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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슐리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금요일 저녁 업무를 다 마치고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때였다. 책상위에는 고객들과의 상담일지가 수북이 쌓여있었고 정리해야할 서류가 남아있었지만, 마지막 고객과의 상담을 마지막으로 기나긴 여정과도 같았던 고단한 지난 한주일을 바로 마감하고자 했다. 오후에 점심 식사를 하면서, 길 건너편의 치과의사와 저녁 6시에 골목끝에 새로생긴 선술집에서 간단하게 맥주나 한잔 하자고 약속을 했었다. 시계를 봤을때, 5시 45분 이였다. 이제 일어나야 할 때였다. 유난히 떼르르릉 거리며 울릴때마다 귀를 거슬리게 했던(이 골목 중간의 전화판매상에 벌써 지난 수요일에 말을 해놓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다. 나는 기계를 다루는데 젬병이다.) 저 전화벨 소리가 그날 만큼은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아니 외려, 나는 그 전화벨 소리가 공중에 만들어 내는 공명의 파장이 나의 귓속에 들어와 정신을 일깨울때. 마치 지난 수십년간 잊어왔던 무엇인가가 머릿속에 강렬한 울림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잊어왔던 무언가. 잃어버렸던 많은 것들. 나는 본능적으로 자리에 다시 앉아 수화기를 들었다. 코끼리 상아를 깍아만든 전화기라고 했던가. 전화벨소리를 낮춰달라는 나의 요청을 번번이 바쁘다며 외면하는 그대여. 그러나 전화판매상 주인은 바쁜사람일지언정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다. 코끼리 상아. 무거운 전화기. 귀에 가져갔을때 발랄한 음성이 들려왔다.
“제이슨 꿈해몽 사무실 맞나요?”
“예 맞습니다. 제가 제인슨입니다만. 업무는 이미 끝났습니다.”
“아뇨. 꿈 해몽해달라고 전화드리는게 아니라...”
“...?”
“혹시, 내 목소리 기억 안나니?”
또렷하다. 그러나 피어오르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곧바로 실토하긴 싫었다. 그 짧은 순간에 지난 이십여년 전 고등학교 졸업 파티에서 나를 매몰차게 외면했던 그녀의 도도한 얼굴이 떠오른다. 내 마음에 아주 오랫동안 상처를 남겼던 말을 남기기도 했었지. 그날밤 그녀가 무어라고 말했던가. 그래 맞다. 그녀는 ‘너같은 아이랑 내가 어울릴 것 같니?’ 라고 했다. 그녀의 얼굴에 조금도 미안한 구석이 없었기에 나는 곧바로 그 말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나를 조롱하는 시선들과 왁자지껄한 웃음의 소음. 나는 그대로 뒤돌아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리고 이층 나의 방으로 올라가 얼마나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던가. 옷 매무새는 항상 단정해야 한다며 엄마가 방안 벽에 설치해주신 전신거울 앞에섰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은 평소보다 더 못생겨보였다. 벌겋게 충혈된 눈. 거진 무릎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팔. 짧은 다리. 좁은 어깨. 주근깨로 범벅이 된 얼굴. 누가 나를 3년동안 전교1등을 놓치지 않았던 우등생으로 볼 것인가. 아니, 도대체 누가 나를 남자로나 봐줄까. 거울앞에서 옷을 벗고, 애슐리의 풍만한 가슴을 떠올리며 자위를 했던 그날밤. 바닥에 뚝뚝 떨어진 나의 정액 방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창문을 열고 투신했다. 그러나 그저 발목만 부러진채로 세 달 넘게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던 그 때. 그 시절의 나의 여인.
“여보세요?”
“어 그래. 애슐리 구나.”
“기억하네?”
“물론이지.”
나는 되도록 차갑게 이야기하려 애썼다. 그러나 목소리에 담긴 미세한 흥분과 떨림이 내 자신에게 느껴졌다. 그녀도 느꼈을까.
“역시 우등생은 다르네.”
“내가 우등생이였다는걸 기억하니?”
“그럼. 넌 항상 전교 1등이였잖아. 고등학교 졸업식때도 교장선생님께 상장도 받았고.”
