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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30. 대결을 싫어함
일본어를 모르고 일본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 채 처음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대개 일본인의 예의 바르고 공손한 태도에 감격합니다. 백인이라면,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친절을 경험하고 일본을 좋아하게 되지요.
많은 일본인들은 외국인의 말을 들으면서 “예스, 예스”, “아이 씨(I see)”를 연발합니다. 이를 잘 모르는 외국인은 이 일본인이 자기 말을 매우 열심히 듣고 있고, 자기 의견에 찬성하며 존중해 주고 있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일본인은 일본어의 맞장구인 “하이(はい-네)” “에에(ええ-네에)” “응(うん-그래)” “나루호도(なるほど-과연)” 대신 “예스, 예스”와 “아이 씨”를 쓰고 있을 뿐이지, 반드시 상대의 말에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일본에 거의 20년 가까이 살며 일본어도 유창한 미국인 비즈니스맨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며 평소 일본어로 대화하다 보니,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습관이 몸에 배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 미국으로 미팅을 갔을 때, 상대 미국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의식중에 “아―”, “응”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상대가 그걸 알아차리고 묻더랍니다.
“그 ‘아―’나 ‘응’이라는 건 대체 뭐죠?” 그제서야 자신이 영어로 이야기하면서도 일본식 맞장구를 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지요. 그는 “이건 일본식 매너다”라고 설명했지만, 상대는 “이야기 도중에 그런 이상한 소리를 집어넣으면 시끄러워서 도저히 못 하겠군요” 라며 불평했다고 합니다.
맞장구와 더불어 일본인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습관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동의’로 오해받습니다. 미국인 저널리스트 존 워로노프는 '비즈니스 뷰' 1983년 9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본 경제의 병폐에 대해 한 강연회에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회장에 있던 한 일본인 비즈니스맨이 매우 열심히 그의 말을 듣고,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강연이 끝난 뒤에는 일부러 워로노프 기자에게 다가와 강연이 훌륭했다고 칭찬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일본 경제에 대해 극히 긍정적인 견해를 펼친 또 다른 외국인 경제학자의 강연회에 워로노프 씨가 갔더니, 거기에도 그 ‘열심히 듣던’ 일본인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비즈니스맨은 이번에도 강연 내내 열심히 듣고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으며, 끝나자마자 강사에게 다가가 강연을 칭찬했습니다. 워로노프 기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한 두 사람의 이야기에 모두 찬성한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체류 경험이 긴 워로노프 기자는 마침내 깨닫습니다.
“저 끄덕임은 단순한 예의였던 것이다. 일본식으로 공손하게 행동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격렬하게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예의상 찬성할 바에는, 차라리 찬성하지 말아 주는 편이 훨씬 낫다.” 이처럼 찬성이든 반대든 일단 고개를 끄덕여 두는 습관은, 많은 일본인이 ‘대결을 싫어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일본인 이외의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일은 거의 없고, 그래서 웬만해서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상대의 말에 찬성할 수 없을 때는, “잠깐만요”, “그건 찬성할 수 없네요”, “그렇지는 않아요” 하고 상대의 발언에 도전합니다. 그런데 일본인을 상대로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반대만 한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찬성할 수 없을 때는 ‘침묵’하거나 ‘화제를 바꾸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 결과 일본인끼리 깊이 있는 토론을 즐길 기회는 매우 제한되고, 특히 처음 만난 사람과는 더욱 어렵게 됩니다. 논리적인 대결을 피하고, 의견이 맞지 않으면 그 사람 자체를 싫어하게 되는 감정적 성향도 일본인에게서 강하게 보입니다.
외국인의 경우에는 격렬하게 토론을 벌여 서로를 완전히 논파하더라도, 토론이 끝나면 다시 친해지는 것이 당연한 태도이지만, 일본인을 상대로 하면 토론이 곧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웃집 아이를 맡아주었다가 물에 빠져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지요. 아이를 맡긴 쪽이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하자, 전국에서 익명의 협박 편지와 전화가 원고 부부에게 쏟아졌고, 결국 소송을 취하하게 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쟁점 자체는 파티나 길거리의 화제로 크게 논의되었을지 모르지만, 어느 쪽 입장에 찬성하든 상대편에게 괴롭히는 전화를 거는 행동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루 만에 백 통이 넘는 전화라니, 정말 대단하지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이런 식으로 감정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은 역시 드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의 대결 기피 성향은 타인의 논리와의 대결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대결, 혹은 어려움과의 대결에서도 나타나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암 환자에게 의사가 병명을 직접 알리지 않는 관습은, 환자의 대결 기피 성향을 배려한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환자나 가족의 의학 지식이 늘어나면, 실험동물처럼 환자에게 여러 테스트를 해 볼 수 없게 된다는 의료 측의 사정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요.)
