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의미
최 병 창
잎이 없는 콩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어
콩알을 심는 순간부터
주변에 튼실한 울타리를 둘러쳐야 한다
어린잎은 고라니가 좋아하여 밤이면 몰래 산에서 내려와 콩잎을
따 먹는데 어린싹을 잘라먹는 것이 어찌 고라니뿐이랴
하지만 일 년 농사는 처음에 돋아나는 어린싹에 있다고 애초부터 단단히
지켜내야 한다니
그래서 잠시라도 경계선은 잘 보듬어야 한다는데
이 나이 들어보니 푸르디푸른 시절 자라나는 어린싹들을 얼마나
지켜냈으며 생소한 것들을 향하여 드러낸 본능은 그 얼마였던지
따지고 보면 앉은자리 그 하나 지켜내기도 바빴으니
교묘하지만 드문 진실이란 때때로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으니
짐작케 하는 관능이란 욕망의 종점같이 아무렇게나 앞지르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인지 알토란 같은 생명들은 별일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고라니에게 악수를 청해 본다
오른손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는 것은 상대를 해칠 무기를 손바닥 안에
지니지 않았다는 표시인데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말도 기다리는
것이 있기 때문인가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져 목을 빼고 고개를 추켜올린다
생각해 보면 콩밭에선 이제 스캔들 같은 것은 일어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데 그런데도 잘했다 싶을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콩잎들은 방어선 같은 울타리 안에서 자기 보호본능을 잘 키워내고 있다
여기서도 드라마 같은 사랑과 전쟁은 계속되면서.
< 2021. 08. >
2025. 3. 2. 토론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