“기억하는구나. 난 니가 나에게 전혀 관심 없는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있겠어. 넌 우리동네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로 유명했잖아. 내가 매일밤 남자애들과 데이트하러 다닐때마다 부모님에게 항상 혼났다구. 건너편집의 제이슨은 새벽 두 시까지 공부하고 잔다더라! 주말에도 하루종일 집에서 공부한다던데 넌 뭐니! 하면서 말야. 우리들뿐 아니라, 널 원망했던 아이들 많았을걸?”
“그랬나. 음. 그건 그렇고. 이렇게 이십 년만에 갑자기 무슨일이야?”
고객의 마음과 심연을 꿰뚫어봐야 하는 직업병일까. 그 미세한 감지를 위한 레이다. 전화선을 타고오는 기류에 변화가 느껴졌다.
“제이슨. 사실 난 병에 걸렸어. 그래서 지금 짧은 여행중이야. 여행이라고 좋은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야. 다만 지난 내 삶에서 중요했던 사람들을 한명씩 찾아다니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있는거야.”
“병이라면...”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해줄게. 혹시 주말에 시간 괜찮니?”
“아니. 주말에는 가족들하고 집에 있어야 해. 우리집 근처에 조그만 유원지가 새로 생겼는데 주말마다 아이들이 놀러가자고 성화거든.”
“그렇구나...”
“아니면 월요일날 나의 사무실로 오는건 어때?”
“너희 사무실?”
“그래. 예전 우리가 살던 마을에서 멀지 않아. 큰 사거리 모퉁이의 ‘잭슨네 잡화점’ 건물 기억하니?”
“어 기억해.”
“그곳에 아침 9시까지 와있겠어? 내가 데리러 갈께.”
“그래 알겠어. 난 지금 뉴욕이야. 두 시간 정도면 갈수 있을거야. 조금 일찍 출발해야 겠네.”
“뉴욕이라. 나도 학부시절 이후론 한번도 못가봤네.”
“많은 이야기를 해줄게.”
“그래 알겠어.”
전화를 끊고나자 방망이질 하는 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마에도 땀이 맺혔다. 손이 조금 떨리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벌써 6시 정각이 되었다. 나는 외투를 챙겨입고 밖으로 나왔다.
치과의사 리차드와의 맥주는 즐거웠다. 그의 몸에선 여지없이 병원 특유의 약품 냄새가 진동했고 이제 익숙해진 나는 그 역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맥주와 안주를 즐겼다. 중간에 잠깐 그의 치과에서 일하는 간호사 두 명이 다녀갔다. 새로생긴 생맥줏집에서는 그날도 금요일 특집 다트던지기 대회가 열렸고 누군가가 상품을 타갔다. 우리 골목은 항상 그렇듯 그날도 평화로왔다. 다만 평소와 다른 것은, 내 머릿속은 이미 애슐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있어 도무지 대화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는 것 뿐이었다. 월요일 아침9시. 내 몸과 마음은 온통 그 시각을 향해 카운트 다운 초침을 재고있는 듯 했다. 마치 다이너마이트에 부착된 조그만 시계처럼. 째깍째깍. 이제 마지막으로 숫자가 0으로 수렴했을때. 무엇이 폭발할까. 그녀를 사랑했던 나의 마음이? 그녀를 잊고 살아온 지난 이십 년의 시간의 무의미 함이? 혹은 그녀는 추녀가 되어있을까? 사십정도 되어서, 몸무게가 백킬로에 가까운 거구가 된 여인들이 내 주위에 종종 있었다. 마음은 어지러웠다.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주말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일요일 밤 와이프와 침대위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냈을때에도 온통 마음은 애슐리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시간을 흐르고 흘렀다. 눈을 떴을땐 월요일 아침이었다.