일본인 암 환자 가운데에는 자신의 병명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얼마 전 신문 투고에, 담당 의사가 암 전문의에게 전달하라고 준 봉투가 완전히 풀로 봉해져 있지 않아 들여다보았더니 자신의 병명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글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투고자는 봉투를 완전히 봉하지 않은 의사를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알린 것이 오히려 의사의 배려였을지도 모릅니다. 앞서 언급한 게르하르트 담프만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들(일본인)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볼 만한 환영할 시련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운명의 타격으로 느낀다.” ('고립되는 대국 일본')
심리학자 미나미 히로시(南博1914~2001)는 그의 저서 '일본적 자아(自我)' (이와나미 신서, 1983)에서 ‘자기 책임 하에 이루어지는 자기 결정의 회피’를 일본인의 의지 박약의 표현으로 보고, 그 의지의 약함에는 행동에 있어 무엇을 목표로 할지를 고르는 선택력, 선택의 결과 하나의 목표를 정하는 결정력, 결정한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력, 그 행동을 지속하는 지속력, 지속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해졌을 때 다른 목표로 전환하는 전환력, 그리고 실행을 중단하는 중지력이 포함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지의 약함과 대결 기피의 습관이 결합되어, 사물을 애매한 상태로 남겨 두는 관행을 길러 온 것이겠지요. “암일지도 모르지만,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지 않으니 아닐지도 모른다. 분명히 알아버리느니 모르는 편이 더 행복하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일 것입니다. 사실을 모른 채 늘 의심에 시달리면서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을 리는 없는데 말이지요.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31. 증답 천국(贈答天国)
(*贈答-사회적 관습으로서의 선물 교환)
록히드 사건에 연루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1918~1993) 전 총리와 히야마 히로시(檜山広1909~2000) 전 마루베니 사장을 비난하는 일본인은 많지만, 규모만 다를 뿐 대부분의 일본인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다나카 씨나 히야마 씨를 처벌한다면, 규모는 작을지언정 대다수의 일본인 역시 처벌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일본인의 생활은 선물 없이 생각하기 어렵다. 세뱃돈으로 시작해 입학 축하, 졸업 축하, 취직 축하, 퇴직 축하, 중원(中元-7월15일 백중)과 세이보(歳暮-연말), 결혼 축하, 출산 축하, 부의금, 병문안, 선물용 기념품, 이사 떡에 이르기까지, 1년 내내 물건이나 돈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선물 문화를 떠받치는 곳으로는 백화점이 가장 큰 역할을 하며, 중원·세이보 시즌이 되면 반품 코너까지 마련해, 의리로 주고받은 물건들의 반품을 받아준다. 선물은 후진국일수록 성행하는데, 일본이 근대 국가로 탈바꿈하려던 메이지 시대인 1887년, 도쿄제국대학 교수들이 발기인이 되어 ‘증답 폐지회’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취지문에서는 증답을 “사회학적으로 보면 본래 야만 인종이 공포나 애정에서 비롯되어 타인의 환심을 사고자 한 데서 발생한 것”이라고 규정했다는데, 아무래도 일본인은 ‘야만 인종’ 시대에서 그다지 진보하지 않은 듯하다. 선진국에서의 선물은 정말 친한 사람들, 가족 사이로 한정되며, 상대가 평소 무엇을 원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취재’와 ‘적절한 물건 찾기’에 에너지를 쏟는다.
