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날 저녁에 비가 왔다. 촉촉한 빗방울이 봄을 재촉하는 느낌이다. 저수지에 얼었던 얼음이 다 녹았지만 오후부터 바람이 차다. 입춘 추위를 할 모양이다. 새해 인사하기 바쁘더니 설 지나자 벌써 정유년도 열 달 남았다. 세월 참 무심히도 간다. 하루 삼시 세끼 챙기다보면 한 해가 휙휙 가고 머리카락만 자꾸 하얗게 변하고 몸의 기운은 갈수록 고갈 된다. 이렇게 살다 가는 것이 인생이란 것을 알만한 나인데도 허송세월한 것 같아 지나온 날이 아쉽고 다가올 날이 두렵다.
비 덕분에 일을 쉬게 된 남편이 어른들 모시고 나가 점심 먹고 오잔다.
"좋지. 어디로 가?"
"아부지는 장어 좋아하시잖아."
"삼천포까지 가?"
"아니, 진주 그 집에 가서 먹자."
시어른들 모시고 근교 도시인 진주에 나가 장어 먹고 왔다.
"밥 값 있나? 너거 돈이 오데 있것노?"
"장어 사 드릴 정도는 있습니다. 많이 드세요. 두 분이 건강해야 제가 편하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우야든 둥 고맙다. 자알 묵었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에 아버님이 꺼낸 안건이다. 시댁의 아래채 지붕을 뜯어내고 새 지붕으로 이었으면 하는 시아버님 발상에 말문을 닫았다. 두 분 돌아가시면 빈 집으로 남을 집을 왜 자꾸 고치고 싶어 하시는지. 그것도 허접한 것들 쟁여두는 아래채와 창고 지붕을. 아무리 백세 시대라고는 하나 아흔이 넘은 어른의 발상치고는 참 답답하다. 백세까지 살 것이라 믿는 마음이야 알겠는데 왜 나는 서글픈 느낌이 들까. 늙어가는 자식들이 눈에 안 보이시는 것일까. 일은 아버님이 벌여도 뒤처리는 남편이 해야 하는 입장인데. 농사일도 힘에 버거워하는 판인데. 못들은 척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예순에 재혼한 노부부가 있다. 여든 아홉에 이혼했다. 바깥노인은 요양원에 계시고 안노인은 바깥노인의 집에 혼자 기거했는데 이혼을 요구해 온 것이다. 독거노인이 되면 국가에서 먹여살려준다는 의식 때문일까. 생활보호 대상자가 되면 당신 일신이 편할 것이라 생각해서일까. 요양원에 계시는 바깥노인은 아들에게 안노인이 원하는 대로 이혼해 주라고 했단다. 법을 통해 서로 뒷말 없기를 약조하고 이혼장에 도장을 찍어 줬다. 의붓아들의 입장에서는 짐 하나 더는 셈이지만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부부의 이혼은 심심찮게 소문을 타지만 재혼한 부부가 이혼할 때는 꼭 돈 문제가 개입된다는 것이 다른 점은 아닐까.
시골에서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노인 문제 심각한 집이 한 두 집이 아니다. 노인이 오래 사는 집은 화목보다 불화가 많다. 노인 모시는 것으로 서로 잘잘못을 따지며 상처를 주고받으니 남처럼 등 돌리는 형제자매도 많다. 사촌이 없어지는 사회란다. 이웃 노인이 치매를 앓다가 결국은 자식들이 반 강제로 요양원에 입소를 시켰지만 얼마 못 견디고 돌아가셨단다. 아버님은 자식들 탓을 하신다. 요양원 가기 싫어하는 사람을 요양원에 넣었으니 오래 못 사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느냐고. 나는 오죽하면 요양원으로 모셨겠느냐고. 고생 덜 하고 잘 돌아가신 것이라고 했다가 남편의 눈총을 샀다. 어른 앞에서 못 할 말이라는 뜻이리라.
아흔 하나에도 어느 누구 앞에서나 기하나 죽지 않고 당당하신 우리 아버님이다. 나는 소원한다. 두 분이 지금처럼 편하게 사시다가 자는 잠에 편하게 먼 길 떠나시길. 노후 복 타고 나신 어른이니 죽을 복도 타고 나셨으리라 믿는다. 구구 팔팔 이삼사라고 했던가. 그렇게 돌아가시길 일심으로 빈다. 요양원 안 들어가시고, 병동에 입원해서 명 치레 안 하시고 깔끔하게 마무리 하실 수 있기를. 그나저나 어른 앞에서 내가 자꾸 지쳐가니 그것이 문제다.
길거리 매실나무 몇 그루가 하얗게 피었다. 탐스럽다. 매화는 정월에 핀다지만 입춘 추위에 오들오들 떨 것 같아 안쓰럽다.
첫댓글 이해할 수 없는 조회수가 나올 때는 희한한 기분이 든다. 어디 광고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한 작품이 금세 저렇게 조회수가 높아질까. 매화라는 이름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