잭슨네 잡화점은 말그대로 이것저것 아무거나 막 갖다파는 곳이었다. 잭슨5의 광팬이라는 주인 아저씨가 손수 간판을 그려넣었다는데 (대단히 큰 사이즈였다.) 십년 전 그러니까 1980년도에 마이클 잭슨이 뉴욕 공연후 다른 도시로 넘어가면서 이곳을 지나가다가 지역 명물인 이 잡화점에 들러서 주인아저씨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것은 이 동네 일대의 사건이였고 그래서 지역신문에도 1면으로 등장했었다. 주인 아저씨는 그 신문을 큰 액자에 담아 벽에 걸어놓고 있다. 안을 들여다 보니 그 대형 액자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초 겨울이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가죽 장갑을 낀채였지만 슬슬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바람이 슬쩍만 불어도 목에 닭살이 돋아올랐다. 건너편의 탑 모양으로 생긴 시계를 바라본다. 9시 정각이 되었다. 그때 노란색 택시가 내 앞에 섰다. 뒷 자석엔 컬이 들어간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기사에게 값을 치르고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틀림없이 애슐리 였다.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 앞에 섰다.
“오랜만이야 제이슨. 아니, 제이슨 박사님.”
그녀가 웃었다. 저 맑은 파란색 눈동자. 눈가엔 조금의 잔주름도 없었다. 고등학교시절 그대로 였다. 마치 뱀파이어처럼. 아니 오히려 더 아름다워 졌다. 너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도 좋아. 내 목에 그 이빨을 가져가 내 온몸의 피, 마지막 한방울 까지 빨아먹어도 좋아. 네 입술이 내 목에 닿을수만 있다면. 난 정말 죽어도 좋아.
“반갑다.”
생글웃는 그녀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왼손엔 케익상자 비슷한걸 들고 있다. 나는 위엄있게 행동하려 했으나 아마 조금은 멍청한 자세로 손을 뻗었을 것이다. 정신이 혼미했던 그때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난 아마도 떨었을 것이다. 겨울이 아니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죽 장갑으로 덮인 손이아니라, 너와 나의 손이. 너와 나의 살이. 내가 너의 살을 만질수 있었다면.
“너희 사무실은 여기서 머니?”
멍하니 있던 나. 드디어 정신이 돌아온다.
“응. 이리로와. 차로 오분 정도면 돼.”
나는 앞장서서 내 차가 주차되어있는 곳으로 갔다. 반짝이는 벤틀리. 내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자 그녀가 양팔을 벌리며 놀랍다는 표정을 보인다. 다시 한번 밝게 웃는 그녀. 그리곤 그녀는 기품있는 동작으로 차에 올라탔다. 그녀의 엉덩이가 나의 자동차 시트에 닿았다. 네가 차라리 전라의 알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치마도 스타킹도 팬티도 없이. 너의 맨 몸이 너의 맨살이 닿았을 나의 자동차 시트. 네가 떠나간후에 나는 홀로 시트에 코를 틀어박고 냄새를 맡았을거야. 너의 냄새. 너의 몸 냄새. 너의 엉덩이 냄새.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히터를 틀었다.
“시트에 열선이 있어. 엉덩이가 곧 따뜻해 질거야.”
“고급 자동차라 신기한 기능도 다 있구나.”
그녀가 나를 본다.
“제이슨. 너 정말 출세했구나.”
나도 웃었다. 거리는 짧았다. 그 짧은 거리. 나는 어쩌면 지구 반대편에 있을 나의 미지의 사무실을 꿈꾸었다. 내 사랑 애슐리와 함께. 우리는 땅과 땅을 지나 계곡과 협곡을 지나, 어느 이름모를 사막과 태평양을 건너 누구도 알지못할 우리만의 공간으로 떠나는 거야. 지구 반대편으로. 아주아주 오랫동안. 나의 말에 계속 웃어주는 애슐리. 제이슨, 너 정말 출세했구나. 나의 고급 벤틀리에 너를 싣고 우리의 공간으로. 달과 별을 지나 아무도 모를 우리만의 순결한 공간으로. 지구 반대편에 나의 사무실이 있어. 그곳으로 함께 떠나자. 그리고 무엇보다. 너의 냄새를 자꾸만 맡고 싶어. 네가 전라의 알몸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기니?”
“응. 우리 동네에서 병원이랑 약국이 밀집되어있는 곳이야. 골목끝에는 정말 멋진 생맥줏집이 생겼어. 나중에 한 번 가자.”
