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제가 부처가 된다고 해도 제 나라의 보살들은 물론 작은 공덕의 보살들조차도 도량 가운데서 무량한 광색을 내뿜고 있는 높이 400만 리의 보리수나무를 보지 못한다면 저는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
초기불교에서 신앙의 대상은 여러 형태가 있었다. 불상도 있었고 법륜도 있었으며 탑과 보리수 나무도 있었다. 그러다 대승불교가 나타나면서 불상 하나로 굳어졌다.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200여 년 뒤에 인도에는 아소카왕이라는 위대한 왕이 나타나 전 인도를 통일하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인도 땅 대부분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뒤늦게 전쟁의 참상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한 그는 불교를 시리아 이집트 그리스 타이 미얀마 그리고 스리랑카에 전파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즉 한 지역에 머물러 있던 불교를 동서양 전 세계로 퍼뜨리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때가 기원전 270여 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원후 270여 년이 지난 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변두리를 돌던 기독교를 정식으로 로마종교로 공인하였다. 두 종교 다 재세하던 황제에 의해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아소카 황제의 아들이면서 상좌부불교의 장로로 있던 마힌다가 바다를 건너 스리랑카를 방문하면서 거기에 불교가 전파되었다. 그때 스리랑카 왕 데바남피야 티샤왕은 바로 불교에 귀의했다.
마힌다가 부다가야에서 갖고 온 특별한 물건이 있었다. 바로 부처님이 그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이뤘다는 보리수나무가지였다. 티샤왕은 스리랑카에 있는 자생 보리수나무를 모두 뽑아 없애고 마힌다가 갖고 온 보리수나무를 전 국토에 심도록 하였다.
그래서 현재 스리랑카에 있는 일체의 보리수나무는 마힌다가 갖고 온 하나의 가지에서 식재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함부로 보리수나무를 훼손하는 것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부다가야에 있던 원목인 보리수나무는 600여년 뒤에 고사했다. 그래서 역으로 스리랑카에 있던 보리수나무 가지를 되가져와 다시 심은 것이 현재의 부다가야 보리수나무라고 한다.
불교는 보리수나무를 대단히 신성시한다. 원래는 반얀나무였는데 석가모니불이 그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이뤘다고 해서 그 나무까지 동시에 보디Bodhi수가 되었다.
극락세계에 가면 중앙에 이 보리수나무가 서 있다. 크기는 말할 것도 없고 높이도 굉장하다. 밑둥치의 둘레는 5천 유순이고 가지와 잎은 사방으로 20만 리나 뻗혀 있다. 거기다 높이는 장장 400만 리다. 나무가 뿜고 있는 빛깔과 자태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우람하고 아름답다.
그뿐만 아니라 그 나무 가지마다 진귀한 보석인 월광마니보주와 지혜륜보주와 보배영락이 수없이 달려 있다. 그래서 보리수나무에 보석이 주렁주렁 달렸다고 해서 寶樹라고 이름지어졌다. 그 보석들의 광채가 서로서로 비추다 보니 수시로 백천 색깔로 변하면서 끝없이 반짝이고 있다.
그것을 억조분의 1로 축소하고 또 축소한 모조품이 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크리스마스 때 세우는 성탄트리다. 거기에 금종을 달고 별로 치장한 것을 보면 이 보리수나무를 모방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보리수나무는 깨달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극락세계의 중생은 그 누구든지 그 보리수나무를 보면 깨달음의 마음이 가일층 일어난다. 그러므로 그 보리수는 모든 이들에게 깨달음의 증상연을 안겨 준다.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댓글 보수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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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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