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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앉은 여자의 굳은얼굴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클래식음악이었다. 그에겐 어색한, 친절한직원들과 천장에 매달린 거대하고 찬란한 조명이었다. 지금 그가 입안에 욱여넣은 고기 한 조각을 제대로 씹어삼키지 못하는 이유말이다. 여자는 자리에 앉은후로 내내 한 마디도 없었다. 중매자가 둘을 인사시킨후 스테이크 두 접시를 주문해놓고 자리를 뜬 후에 그 자리는 마치 가시방석같은 것이 되어있었다. 평생 연애한 번 여자의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한 그였다. 난감하고 힘들었다. 그날따라 왼쪽 다리가 더욱 저려왔다. 서울시내 모 호텔 레스토랑에서, 그렇게 테이블을 경계삼아 마주앉은 두 남녀는 단 한마디의 대화도 없이 접시에 담겨나온 고깃 덩어리를 기계적으로 썰어내어 입으로 연신 퍼 날랐다. 남자는 간혹 여자와 시선이 마주치길 기다렸다가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으나 여자의 눈길은 싸늘했다. 남자는 마치 가늘고 기다란, 냉동실에 오랫동안 묵혀놓았던 장침 하나가 내장을 뚫고 들어와 자신의 몸 안쪽 어딘가에 쑥 박혀버리는 느낌이었다. 차가왔고, 끔찍했다. 입으로 퍼나르던 고깃조각, 여자는 이제 자신앞에 그 마지막 한 조각만을 남겨놓았을때 이렇게 말했다.
“저기요. 그쪽 성함이 뭐라고 하셨죠?”
“아.. 네.. 저는 김석봉.. 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김은 아실테고,, 돌 석에, 봉우리 봉 자를 쓰는데,,”
“아네, 됐구요. 석봉씨.”
그러니까 지금 여자의 입에서 석봉의 이름이 불리워진 것이다. 석봉씨는 순간 깨달았다. 어느 여인네가 그 입으로 자신의 석봉이라는 이름을 불러준 것이 아마 자신이 성인이 되고나서 처음있는 일 이라는걸 말이다.
“죄송한데, 석봉씨. 전 이만 일어나야 겠어요.”
“아니,, 고기라도 마져 다 드시지... 그리고 여기 후식도 맛잇다고 하던데요.”
“아니요. 됐어요. 후식이고 뭐고, 고기도 더 이상 턱 아파서 못씹겠네요. 우라지게도 질기네. 암튼 전 이만 일어날게요.”
말을 끝마친 후 여인은 날렵했다. 석봉이 일어나 막을새도 없이 그야말로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하기는, 석봉이 그녀를 잡으려면 옆 의자에 세워둔 두 개의 목발을 집어들고, 양쪽 겨드랑이에 목발헤드를 끼워넣고 뒤쫓아야 했으므로 시간도 한참이나 걸렸을 테다. 그녀가 떠나버린 호텔 정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도 이내 몸을 움직여 목발에 몸을 딛고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긴장을 한 탓일까 몸이 좀 힘들어서 택시를 타고싶었지만, 다소 사치라고 생각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호텔과는 꽤나 거리가 있는 서울 변두리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 앞에는 자신의 부재중에 배달되어온 커다란 박스하나가 놓여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아 대문을 열었다. 조그만 부엌이 하나딸린 단칸방, 그는 집으로 돌아오자 마음이 푸근해짐을 느꼈다. 그는 대문을 열어서 고정시키고, 문앞의 박스를 집어 안으로 들어옮겼다. 낑낑대며 박스를 옮기고 대문을 닫은 석봉씨는 이내 방으로 들어와 댓자로 드러누워 버렸다. 여자 앞에서의 시간은 그를 대단히 피로하게 했다. 땀도 엄청 흘렸던 것 같다. 여인과 마주앉아 있을땐 몰랐지만, 지금보니 옴 몸이 축축하다. 그는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씻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한동안 그렇게 드러누워있고 싶었다. 바깥 어딘가에서 냐옹-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최면에 빠져들듯, 석봉씨는 그 냐옹이의 울음소리를 신호삼아 곧 늦은 오후의 곤한 낮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저녁이었다. 서울 외진 변두리 석봉씨의 동네. 고깃집이 예닐곱개 노래방이 서너개 빵집이 마주보고 두 개 약국도 하나. 그리고 ‘영빈네 연탄구이’집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고기굽느라 피워올리는 연기하며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리며, 세어보진 않았지만 이십 초에 한번씩은 어느 테이블에선가 폭소가 터져나왔고 일 분에 한번씩은 건배를 외쳐댔다. 서빙을 하는 사장아주머니는 대단히 분주했다. 좁은 테이블을 요리조리 피하며 술과 고기를 퍼나르다가, 나가는 손님이 있으면 계산대로 가서 돈계산까지 도맡아야 했다. 그때 계산대에 놓인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사장아주머니가 잽싸게 달려가 전화를 받는다.
“네, 영빈네 연탄구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화통 삶아먹은 소리가 빽! 하고 들린다.
“이모! 도대체 날 뭘로 보는거야!”
“응? 달숙이니?”
“그래 이모. 나 달숙이야.”
사장 아주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래 달숙아, 낮에 그 사람이랑은 잘 됐어? 다음에 또 만나보기로 했어?”
“도대체 이모가 나라는 사람을 뭘로 봤길래.”
상대쪽에서 우는 소리가 들린다.
“달숙아, 너 우니? 울어? 왜그래. 그 사람이랑 만나자마자 싸웠니? 무슨일이야?”
“이모. 내가 아무리 마흔 넘어서까지 시집못가고 있는 노처녀라고 해도 말야. 어떻게 나한테 그럴수 있어! 어?”
팽-하고 코를 푸는 소리까지 들린다.
“무슨 소리야 달숙아, 내가 얼마나 고심하다가 마련한 선 자린데.”
