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김영수신부 순례이야기
거룩한 탄생의 얘기들은 강생[InCarNation]이라는 강한 신학적 영성적 메시지와 함께 아이로부터 어른에까지 누구나를 설레게 하거나 희망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들게 한다. 그런가 하면 하느님의 강생이라는 모티브의 원형[ArcheType]을 따르는 전형[ProtoType]인 아담과 하와도, 그리고 누구나의 탄생도 의미를 지닌다. 성탄과 뒤이은 탄생은 시간적 뒤틀림은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의 순례의 여정도 허락한다. 김영수신부가 성탄의 의미를 강조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제 펼쳐지는 하늘과 세상의 숱한 성탄에 담긴 영성적 얘기들은 마치 탄생들을 따라 순례를 하는듯한 면모를 보이겠지만, 시간의 뒤틀림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형[ArcheType]을 아담과 하와가 아닌, 자연과 우주가 아닌 예수에 두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깊이있게 자신의 그림 안에 담아낸 것이 미켈란젤로이다. 시스틴성당의 천장화 안에서 압권은 천지창조. 그 중에서도 인간의 창조는 가장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그림이며, 하늘의 강한 손이 아담의 약한 손에 영[숨, 기]을 불어넣는 것은 후에 ET를 비롯한 여러 영화의 장면에서 패러디됐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쉽게 연상하는 이런 묘사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부학을 이미 잘 알고 있던 미켈란젤로가 하느님의 형상을 한 망토의 뇌구조 안에 무수한 천사들과 함께 마리아를 묘사했다는 점이다. '하느님의 어머니[Θεοτόκος, TheoTokos]'가 이미 아담의 창조 이전에 계획됐음을 드러낸다. 홀로만의 인류[Human]적인 그리고 더불어의 인류[HumanE]적인 차원에서의 시작을 넘어, 시간적으로는 후에 왔지만 이미 계획안에서 우주적으로 앞선 성모와 하느님의 스스로의 탄생인 예수를 탄생의 원형[ArcheType]으로 놓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뒤틀림에도 순례의 말미에는 흐름을 꿸 수 있을 것이다.
최초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약간 생뚱맞게 불쑥 튀어나온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한반도 최초의 순교자의 유해의 발굴인 초남이의 바우배기를 얘기하지 않을 슈 없다. 그 전후의 사정과 일화는 다음에 하더라도 얘기의 맥락상 무염시태[Immaculata Conceptio, 無染始胎]와의 연계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도대체 무슨 연계고리가 있다는 것인가. 한반도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의 순교일이 12월08일. 무염시태대축일인 까닭이다. 물론 우연의 일치이겠지. 하지만 어느 신학자와 성직자의 말마따나 우연의 일치라고 하더라도 누구나를 신비감에 잦아들게 한다. 성모의 무오성과 교회의 무류성은 그 교리가 선포된 때로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논란 중이지만, 죄와 연관짓는 여인에 대한 패러다임이 뒤바뀌게 됐다는 점에서는 역전의 패러다임 또한 선사한다. 그런데 날짜의 일치를 넘어서 무염시태대축일은 1854년 선포됐는데, 한반도 최초의 순교자는 1791년 순교했으니 이런 시대적 역행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이미 무염시태전통은 있었으니 날짜는 가지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12월08일 한반도 최초의 순교자가 순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바티칸은 무슨 묘한 접점을 떠올렸을까.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닌 무언가 기묘한 조화가 있다.'고 생각했음직 하다. 1854년 대축일의 선포와의 인과관계도 그러하고, 그것이 선포된 산타마리아마조레성당은 조선교구의 설정이 선포된 같은 공간이며, 앵베르범주교에 의한 무염시태의 한반도의 주보로의 청을 바티칸에서 받아들여 성모와 더불어 성가정의 예수와 마리아 요셉의 JMJ[JesusMarieJoseph]를 주보로 삼았다는 점, 그리고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사들은 편지를 JMJ로 시작하고, 세계청년대회도 연계고리의 JMJ[JournéeMondialedelaJeunesse]를 쓴다.