반면 일본에서는 ‘균형’에 가장 신경을 쓰며, 누구에게 얼마짜리를 줄지를 정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물건 고르기는 간단하다. 백화점에 가서 양주나 김, 수건 같은 ‘무난한 것’을 예산에 맞춰 고르면 끝이다. 더구나 외국처럼 포장지나 리본을 직접 고르고, 본인에게 직접 건네며 포장을 여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백화점 포장 그대로, 백화점 배송원에게 배달시키고, 형식적인 감사 편지를 받으면 만족하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일본에서는 환자가 의사에게 돈을 주거나, 학생의 부모가 교사에게 금품을 건네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다나카 씨나 히야마 씨를 비판하고 있으니,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의사에게도 교사에게도 선물을 한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사가 내 수술에서 허술하게 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교사가 내 성적을 일부러 낮게 매겼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는 곧바로 전화를 하거나 감사 편지를 써서, 나름대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감사의 마음이란 돈을 건네거나 백화점에서 ‘무난한 것’을 배달시키는 방식으로 전해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기회를 봐서 ‘나다운’ 방식으로 감사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인의 다수는 남에게 무엇인가를 해주면 금품으로 보답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장차 신세를 질 것을 염두에 두고 미리 금품을 건네는 행위도 나타나는 것이다. “외국인에게는 선물을 하지 말라”고 수년간 입이 닳도록 설파해 온 사람이 이누카이 미치코(犬養道子1921~2017 자선가 소설가) 씨다. 1972년에 나온 '여자가 밖으로 나설 때' (주오코론사)라는 책에서, 이누카이 씨는 그녀의 외국인 친구들이 입을 모아 “꼭 써 달라”고 부탁하는 주제가 바로 일본인의 선물 버릇이라고 적고 있다. 그중 한 사람은 이누카이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몇 년이나 알고 지냈을까. 이렇게 오랫동안 기분 좋게 사귈 수 있었던 건, 당신이 수년 동안 단 한 번도 나와 아내와 딸에게 선물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어요.” 외국인들은 일본인의 선물 공세에 질려 점점 일본인과의 교제를 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이 나온 지 10년이 지나도 일본인의 선물 버릇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기에, 이누카이 씨는 1983년에 출간된 '아웃사이더로부터의 편지' (주오코론사)에서 다시 한 번 선물에 대해 한 장을 할애해 논하고 있다.
그 책에서 그녀는 이렇게 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상대의 호의나 도움(단, 물건은 제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 그것 또한 ‘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말은 참으로 음미할 만하다. 미국인들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부탁하면 “나에게 부탁해 줘서 고마워”,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니 기뻐”라며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
이런 경험을 몇 차례 하고 나서, 나 역시 이누카이 씨의 말대로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 하나의 선물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인의 선물은 극히 계산적인 경우가 많고, 진정으로 무상인 선물을 하는 사람은 적다. 이렇게 인구가 많은 나라임에도 사후 장기 기증을 등록한 사람은 적고, 외국에서 장기를 공수해 이식하는 현실도 그 한 예다. 앞에서도 썼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해 두고 싶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32. 민주주의 흉내내기
“일본에는 없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많은 것 같지만, 일본에 없는 것은 의외로 많다. 사이즈 28의 여성 구두라든가, 칼을 넣으면 녹아내릴 듯한 신선한 치즈라든가, 벽난로가 있는 거실이라든가. 직장까지 걸어서 갈 수 있고, 차로 15분만 가면 숲에 닿을 수 있는 집 같은 것 말이다.
일본에 없어서 내가 특히 불편함을 느끼는 것, 그 첫째는 ‘자유로운 공기’다. 곤란한 점은, 대다수의 일본인이 일본을 자유로운 나라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어서,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답답함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내 개인적인 고충은 제쳐 두더라도, 자기들이 부자유하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 문제다.
예를 들면, 상사의 의견에 반대할 자유. 자신이 믿는 바를 언제 어디서나 표현할 자유. 자신이 투표하고 싶은 정당에 투표할 자유. 이런 자유가 일본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심하게 제한되어 있다. 예컨대 사회운동에 참여할 자유만 봐도 그렇다.
1983년 7월 26일자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요코하마 아이들을 지키는 모임’, ‘부모와 아이가 좋은 영화를 보는 모임’, ‘부모와 교사가 교육을 이야기하는 모임’ 같은 지역 문화 활동에 참여한 전업주부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오늘 말이야, 당신 일로 회사에 우익이 찾아왔어. ‘아내가 빨갱이가 되어 가는 걸 내버려 두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항의하고 갔어.”
