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호화 리조트 아래에는 핵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연방의회 의원들이 피신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비밀 벙커가 숨겨져 있다. 이 비밀 프로젝트를 책임진 폴 뷰거스가 지난 1일(현지시간) 같은 주 리치먼드에서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9일 보도했다. 고인은 요양시설에서 눈을 감았다고 딸 낸시 델 프레스토가 확인했다.
20년 동안 군에서 복무한 뒤 1971년 프리츠란 이름으로 알려진 뷰거스는 웨스트버지니아주 화이트 설퍼 스프링스의 알레게니 산맥에 둥지를 튼 그린브라이어 리조트에 도착했다. 그는 포사이스 어소시에츠란 이름의 회사 지역책임자로 신분을 위장했다.
기술자로 파트타임 일을 한 적이 있는 그는 전선과 TV 세트, 다른 전자제품들을 대통령들과 의회 의원들, 해외 사절들이 묵었던 이 리조트에 공급했다. 하지만 그의 진짜 임무는 암호명 '프로젝트 그릭 아일랜드'를 총감독하는 일이었다. 이 계획은 핵전쟁 이후 의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핵탄두가 탑재된 소련 미사일이 워싱턴 DC에
보통 월마트 점포만한 크기의 이 벙커는 1950년대 말과 쿠바 미사일 위기가 터진 1962년 사이에 건설됐다. 그린브라이어의 언덕배기 213m를 파고 내려가 가장 큰 것의 무게가 28t에 이르는 방폭 문들로 안전을 보장했다. 콘크리트 담들은 60~90cm 두께였다. 무려 1100개의 침대가 열을 지어 갖춰져 있었고 하원 의원 435명과 상원 의원 100명이 따로 모일 수 있는 회의실이 있었다. 물론 양원 합동 회의를 할 수 있는 방도 따로 있었고, 한 번에 400명이 식사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도 있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 커뮤니케이션 센터가 있었고, 치과와 수술실을 갖춘 메디컬 센터도 있었다. 한 창고 방에는 폭동 진압 무기들을 갖추고 있었다. 화장장 역할로 쓸 수 있는 소각장도 있었다. 디젤과 증기로 작동하는 발전기들, 물, 에어컨, 필터링 시스템도 있어서 40~45일은 거뜬히 버틸 수 있게 설계됐다.
옛 소련이 핵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지배했던 시절이다. 주거민들과 커뮤니티 낙진 대피소가 서둘러 건설됐고, 학생들은 책상 아래 몸을 숨기면 방사능 오염을 막을 수 있다는 교육을 받았다.
30년 동안, 문제의 벙커는 비밀로 있었다. 건설 중일 때, 그린브라이어는 곁채를 더했는데 지하 벙커를 은폐하는 용도였다. 2층 벙커의 일부는 의료 및 자동차 컨퍼런스에 쓰이는 전시장으로 위장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이 건물의 정체가 드러난 것은 1992년 5월 31일 일간 워싱턴 포스트 기자 테드 굽이 'The Ultimate Congessional Hideaway'란 제목의 기사에서 종말의 날 피난소의 실체를 폭로하면서였다.
그런데 이 벙커의 실효성에 대해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린브라이어 리조트는 워싱턴 DC에서 자동차로 4~5시간 걸리고 비행기로도 한 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는데 핵탄두가 탑재된 미사일들이 타깃에 도달하는 데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핵공격이 시작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모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이보다 훨씬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위협 자체가 줄어들었고, 굽의 기사가 실리기 다섯 달 전에 이미 소련은 붕괴돼 냉전은 막을 내렸다. 사실 30년 동안 이 시설이 비밀에 부쳐졌던 것은 리조트에 고용된 주민들이 일자리를 잃을까봐 함구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곧바로 벙커는 가동 중단됐으며,1995년 가이드 투어를 실시하는 냉전 박물관으로 전환됐다.
고인은 2006년 은퇴한 뒤 71년을 해로한 부인 로즈메리와 함께 21명의 손주와 12명의 증손주를 거느리는 가부장 노릇에 전념했다. 그는 화이트 설퍼 스프링스 커뮤니티를 사랑해 현지 관리들과 함께 마을 도서관을 짓는 데 열심이었다. 1987년 완공되자 그는 여러 차례 신탁이사회 의장 직을 수행했다. 그는 스포츠 팀 코치에도 열심이었고 로즈메리와 함께 학교 행사들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