“이모. 내가 나이 마흔넘기도록 시집도 못가고 있으니까 이젠 아주 내가, 사람처럼도 안보이나 본데. 나 이래봬도 사람이야! 나 정상인 이라고! 어떻게 다리 한 짝 없는 병신한테 나를 소개시켜 줄수가 있어! 엉? 앞으로 그 사람이랑 결혼해서. 뭐, 평생 병수발이나 하면서 살라는 거야 뭐야! 엉?”
“얘 달숙아, 너 무슨소릴 그렇게 하니. 그 사람 몸이 좀 불편해도 우리 동네에서 아주 소문난 사람이야.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가는 청년이라구! 너 아무리 말이라도 그런소리하면 하늘에서 죄 받어 이것아.”
“됐어. 다시는 이모가 주선하는 선자리 안나갈거야. 솔직히 다시는 이모얼굴 보기 싫어졌어. 정말 고기 씹어먹는데 속 울렁거려서 혼났어. 집에와서 전부다 토했단 말야!”
“왜.. 고기가 입에 안맞디? 거기 비싼 호텔이라 고기도 부드럽고 좋을줄 알았는데...”
상대편 여인이 부들부들 떤다.
“밥 먹는데, 앞에, 다리 짤라진 사람이 앉아있는데, 고기가 목구멍으로 넘어 가느냐고! 이모 정말 생각이 있는사람이야 없는 사람이야 !!”
그때 문에 걸어놓은 종이 울렸다. 댕그랑- 그리고 씩 웃으며 나타난 석봉씨.
“야, 달숙아. 이모 바뻐. 나중에 얘기하자. 끊는다.”
석봉씨는 사장 아주머니에게 고개를 꿈뻑숙여 인사를 하고는 능숙하게 테이블을 하나씩 돌기시작했다. 양쪽에는 목발이, 찹쌀떡을 가득담은 조그만 아이스박스는 줄에 매달아 그의 목에 걸은채였다. 아무리 소형박스라고는 하지만 무게가 상당했다. 석봉씨는 씩씩하게 테이블을 누비고 다녔다. 하나에 이천 원입니다. 고기도 맛있지만 떡도 맛있습니다. 떡 하나 사주세요. 건배와 폭소가 줄줄이 이어지는 테이블들, 그 웃는 얼굴들 속에 자기의 얼굴을 들이밀고 같이 웃었지만 석봉씨의 웃음에는 뭔가 서글픈 데가 있었다. 그래도 그는 온 힘을 다해 입을 째고 얼굴을 쥐어짰다. 여섯 테이블을 다 돌았고 한 테이블에서 떡 두개를 사주었다. 석봉씨는 만 원짜리 하나를 받고, 거스름돈을 내어주려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와 오천 원짜리가 곱게 접혀진 얇은 뭉치를 꺼내들었다. 떡을 사준 젊은 아가씨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정말 열심히 사시네요, 거스름돈은 괜찮습니다. 석봉씨는, 아니예요 계산은 똑바로 해야지요, 하며 다시 거스름돈을 건네려 했다. 젊은 아가씨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어 펜과 함께 꺼내더니 석봉씨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러면, 거스름돈 대신에 싸인 하나만 해주실래요?”
“싸인이요?”
“네. 사실, 저번준가 저저번주에, 방송에서 아저씨 봤거든요. 저도 이동네로 이사온 후에 저녁때 아저씨 종종 보곤했어요. 방송에도 나오신 분인데, 싸인 하나 해주세요.”
“아이구. 그래두 제가 뭐, 연예인도 아니고 뭣도 아닌데.”
“저는 거스름돈보다 아저씨가 싸인 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젊은 아가씨는 다시한 번 석봉씨에게 노트와 펜을 들이밀었다. 석봉씨는 겸연쩍은 미소를지어보이며 노트와 펜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큼지막하게 노트 중앙에 박아넣었다. 약간 아래쪽에 날짜도 잊지 않고 적었다. 노트를 다시 젊은 아가씨에게 건냈고 무심히 글씨에 눈길을 준 젊은 아가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내 같은 테이블의 일행도 석봉씨의 싸인이 적힌 노트에 시선을 고정했다.
“우와, 아저씨. 이거 정말 아저씨 글씨예요?”
“네 뭐. 다리가 좀 불편해서 그렇지 손이야 양쪽 다 멀쩡하니까요.”
젊은 아가씨는 손에 집어든 자신의 노트를 계속 바라보고있다.
“아뇨. 그게 아니라.. 너무 아름다운 글씨체라서 그래요.”
일행이었던 사람들중 여기저기서 또한번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와아.. 놀라워요 아저씨.”
석봉씨는 또 한번 뒷목을 긁적이며 웃는다.
“근데 성함이 김 석...”
한자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 마지막 글자가 무언지 묻는다.
“아, 김석 다음에 그게, 봉이에요 봉우리 봉.”
“아하. 아저씨 성함이 김석봉. 이시구나.”
“네. 저희 아버지가 저 태어나기전에 미리 지어주신 이름이예요.”
젊은 아가씨와 일행은 한동안 그렇게 석봉씨의 싸인을 들여다 보고있었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묘한 적막에 압도된 그 일행들에게 석봉씨가 말했다.
“그럼, 식사들 맛잇게 하세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석봉씨는 나이가 한참어린 동생뻘 일행의 테이블에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젊은 아가씨와 일행은 한참을 더 그 노트를 들여다 보고있다. 문쪽으로 나와 가게를 떠나기 전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자, 사장아주머니가 불러세웠다.
“석봉 총각-. 이리루와봐.”
사장님은 카운터 돈통을 열어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석봉 총각. 떡 다섯 개 만 줘.”
“괜찮아요 사장님. 벌써 사장님 가게에서 두 개나 팔았어요. 문간에 발조차 들이지 못하게 하는 가게도 있는데요...”
석봉씨를 바라보는 사장아주머니 눈빛이 측은하다. 석봉씨도 그 마음을 알아차린걸까.
“혹시 낮에 선 본것 때문에 그러시는거면... 괜찮아요. 하루이틀 겪는 일도 아닌데요 뭘.”
