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한줌, 바람 한줌과 함께 한 함양
- 52차 정기답사 <'함양상림과 화림동정자 산책'> -
모처럼 파란하늘에 조각구름이 박혀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듯
빠른 속도로 유영하는 민산관광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맑고 푸른하늘은
언젠가 보았던 외갓집 하늘이었다.
아스팔트에 미끄러지는 타이어의 마찰음 마져 경쾌하게 들리고,
가을 바람결에 나뭇잎이 조용히 흩날리는 여유로운날.
마음도 바람결 따라 함양으로 날아가 본다.
만추지정에 겨워 가을에 흠뻑 취해 보려는 모놀가족들에게
최치원 선생께서 하루만에 나무를 구하고, 하루만에 심어 조성했다는 상림(上林)숲과
좌 안동 우 함양이라 불리웠던 선비마을 함양을 소개하려는
박순미 경남 문화유산 해설사님과 반가운 상면을 하고
그가 우리에게 쏟아 낼 조금은 생소한 '함양'에 대한 소개가 사뭇 궁금해진다.
개별 차량으로 합류한 지방 모놀가족들과 함께 짧은 이동을 하니
본디 함양읍 남문으로 있다 상림으로 옮겨와
더부살이하는 이층 누각의 함화루가 숲의 기세에 눌려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다.
뜻밖의 손님들의 방문에 놀란 듯,
어제 마신 술의 취기가 여직 가시지 않았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있는 모습을 한 채
벌떡 일어나 모놀가족들을 맞이한다.
만추만홍(晩秋滿紅),홍해황엽(紅海黃葉)
바라보기만 해도 메마른 가슴에 따뜻한 불을 지펴줄 것처럼
타오르는 가을단풍.
이슬이 찬 공기와 만나 서리가 맺힌다는 한로(寒露)를 지나면
설악에서부터 단풍이 불이 붙으면 남으로 남으로 하산하며 백두대간 등 줄기를 타고
순식간에 온 산을 불태우련만
그러나
분명 시기적으로 가을인데, 단풍잎들이 정상적이지 않다.
뉴스 시간에는 연일 붉게 물든 단풍 명산의 모습을 방송해야 함에도,
가을 가뭄으로 단풍이 별로 이쁘지 않고 말라간다는 소식만 간간히 들릴뿐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들로 인해 이제 계절이 변하는 모습조차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음에 이내 마음이 울적해진다.
미당선생께서는 이맘때를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 계절'이라 하셨거늘
올해는 왜일까?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고 지친 나머지 계절의 변화도 그 쉼을 건너뛰었나 보다.
함양상림.
천년이 된 숲.
우리나라에 이런 오랜 숲이 평지에 조성되었다는것도 놀랍지만
이렇게 잘 보존된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채 단풍이 들기전에 낙엽이 카펫처럼 깔린 가을숲길.
낙엽을 밟으며 함께하는 모습들이 정겹게 다가서고 숲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레임이 앞선다.
천백년전,
당시 장마가 들면 하천의 범람으로 함양은 피해가 커
태수로 부임한 최치원 선생은
하천에 둑을 쌓고 참나무를 심어 홍수 피해를 막았다고 한다.
문장가로만 알고 있었던 최치원 선생의 놀라운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선생께서는 하천에 참나무 숲을 조성하였는데,
거기에는 더욱 깊은 뜻이 있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참나무는 "꽃이 피는 5월에 비가 많으면
농사는 풍년이 들지만, 대신 열매인 도토리는 적게 달리고
반대로 가뭄이 든 해는
충분한 일조량으로 도토리는 풍년이 든다." 는 것이다.
참나무는
목재로서도 최고이고,
도토리는 작은 동물의 먹이가 되어 다양한 동물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활엽수 이파리가 낙엽되어 땅을 기름지게하며,
수분 함유량이 많아 홍수와 가뭄 피해를 줄이고,
숯을 만드는 데에도 가장 좋은 나무이므로,
숯을 많이 쓰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경제성이 뛰어난 나무이지 않던가?
게다가, 가뭄이 들었을 때 도토리는 오히려 풍년이 든다하니 구황 식품으로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천년 전의 정치가는 나무를 심고 가꾸어 지금 우리에게 귀한 보물을 남겨 주었다.
지금 있는 나무 조차 보호하지 못하고 훼손하기 십상인 우리의 모습과 비교가 된다.
