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간의 스님 체험,‘월정사 단기출가학교’>
월정사에서는 한 달 동안 행자로서 스님체험을 할 수 있는 단기출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2004년 9월, 1기로 시작해 어느덧 20기 입교생들이 생활하고 있는 산사. 행자들은 사찰에서 정한 엄격한 규율과 5분 단위로 짜인 일과표를 따라야 한다. 입학할 때는 속세에서 가져온 모든 물품을 맡기고, 가족들과 전화도, 편지도 금지된 채 외부와 모든 인연을 끊는다. 경내에서는 기본적으로 묵언 수행을 해야 한다. 행자들과 그 물건에는 각각 번호가 부여돼 있으며, 놓는 자리도 정해져 있다. 또 향기가 나는 화장품을 쓸 수 없어 햇볕 아래 산행에도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지 못한다. 이를 어기면 벌점을 받거나 퇴교를 당할 수도 있다. 그들의 일상을 통해 깨달음이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속세를 떠나다, 단기출가행자들>
20대 젊은 여행자부터 60대 남행자까지 저마다 다른 사연들을 안고 월정사를 찾아왔다. 그들이 출가를 결심하게 된 이야기와, 하루하루 변해가는 행자들의 모습을 72시간 밀착 취재했다.
“바람이 불면 안개가 흩어지듯이,
자아의 새로운 발견이 새로운 자신을 보이게 합니다.”
극심한 우울증에 괴로워하던 적열 행자는 불과 40일 전, 죽기를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 대신, 단기출가학교로 마음을 돌렸다. 가족들을 두고 마음의 병을 치료하러 가는 길, 떠나는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없다. 그렇게 시작된 행자 생활. 108배로 참회하며, 도량 청소를 하며,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경전을 한 자씩 베끼고 한 번씩 절하며, 그는 끊임없이 삶과 죽음 사이를 고민한다. 어느덧 3주가 지나고...얼마 전까지 죽음을 마주했던 적열 행자, 유언장을 쓰던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번진다.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 고교 자퇴 후 나태했던 생활을 벗어던지다, 스무 살 적안 행자
사춘기를 유난히 심하게 앓았던 적안 행자. 20기 행자들 중 막내인 그는 방황 끝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2년 동안을 허송세월하며 보냈다. 공부는 안 하고 남 탓만 하며 보냈던 시간들. 결국 그는 대입에 실패, 재수생의 신분으로 단기출가학교에 입교했다. 인터넷도 못하고, 좋아하는 TV도 못 보는 3주. 힘든 일과를 견디는 원동력은, 지금까지 게을렀던 자신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각오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불교의 성지, 적멸보궁까지 삼보일배 하는 적안 행자의 ‘석가모니불’을 외치는 구호 소리가 간절하다. 못난 손자를 자나 깨나 걱정하는 할머니가 떠올라서다.
“할머니가 제 이야기 나올 때마다 너무 울어서 그게 제일 미안해요.
앞으로 잘할게요...”
▶ 결혼을 앞두고 삭발하다, 여행자 보광
“31년 동안 살면서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게 제일 힘든 일이잖아요. 제 마음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기분으로 다시 순수해진다는 그런 마음이고 싶어서 삭발했거든요.”
한정식집 지배인으로 일하던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전환점을 찾아 월정사로 입산했다. 여자로서 쉽지 않은 결정인 삭발을 하고 다시 태어난 보광 행자는 눈물보다는 홀가분함을 느꼈다. 하지만 원래 활발한 성격인 그녀, 계속되는 엄격한 사찰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좌선은 왜 그렇게 졸리고, 절하는 건 왜 그렇게 힘든지.
그리고 3주, 보광 행자는 어딘가 달라졌다. 부처의 마음으로 절을 하고, 부처의 마음으로 절을 받는 서로 부처되기 시간. 익숙하게 절하는 그녀의 모습이 뭉클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슴속에 쌓인 고통을 모두 털어내고, 제 2의 인생을 사는 그녀의 3일.
<행자들의 규율, 그리고 생활...>
새벽 3시 30분 기상을 시작으로 저녁 9시 취침 시간까지, 행자들은 매일 5분 단위로 짜인 일과표를 따라 생활한다.