“아냐 석봉총각. 우리 연탄구이집에도 단골들이 좀 있어. 하루걸러 한번씩 와서 돼지껍데기에 소주한 잔씩 하고가는 사람들 꽤 있거든. 오늘도 그네들 중에 하나 오면은 써비스로 줄려고 그래. 다섯 개만 줘봐 얼른.”
석봉씨는 머뭇하다가 자신의 목에걸린 소형 아이스박스에서 찹쌀떡 다섯 개를 꺼내어 계산대 위에 공손히 두었다. 그리곤 사장님이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자 머뭇거리며 받지를 못한다. 사장님이 눈을 한 번 곱게 흘기더니, 석봉씨의 주머니에다 강제로 만 원짜리를 욱여넣어버렸다. 그제서야 미안한 듯 고마운 듯 씨익- 한번 웃는 석봉씨.
“석봉총각. 총각처럼 몸이 좀 불편해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 덕분에 나같은 사람도 용기를 얻고, 또 더 열심히 살아야지. 이런 생각을 해. 거리에서 석봉총각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 다 그렇게 생각할거야. 그래서 난 석봉총각이 매일저녁 우리 가게 들러줄때마다 고맙게 생각해. 정말이야.”
“아이구 사장님. 별 말씀을요. 고깃집이든 노래방이든, 가는곳마다 눈총 주는데가 얼마나 많은데요. 제가 사장님께 감사하죠.”
“아냐. 요즘같은 세상에 석봉총각처럼 매일 생글생글 웃으면서 열심히 살려는 사람, 생각처럼 많지 않아. 석봉총각 정말 용기있고 장한 사람이야.”
석봉씨는 시선을 땅으로 떨구며 수줍게 웃는다.
“그리구 석봉총각. 우리 달숙이 말야. 아직은 결혼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나봐. 석봉총각이 이해를 좀 해줬음 좋겠어. 오죽하면 멀쩡한 애가 나이가 마흔 넘도록 아직도 시집을 못 갔겠어. 아직도 정신을 좀 못차린거 같애. 석봉총각이 이해를 좀 해줬음 좋겠어.”
“사장님. 이해는요 뭘... 사장님이 저 좋게 봐주시고, 선자리 까지도 마련해 주신거. 그 사실만으로도 저는 너무너무 감사해요. 저 사실 여자랑 단 둘이 마주보고 앉아서 밥 먹어본것도 태어나서 오늘이 처음이였어요. 그리고 달숙씨가 제 이름도 불러 주셨구요. 덕분에 정말 의미있고 행복한 하루였어요.”
사장아주머니는 너무 미안한지 몇 번을 더 석봉씨에게 이해를 구하는 말을 건넸다. 석봉씨 또한 몇 번이나 가벼이 손사래를 치며 자기가 감사할 따름이라했다. 다시금 손님들이 들이닥쳤고 사장아주머니는 손님들을 빈 테이블로 안내하고 나가는 손님들 계산을 해주어야 했다. 석봉씨는 분주해진 틈을 타 가게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초겨울 공기는 쌀쌀했다. 그러나 자신의 출입을 막지 않는 가게를 찾아, 떡 팔아줄 손님들을 찾아, 목발을 짚고 달리고 또 달리면 금세 온 몸이 땀으로 젖어버릴것이었다. 석봉씨는 가게 한 군데에서만 벌써 만사천 원어치를 팔았다며 다시 마음을 고쳐잡고 목발을 양쪽 겨드랑이에 끼웠다. 이제 힘차게 목발을 디뎌 이 골목 여기저기를 밤새도록 누비리라. 그렇게 다시금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그리곤 석봉씨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손가락. 뒤를 돌아본 석봉씨에게 조금전 영빈네 연탄구이 집에서 거스름돈 대신 자신의 싸인지를 받아들었던 젊은 아가씨가 서있었다.
“아저씨. 제가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데.”
“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랑 말씀 좀 나누시면 안될까요? 아저씨 글씨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텔레비전 인터뷰때 하신말씀 말고, 또 다른 사연이라도 있으신 건지. 성함이 한석봉이랑 비슷한 김석봉 이신것도 그렇고.”
“그건 뭐 그냥.”
“아저씨. 이런말씀 드리기 좀 죄송하지만. 오늘 아저씨가 버시는 만큼 돈 드릴게요. 대신에 저랑 한두시간만 얘기해요. 네? 너무 궁금해요. 전 궁금한건 못참아서 이대로 가면 밤새도록 잠도 못잘거예요.”
석봉씨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어린 친구의 부탁을 묵살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조카뻘 되는 사람에게 돈을 받는다는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때 젊은 아가씨가 지갑안에있는 지폐를 전부 꺼내 석봉씨에게 건냈다.
“아저씨. 이정도면 될려나 모르겠어요.”
“이러면 내가 좀 곤란한데.”
젊은 아가씨는 지갑에서 꺼낸 만원짜리 몇 장을 석봉씨의 주머니에 푹- 집어넣어 버리고는 말했다.
“아저씨. 지금 제가 드릴수 있는건 이게 전부예요. 조금 보자라도 성의를 봐주세요. 자, 이제 저 따라오셔야 해요. 건너편에 카페로 일단가요 아저씨.”
“아니 저기. 나는 그, 사람들 많은 카페같은곳은 성격상 잘 못가는데.”
“사람많은곳 싫으세요? 아까 연탄구이집도 사람들 많았는데.”
“그거야,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쩔수 없이 그러는거고. 난 수줍음이많아서 카페같은곳은 아예 출입을 전혀 안하는데.”
“그러시군요. 그럼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젊은 아가씨가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적당한 곳을 찾는다.
“그러면, 학생. 혹시 우리집에 잠깐 가는건 어때요. 여기서 별로 멀진 않은데.”
“집이 근처세요? 전 상관없어요. 그냥 아저씨랑 대화만 좀 나누면 되니까요.”
“목발짚고 뛰어가면 십 분 정도 걸리니까 천천히 걸어가면 이십 분정도면 갈수 있어요.”
“좋아요 아저씨. 그러면 아저씨네 집으로 가요.”
