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이 화두인 시대다. 방송사마다 요리 대결 프로그램이 가득하고, 인터넷과 SNS에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음식 사진이 넘쳐난다. 미각을 자극하는 갖가지 요리가 난무하는 요즘, 오히려 소박하지만 건강한 밥상이 그립다. 제주 바닷가 마을에 자리한 '템플스테이푸드'는 이 같은 바람을 채워주는 보석 같은 곳이다. 정성껏 지은 상차림에 제주의 자연이 오롯이 담겼다.
사찰음식을 맛보고 다도를 체험하는 템플스테이푸드. 건물 외관에 적힌 '법보다 밥'이라는 글귀가 마음에 와 닿는다. [왼쪽/오른쪽]오픈 키친 형태인 템플스테이푸드 주방. 모든 조리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직접 담근 약초 절임과 차, 사진엽서 등도 판매한다.
'건강한 음식'과 일맥상통하는 사찰음식
제주 서남부에 자리한 안덕면 대평리. 작은 포구를 품은 평화로운 어촌에 템플스테이푸드가 있다. 이름 그대로 사찰음식을 내는 곳이다. 언뜻 보면 평범한 음식점 같지만, 벽면에 내걸린 '법보다 밥'이란 글귀에서 남다른 음식 철학이 드러난다. 밥 한 그릇에 담긴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주인장의 마음이 짧은 글귀에 고스란히 담겼다. 보통 사찰음식 하면 절 밥이나 스님들이 먹는 음식을 떠올린다. 이는 사찰음식을 지극히 좁은 범위로 한정한 개념. 요즘은 사찰음식이 '자연주의·채식주의 음식'과 같은 넓은 의미로 통용되며, '건강한 음식'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사찰음식을 정의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원칙이 있다. 육류와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는 것. 오신채는 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무릇) 등 자극적인 맛과 향을 내는 다섯 가지 채소를 가리킨다. 오래전부터 불가에서는 오신채가 수행과 정진을 방해한다고 생각해 모든 음식에 금기해왔다.
[왼쪽/오른쪽]제주의 자연이 오롯이 담긴 해초꽃밥 / 연잎에 곱게 싸여 나오는 연잎영양밥
한 끼 식사에 정성이 가득, 해초꽃밥정식·연잎영양밥정식
템플스테이푸드 역시 모든 음식에 육류와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는다. 조미료와 젓갈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맵고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한 사람들은 다소 심심하게 느낄 수 있다. 몸이 입맛과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 신기하다. 먹을 때도 부담이 없지만, 깔끔하고 개운한 뒷맛이 확실히 다르다. 게다가 템플스테이푸드는 '절 밥은 맛이 없다'는 통념을 깬다. 정성껏 지어 내오는 음식을 통해 '사찰음식도 맛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왼쪽/오른쪽]한 상 차림으로 나오는 해초꽃밥정식. 곁들이는 음식이 13가지나 된다. / 신선한 재료들이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낸다.
이곳 메뉴는 해초꽃밥정식과 연잎영양밥정식이다. 여기에 단호박영양밥정식도 곧 선보일 계획이다. 해초꽃밥은 맑고 깨끗한 제주의 자연을 한 그릇 듬뿍 담아낸다. 톳과 가시리, 미역, 꼬시래기 등 신선한 해조류에 콩나물, 치커리 등 채소가 고루 들어간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과 함께 고추장 양념에 골고루 비비면 먹을 준비 끝. 한 숟가락 듬뿍 떠서 입에 넣는다. 어? 생각보다 맛있다! 서로 다른 재료가 본연의 맛을 잃지 내면서 어우러진다. 단번에 입맛이 당기지는 않지만, 쉽게 질리거나 물리지도 않는 맛이다.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어느새 한 그릇이 뚝딱 비워진다. 해초꽃밥은 돌김에 싸 먹으면 더 맛있다. 아침마다 굽는 돌김은 습기에 눅눅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일이 비닐 포장을 한다. 정성 가득한 음식이 맛없을 수 없다.
약용식물인 삼채 뿌리를 무쳐서 곁들여 낸다.
곁들이도 하나하나 손이 가지 않은 것이 없다. 무농약 감귤김치, 방풍절임, 두부톳무침 등 제주의 식재료는 물론, 약용식물을 이용한 삼채뿌리무침까지 모두 직접 만든다. 젓갈과 마늘 없이 고춧가루와 간장으로 버무린 간장김치나 고수초절임도 입맛을 돋운다. 곁들이는 모든 정식 메뉴에 똑같이 제공된다.
10여 가지 곡물이 들어간 연잎영양밥. 주인장이 먹기 좋게 연잎을 벗겨준다.
연잎밥은 사찰음식을 대표하는 메뉴다. 이곳에서는 10여 가지 곡물로 영양밥을 짓는다. 대추와 은행, 잣, 검은콩, 조, 현미 등 다양한 곡물이 부족한 영양분을 서로 보충해주는데다, 밥맛도 좋아 다른 반찬 없이 한 끼 식사가 충분할 정도다. 연잎영양밥은 곡물마다 일일이 씻고 불려서 지으며, 1인분씩 연잎에 싸두었다가 먹기 전에 찌므로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먹을 때는 주인장이 연잎을 먹기 좋게 벗겨준다. 연잎영양밥 한 숟가락에 정성으로 빚은 온갖 맛과 향이 들어 있다.
[왼쪽/오른쪽]새로 선보이는 단호박영양밥. / 속을 파낸 단호박에 여러 곡물로 지은 영양밥을 넣고 찐다.
새로 메뉴에 추가되는 단호박영양밥도 정성이 많이 들어가긴 마찬가지다. 땅콩과 은행, 잣, 흑미, 완두콩, 검은콩 등을 넣어 밥을 지은 다음, 속을 파놓은 단호박에 넣고 찐다. 고소한 밥에 달콤한 단호박이 더해져 밥도둑이 따로 없다.
직접 덖은 차와 다과로 즐기는 다도 체험
식사를 마치면 덮개에 싸인 다도 세트를 가져다준다. 덮개를 벗기면 정갈한 다도 세트가 나온다. 우엉과 돼지감자 등을 직접 덖어 만든 차와 먹기 좋게 자른 두텁떡, 감귤과줄이 예쁘게 세팅되었다. 구수하고 따끈한 차 한 잔 마시며 여유로움을 즐겨본다. 정성 가득한 밥상에 몸도 마음도 한결 건강해진 기분이다.
[왼쪽/오른쪽]식사를 마치면 고운 덮개에 싸인 다도 세트를 가져다준다. / 예쁜 찻잔에 담긴 따끈한 차와 다과로 구성된
다도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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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직접 덖은 우엉과 돼지감자로 만든 차. 구수한 맛에 자꾸 손이 간다. 차는 리필이 가능하다. [오른쪽]때로 손님들에게 깜짝 선물을 주기도 한다. 인근 사찰에서 딴 네 잎 클로버를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