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답사 : 상주 <함창역>, 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1)
1. <함창역>에 두 번째 방문한다. 첫 방문 때 우연하게 만난 ‘고령가야’ 태조왕릉과 왕비릉은 약간의 충격을 주었다. 나름 ‘가야사’에 대한 공부도 했고 가야의 유물을 찾아 여러 곳을 찾았기에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가야’의 흔적, 가야의 잃어버린 왕국의 과거를 만난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기차 예매 때문에 여유롭게 답사할 시간이 부족하였고 아쉬움을 남기고 ‘함창역’을 떠나야했다. ‘함창역’을 다시 떠오르게 된 계기는 우연하게 읽게 된 단편소설때문이었다. 어느 날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양동역에 비치된 한국단편전집을 훝어보다가 김원우의 <의사김씨가소전>에서 ‘함창 김씨’와 ‘고령가야“에 대한 내용을 발견한 것이다.
2. 그 소설 속에는 <고령가야대관>이라는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었다. “양장본인 <고령가야대관>의 속표지에는 편자의 달필의 붓글씨로 ‘中興伽倻國族 繁榮咸昌金門’이라고 써 둔 대로, 마지막까지 신라에 항쟁한 6가야 중의 하나인 고령가야 태조왕의 왕릉과 왕비릉, 그 지적도, 중시조 덕원군의 단소, 함창 김씨 일문에서 이름을 남긴 여러 선현들의 제단, 묘소, 사당, 비명, 목판본 문집, 유묵, 계첩, 교지, 제사, 충효각, 순절비 등등이 수십 면에 걸쳐 고색 창연한 컬러 사진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그저 평범한 무덤이라고 생각한 것이 ‘함창 김씨’의 선조들의 역사를 말해주는 현장이라는 점을 알게 되자, 그리고 그 역사가 사라진 고대 왕국의 슬픈 기억을 간직한 장소라는 생각에 이르자, 다시금 방문하고 싶었고 그것을 이날 실행한 것이다.
3. 역 앞에는 답사 코스가 안내되어 있었다. 첫 방문 때에는 제대로 못 본 안내판이었다. 안내에 따라 함창읍의 답사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작고 소박한 마을입구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은 낙후되고 초라했지만 나름 여러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서울 동서울까지 약 4-5회 정도의 버스가 아직도 운행되고 있었다. ‘함창고등학교’를 지나 고령가야 태조왕릉으로 향했다. 왕릉 앞에 세워진 비석과 묘지 앞에 있는 묘석들은 후대에 만들어진 관계로 세월의 흔적과는 관계없었고 다만 장소적 의미만을 알려주고 있었다. 왕릉에서 함창읍을 바라보았다. 한때 왕국을 형성한 지역은 그러한 역사적 이유로 그곳을 다르게 바라보게 한다. 그 곳에는 비운의 통치자가 있었고 상실의 아픔과 망국의 기억을 슬프게 담고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왕릉과 왕비릉은 약 50m정도 떨어져 있다. 두 개의 릉은 이제는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천 년이 훨씬 넘은 시기에 존재했던 왕국의 역사를 알려줄 뿐이다. 사라진 왕국의 흔적, 특히 왕들의 무덤을 살펴보는 일은 언제나 묘한 감정을 동반한다. 연천의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무덤을 볼 때도, 또 다른 가야왕의 무덤을 볼 때도 그것은 쓸쓸함을 동반한 ‘존재하는 것의 필멸’이라는 진실과 만나는 것이다.
4. 오늘은 함창을 제대로 걸을 작정이다. 넓은 평야와 멀리 보이는 오봉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다섯 개의 봉우리’라는 뜻의 오봉산은 홍천의 오봉산처럼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바라보니 5개의 봉우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 관광지도에는 오봉산에는 몇 개의 고분이 있고 ‘오봉산 탐색로’가 만들어졌다고 안내되어 있다. 하지만 오봉산 도착 전에 만난 이안천이라는 하천길이 마음을 끌었다. 잘 만들어진 생태탐방로였다. 나의 답사는 산보다 하천이 우선이다. ‘이안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왕국이라는 느낌으로 지역을 바라보니 물과 산이 있고 넓은 평야를 갖춘 이 지역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왕국을 형성할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해주었다. 여유로운 자연환경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안천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방해할 것도 없는 길은 사색의 여유를 듬뿍 제공하였다. 그렇게 약 2시간을 걸었다. 언제든지 다시 오고 싶은 길이다. 특별한 장소나 아름다운 볼거리는 없지만 자연 그 자체의 여유로움과 풍성함이 함창의 매력이었다. 더구나 역 앞에서 1일과 6일에 열리는 함창 5일장은 함창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첫댓글 - '함창'이라는........ "쓸쓸함을 동반한 ‘존재하는 것의 필멸’이라는 진실과 만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