젊은 아가씨는 또 한번 활짝 웃었다. 둘은 그렇게 나란히 걸었다. 떡가방 줄을 매고있는 석봉씨가 안쓰러웠던지 젊은 아가씨는 중간에 석봉씨의 가방을 받아서는 대신 들어주었다. 도란도란 걸어가는 사이 어느새 둘은 석봉씨의 집에 도착 했다.
삐거덕- 대문이 열렸고 스위치를 올리자 어두웠던 실내가 금세 환해졌다. 석봉씨는 젊은 아가씨가 낑낑대며 들고있던 떡담긴 박스를 조심히 받아 한쪽에 놓아두었다. 젊은 아가씨는 신기한 듯 좁은 단칸방 공간을 한자리에 서서 둘러보았다.
“혼자사는 늙은 노총각 집이라, 아마 홀아비냄새 같은거 많이 날텐데..”
석봉씨가 민망한듯 뒷목을 긁는다.
“아뇨 아저씨. 냄새같은거 하나도 안나는데요?”
“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
둘은 대문을 닫고, 좁은 부엌을 지나 방으로 들어왔다. 젊은 아가씨를 먼저 들여보내고 석봉씨는 목발을 방 입구에 걸쳐 놓고 들어왔다.
방은 혼자사는 남자의 방처럼 지저분하거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몇벌 안되는 옷가지들은 잘 정리되어있었고 양말과 속옷도 구석에 개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건 석봉씨의 방에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한쪽 벽면에 빼곡히 들어차 있는 것이었다. 반 이상은 한자로 쓰여진 두툼한 책들이었다. 둘은 석봉씨가 파는 떡 하나를(조그만 찹쌀떡 네 개가 담긴 팩형태였다.)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소 인터뷰같은 형식이었다. 젊은 아가씨가 질문을 던지면 석봉씨가 답변하는 식이었는데 한참을 그렇게 하다보니 석봉씨는 젊은 아가씨의 이름이 궁금했고 젊은 아가씨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는데 소연 이라고했다. 이소연. 흔하지만 예쁜 이름이라고 석봉씨는 생각했다.
소연의 질문에 석봉씨는 성실하게 답변을 했고 질문이 이어질수록 석봉씨의 어색함도 줄어들어 어느새 이런저런 주변이야기들도 덧붙여 상세하게 말하게 되었다. 이야기인즉슨, 석봉씨는 어린시절 돈걱정은 크게 안 할 정도로 그럭저럭 괜찮은 집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아버지는 인사동에서 규모가 좀 있는 고서적 전문점을 하고있었고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런데 석봉씨가 태어난 다음날 아버지가 귀갓길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한동안 앓아누우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셨고, 남편이 운영하던 고서적 전문점을 처분하고 남은 돈으로 석봉씨를 키우기 시작했다. 자라나는 어린 석봉씨가 아비없는 놈 소리 듣지않게 하기위해 공부도 매섭게 시켰다고 한다. 석봉씨의 이름은 아버지가 석봉씨 출생전에 미리 지어놓은 것이라 했는데, 조선의 명필가 한석봉처럼 문자에 조예가 깊은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고 했다. 남편의 뜻을 따라 석봉씨의 어머니는 석봉씨에게 공부를 열심히 가르쳤다고 한다. 그런데 석봉씨의 초등학교 입학을 불과 두어달 남긴 어느날, 어머니가 갑작스레 행방불명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친척집에 맡겨져 있던 석봉씨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날, 학교에서 친척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뺑소리 차에 치여서 다리 한쪽을 잃게됐다고 했다. 친척집은 한동안 석봉씨를 돌보아 주었으나, 치료비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빚까지 지게되자 석봉씨가 초등학교 이학년이었던 어느날 석봉씨에게 일언반구 말없이 이사를 가버렸다고 한다. 그날 다시 학교로 돌아와 밤새도록 울면서 교실에서 밤을 지샌 석봉씨는 다음날 아침 담임선생님을 만나자 이런 사실을 알렸고 선생님은 백방으로 석봉씨를 맡아기르던 친척집의 행방을 찾으려했지만 도무지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80년대에 갓 접어든 때였고 지금처럼 통신이나 전산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석봉씨는 여기저기를 임시로 떠돌다가 마침내 교장선생님과 인연이있는 한 고아원에 보내졌다고 했는데, 석봉씨는 그런 어려운 처지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글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것이 떠나버린 부모님에 대한 보답이라고 굳게믿었다고 했다.
“그럼 그 이후로 어머니는 한 번도 본적이 없으세요 아저씨?”
“응. 없지.”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 석봉씨는 어느새 소연에게 말을 놓은 상태였다.
“많이 보고싶으시겠어요..”
“가끔 생각이 나지. 그런데 먹고살기 바빠서 그렇게 자주 감상에 빠지진 않아.”
“아저씬 공부도 열심히 하셨다니까 부모님 안계셔도 중학교까지는 무난히 졸업하셨겠네요?”
“응. 몸이 좀 불편할 뿐이었지만 사실 크게 괘념치 않았어. 그리고 고아원에서도 원생들 교육에 많이 힘써준 편이었고. 사실 고아원에 있으면서도 성적이 괜찮으면 이런저런 시설에서 지원을 많이들 해줘. 오히려 보통 학생들보다 더 기대를 받는 몸이 될 수도 있지.”
“그럼 혹시 대학교.. 까지?”
“대학교도 나왔지.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성적이 계속 괜찮은 편이었고 바로 시험을 봐서 지방의 한 국립대에 들어갔어. 전액 장학금으로.”
“전공은요?”
“국문학”
“우와.. 그래서 그렇게 글을 잘 쓰시는구나. 뭐 국문학과에서 글씨연습을 시키는건 아니겠지만.”
“국문학과면 아무래도 글 쓸일이 많기는 하지. 우리때만 해도 컴퓨터 보다는 대개 손으로 글을 쓰는 문화였거든.”
“계속 대학공부 하셨으면 좀 편하게 사셨을 것 같은데 좀 안타까워요.”