- 03시 30분 기상 및 세면
- 04시 새벽 예불
- 06시 발우공양
- 07시 30분 경행(經行) : 심신을 가다듬기 위해 조용한 곳에서 산책
- 11시 점심 공양
- 12시 운력(運力) : 대중들이 함께 모여 하는 육체적 노동
- 13시 간경(看經) : 금강경 등 경전을 소리 내어 읽기
- 14시 사경(寫經) : 불경 필사하기
- 17시 20분 저녁 공양
- 18시 10분 저녁 예불
- 19시 좌선 및 수행일기 쓰기
- 21시 취침
<나를 찾아가는 길...>
지난 4월 6일 입산한 20기 단기출가학교 행자들은 이제 한 달 간의 수행을 거의 끝내고, 5월 5일 졸업을 앞두고 있다. 52명으로 시작했지만, 출가의 고독과 혹독한 수련 과정을 이겨낸 수는 47명뿐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나를 찾아 가시밭길을 헤맨 행자들. 마주앉아 “서로 부처되기”를 하며, 나를 낮추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깨달았다. 산길 위로 적멸보궁을 오르며, 인생의 후회를 깨끗이 털어버렸다. 오랜만에 세상 나들이, 연등 행렬을 하며 두고 온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삼천 배를 올리고 속세로 돌아가는 날, 그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적열 행자는 웃으면서 말한다. 새로운 출발은 두렵지만, 이제 그것은 축복이라고.
행자들의 놀라운 변화를 다큐멘터리 3일에서 함께 한다.
“새롭게 태어나는 나를 보고 싶다고 격려해준 세 아이의 엄마이자 나의 사랑하는 아내인 당신.사랑해요.” -행자 적열-
한 달 동안 속세를 잊고 정진하는 수행자의 길. 매일 아침 행자들은 어제보다 조금 더 새롭고, 어제보다 조금 더 소중해진 세상으로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어도, 분명 내 자신은 함께 있을 것입니다.
세상 일 시달리다 보면, 머리 깍고 절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들죠?
그런데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실제로 머리를 깎고
한 달 동안 고된 수행을 하는 단기 출가학교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조재근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면접까지 치른 남녀 53명이 단기 출가학교에 입소했습니다.
[홍석경(25)/경남 창원시 : 자기 자신의 모습, 스스로 제대로 잘 바라보는 자신을 원한다고 해야 하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삭발식.
속세의 번뇌를 상징하는 무명초, 즉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입니다.
입고 왔던 옷을 벗고, 행자복을 걸치면서 4주간의 혹독한 수행이 시작됩니다.
눈 덮인 전나무 숲길에서 세 걸음마다 한 번씩 차디찬 바닥, 가장 낮은 곳에 몸을 낮춥니다.
새벽 4시, 어김없이 예불이 시작되고, 108배와 참선으로 지난 속세의 삶을 되돌아 봅니다.
[이종희(26)/경기 부천시 : 첫 번째 주가 제일 힘들었고, 여기서 하는 게 육체적으로 많이 힘든 것은 허리가 아픈 거?]
낮에도 강의와 참선이 이어지는 수행의 연속입니다.
[이우형/제주 제주시 : (무언가를 얻거나, 찾으시거나, 버리거나 하셨습니까? 성과가 있나요?) 아직도 '나'를 찾기 위해 노력 중.]
[홍석경(25)/경남 창원시 : 조금씩 행동하는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행을 마무리할 날이 어느새 1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출가자들에겐 일상에서 만족하는 법을 익힌 게 가장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정명지/22, 대구 범물동 : 밥이 참 맛있고요, 잠이 참 달고요, 일단 그것만으로도 내가 정말 마지막에 잃어 버린 것들이 돌아오고….]
지난 7년간 1500여 명이 단기출가학교를 다녀갔습니다.
이 가운데 140여 명은 실제로 출가해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SBS | 조재근
서로를 나의 부처로 삼고 108배를 올린다.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절을 올리고 또 올리면서 나에게만 머물러 있는 독선과 아집을 물리고 나를 낮춘다. 자신의 봄을 찾는 시간, 최고령 행자가 저만치서 숨죽여 울음을 터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