떨어진 낙엽의 바스락거림에 행여 다람쥐가 놀랄세라
'상림'이 잘 보존되어 조상의 지혜와 함께 후손에게 길이 길이 전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상림숲 한 가운데 석불이 자리잡고 있다.
원래 함양읍 이은리(吏隱里) 냇가에서 1950년경에 출토된 것을
이곳 상림으로 옮겨 놓았는데, 불상 주위 약 300m 지점에 망가사(望迦寺)라는
절이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이 절의 유물로 추정된다고 한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갖추었으나 현재 두 손이 떨어지고 없으며
가슴 아래는 시멘트로 처리하여 다소 손상되었음에도
육계가 단정하고 두 귀는 길며, 굵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선명하고
머리는 소발(燒髮)이며, 얼굴은 원만하여 다소 토속적인 불상으로
상림숲의 기운을 받아 그런지 더욱 편안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또한 1923년에 최치원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웠다는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라는 비석도 서 있다.
비석 내용을 설명을 들으니 최치원 선생께서 함양고을을 다스릴 때 백성이 죄를 지으면
벌을 주지 않고 덕으로 감화시켰다는 내용이 새겨 있었으며,
또한, 선생께서는 홀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어찌나 효성이 지극한지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비석의 오른쪽에는 기가 막힌 수피를 갖고 있는 까치 박달나무가 비스듬히 서서
차가운 비석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었으며
그 오른쪽에 사운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들어가 앉아
잠시나마 최치원 선생의 덕을 그려보았다.
숲이 바람에 실려 다가와 조용히 이야기를 건넨다.
숲과 관조하며 이야기하는 인덕원 참새님의 바램은 무얼까?
그 역시도 다른 모놀 가족들에게 숲이 되기를 기원하는 나무이지 않던가?
숲 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 제 몫을 다하려는 듯
물레방아의 고장답게 물레방앗간이 나오고,
새로 조성한듯한 인위적인 길을따라 걸으니 맨발 지압 산책로와
제 역활을 다한 채 흉물스럽게 말라 비틀어져 있는 연지의 연잎이 내년을 기약하라 한다.
함양상림을 떠나 지리산 전망대를 찾아 가는 길.
해발 750m의 오도재라는 험한 고개를 넘는다.
산비탈을 따라 구불구불 연결되는 도로가 무척이나 가파르다.
뒤 따르는 개별차량들의 헐떡거림을 눈에 담을 양,
뒷자석에서 연실 셔터를 눌러대지만 흔들리는 버스안이라 만만치가 않다.
숨가쁘게 살아온 삶.
그 삶 속에 찾아오는 달콤한 휴식은 더 큰것을 얻을 수 있다.
기는 뱀처럼 일곱 굽이를 이룬 지안치를 지나 정상을 넘어 내려가다 보니
지리산 전망대를 만난다.
전망대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니 저 멀리 천왕봉을 비롯하여
제석봉, 새석평전, 벽소령으로 이어지는 큰산 지리의 수려한 능선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리산을, 아니 백두대간의 능선을 이렇듯 한눈에 펼쳐놓고 볼 수 있는
자동차도로가 과연 또 있을까?
어머니의 산이라고 곧 잘 비유되는 지리산.
저 멀리 지리산을 바라보는 소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머니의 품에서 갓 빠져나와 이 넓은 세상을 향해 웅비하려는 꿈틀거림을
품고 있지 않을려나....
모놀 울타리안에는 늘 나눔과 배려가 있다.
정성껏 키운 할미꽃을 모놀가족들에게 분양하는 개농님의 마음은
곱게 키운 딸을 시집을 보내는 아비의 마음일 것이다.
오랜 도시생활을 통해 고향이 그리워 고향에 안착을 한 그였기에
우리의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소담스러운 할미꽃은 항상 마음속에 머물것이다.
지리산 기슭, 계곡에 푹 파묻혀, 있는지 조차도 모를 목향산방(木香山房)에서의 점심식사.
고풍스러운 멋도, 그렇다고 웅장한 맛도 없는
주변의 풍광과도 조화로운 모습이 아닌 단촐한 건물이었지만,
육년여 준비끝에 개업한지 일년정도 되었다는 목향산방의 음식 만큼은
주인장 닮은 정성이 그윽한
맛도 멋도 깔끔한 한정식이었다.
다시 오던길을 되돌아 나와 함양읍으로 들어가니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이 함양태수를 지낼 때 이곳에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고
전해지는 학사루(學士樓)를 만난다.