나는 차에서 내려 애슐리의 문을 열어주었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우아한 자세로 팔을 벌려 그녀를 나의 공간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웃었다. 사무실은 삼 층에 있다.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그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 문에 애슐리와 내가 흐린 거울처럼 비쳐보였다. 그녀는 그 흐린거울속에서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나는 아이들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미녀와 난쟁이 똥자루.를 떠올렸다. 그녀옆에 초라하게 서있는 작은 나. 그러나 그녀는 분명 조금 전 말했었다. 제이슨 너 정말 출세했구나.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어깨를 쭉 폈다.
사무실에 들어갔다. 나의 비서 왱챈이 반갑게 맞았다.
“박사님. 조금 늦으셨네요? 시간 칼같이 지키시는 분이.”
“어. 오늘 특별한 손님이 있어서. 모시고 오느라 말이지.”
애슐리를 왱챈에게 소개해 주었다. 나는 왱챈에게 잠시 근처 커피숍에가서 시간을 좀 보내라고 했다. 나의 사무실은 널따란 공간을 통으로 쓰고 있었는데 고객들은 가운데 소파에 앉아 나와 상담치료를 하고 왱챈은 다소 구석이라 할만한 공간에서 서류작업을 하거나 손님들의 예약상담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나는 그 공간에 오롯이 애슐리 하고만 있고싶었다.
“한 시간이면 충분 할거야.”
왱챈은 다 안다는 듯한 눈빛을 한번 찡긋 하더니 애슐리에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사무실 가운데의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양쪽 벽 가득한 두꺼운 책들을 올려다 본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부와는 친하지않은 관계였다.
“제이슨, 넌 이제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된거 같은데?”
“대단하긴 뭘.”
왱챈이 떠나기전 끓여주고간 중국전통차를 한모금 마셨다.
“그래. 지난 금요일날 했던 이야기를 마져해보자. 병에 걸렸다는게 무슨 말이야?”
밝았던 그녀의 표정이 조금 사그라 든다.
“다름이 아니라. 내게 유방암이 생겼어. 내일 오전에 양쪽 가슴을 다 도려내는 수술이 잡혀있어. 여자로선 이제 끝인거지.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라, 도려낸 후에도 일 년을 넘기지 못할거래. 다만 마지막 순간을 조금 늦추는것에 불과한거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저 중국전통차 이름이 뭐였더라. 그것은 마치 염산처럼 내 식도를 태워버리는 듯 했다.
“암이라고? 유방암?”
“그래. 그래서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간. 내 삶에 의미있던 사람들을 찾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는거야.”
그녀가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더니 우리 사이의 테이블 위에 놓는다. 도무지 알아보기 힘든 악필로 가득한 나의 편지.
“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 이 마을로 이사온후에 넌 항상 우리집 주변을 어슬렁 거렸지? 그리고 우편함에 나에게 쓴 러브레터를 놓고는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갔지? 이층에서 몇 번이나 그 광경을 목격했어. 내가 항상 학교에서 잘나가는 남자애들과 놀긴 했지만. 그래도 널 나쁘게 생각하거나 미워한 적은 없어. 그리고 너의 러브레터는 다 서랍속에 모아두고 있었어.”
슬픈 추억이다. 동갑의 어린 여인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그러나 번번이 외면당해야만 했던. 내 삶의 썩어버린 한 부분.
“이렇게 내 편지를 간직해 주고 있는줄은 몰랐네. 고맙다.”
왱챈이 끓여주고간 중국전통차를 한모금 더 마셨다. 여전히 우울하다. 그래도 조금전 애슐리의 말을 떠올리며 기분을 바꿔보려 했다. 지금 내 앞의 그녀. 내 사랑. 나의 애슐리. 제이슨, 너 정말 출세했구나.
“가지고 온 상자는 뭐야? 케익이니?”
“아 이거. 이건 너에게 줄 선물이야. 어쩌면 마지막 선물이겠네.”
“무슨 그런말을...”
“월요일 아침일찍 떠나야 하기 때문에, 금요일날 미리 사두었어. 나 떠난 다음에 꺼내봐.”