이 기사는 또 하나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어느 날, 여성들의 평화 행진에 처음으로 조심조심 참가했던 주부의 투고가 신문에 실렸다. “감동이 솔직하고 섬세하게 담겨 있어 가슴을 울렸다.”(중략) 그런데 그 글은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눈에도 띄었다. 남편은 직전에 치른 승진 시험에서 탈락했고, 그 일로 부부는 크게 다투어 한때는 별거에 이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남편들의 투표권 문제로 말하자면, 회사 차원에서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강요받는 일도 드물지 않은 듯하다. 선거 판세를 예측할 때, A사는 몇 표, B사는 몇 표 식으로 회사 단위의 표 계산이 이루어질 정도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일본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일본인이 많다는 사실에는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나카야마 치나쓰(中山千夏 1948~작가 배우 참의원) 씨의 '의원 노트' (이야기의 특집 간행)를 읽어 보면, ‘일본의 민주주의’ 실태가 정치꾼이 아닌 한 의원의 눈을 통해 그려져 있어 무척 흥미롭다. 나 역시 국회 안의 위원회나 본회의를 취재한 적이 있지만, 일본 국회의 풍경은 내가 본 적 있는 미국이나 호주의 의회와는 전혀 다르다.
대부분의 경우, 질문 내용은 미리 답변할 장관이나 담당 관료에게 전달되어 있고, 준비된 대로 질의응답이 진행된다. 그래서 간혹 사전에 통보되지 않은 질문이 나오면 ‘폭탄 질문’이라는 과장된 이름까지 붙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일본 국회에는 통상 ‘자유로운 토론’이 없다.
혹시 내가 취재한 위원회만 그런가 싶었지만, 나카야마 의원 역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아사히신문에 연재되었던 나카야마 의원의 글 '거울 나라의 앨리스' 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자랐지만, 참의원에서는 주인인 국민보다 상징인 천황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의사당의 중심에는 천황 전용 계단이 자리 잡고 있고(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전전(戰前) 건설 당시 총공사비의 10분의 1을 들였다는 어소(御休所)가 있다.
천황이 참석하는 개회식 때에는 의원들조차 의사당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다. 주인인 국민이 방청할 때는 엄격한 검문과 각종 제약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평등보다도 인간을 계급화하거나 차별하는 것이 더 중시되는 듯하다. 같은 국회의원이라 해도, 소수 정당 소속 의원은 다수 정당 소속 의원보다 의원으로서의 권리가 적다.
그녀의 의원 노트를 읽다 보면, 국회의원들이 마치 ‘민주주의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이런 문제는 국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나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끝장 토론을 벌이는 장면은 일본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또 일본인은 젊은이는 젊은이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틀을 좋아해서, 다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어린 주제에”, “여자 주제에”라는 비난을 받는다. 일본이나 일본인을 비판하는 일본인은 “서양 흉내”, “미국화됐다”는 식의 비방을 받는다.
이런 환경에서 자유롭게 행동하고 자유롭게 발언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 같은 경우도, 생각한 대로 조금만 표현하면 “독단과 편견”, “하고 싶은 말만 한다”는 식으로 낙인찍히고 만다.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공기는 나에게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데, 당신은 괜찮은가.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33. 순혈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들
일본 민주주의의 미성숙함에 대해, 아사히신문 워싱턴 총국장이었던 하라 야스시(原康) 씨가, 현재는 한국으로 돌아간 김대중 씨의 거주국 선택 문제와 관련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1982년 12월에 석방된 김대중 씨가 왜 일본이 아니라 미국을 선택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하라 씨는 “인간애나 인간의 이상을 고양시키는 정치적 이념이라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결여되어 있어 일본에는 손을 내밀 수 있는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썼습니다. 저 역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일반 일본인들이 김대중 씨에게 품는 동정이나 존경의 감정은, 한국이라는 ‘이웃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고는 도저히 느껴지지 않을 만큼 희박해 보입니다.
현재 세계 정치가들 가운데 널리 알려지고 존경받는 인물들을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김대중 씨는 분명 일본의 어떤 정치인보다도 상위에 올 것입니다. 그럼에도 일본인들 가운데에는 지금도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멸시의 감정이 강하게 남아 있어, 김 씨처럼 확고한 신념을 가진 정치인에게조차 수상쩍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은 듯합니다.