“대학공부는 계속했지. 졸업도 했고. 다리가 이 모양이니 군대도 면제받았고 휴학같은거 한 번 없이 스물 세살에 바로 학교를 졸업하게 됐어. 문제는 그때부터였지. 취직을 하고 돈도 벌어야 할텐데, 서류심사에선 합격을해도 면접만 보면 무조건 떨어지는 거야. 왜 이력서에 장애사실을 알리지 않았느냐고 혼이난적도 많았고 말야.”
“취직하시기에 좀 힘드셨겠어요..”
“힘들다고 말하는게 맞을런지 모르겠어. 한번도 취직에 성공했던적이 없거든. 대학을 졸업하고 삼년이 넘어가도록 한 군데에서도 합격통지를 받지 못했어. 대학을 다니면서도 학비는 장학금으로 해결하고, 또 고아원 원장님이랑 다른 시설 관계자분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생활비도 해결을 하고 그랬는데. 졸업을 한 후에까지 그렇게 지원을 받기가 너무 죄송하더라고. 그래서 취직했다고 둘러대고 모든 지원을 사양했지.”
“그럼 그때부턴 생활비같은건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아무리 취준생이라고 해도 밥은 먹고살아야 할 것 아니에요?”
“그래서 이렇게 된거야.”
따뜻했다가,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 찹살떡을 손가락으로 쿡쿡 누른다.
“요렇게 찹쌀떡이나 파는 신세가 된거지 뭐.”
석봉씨는 씨익 웃어보였고 소연도 왠지 미안한 듯 머리를 귀 뒤로 쓸어내며 살짝 웃었다.
“그럼 연애경험도 별로 없으시겠어요..”
“전혀.”
“그럼 여자와의 그런경험도 한 번도 없으세요?”
“그렇지. 그냥 가끔 야한동영상이나 좀 보고 마는거지 뭐.”
석봉씨는 괜시리 과장해서 웃는다. 소연도 민망한 듯 웃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참. 제가 아저씨한테 놀라운 경험을 하나 선물해 드려도 될까요? 이렇게 밤이 깊도록 제 질문에 전부다 답해주셨으니, 보답으로요.”
“놀라운 경험이라니?”
“제가 사실 세상 모든일을 빠삭하게 들여다 보고있는 도사님을 알고있어요. 아저씨가 원하시면 행방불명된 어머니가 어디계신지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세상 모든일을 빠삭하게 들여다 보는 도사님?”
“네. 사실 제가 학교는 그냥 폼으로 다니는 거예요. 평일에도 저녁땐 알바 주말엔 종일 알바. 그렇게 돈 모아서 방학만 되면 곧바로 계룡산으로 떠나요. 처음엔 명상을하고 도를 닦기위해서 갔다가, 거기에 저랑 코드가 잘 맞는 도사님을 한 분 찾았어요. 저희집안 내력이랑 저도 몰랐던 부모님들의 어린시절의 비밀이랑 한번에 다 알아맞히시는데. 정말 겉모습만 사람이지 완전히 귀신이예요 귀신.”
“그러니까, 그분께 가면 우리 어머니의 행방을 찾아볼수가 있다는거야?”
“맞아요. 저는 주말에 시간이 되니까 아저씨 시간되실 때 한번 같이가요. 대전 근처라서 서울에서 몇 시간이면 가요.”
석봉씨는 의아한 마음도 있었지만 소연학생이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떡장사 하루 쉰다고 누가 뭐라할 사람도 없었다. 석봉씨는 소연과 함께 주말에 계룡산을 오르기로 약속 했다.
대전까지는 기차를 타고갔고, 대전 시내에서 지나가는 봉고차를 얻어타고 산 근처에 다다른 다음 험한 산세를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다. 두 다리 멀쩡한 소연에게도 버거운 일이었고 한 쪽 다리없이 목발에 의지해서 산을 타야하는 석봉씨의 어려움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서울 영등포역 에서 아침일찍 떠났기에 대전역엔 정오가 되기전에 도착했으나, 봉고차를 얻어타고 험한 산세를 오르는 와중에 어느새 해는 기울어져 가고있었다. 아직 늦은 오후시간에 불과했는데도 산 속은 수풀들이 심하게 우거져 마치 한밤중에 임박한 듯 했다. 문득 불길해진 석봉씨는 소연에게 길을 제대로 가고있는 것이 맞는지 확인을 했다. 소연은 이길만 여섯 번 넘게 다녔다며 석봉씨를 안심시켰다. 작은체구에 귀염성있는 외모였지만 어쩐지 당찬데가 있는 소연은 무언가 말속에 단단함이 배어있는 학생이었다. 소연의 말 한마디에 다시금 석봉씨는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길이 터있지않은 우거진 산길을 팔 다리 나뭇가지에 쓸려가며 어렵사리 오르기를 수 시간째. 소연의 눈이 갑자기 동그래지면서 외쳤다. 앗! 저기 계시다. 석봉씨도 땅만보며 헉헉대고 오르던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소연이 손가락을 들어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둡게 우거진 수풀아래. 평평하게 다듬어진 바위위에 가부좌를 틀고앉아있는 노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있는 장발의 노인이었다. 계량한복 비슷한 옷을 입고있었는데 산 속에서 수련하는 사람답지않게 매우 깔끔하고 단정해 보였다. 소연은 석봉씨에게 눈짓으로 가까이 가보자는 신호를 보냈고 둘은 참선하는 노인에게 방해가 되지않도록 되도록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노인에게 다가갔다. 앞서걷던 소연의 바스락하는 발소리에, 참선하던 도사는 여전히 눈을 감은채로 입만 조용히 열었다.
“소연학생. 이 먼길을 또 찾아오셨나.”
“앗! 네 도사님. 오늘은 손님을 한 분 모셔왔어요.”
“산속에 쳐박혀 조용히 명상이나 하면서 살아가려는 노인네를 이토록 가만히 놔두지를 않는가. 여지껏 내가 전수해준 잡기들로는 도무지 성이차지 않는것인가.”