애슐리가 상자를 내 쪽으로 밀어준다.
“그래. 고맙다. 그나저나 수술이 잘 돼야 할텐데 말야.”
“뉴욕에서도 유명한 사람인가봐. 나도 돈을 좀 벌었거든. 그래서 제일 유명한 사람을 찾아서 수술일정을 잡게된 거야.”
“그랬구나. 혹시 무슨일 하는지 물어봐도 되니?”
“난 킹스크로스 가에서 일해.”
킹스크로스라면 뉴욕에서 가장 악명높은 마약소굴이자 미국에서 가장 큰 홍등가 아닌가.
“니가 거기서 무슨일을 해?”
애슐리는 내 눈을 응시하던 시선을 아래로 떨군다. 그리고 이제 식어버린 중국전통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일 하지 뭐...”
내 마음을 그토록 차갑게 외면해 버리더니. 한 번도 날 받아주지 않더니. 이제 푸른빛의 지폐 몇 장이면 세상의 누구라도 너를 가질 수 있게된거니.
“어쩌다가.”
울컥했다.
“아빠 사업이 잘 안됐어. 조금씩 집이 작아지다가 마침내 우리는 거리로 내 쫓겼어. 아버지는 자살했고 엄마는 어디론가 떠났어. 알고지내던 남자아이들중의 몇 명이 나를 뉴욕의 킹스크로스에 소개해 주었어. 그 아이들 딴에는 나를 도와준다는 마음이였겠지. 나는 그렇게 그곳에 익숙해져 갔어. 때로는 자괴감에 몸부림 칠때도 있지만.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어.”
애슐리는 잔에남은 중국전통차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이제 떠나야 겠어. 내일 수술은 여섯시간동안 할거래. 전날 푹 쉬어야 한다고 했어. 이 편지들은 선물로 주고갈게.”
테이블위에 놓인 나의 러브레터더미에 애슐리가 살포시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녀의 눈빛에선 이미 체념이 느껴진다. 차라리 예전의 그 차가운 눈빛을 보여줘. 나를 외면했던 도도한 너를 보여줘.
“그래. 나도 이제 업무를 시작해야 겠네. 꿈 해몽 전문가로 텔레비전에 몇 번 출연한 후엔 아침부터 고객들이 몰려와서 말야.”
“나도 본적있어. 제이슨, 너 정말 출세했어.”
그녀는 곧 떠났다. 마음같아선 그녀를 나의 벤틀리에 태우고 뉴욕까지 데려다주고 싶었다. 곧 왱챈이 사무실로 들어왔고 우리는 일상의 업무를 시작했다.
그날저녁 왱챈이 퇴근하고, 나도 이제 책상위를 정리하고 퇴근을 하려는 때에, 책상 한쪽에 놓아둔 애슐리의 선물이 보였다. 그녀의 마지막 선물. 무엇일까. 나는 잠시 퇴근을 미루고, 애슐리가 두고간 케익상자처럼 생긴 선물을 뜯어보았다. 그 안에는 탐스러운 사과 두개가 하나씩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비닐포장된 그것을 뜯었다. 빨간 사과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강렬한 기운을 내뿜고있었다.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또 한 입 베어 물었다. 나는 곧 그 사과를 말끔히 먹어치웠다. 나머지 하나의 사과도 씨 한톨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눈물이 흘렀다. 애슐리의 마지막 선물. 그것은 고작 이 빨간 사과 두개였단 말인가. 이제 애슐리는 내 삶에서 영영 떠나버리는 것인가. 내 유년의 아름다웠던 그녀는. 창녀가 된 나의 그녀는. 나는 장식장에 놓아둔 보드카 병을 꺼내어 한숨에 들이켜 버렸다. 그리고 곧 책상에 웅크리고 앉아 흐느끼며 잠들어 버렸다.