원래는 동헌 앞에 있었으나 최근에 옮겨 놓았다 한다.
학사루는 조선 초기 김종직과 유자광에 얽힌 이야기로 무오사화와 관련이 깊은 누각으로
이야기를 빌려 소개하자면
김종직이 현감으로 부임하여 오래지 않은 어느 날.
학사루에 올라 벽에 걸린 편액을 보는 순간 얼굴빛이 변했다고한다.
유자광의 시 한수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불같이 화를 내고 당장 떼 내어 태워 버리라고 명령한다.
출신이 천하고, 남이 장군을 역모에 옭아 넣어 모함했다고 생각하여
유자광을 평소 멸시하고 싫어했다. 이 소식을 들은 유자광은 이를 갈았다.
세월이 흘러 연산군 때 유자광이 조의제문을 빌미로 무오사화를 일으키면서
죽은 김종직에게 부관참시라는 복수의 칼날을 들이 데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멸문지화를 당하는 불행의 씨앗을 여기서 잉태하였던 곳이기에
그 아픔이 고스란히 내 마음속에 전해지는듯 하여 누각 뒷편으로 자리를 피하고 만다.
학사루가 있는 길건너에 군청과 함양초등학교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고
초등학교 입구에는 어린이 십여 명이 감싸 안고도 남을 만한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천연 기념물로 지정된 이 느티나무 곁에
사또가 머물던 동헌과 객사는 모두 사라졌지만, 세월의 무상함과
옛 사람들의 발자취를 엿보게 하는 나무는 가을빛으로 옷을 갈아 입고있었다.
당시 현감인 김종직이 마흔이 넘어 어렵게 얻은 5살짜리 아들 목아(木兒)를
홍역으로 잃어버린 아픔이 배어있는 나무인지라 애잔한 그림자로 다가온다.
승진하여 함양을 떠나는 그는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보내버린 아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남기고 싶은 마음에
오늘날 기념식수를 하듯이 천년은 거뜬히 살 수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정성들여 심고,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훌쩍 가버린 아들인 '나무 아이(木兒)'의 짧은 삶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무오사화의 발단이 된 학사루의 현판과 함양읍성의 자취는 사라졌지만
힘있게 솟아 오른 느티나무의 수관부와 넓게 펼쳐진 가지가 지난날의 씁쓸한 역사가
차창 밖으로 스치듯 지나치고 있는듯하여 한참이나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고운 가을 햇살이 몽롱하게 눈부시다.
지곡면 개평마을 정여창 고택에 갑자기 알록달록 옷차림의 모놀 가족으로
인산홍해(人山紅海)를 이룬다.
일두 정여창은 조선 오현중 한분으로,
이 고택 역시도 일반 양반가옥과 마찬가지로 솟을대문, 사랑채, 안채, 아래채,
별당, 가묘, 곳간 등이 갖추어져 있었고
이 집은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인 조선 선조 때 후손 정덕대가 지었다고 전해오는데,
솟을대문에 걸려있는 5개의 충신 효자 정려패들이 오랜 전통을 말해주고 있었다.
정여창 고택을 들어가는 아담한 돌담길 옆 다 쓸어져 가는 시골집이 나의 눈을 잡아끈다.
돌담을 돌아서니 조그마한 배 과수원에서 낙과를 줍는 주인인듯한 아주머니께서
불쑥 찾아 온 낯선 여행객에게 경계의 빛도없이 수줍은 웃음으로 반긴다.
대뜸, 정씨 문중 작은집이라 소개하시며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건네는
달콤한 한쪽의 배 맛이 넉넉한 시골 인심을 엿 볼 수 있었다.
늘 시골의 삶을 동경하는 나에게 작은 정을 베푸심에 포근하게 다가선다.
1918년 윤대홍이 진양갑부 허씨 문중에 장가들어 부인 허삼둘과 함께 지은 집으로
경제적 실권을 쥔 안주인의 이름을 따라 허삼둘 가옥이라 부르는 것이 특이하다.
지금은 윤씨 고가라는 안내판이 허삼둘가옥이라는 이름과 같이 붙어있지만
안채가 비중 있게 지어졌고 조선후기 신분제도 철폐와 신흥 부농의 출현으로
변화된 사회상이 반영된 집으로
여성중심의 공간배치와 부엌으로 출입하는 통로가 전퇴를 열고
토상화(土床化)한 것이 특이하며 학술적인 자료로도 중요한 가치가 있는 집임에도
안채와 사랑채에 2004년 두차례에 걸친 방화로 추정되는 이름모를 화재가 발생하여
집 내부 일부가 불에 타 소실되어 황폐한 채로 남아 있었다.