“아니예요. 이젠 약속드린대로 일 년에 딱 한 번만 찾아올게요. 딱 오늘만 예외예요. 저희 동네에 정말 착한 아저씨가 계신데 딱한 사연이 있어서요. 한 번 만 부탁드릴게요.”
“지상에 모든 인간들. 짐승등. 발밑에 기어다니는 개미새끼들 하나까지 다들 자기들만의 사정이 있네. 그 짧은 인생에 아쉬운 것 천지라네. 누구나 자기인생 안타까운 법이란 말일세. 누구의 사정이라고 특별할 것 없는것이니, 그냥 조심히 돌아들 가시게.”
그때 석봉씨가 목발을 짚은 상태에서도 공손히 양 손을 앞으로 모으고 백발의 도사에게 말했다.
“저기 할아버님. 아니, 도사어른. 저는 서울에서 온 김석봉이라고 합니다. 저는 보시다시피 다리가 한 짝이 없는 처지구요. 어렸을적에 저를 그리 예뻐하시던 제 어머니가 어느날 흔적없이 사라져 버리셔서 그 내막이나 좀 알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속세에서 밤낮으로 멸시당하며 사는 이 인생 가엽게 여겨주시고, 부탁을 한번 좀 드리겠습니다.”
그제서야 도사는 무겁게 감았던 눈을 떠 소연과 석봉씨를 내려다 보았다. 그 눈빛은 왠지 슬퍼보였는데 특정한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슬픔과 연민의 눈빛이었다. 때로는 자신이 깔고 앉아있는 바윗덩이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날 며칠씩 식음을 전폐하고 가부좌를 틀고앉아 수련을 하고있는 와중에는, 세상 모든 살아가고 죽어가는것들이 가여워, 머리위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도 안타까운 눈물을 주륵 흘리곤 하는 것이 지금 소연과 석봉씨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있는 병주 도사였다.
“그래. 자네는 잃어버린 어머니를 왜 찾고싶은가.”
“예 도사님. 저는 태어나면서 아버지를 잃었고 유치원에 다닐적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다만 문예에 뜻을 두고 사셨다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자주 전해들었고, 그래서 글공부를 항시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셨는데 그후로는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이 혼탁해지며 온통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미움의 한스러움만 커져가고 있으니, 제 어머니의 생사라도 좀 알 수 있다면 다시 마음을 고쳐잡고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삶일지언정, 계속해서 제 삶을 성실히 이어나가고, 잠시 손에서 놓았던 글 공부도 이어나가고자 하는것입니다.”
석봉씨는 여전히 손을 가지런히 모아 쥔 상태였고, 소연도 간절한 눈빛으로 병주 도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니 어미는 죽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꽂고 있었던 석봉씨의 눈이 둥그래 지며 도사를 바라본다.
“......예 ?”
“행방이고 뭐고 없다. 니 어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냥 그런줄 알고 물러가라.”
“도사님. 그게 무슨말씀이신지요. 저희 어머니 생년이라든가 태어난 시. 그런것 하나 묻지 않으시고 어떻게...”
“생년이고 나발이고 그런거 알 필요가 뭐가 있겠느냐. 니 어미는 지금도 옆에서 널 바라보며 울고계신다.”
소연도 눈이 동그래지며 석봉씨쪽을 바라보다가 주변으로 시선을 빙 둘러본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면서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도사님.”
“네가 이미 알다시피 네 아비는 네가 태어난 다음날, 차에치여 즉사했다. 너도 어미에게 자주들어 알고있겠지만, 네 아비는 매일 자신의 고서적방 구석에서 나름대로 수련을 해오고 있었다. 정신을 흐릿하게하는 혼탁한 찌꺼기들을 매일 털어내며 살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죽어서도 미련없이 이 세상을 떠났다. 생에 티끌만한 미련도 남지 않았기에, 바삭하고 담백하게 저승으로 떠나가 잘 살고있다는 말이다.”
“그런데요. 제 어머니는요?”
“네 어미는 아비와달리 수련에 매진하거나 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 그저 아들하나 보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던 가엾은 여인네일 뿐이었단 말이다. 남은 자식하나 애비없이 자란놈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게 하려고 그렇게 기를쓰고 잘 키워보려 애를 써왔다.”
“네. 맞습니다.”
“고서적 방이라는것도 시대가 바뀌면서 세간의 관심을 잃었고 가게를 팔아 처분한 돈은 오래가지 않아 다 떨어졌다. 여기저기 돈 꾸러 다니기 바빴고 그렇게 허둥대는 와중에 네 어미역시 사고를 당해 죽게되었다.”
“제가 죄인입니다.”
석봉씨의 얼굴에 그늘이 짙다.
“너만 죄인이 아니다. 태어난 모든 인간 모든 짐승 눈에 보이지 않은 미물들도 따지고 보면 죄받은 존재들이다.”
“제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가 그렇게 고생하며 절 키우지 않으셨어도 되었을텐데 말입니다.”
석봉씨가 혼자에게만 들리는 조용한 소리로 무거운 한숨을 뱉어냈다. 그리고선 고개를 들어 도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도사님, 제 어머니는 왜 아직 저승에 가지 못하시고 이곳에 남아계신가요”
“육신이 죽었다고 아무나 저승길에 곧바로 오르는게 아니다. 보통의 어리석은 인간들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승에 집착을 하면 저승길의 문턱에서 죽은후에도 고통받으며 사는 법인데, 너의 어미는 너에대한 미련이 너무나 컸다. 그래서 저승길에 오르지도 이승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이렇게 나같은 도사의 눈에만 보이는채로 괴상하게 이쪽과 저쪽의 중간에 머물러있는것이다.”
석봉씨의 마음도 무거웠지만 옆에있는 소연의 마음도 편치않긴 마찬가지였다. 석봉씨의 어머니를 편하게 저승으로 떠나시게 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소연이 묻자 병주 도사가 답했다.
