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태원(51) SK그룹 회장, 최재원(48) 부회장의 비자금 수사와 관련 검찰은 베넥스인베스트먼트의 대표이사 김준홍(46)씨와 무속인 김원홍씨 두 명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무속인 김원홍씨는 최 회장의 선물투자를 적극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에선 “대체 얼마나 용한 역술가이기에 재벌이 믿고 수천억원을 ‘몰빵’하는지”에 집중되고 있다. 선물투자와 비자금, 횡령 사실 여부는 물론이거니와 뿌리 깊이 내려 있는 무속인과 재벌 간의 ‘끈적한 협력관계’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편집자 주>
2009년 ‘역술인 X파일’ 유출, 그룹은 물론 정·재계 ‘발칵’
재벌들 사주와 관상 ‘관심’ 면접 때 무속인 동석시키기도 [주간현대=김길태 기자] SK그룹 18개 계열사는 2007년부터 최근까지 약 2800억원을 베넥스에 투자했다. SK그룹 상무 출신인 이 회사 대표 김준홍씨는 최 회장 형제와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는 박성훈(44) 글로웍스 대표와 함께 주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지난 5월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검찰은 SK 계열사 투자금 2800억원 가운데 약 1000억원이 김준홍씨의 차명계좌를 통해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김원홍(50) 전 SK해운 고문의 계좌로 흘러들어간 흐름을 포착했다. 즉 SK 총수 일가가 계열사 투자금을 빼돌려 개인 선물투자에 썼다는 것이 이번 수사의 밑그림인 셈이다.
6300억 입금SK해운 고문을 지낸 역술인 김원홍씨가 운용해온 선물투자 계좌의 실체가 밝혀졌다. 한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 계좌엔 3450억원에 달하는 최태원 SK 회장과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형제의 자금이 들어 있었다고 보도했다. 계좌 내역을 통해 김씨의 투자 운용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특히 계좌엔 손길승(70) 전 SK 회장 이름으로 유입된 최 회장 자금도 섞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SK 최고경영진의 횡령 의혹 수사에 가속도가 붙었다.
지난 10일 한 언론에 의해 입수된 김씨의 선물투자 계좌 내역서 등에 따르면 김씨의 금융권 계좌는 모두 98개며 외부로부터 이 계좌에 순 유입됐던 자금은 총 6300억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3개월 이상의 자금 추적 작업을 거쳐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6300억원 중 1차로 출처가 확인된 돈은 최 회장으로부터 유입된 자금 2260억원, 최 부회장 명의로 입금된 자금 1190억원을 포함해 모두 4800억원이었다. 최 회장 형제 명의의 자금 3450억원 중 일부는 주식 매각 자금 등 출처가 확인됐지만 거의 대부분인 3000억원가량은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왔는지가 불분명한 상태다.
또 이 언론에 의하면 340억원은 최모씨로부터 넘어온 자금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추가 조사를 거쳐 최씨가 최 부회장의 고교 동기로 최 부회장에게 계좌 명의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최씨는 앞서 최 회장이 미래저축은행으로부터 800억원의 차명대출을 포함해 1000억원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명의를 빌려줬던 인물이기도 하다. 구모씨의 명의로도 190억원이 입금됐다. 특히 221억원은 손 전 회장의 명의로 돼 있는데 이 중 180억원이 최 회장의 자금인 것으로 조사됐다. 손 전 회장은 앞서 국세청의 SK 세무조사 과정에서 이 돈의 존재가 확인되자 “최 회장, 김씨와 의논해 내 명의로 자금을 입금했다”고 진술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소액 자금은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 등 김씨의 지인 20여 명 명의로 입금됐고 각각 1억~10억원 정도였다. 6300억원 중 나머지 1500억원은 출처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중 400억원은 입금 시점이 너무 오래돼 추적이 불가능하며 1100억원은 추적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검찰은 일단 SK 18개 계열사가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투자한 2800억원 중 992억원이 김준홍 대표의 차명계좌를 거쳐 김씨 계좌로 흘러간 사실까지 확인하고 이 돈의 주인이 최 회장인지를 캐고 있다.
