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의 원인이었다.
특히, 제국주의를 위한 전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잉카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아 죽인 피사로 역시 성경을 가지고 온 신부와 함께였고, 아타우알파를 죽인 이유도 가죽 성경을 내던졌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열강은 무력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기독교로 영혼을 점령하려 했다. 이런 제국주의가 종언을 고하자, 기독교는 혼란을 겪는다. 국가가 다른 민족, 다른 국가를 인정하게 됐지만, 기독교는 다른 종교를 인정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은 있는가, 다른 진리체계도 존재하는가.
이런 고민 앞에서 기독교의 태도는 세 갈래로 나뉘었다. 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가 그것이다. 구원도 진리체계도 기독교에만 유일하다고 제국주의적 태도를 고집하는 게 배타주의다.
포괄주의는 다른 종교에도 진리는 있지만, 진리의 궁극적 완성체는 기독교라고 본다. 포괄주의는 유연하게 다른 종교를 인정하는 듯하지만, 결국 타 종교의 완결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배타주의와 닿아 있다.
다른 종교를 인정할 수 없다면, 공격적 선교를 통해 영혼을 점령해야 한다. 그러자면 십자군처럼 전쟁과 살육, 종교 청소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타 민족을 개종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반감만 키운다.
2차 바티칸 공의회 결정은 이 모든 고민에 대한 가톨릭의 답이며, 진정한 의미의 종교 다원주의의 문을 열었다. 공의회 문건 중엔 비그리스도인에 관한 선언과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이 포함돼 있다. 구원의 보편성과 함께 진리의 다원적 구조를 인정한 것이다.
신학자 카를 라너는 공의회 고문으로 참가했다. 그는 ‘익명의 그리스도’ 개념으로 다원주의를 설득했다. 진리를 탐구하며 도덕적 양심이 요구하는 바를 실천하는 이는, 어떤 종교인이건 모두 익명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라너 자신은 익명의 불교인으로도 불리기를 원한다고 했다. 종교 문제로 이혼한 톰 크루즈 부부, 세계문화유산인 말리의 이슬람 수피즘 사원을 파괴한 이슬람 원리주의 등 배타주의는 개인과 인류 불행의 총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