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둑 훈풍
컴퓨터 즐겨찾기에 심어둔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에서 ‘훈풍’을 검색하니 ‘첫여름에 부는 훈훈한 바람’이라고 나왔다.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전환되는 즈음이다. 산자락을 타는 등산보다 강둑을 따라 산책을 하고 싶어 길을 나섰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으로 나가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서 동읍사무소 앞을 지나 연잎이 잎을 펼쳐가는 주남저수지를 지났다.
대산 들녘은 모내기를 준비하느라 농부가 트랙터가 논을 갈았다. 대산 면소재지인 가술을 지나 제1수산교에서 내렸다. 다리 건너 강변 수산의 높은 아파트가 보였다. 강변여과수 취수정이 위치한 드넓은 둔치는 수풀이 우거졌다. 창원 시민 상수원이라 4대강 사업 때 삽질을 않고 남겨둔 모래밭이다. 자연 상태인 천연 원시림을 보는 듯했다. 고라니와 꿩들 같은 야생 조수 천국이다.
강둑 자전거 길을 따라 본포 방향으로 걸었다. 주말을 맞아 자전거 마니아들이 질주해 달렸다. 강둑을 걸어가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근래 강둑 따라 북면에서 한림으로 부분 개통된 60번 지방도가 시원스레 뚫렸다. 둔치에서 강 건너는 밀양 초등의 곡강마을이었다. 강물이 벼랑에 부딪혀 굽이지는 곳에 벽진 이 씨 ‘곡강정’이 있다. 두보의 시에 나오는 곡강과 동일한 지명이다.
둑길에 심어둔 벚나무는 그늘을 드리울 정도였다. 야생으로 자라는 뽕나무에선 오디가 열려 익어갔다. 강둑에는 노란 금계국과 보라색 갈퀴꽃이 가득 피어났다. 금계국과 갈퀴꽃은 귀화식물로 토종보다 더 세력 좋게 자라 초여름 이맘때 꽃을 피웠다. 상옥정마을에서 본포생태공원으로 드니 말을 탄 남녀 한 쌍이 다가왔다. 승마 클럽 회원으로 레저 활동으로 즐기는 말 타기였다.
본포나루에는 남녀 둘이 어로작업을 위해 배를 손질하고 있었다. 내수면 어업권을 가진 부부인 듯했다. 본포생태공원은 오토캠핑장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이 텐트를 쳐 놓고 야영을 했다. 주말을 맞아 차를 몰아 교외로 나온 가족들이었다. 코로나로 집안에 갇혀 지내는 갑갑함을 떨쳐내는 무리들이었다. 본포나루에선 낙동강을 가로지른 본포교가 부곡 학포로 가로질러 건너갔다.
바위 벼랑 취수장을 돌아가는 생태보도교를 따라 걸었다. 창녕함안보를 빠져나온 유장한 강물이 너울너울 흘렀다. 신천이 낙동강 본류로 합류하는 강 언저리는 태공들이 낚싯대를 던져 놓고 찌를 응시하고 있었다. 보도를 따라 샛강을 건너니 북면 생태공원이 명촌까지 길게 이어졌다. 거기도 자동차를 몰아온 사람들이 그득했다. 노란 금계국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아낙도 보였다.
바깥신천에서 마금산 온천장까지 걸으려니 햇살이 따가워 힘이 들었다. 내봉촌에서 오는 11번 버스를 기다렸다. 농어촌버스를 타고 온천장을 지나니 산업단지가 조성되는 동전이었다. 감계 입구를 지난 화천리에서 내렸다. 길가 가게에서 곡차와 두부를 사 들길을 걸었다. 낮은 산마루를 넘어 지인 농장을 찾았다. 가끔 들리는 지인 농장인데 올해는 봄이 다 가도록 한 번 찾지 못했다.
퇴직 후 전업농부가 된 지인은 주말에 일손을 함께 돕는 분들과 오이와 호박이 타고 오를 덕장을 설치하고 있었다. 농장을 빙글 둘러보니 김을 잘 매 놓고 여러 작물들이 자랐다. 여름에 수확할 블루베리와 산딸기가 잘 영글어 갔다. 마늘과 양파는 곧 뽑아야 될 듯했다. 봄에 심은 양배추는 세력이 좋게 자랐다. 상추는 종류가 다양했는데 방문 기념으로 몇 줌 따 배낭에 담아 놓았다.
등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농막에 점심상이 차려졌다. 이웃 농장 주인은 멸치쌈장을 가져왔다. 그는 고향이 사천으로 거기서 가져온 봄 생멸치라고 했다. 즉석에서 뜯은 상추와 쑥갓을 씻어 올렸다. 삼겹살이 든 찌개로 압력 밥솥에서 지어진 윤기가 자르르한 밥을 들었다. 곡차를 반주로 들면서 점심자리를 잘 가졌다. 농장에 더 머물면 귀가가 늦을 듯 해 지인들보다 먼저 빠져나왔다. 20.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