억지로 꿰어맞춘 견강부회[牽強附會]라고 한다면 달리 그리고 딱히 반박할 것은 없지만, 적어도 날짜의 일치는 무언가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성모발현이 단서를 제공하기에 그 시기를 보면 이미 유럽과 북미에 파편적으로 무염시태에 관한 것은 있었다. 중세와 근대의 회화들과 조각들도 이미 무염시태를 염두했다든가 훗날 무염시태로 해석했다든가 하는 차이는 있지만,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무염시태가 성모발현으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십구세기. 그 중 가장 앞선 시기인 1830년 기적의메달성당과 연계된 라부레[CatherineLabouré]에게의 성모발현이 두드러진 또다른 시발점이다. 기적의메달성당은 파리외방전교회의 옆집인데, 바로 거기에서 무염시태 성모발현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건네진 기억하기 위한 메달에는 '흠결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에게 다시 내달려가는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소서.[O Marie, Conçue Sans Péché, Priez Pour Nous Qui Avons Recours À Vous.]'라고 쓰여있다. 열두개 별의 화관은 열둘이라는 상징처럼 온 인류일 것이고, 발은 뱀을 밟고 있다. 하와에게 선악을 눈뜨게 하는, 그것이 지식으로 불리든 이성으로 불리든 그것으로 제 잘난 맛에 하늘을 넘보게 되는 바의 과일을 건넨 뱀[ProSerpina, Persepone]. 그래서 결국 겨울에 하데스의 어둠에 들어갔다가 여름에 제우스의 밝음에 뛰쳐나오는 계절을 의미하는 뱀[Persepone]의 과일로 인해 시간의 굴레에 갇혀버린 하와와의 연계고리를 끊는다. 뱀은 결국 건네려던 과일을 토하고. 메달의 뒷면에 담긴 십자가를 받든 M은 마리아이지만, 예수의 피와 세상의 눈물 등을 닦아주는 영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뗄래야 뗄 수 없는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의 최고조의 수난[Passion]과 버금가는 수난[ComPassion]이 피에타[Pietà]처럼 하나로 돼있다.
'의지하는' 또는 '의탁하는' 뜻의 프랑스어[Recours]는 '돌아가는[ReCourir]'의 어원의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거기에 덧붙인 프랑스어[Avons Recours]는 이미 되돌아감이 과거로부터 시작됐음을, 마음먹었고 결심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잃었던 두아들의 돌아온 탕자의 결심과도 같은 표현은 이미 지체없이 내달려가는 이들마저도 도움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성모가 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대림절[待臨節]을 예전에는 장림절[將臨節]이라고 했는데, 이는 애타게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이미 몸가짐을 흐트리지 않고 매무새를 단정하게 하며 '내달음을 시작해 맞이함[기다림, AdVent]'을 뜻한다. 바로 그렇게 되돌아서서 달려가기 시작한 스스로를 위해 기도하고 도와달라 청하는 것이 기적의메달이 담고 있는 의미이다. 여기까지가 기적의메달에 대한 장황한 얘기라면, 1791년12월08일 순교한 윤지충바오로와 권상연야고보와, 그리고 조선교회를 위해 이태리에 방랑중에 슬퍼하던 교황[PieIV]과 프랑스에 유배중에 눈물흘린 교황[PieVII]의 영감 안에 무엇을 불러일으켰고, 그런 연후인 1830년 무염시태성모발현은 바로 옆집인 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사들에게 무슨 사명감을 부여했던 것일까. 당사자들에게는 하나의 파편처럼 보이는 사건들이지만, 하나의 흐름은 읽힌다. 약간은 다른 얘기지만 앵베르 범세형주교와 디디에 지정환신부의 입국결심의 날짜도 12월08일이다. 물론 이후 루르드의 성모발현과 파티마의 성모발현을 거치면서, 세계의 다른 어느 지역과 비슷하면서도 달리 성모를 박해중에도 기리고, 박해가 끝나자마자 공소 어귀에 성모상을 세우는 것은 의례의 모형[StereoType]이라고 해도, 헤집고 보면 그런 전통의 긴밀한 맥락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한 한반도의 심성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