같은 인간으로서의 연대감을 갖지 못하고 이웃 나라 국민을 내려다보는 의식은, 놀랄 만큼 강하게 일본 사회에 뿌리내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1983년 중의원 선거에서 도쿄 2구에 출마했던 전 대장성 관료 아라이 마사타카(新井将敬1948~1998) 씨의 ‘뿌리(출신)’ 사건을 알고 계십니까?
아라이 씨는 오사카에서 한국 국적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1966년에 부모와 함께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1932~2022) 의원의 공설 제1비서(公設第一秘書)가 아라이 씨의 포스터에 ‘1년 전 북한에서 귀화’라는 문구가 인쇄된 검은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고 합니다(주간 아사히 1983년 6월 3일호).
아라이 씨는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대장성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일본인이라면 가장 존경받을 만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부모가 과거에 한국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괴롭힘이 통했던 것입니다. 우리 일본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전에는 조선인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한숨이 나옵니다.
이런 점이야말로 도쿄가 언제까지나 뉴욕이나 파리, 런던 같은 국제도시가 되지 못하는 증거일 것입니다. 왕실에 적극적으로 외국의 혈통을 받아들여 온 유럽 여러 나라나, 출생국의 억양이 짙게 남은 영어를 쓰는 사람을 국무장관 같은 요직에 앉히는 미국과는 크게 다르지요.
근본적으로 여러 사람이 섞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많지 않습니다. 색다른 사람은 들이지 않겠다는 ‘순혈주의’를 좋아하는 듯합니다. 서양인이 TV 광고에 나와도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기는커녕 즐겁게 보면서도, 막상 자기 자식이 외국인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상대가 서양인이라 해도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자란 두 사람이 함께 살려면, 날마다 생활방식의 차이를 실감하게 되겠지요. 고생은 될지 몰라도 놀라움이 있어 서로 질릴 틈은 없을 것입니다. 설령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힘들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식 자신의 고생이지, 부모가 간섭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정뿐 아니라 회사도 외국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일본 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외국인은 지금도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일본어와 일본의 역사, 일본 경제를 열심히 공부한 동양인과 서양인이 많이 배출되고 있는데도, 그들을 채용하는 기업이 좀처럼 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만나야 성장하는 법인데 말입니다.
늘 같은 나라 사람, 같은 세대, 같은 성별, 같은 직업의 사람들과만 어울려서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에세이스트 나미키 미도리(並木翠1939~) 씨는 아사히신문 1983년 10월 25일자 ‘아이와 나’ 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일본으로부터 영어를 전혀 못하는 아이가 와도, 피아노를 잘 치면 한번 쳐 보라고 하고, 일본 지도를 그릴 수 있으면 그려 보라고 해요. 어렵게 왔으니 그 아이가 가진 것을 흡수하려고 하죠.”
일본과는 꽤 다르지요. 일본인은 단일민족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자랑할 일일까요? 이민족과 섞여 배우지 않는 어리석음이 어떻게 자랑거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일본인끼리조차 ‘조금 특이한 사람’, ‘유니크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칭찬이 아니라 배척의 대상처럼 쓰이고 있는 듯합니다.
‘외톨이’라는 말에는 약간의 동경이 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무리를 떠난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는 일본인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학교가 지정한 ‘표준복’을 입지 않고 등교하는 여자 중학생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보십시오.
1983년 1월 16일자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표준복을 입지 않은 둘째 딸이 길을 걸어가면 사람들이 슬쩍 피했다. 표준복도 못 사는 가난뱅이. 더럽다. 냄새난다. 썩는다. 별의별 말을 들었다. ‘○○균’이라는 별명을 붙여 “만지면 옮는다”고 놀림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 아이는 일본인으로서는 드물게 자기 의지를 관철해 3년 내내 사복으로 중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아사히신문 기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면 얼마나 고립되는지, 그게 얼마나 괴로운지 중학교 3년 동안 잘 알게 되었어요.” “가장 싫었던 건 ‘다들 입고 있는데 너도 입어야지’ 라는 말을 친구들에게서 들었을 때예요. 모두의 의견과 다를 때 혼자 따르지 않는 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해요. 그래도 나는 내 생각대로 행동한다는 마음가짐이 생긴 것 같아요.”
