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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와 연풍을 잇는 박해를 피하고 전교를 위해 넘어 다니다 잠시 숨어서 머물던 한실이라는 교우촌이 있다. 이곳 또한 첩첩산중이다. 이곳을 찾아 가 순례하며 부르던 노래가 바로 이 곡이다. 은이골에서 미래내까지 넘어가던 삼덕고개에서도 이 노래가 너무 어울렸었다.
이러한 생각을 떠 올리며 아주 천천히 밥 집을 찾아 나섰다. 반갑게 맞이해 주는 안 여사의 마음 즉 인심은 여전했다. 4인분을 부탁해 놓고 밥상을 정리할 때까지 정원으로 나와 있었다. 주인을 닮아 정원에는 화초가 심어져 있었다. 안 여사 또한 천주교 신자다. 야생에서 피는 만초만큼 많은 야생초는 다 심어도 죽어도 심지 않는 나무가 항상 나의 마음에 존재한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걸음 여행 중에 일행에게 들려주었다. 나의 마음 정원에는 만 가지 풀은 다 심어도 딱 한 가지는 심지 않겠다는 언약이 있는 것이다. 산막 뜨락에 나무를 정리하고 심으며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왜? 석축 꺾어지는 모퉁이에 심어 놓은 細竹 때문이었다. 천수답을 휘젓고 걸으며 들려주었지만 결말인 한 가지는 의문으로 남겼는데... 다음 걸음 여행 때 다시 질문을 하려고 한다.
정성껏 차려 준 점심을 먹은 후 경쾌한 산책을 위하여 호반에 걸려 있는 산책로를 찾아갔다가 되돌아왔다.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으로 폐쇄해 놓은 것이다. 아쉽지만.... 다시 차로 이동하여 깊은 산중으로 가는 길목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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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림은 완전히 폐쇄다. 소독차량이 휴양관 곳곳을 소독하고 다니는 모습이 분주해 보였다. 그만큼 전국은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언제 즈음이나 종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리석은 질문이다. 바이러스를 굴복시킬 수 있는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자유롭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페니실린이 나오기까지 인류는 당시 최악이었다. 프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린을 통하여 인류는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이와 같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백신과 그 밖의 약품도 속속 개발되어 위기를 넘긴다고 확신한다.
구비구비 돌아 오른 후 산 정상으로 가는 길 모퉁이에 있는 산 벚꽃나무 그늘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걸음 여행 준비를 서로 하였다. 필수품을 챙기고 신발을 동여매고 행장을 다시 살핀 후 천수답이 다랑이 논처럼 있는 산을 갈지자 형태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물이 풍부한 곳이라 곳곳에 영지(影池) 같은 모습들이 층층이 있는 곳이다. 이러한 첩첩산중에 천수답이 있어 쌀농사가 가능하였고 각종 임산물도 풍부하여 숨어 지내기에는 적합한 장소다. 그리고 사방을 살펴보면 조망하기가 쉬어 관군이나 포졸들이 접근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고 유사시 어느 방향이라도 탈출이 가능한 곳이다. 해발도 300 - 600m까지 분포되어 있어 생태환경이나 숲의 환경도 좋아 살기가 좋은 곳이다. 지금 숲은 산벚꽃과 산복숭아꽃이 흩드러 지게 피고 있었다.
오후 시간으로 갈수록 빛은 느릿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빛은 낮아지고 길게 드려지기 시작하였다. 느릿한 역광 조건에서도 맑고 청량한 공기 덕분에 모든 사물이 생기 있게 느껴졌다. 영지에 반영되는 사물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동작을 담아두고 싶어 주문했더니 다들 생뚱맞다는 생각인지 얼굴을 수면 위로 고정시키고 무엇인가 찾고 있는 행색만 보여 주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느꼈다. 서산으로 기우는 해의 각도와 높이에 따라 그리고 역광에 피사체가 걸려 있으면 피사체 바로 코앞에 반영은 일부분만 보이게 된다. 대신 순광의 각도에 서서 보게 되면 상대의 전신이 물 위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이다.
그리로 가서 함께 살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머리부분만 반영되고 있었다. 반대로 가서 자신의 반영을 관찰하라고 보냈더니 다들 탄성들이다. 다시 돌아와 제대로 몸짓을 해주어 반영을 제대로 찍을 수 있었다.
유쾌한 자신의 반영을 관찰 한 후 다시 잣나무가 비탈에 도열하고 서 있는 기슭을 따라 습지를 향해 계속 올랐다.
가파른 길에서 힘이 느껴지면 건각이 생긴다는 신호다. 허벅지에 근육이 달라붙어야 힘이 생긴다. 습지가 훼손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그 위로 가교를 세우고 널판으로 길을 내었다. 500 고지에 습지라니 다 천수답 자리다. 수량은 넉넉하고 아주 풍부하였다. 깊은 샘을 드려다 보니 정갈한 물이 끝없이 솟아나고 흐르고 있었다. 그 앞에 준비되어 있는 약수, 함께 넉넉하게 마셨다. 입안을 청량하게 소제해 주었다.
약수 주변에 조릿대가 숲을 조성하고 있어 믿고 마셔도 좋은 생수다. 조릿대는 청정지역을 증거하는 지표식물이다.
산벚꽃나무 좌측 산기슭은 온통 조릿대 뿐이다.
신록이 동적으로 펼쳐지는 것을 보아 한 주간 지나면 꽃은 다 지고 녹음이 깃들기 시작할 것 같았다.
화원을 거닐며 창조적인 질서에 대하여 감사드리며 꽃들에게도 고마움을 느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점점 개체수가 줄어드는 벌, 나비에 대한 생각을 하니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화원 산책을 끝낸 기념으로 종치고~~~
팔각정에 올라 무제봉 부근을 조망하기 시작하였다. 남쪽으로는 진천읍을 서쪽으로는 백곡, 엽돈재 안성을 조망하고 이어서 북으로는 일월과 신도시를 조망한 후 사방으로 흩어진 임도를 살폈다.
다시 원점으로 회귀, 어두움이 곧 내릴 것이다. 헬기장에 천막을 치고 밤을 새우며 별을 보는 재미가 좋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아니면 임도를 따라 걸으며 별을 세고 헤아리는 재미도 출충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밤을 몰아내기 위하여 교우촌에서 교우들이 밝힌 등잔불은 분명 은하수다. 안성에 있는 교우촌만 미리내가 아니라 평야에서 평화롭게 살던 양민들은 천주를 믿기 시작하면서 본의 아니게 국사범이 되고 만다.그들은 서쪽으로 갈 수는 없었다. 바로 천수만이 끝이었기에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동진이었다. 동쪽으로 가면 첩첩산중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포지방에서 성거산으로 그리고 다시 서운산 자락으로 그리고 다시 연풍으로 가 상주로 넘어간 후 다시 낙동강 칠백리 물길을 따라 울주, 울산, 부산, 김해, 마산, 진주, 거제도 까지 흩어져 살았다.
석양빛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다시 차에 올라 산막으로 올라 갔다. 전을 만들어 요기하고 각자 오던 길을 밟아 집으로 향하였다. 형제적 친교 안에서 평화의 가치를 생각하고 공동의 선을 추구하며 수덕자처럼 환란의 시기를 넘기려 한다.
언제 어디서나 평화를 평화를 빕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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