지금의 집주인은 고가를 헐고 새집을 짓고 싶어하나
군청에서는 원상복구 외에는 보수를 할 수없다고 하여
이따금씩 공익요원이 청소만 하고 갈뿐
밖에서 바라보는 집은 커다란 잡초와 어울려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허삼둘 가옥에서 얼마 안떨어진 안의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연암의 흔적을 찾았다.
우리에게는 '허생전'과 '양반전'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이며 나아가서는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의 흔적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안의초등학교는 비록 일제 강점기 시절에 없어졌다고 하나 당시 현청 자리로
연암이 1792년부터 무려 5년간 그의 첫 외직으로 이곳 안의 현감을 지냈다 한다.
교정의 '연암 박지원 선생 사적비'를 바라보며 당시 양반도덕의 허위성과 위선적인 양면성.
몰염치한 착취에 기반한 무위도식, 양반의 무능성에 대한 날카로운 규탄과
폭로로 관통되어 있고, 양반 몰락의 역사적 현실성과 필연성을 묘사한
그의 문재(文材)에 감탄 할 따름이다.
안의마을 어귀에 흩어져있는 감나무가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잎새가 뚝뚝 떨어진 뒤 홀로 남아있는 불그스레한 감 하나.
채 홍시가 되기도 전에 까치밥으로 남겨 놓았는지
덩그러이 하나 남은 붉은 감이 파란하늘을 솎아 내려는 듯 남아있다.
함양은 민족의 명산인 지리산과 덕유산을 품에 안은 곳이다.
이중 남덕유산의 연봉으로 둘러싸인 안의면 일대는 계곡미가 빼어난 곳으로 이름나 있다.
이중 용추계곡과 화림동계곡 일대는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한 곳이라 한다.
시를 읊조리고 탁족을 즐기던 풍류객들이 그냥 지나쳤을 리가 없는만큼
8개의 이름난 못에 8개의 정자가 지어졌다하여
이른바 8정8담(八亭八潭)으로 불리는 안의 지역의 정자는
조선시대 풍류객들의 질펀한 놀이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정자마다 담긴 사연도 가지가지이듯이
계곡을 따라 가면서 만나는 정자기행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하는 듯한
묘한 재미를 제공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
반 수 이상의 정자는 불에 타 소실되거나 훼손되어 사라졌음에
남아있는 몇 않되는 정자의 관리 보전이 절실히 요구된다.
처음와 본 함양.
함양의 첫 인상은 다듬어지지 않은 소박함이 있다.
아니 소박하다 못해 투박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조화를 갖추고 있는듯한 옛 모습속에
소슬 바람에 들썩거리는 낙엽이 발끝에 채이고,
머물고 있는 군자정의 가을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간에도
환히 웃는 소박한 저 모놀 가족들은
당시 즐겨 찾았다는 일두 정여창 안의 현감의 호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을을 즐기고 있다.
햇빛 한줌, 바람 한줌과 함께 한 함양.
이제는 짧은 함양에서의 시간을 뒤로한 채 떠나야 할 시간이다.
살면서...
느낄 수있는 자연에 고마움을 알았고
조상들이 물려준 문화 유산에 감사함을 깨닫게 되었고,
길이 보전해야 할 가치도 느끼었던 하루였다.
이 가을.
내 가슴은 소년적 설레임으로 가을색에 깊이 젖어드는데
찬 바람이 옷깃을 스치는것을 느끼니
이젠 가을이 곁에서 떠나갈 시간도 멀지않게 느껴진다.
아~~ 이 가을에는 한그루 저 느티나무이고 싶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곳에 있는지를
- 안도현 시인의 <가을엽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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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상의 바쁨으로 좀 늦었습니다. 아름다운 가을의 모습과 함께 한 모놀가족 분들의 답사 사진도 곧 올리겠습니다. 좋은 하루들 되십시요....
캬~~~~~~~~~~행님............멋져부려요~~~~~~~~~~
답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연속 감탄사를 내뱉으며 읽어내려옵니다...재밌고 맛나글 정말 와 우~
역시나~우드님..가물가물해져가는 그 날의 기억을 하나 둘 다시 그 시간으로 돌려 놓으시네요~~..사진도 글도 너무 좋아요~~~감사합니다~~~
꺄~~~오~`옥....참새 씨러졌시요.........왜? ........배고파서...........목향산방 상차림보고.....글도 사진도 나를 쓰러뜨렸시요.