꿈을 꾸었다. 킹스크로스. 나의 그녀가 발가벗고 일하는 그녀의 일터에. 나는 10달러짜리 뭉치를 들고 그녀앞에 선다. 그녀는 웃음을 흘리며 내팔에 팔짱을 끼고 안으로 데려간다. 조명은 어둡고 공기는 탁하다. 내 손에서 10달러 뭉치를 낚아챈 그녀는 다시 돌아와 내 앞에서 속옷까지 벗어버린다. 그녀의 몸 냄새를 맡아보고싶은 강렬한 열망이 있다. 나는 여신처럼 서있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냄새를 맡으려 한다. 그러나 아무 냄새가 안난다. 그녀의 수풀진 그곳을 헤집고 갈라진 그 안에 혓바닥을 강박적으로 쑤셔넣어본다. 갈라진 틈이 없다. 그러면 네 똥구멍 이라도. 네 똥구멍 냄새라도 맡게해줘. 나는 격렬하게 그녀의 아랫도리를 헤집으며 코를 들이민다. 그러나 아무 냄새도 없다. 허망해진 나는 그녀앞에 무릎꿇고 앉아 땅을향해 고개를 쳐 박았다.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눈물을 떨구며 그녀를 올려다 본다. 그녀의 양쪽 가슴에는 커다란 빨간 사과 두 개가 출렁이며 열려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강렬한 기운을 내뿜고있었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오늘은 반드시 전화판매상 주인을 불러서 볼륨을 낮춰놓고야 말테다. 전화벨은 더욱 세차게 울려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화요일 아침이였다.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팔을 뻗어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네. 제이슨의 꿈 해몽 사무실입니다.”
“제이슨! 나 애슐리야! 나 수술 때문에 병원에 왔는데. 정말 믿기힘든 일이 일어났어. 방금 의사선생님이 말해주셨는데. 글쎄, 내 가슴의 암세포가.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데. 마치 처음부터 완전히 건강했던 사람처럼. 그렇게 단 한개의 암세포도 없이 깨끗해 졌데!”
애슐리는 다시 고등학교때의 발랄한 음성을 되찾고 있었다. 어쩌면 다시한 번 그녀의 아름답고 도도한 눈빛을 보게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좋다. 참을수 없을만큼 차가와도 좋다. 다시한번 그녀를 만날수만 있다면. 그녀를 나의 벤틀리에 태우고. 그녀의 엉덩이를 푹신하게 담은 나의 조수석 시트. 어딘가 사막 한가운데를 멋지게 질주할거야.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아래 우리는 달릴거야.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애슐리는 말하겠지. 제이슨, 너 정말 출세했어!
-끝
첫댓글 후반까지도 매우 매끄럽고 잘짜여진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막판에 조금..?
죄송합니다 최대한 해석해보려고 두번 더봤는데 모르겠습니다
제가 소설을 이해하기엔 아직 부족한가봐요
ㅎㅎ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끝부분에서 조금 황당하다는 ....무슨 뜻인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다시보니 뒷부분에서 너무 막 달렸군요.. 여자가 제이슨을 만날때 가지고온 사과 두 개는 자신의, 암에 걸린 양쪽 가슴을 상징합니다. 여자는 어린시절엔 데이트한 번 해주지않았지만 막상 절박한 상황이오자 제이슨에게,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채, 무의식중의 요청을 한것으로 설정했고. 제이슨은 여자로부터 받은 사과를 먹어버림으로써 여자로부터의 무의식와중의 도움의 손길을 잡아준 것이다.. 라는. . 매끄럽게 하려면 다시 손질을 좀 해야겠네요 ㅎㅎ
제이슨에 관점에서 본 꿈인가요..고등학교때 머 자신의 첫사랑 느낌에 그녀가 암과 가족사로 인해 예전에 발랄했던 모습을 잃어 가는게 먼가 슬프고 애잔했고 단돈 10달러로 그녀를 취할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와 관계를 맺고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그녀가 유방암을 낫게 되었고... 뒤에 글은 만약 그녀와 내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이고.. 근데 도통 아무리 봐도 이어질 수가.. 그녀를 데려가서 상담을 한건 사실이지만 꿈에서 그녀에게 케이크를 받고 그 케이크에 이끄려서 그녀를 10달러로 취하게 되었는데 그녀에 아픔이 치유가 되었다. 이렇게 쓰기도 저렇게 하기도 애매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