십자가를 타고 다니며 즐기는 것을 이제는 내려놓는다.
십자가는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지고 가는 것이다.
나는 오늘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등에 업고 갔던 한 마리 새끼 나귀가 되어 이제 주님을 업고 가기를 원한다.
내 등에 업히신 주님은 나의 가장 존귀한 보배가 되신다.
나의 생명 되신 주님은 나의 전부이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혈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 보배피로 죄사함을 구한다.
내가 할 일은 오직 매일 매순간 날 구원하신 주님과 연합하여 찬양하는 일이다.
그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넘겨주어 죽게 하였는데, 주님은 어찌 그런 나를 살리셨습니까?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요, 나의 생각과 이성을 초월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이 시간, 나의 십자가를 지고 거기에서 죽습니다.
내 육신으로 행하는 모든 죄를 주님의 십자가로 못 박으셨사오니 이제는 거기서 그 모든 죄를 끊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참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참 것의 그림자만 좇는 자가 아니라 참됨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바라보며 누리는 자 되게 하소서.
그 안에 복음의 본질인 영생이 있습니다.
내가 영생이 있는 아버지품에 거하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