저도 씨러졌시요(2)......왜 글, 사진,음악...도대체 못하시는게 ''...
우드님도 못 하시는거 있시요.............................. 사진 찍힐때 눈 뜨는거...못함.
맞네.기다려 보이소 우드님 눈감은 사진 올릴테니깐.
할미꽃 내년 봄에 꽃 피면 보내 드릴께요
답사기가 이정도는 되야지~~~~ 사진 좋습니다.
기죽이지마이소~~~~ " 이정도는.." 이기이 ~~아무나 되는기 아입니더.
지는 땅굴을 파고 들어가 써도 "이정도는..." 못씁니대이 ㅎ ㅎ ㅎ
같은 나무과인 게 자랑스럽어예^^ 글 잘쓰고 사진잘찍고 후기도 열씸히 올리는 남자들의 공통점....말없다, 빙그레배시시 웃는다, 눈이 밸로 안크다, 혼자 바쁘다 여기저기 찍고 누르고 하느라, 정작 사진의 피사체가 되는 일에는 밸로 소질없다
ㅋㅋㅋ 맞어요. 결론, 분류, 분석의 대가십니다요, 은사시님.. 우드님의 가을향 물씬 풍기는 답사도 기막히지만 우리 님들 댓글도 너무 재밌네요. 답사 못간 답답함이 확 풀려 버려요.
우드님의 정서와 똑같은 글을 보노라니 우드님의 수줍은듯함 미소가 떠오르네요...느린듯한 하모니카 연주까지...가을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글과 사진 굳~~입니다..잘 보았습니다.
우드님의 멋진 후기가 답사를 다시 한번 간 듯하네요. 너무 감동한 나머지 할말을 잃음....... 복 많이 받으세요.^^
마치 제가 함양에 있는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은 완전 無罪! 잘 보았습니다. 우드님 즐거운 주말 되십시요. 간강 하시구요.
우드님 잘 다듬어진 후기와 사진 잘 보고갑니다. 저는 아직 엄두도 못내고 있을 정도로 바쁘네요. /마지막 사진의 모습들이 한결같이 평화롭네요. 감사합니다.
기다렸시여~~~우드님의 후기를...ㅎㅎ 역씨~~기대를 져 버리지 않았소이다. ...
다시한번 상림 한가운데서 숲의 흙냄새를 맡는 느낌입니다. 우드님 후기 잘 보고갑니다~
아름다운 후기... 역시 우드님 다우셔... 다시 가 보고픈 함양이었습니다... 후기 잘 보았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다시금 함양 나드리를 한것 같습니다 구경 잘 하였습니다.
가보지 못한 함양~!!! 답사 끝~~~~~~! 우드님이 한방에 답사를 마칠 수 있게 하네요... ㅎㅎㅎ
사진도 좋고 글도 좋고 항상 푸근한 우드님도 참 좋습니다.^^
모든게 다 좋습니다.. 전제덕의 일본 하모니카 째즈 연주회가 성황을 이뤘다는데...언제 라이브 함 들으러 갑세
가을 빛 고운 하루가 글과 함께 사진 속에 담겨 있네요....^^ 낙엽이 다 져 버릴 때쯤 저 상림을 다시 걷고 시포요...ㅎㅎㅎ.... 사진이 좋습니다......
생생한 걈동으로 이어진 답사글 잘 보았습니다.^^
같은 대상도 보는 사람에 따라 이리 따뜻하게 보일 수 있구나 새삼 느낍니다. 정성어린 답사기 잘 봤습니다.
같은 곳을 갔는데, 어째 느낌이 이리도 다릅니까? 멋져~ 멋져~~ ^________________^
^^* 안녕하세요 . 우드님.. 정감있는 사진이랑 글 잘 봅니다. 모놀가족들의 얼굴은.. 여전히.. 꽃처럼 환하게 아릅답에요.. 아.. 미련하게 늦잠자서.. 오랫만에 정말 가고싶었던 함양 못가고.. ㅎㅎㅎ 아직까지 속이 쓰립니다 . 다음 답사때 뵈어요 ㅎㅎ
우드님....너무 고생 많으셨지요? 많은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달고...색저고리를 입히는 일이 만만치 않았으련만.... 사진도 글도 눈부신 가을을 담아 오셨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