김원홍씨는 5000여억원으로 추산되는 최 회장의 선물에 투자했다가 3000억원대 손해를 본 인물로 알려진 것. 검찰과 국세청, SK그룹 등에 따르면 최 회장측은 최근 6년여간 수백차례에 걸쳐 김씨의 계좌로 5000억원을 송금했고 김씨는 이 돈을 주식 선물에 투자했다. 투자 초기만 해도 김씨에게 보낸 돈은 대부분 최 회장의 개인 자금이었지만 투자 손실이 커지며 베넥스 등 계열사를 동원해 투자금이 유입됐다는 것. 최 회장은 김씨를 통해 선물투자 손실을 보이면서도 자녀들에게 “아버지처럼 대하라”고 말할 정도로 신뢰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연결고리이번 사건의 핵심 연결고리인 김원홍씨는 경북 경주 출신으로 지난 1990년대 즈음 한 증권회사에 근무하다 역술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재력가들의 선물투자를 맡아 고수익을 내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전해진다. 이에 최 회장은 김씨를 SK로 영입하며 수차례 큰 성과를 올린 뒤 SK해운 고문으로 임명했다. SK해운은 손길승 전 SK 회장이 선물투자를 해서 5000억원대 손실을 입자 분식회계를 통해 8000억원 가까이 지원한 곳이다. 일부 증언에 의하면 김씨는 손 회장의 당시 거래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현재 해외에서 ‘스프링인베스트’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들의 관계언뜻 보기엔 다소 이상한 조합으로 보이지만, 사실 재벌 및 대기업 총수와 무속인의 관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것이 공통된 분석이다. 그룹 오너들이 인사나 대형 프로젝트, 사옥 이전 등을 결정할 때 역술인이나 무속인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일부 전언이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사주와 관상에 관심이 많아 면접 때 무속인, 역술인을 동석시켰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이다.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시작된 전통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오너가 역술인에 의해 중대사를 미신으로 결정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어 쉬쉬하지만, 삼성전자는 지난 2005년 용인시가 경기도 기흥(器興)의 명칭을 구흥(驅興)으로 바꾸려 하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삼성은 기흥은 ‘그릇이 흥한다’는 의미를 지닌 데 반해 구흥은 ‘당나귀가 흥한다’는 의미라 내심 탐탁지 않아 했다는 후문이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또한 ‘역술 경영’의 대표 주자다. 사주와 관상을 보고 사원을 뽑았다고 전해진다. 애초에 사업을 시작한 것도 역술인의 “사업 한번 해보라”는 권유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 2009년에는 ‘부산 박도사’라고 불리는 유명 역술인 고 제산 박재현씨의 자료가 일부 유출돼 재계가 크게 들썩인 일도 있었다. 사주풀이를 하다 보면 친모나 이복형제 등의 은밀한 사생활이 언급될 수밖에 없는데, 전직 대통령, 재벌총수, 국회의원, 대법관, 장관, 교수, 의사 등 각계 유력인사들의 사주풀이와 은밀한 사생활 정보까지 담은 ‘역술인 X파일’이 유출되면서 몇몇 그룹은 물론 정겴怜瘟?발칵 뒤집혔다.
부산 박도사
지난 2009년 9월 국내 역술계의 전설로 불리는 ‘부산 박도사’ 고 박재현씨가 생전 자신을 찾았던 유명인들의 운세를 기록한 간명집이 불법 복제돼 수백만원에 암암리에 유포되는 일이 있었다. 이 책자에는 그가 수십 년 동안 운세를 봐줬던 수천 명의 사주풀이가 담겨 있으며, 정·재계 유력인사들의 ‘은밀한’ 정보까지 담겨 있었다. 지난 2000년 타계한 박씨는 자강 이석영, 도계 박재완과 함께 역술계의 전설적 ‘빅3’로 꼽혀온 인물로, 지난 박정희 정권 때부터 1990년대까지 정·재계 유력인사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기업 운영이나 정책 결정에도 조언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앞서 언급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 신입사원 면접시험에 매년 참여해 관상을 본 뒤 그룹 총수에게 이를 알려 당락을 좌우했던 일화로 유명하다.
▲ 지난 2009년 ‘부산 박도사’ 고 박재현씨가 생전 자신을 찾았던 유명인들의 운세를 기록한 간명집이 유출되면서 몇몇 그룹은 물론 정?재계가 발칵 뒤집혔다. ©주간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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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자신을 찾은 이들의 운세를 풀이한 내용을 자필로 꼼꼼히 기록했는데, 그 방대한 자료가 ‘명리연구’ 등의 제목으로 10~30권 분량으로 제본돼 역술인들 사이에서 거래됐었고, 일부는 인터넷으로도 나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 언론이 입수한 ‘명리연구’복사본에는 박씨가 운세를 봐준 고객들의 사주와 부부운, 자식운, 재물운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A회장의 운세 풀이에는 “어두운 세상을 명명하게 밝혀주는 등불 역할을 한다”며 “51~55세까지는 ○○사업, △△사업 등으로 사업이 분망하고… 60세부터는 30대 재벌 그룹에 등명(登名)이 된다”고 적혀 있다. 사주풀이 외에도 고객의 신상 정보도 간략히 기록돼 있다. 특히 A회장, B회장 등 재벌 총수를 비롯해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과 함께 이들의 사주와 “모(母)가 둘이다”, “이복형제가 장성(將星)이다” 등의 민감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들 중 국회의원, 대법관, 장관, 대학교수, 의사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고 한 전직 대통령의 사주도 담겨 있었다. 당시 익명을 요구한 한 역술인은 “이 자료는 과거 고관대작들의 운세가 총망라된, 역술계의 ‘X파일’ 격이다”고 말했다.
역술인 X파일또한 박씨는 박정희의 죽음을 예언했다가 남산에 끌려가기도 했었다. 조용헌의 저서 <담화>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10월 유신’을 계획하고는 박씨에게 사람을 보내어 물어보니, 박씨는 담뱃갑에 ‘유신(幽神)’이라는 글씨를 썼다. 즉 “유신(維新)을 하면 유신(幽神), 곧 저승의 귀신이 된다”는 무서운 예언이었고, 그는 곧바로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호된 곤욕을 치러야 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에게 피살돼 박씨 말대로 저승귀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야기 명리학’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포항제철의 박태준 회장은 헬기를 타고 박씨가 살고 있던 서상까지 제산을 만나러 온 적이 있다. 박 회장과 박씨는 같은 박씨라서 인간적으로 서로 친한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박 회장이 헬기를 타고 직접 박씨를 만나러 왔던 일은 몇몇 일간지에서 이를 기사로 보도하는 등 큰 이슈를 낳기도 했다.
이 밖에 박씨는 고 이병철 회장 등 재계를 비롯한 각계 유력인사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그가 남긴 ‘역술인 X파일’은 정·재계를 바짝 긴장케 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점에 빠지는 것일까. 일반인들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재계 윗선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렵고 파급력이 막강한 중요한 순간을 매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역술인은 “그만큼 중압감이 크다는 소리다”며 “의외로 이들이 사기 등에 휘말리는 사례도 많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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