“못할게 뭐 있겠느냐. 다만 내가지금 수주일째 몸 한번 까딱 않고 있으니 육신이 무겁기가 말할 수 없다. 내일이나 모레쯤 시간 되는대로 시내에 내려가 막걸리나 두어병 사오면 그때 허기진 속을 좀 달래고 나서 저 사내의 어머니의 혼을 위로해드리고 저승으로 보내드리는 것으로 하자꾸나. 세상에 그저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그때 소연이 뒤에 짊어진 가방에서 커다란 검은색 봉지를 집어올렸다. 대전역 근처 슈퍼에서 사온 막걸리였다. 바위위에 있는 도사에게로 다가가서 막걸 리가 담긴 검은봉지를 그 앞에 다소곳이 두고는 다시 석봉씨의 옆으로 돌아와서 섰다.
“소연 학생은 내가 막걸리 즐겨마시는것을 잘 기억하고 있었구만.”
“그럼요. 막걸리 심부름만 벌써 몇 번짼데 그걸 잊겠어요.”
“자. 그럼 일단, 시원하게 목구멍부터 축이고 했던 이야길 마저하세.”
병주 도사는 막걸리병을 집어들고 뚜껑을 열고는 고개를 하늘로 젖히고 단숨에 마셔버렸다. 나머지 한 병도 금세 비워버렸다. 손에 쥐었던 막걸리 병을 바위위에 탁 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꺼어어어어억. 음... 오래도록 허기진 속에 막걸 리가 들어가니 뱃속이 꺼어어어어억. 싸르르한 것이 들어가자마자 곧장 취기가 올라오는 구나. 허허. 그거 참 좋네그려.”
병주 도사는 한참을 그렇게 껄껄 웃어젖히더니 어느새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석봉씨를 향해 손짓을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자 거기자네. 서울에서 온 김석봉이. 이리로 오게.”
석봉씨가 소연쪽을 한 번 보더니 그렇게 하라는 눈짓을 보고는 목발을 짚고 한 걸음씩 병주 도사에게 다가갔다. 도사가 주섬거리며 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 조그맣고 누런 종이였는데 위 아래로 뜻모를 빨간 글자가 빼곡히 적혀있는 부적같은 종이였다.
“자. 서울에서 온 김석봉이. 여기다가 자네 어미 이름이랑 생년월일을 쓰시게. 한글로 쓰면 신들이 못알아보니 한자로 쓰시게.”
어둑했던 주변 사위는 이미 한밤처럼 깜깜해져 있었지만 석봉씨에게는 문제되지않았다. 과거의 한석봉을 흉내내며 석봉씨역시 때때로 눈을 감고 글연습을 하곤 했었다. 자세가 편치 않았지만 어머니의 이름과 생년원일을 종이에 정성스레 적어넣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보고 쓰는듯한 느낌이었다. 글은 무엇이냐. 네 마음의 창이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처럼. 때로는 글을쓰며 눈물을 흘린다. 글을 쓰는 것은 마음안의 슬픔을 태워내는 일이다. 모든 원망하는 마음과 좌절과 체념을 슬픔과 함께 태워버린 후에. 이제 바닥에 나풀거리는 저 한줌의 재로 된 그것을 후-하고 불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다 흩어진다. 흩어진것들은 곧 없어진다. 석봉씨가 부적종이를 집어 병주 도사에게 공손히 건넸다. 병주 도사는 종이를 눈앞에 가까이 대고서 잠시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흠. 명필이구만. 석봉이, 나는 이제 소연학생이랑 저 아래쪽에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로 가서 이 부적을 흘려 보낼걸세. 자네는 여기서 기다리시게.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의 결을 잡아내어 부적을 떠내려 보내면, 그것이 곧 속세 인간과 짐승의 눈길이 닿지 않는 미지의 곳으로 흘러들어갈걸세. 그것은 곧 잠들어있던 신령님들을 깨우고 그 자비아래, 자네 어미가 눈앞에 나타날걸세. 잘 타일러서 저승으로 편안히 보내드리시게.”
석봉씨는 바위위에 웅크리고 엉거추줌 앉아있었다. 도사와 소연이 땅의 나뭇잎들을 밟으며 멀리 떨어져가는 발걸음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석봉씨의 눈 앞에 반딧불이 같은 조그만 불빛이 이리 저리 움직이더니 이내 밝은 섬광을 내뿜으며 석봉씨를 눈부시게 만들었다. 석봉씨는 한쪽 목발을 손에서 놓쳐버리고 눈을 가렸다. 강렬한 빛이었다. 찡그리며 갑작스레 감았던 눈을 서서히 뜨자 그곳엔 어둠속에 빛을내며 고요히 날개짓하는 나비 한마리가 있었다. 날개는 금빛 가루를 사방에 펄럭이며 휘날렸다. 석봉씨는 오른쪽 목발로 몸을 지탱하고 왼쪽 손바닥을 펼쳐 허공에 내밀었다. 금빛 가루를 사방에 날리던 나비는 손바닥 위에서 날갯짓을 몇 번 하더니 손바닥 위에 살포시 내려 앉았다. 석봉씨는 자신의 손바닥을 눈 앞으로 가져와 가까이에서 그 나비를 바라보았다. 아주 가느다란 실로 촘촘히 엮어만든 인형같은 느낌이었다. 그 조그만 크기에도 불구하고 석봉씨는 분명하고 강렬한 생명력을 그 나비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을 물끄러미 나비를 바라보던 석봉씨가 입을 열었다.
“엄마. 이 금빛의 나비가 엄마인줄은 모르겠지만. 그냥 엄마라고 생각하고 내 마음을 전할게. 무엇보다 엄마. 난 이렇게 안좋은 몸으로 살고있지만 그래도 난 이세상에 살아있잖아. 가장 먼저 이말을 하고 싶어. 엄마 날 세상에 태어나게 해줘서 고마워. 살아가다보니 힘든날도 많고 울고싶을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나를 품에 안아주었던 엄마 생각을 했어. 그러면 무서운 이 세상도 겁나는게 하나도 없어져. 때로는 세상에 나를 혼자두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엄마 원망을 한적도 있었어. 그래도 난 이제 어른이 됐잖아. 난 괜찮아. 이제 나도 어린아이가 아니야. 이제 내 걱정을 하지말고 엄마의 자리로 편안히 떠나가도돼. 매일 떡팔러 다니는것도, 가끔은 재미있어. 온 몸에 땀이흐르면 살아있음을 느껴. 그러면 더 빨리 가게들을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떡을 더 열심히 팔어. 난 지금 아주 열심히 살고 있어 엄마. 사는건 가끔은 행복하기도 해. 난 이제 어른이 됐어 엄마. 이젠 세상에 혼자남은 아들에 대한 미련은 내려 놓고 내 걱정 그만해도돼. 알겠지?”
고요했다. 석봉씨는 나비를 앞에두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자신의 모습이 조금은 우스웠다. 잠시 멍하니 나비를 바라보던 석봉씨가 말했다.
“지금 이 나비가 엄마가 맞다면 날갯짓 한 번만 해줘”
금빛 나비가 날갯짓을 한 번 했다.
“진짜로 엄마가 나비가 된거면 날갯짓 두 번 해줘.”
금빛 나비가 날갯짓을 두 번 했다.
석봉씨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석봉씨는 이내 울먹이며 말을 이어갔다.
“엄마. 보고 싶었어.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건 너무 힘들어. 나이만 먹었지 난 아직도 어린애 인지 몰라. 때로는 사는게 너무 무서워. 매일매일이 지옥같이 느껴질때도 있어. 내 모습이 징그럽다며 도망가는 동네 아이들을 볼때마다 괴물이 된것만 같아. 나도 이렇게 살고싶지 않았어 엄마. 그런데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된건지 난 몰라. 이렇게 벌레처럼 사느니 차라리 죽고 싶어. 죽어싶어 엄마... 엄마...”
석봉씨는 한참을 더 나비에게 또는 엄마에게 슬픔을 털어놓았다. 기운이 없어 목발을 바닥에 놓고는 주저앉아버렸다. 돌아가신 엄마가 자신의 걱정을 하느라 이승을 떠나지도 못하고 있다는 병주도사의 말에 너무나 죄스러운 마음이었다. 잘 살고있다고 웃으며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와 대면한 석봉씨에겐 세상에대한 야속한 마음이 앞섰다. 이제 석봉씨는 바위위에 드러누워 버렸다. 졸음이 쏟아졌다. 의식이 흐려져가고 있었다. 혹시라도 잠결에 왼쪽손을 움켜쥐게 되지않을까 끝까지 손가락을 펴고 있으려 애썼다. 차거운 바위의 냉기가 몸을 타고 올라왔다. 뼈마디를 찔러대는 한기였다. 세상이 석봉씨에게 내리꽂던 경멸과 멸시의 시선. 그것의 날카로움과도 같았다. 흐릿해져가는 정신에 석봉씨는 읊조린다. 죽고 싶어 엄마. 이젠 엄마아. 누운채로 가느다랗게 실눈을 뜨고 겨우 시선을 유지하던 석봉씨에게 보이던 금빛의 나비는 점점 흐릿해져 갔다. 이내 석봉씨는 맥을 탁 놓고 잠에빠져 버렸다.
찬란한 햇살이었던가. 아니면 석봉이!를 크게 외치며 다가오는 병주 도사의 우렁찬 외침이였나. 잠에서 번쩍 깬 석봉씨는 바위 위에 엎어져 잠들어있던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병주 도사와 소연을 바라보았다. 소연은 밝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고 병주 도사는 간밤에 보았던 장발의 근엄한 산신령 느낌이 아니었다. 뒤로 질끈 묶어낸 머리칼은 단정해보였고 활짝웃는 얼굴에 드러난 치아는 햇살에 부딪혀 반짝였다. 바위를 딛고선 석봉씨는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도사님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하고 인사하며 고개를 수그렸다. 그 때 석봉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잘려 나가고 없었던 자신의 왼쪽 다리가 온전히 들러붙어 있었다.
“자네. 어머니께 무슨말을 했길래 새 다리를 얻었는가!”
병주 도사가 껄껄댄다. 소연의 눈망울도 기쁨에 반짝인다. 석봉씨는 한참동안 자신의 다리를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제자리 뛰기를 해보았다. 온전하고 튼튼했다.
“이보게 석봉이. 내가 신령님들 말씀을 들어보니 자네 어머니, 간밤에 좋은 곳으로 훨훨 떠나셨다고 하네. 자네 다리좀 고쳐달라고 밤새도록 신령님들 붙들고 매달렸다고 하네. 신령님들이 견디다 못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해주셨다네. 원래 아무리 간청을 해도 그렇게 하면은 반칙인건데 말일세.”
병주 도사는 다시한번 껄걸 웃어젖혔다. 석봉씨는 병주 도사에게 큰 절을 몇 번이나 올린 후 소연과 함께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 안에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몇 번이나 자신의 두 다리로 제자리 걸음을 해보곤 했다.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생각에 아주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었다. 창밖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하늘은 쾌청했다. 동동 떠있는 구름을 보자 어린시절 엄마품에 안겨 먹었던 솜사탕이 생각났다. 석봉씨는 요즘도 서울에 솜사탕 파는곳이 있는지 소연에게 물었다. 잘 모르겠지만 찾아보면 있을거라고 했다. 석봉씨는 솜사탕 아저씨를 찾아낼 때까지 동네 골목을 끝없이 누비고 다니리라 다짐했다. 석봉씨는 고개를 돌려 소연을 바라봤고 소연은 씽긋 웃었다. 석봉씨도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아름답고 쾌청한 날씨에 딱 걸맞은 환한 웃음이었다. 기차는 서울을 향해 쉼없이 달리고 있었다.
-끝-
첫댓글 분위기가 아주 몽환적입니다. 재미도 있어서 직빵으로 읽어 내려갔네요
인소닷에선 완성도 있는단편을 찾아보기 힘든데 간만에 완성된 작품을 읽게 돼서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잘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