중학생에게도 이 정도의 ‘용기 있는’ 아이가 있는데, 대다수 일본인은 “다들 하니까 나도”라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가장 이상한 점은 국제화, 국제화를 외치면서도, 외국에서 자란 이른바 귀국자녀를 활용해 일본 사회를 국제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외국에서 일류 교육을 받고 돌아와도 일본에서는 취직을 못 한다니 말이죠. 일본어가 서툰 일본인은 다른 일본인들로부터 심한 경멸을 받습니다. 저는 학생 시절 외국인 관광객 가이드를 했는데, 일본계 외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를 보고 경악했습니다.
일본인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일본어를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일본인들은 이유도 없이 노골적인 멸시를 보입니다. 귀국자녀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일본어가 서툰 대신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데도, 그런 능력은 전혀 평가받지 못합니다. 국제화란 일본인이 무작정 해외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와 가정 안에 더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요.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34. 환영받지 못하는 비판 정신
고베대 교육학부에서 평화교육 강좌를 열고 있다는 기사가 1983년 2월 17일자 매일신문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 놀랐던 점은, 학생들 가운데 “평화에 대해 뭔가 책을 읽으려고 해도, 그 저자의 의견에 물들게 될 것 같아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여러 선생님들의 말씀은 과연 100퍼센트 옳은 것일까” 라는 감상을 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게 대학생 이야기입니다. 누구의 주장이라 해도 ‘100퍼센트 옳은’ 것이 있을 리 없고, 비판 정신을 가지고 읽는 것이 바로 독서라는 행위 아닙니까. ‘저자의 의견에 물드는 것’을 두려워한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와 비슷한 태도는 일본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물들거나’ 혹은 ‘아예 접하지 않거나’라는 태도 말이지요.
예컨대 어떤 음악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의 형편없는 작품까지도 모두 옹호합니다. “미쓰비시 계열 회사 사람은 전부 기린 맥주를 마신다”는 식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입니다. 독서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이라도 자기와 의견이 다른 글을 쓰는 사람은 곧바로 싫어하게 되고, 그 사람의 작품은 전혀 읽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좋아하는 작가의 경우에는 비판의 눈을 전혀 갖지 않은 채, 그 사람이 하는 말에 그대로 ‘물들어’ 버립니다.
앨리슨 R. 레이니어가 쓴 '리빙 인 더 USA' (양판, 1978년)라는 미국 생활 안내서가 있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인은 어릴 때부터 “질문하고, 분석하고, 탐구하도록” 훈육받는다고 말합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도서관에서 조사하는 법을 배우고, 열네다섯 살쯤 되면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독창적인 기여를 하는 ‘꼬마 학자’가 등장한다고 합니다.
기업들은 이런 꼬마 학자들에게 전국 콘테스트를 통해 상을 수여한다고 하지요. 이렇게 자란 미국인들은 연장자의 의견에도 거리낌 없이 반론을 제기하고, 거침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쓴 보고서이든, 젊은 직원들에 의해 철저하게 비판받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레이니어 여사는 이렇게 씁니다. “그들은 무례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생각에 깊은 흥미를 느끼고, 더 깊이 파고들어 전개해 보고 싶을 뿐이다.”
이는 일본인과는 대조적인 태도입니다.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 교육부터가 다릅니다. 일본에서는 ‘스스로 조사하는 것’이 그다지 장려되지 않습니다. 선생이 가르쳐 주는 것을 그대로 ‘외우는’ 방식이지요. 이런 식으로 공부해서 공부가 싫어지지 않는 편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아마 가장 다루기 힘든 학생이었을 텐데, 선생님의 가르침에 대해 철저히 오류를 찾아내고, 선생님을 논파하는 데서 더없는 기쁨을 느끼곤 했습니다.
어쨌든 비판력을 발휘하려 해도, 일본 사회에서는 대체로 환영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남편이 오른쪽을 보라 하면 오른쪽을 봅니다. 남편으로 삼을 남자라면 그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되지요.” 라는 이케나미 시노(池波志乃 1955~탤런트 수필가)의 발언(1983년 8월 10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과 같은 말이 인기를 끄는 사회입니다.
이 발언은 인터뷰한 남성 기자에게 아부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미국이나 한국, 프랑스 여성이라면 가장 싫어할 유형의 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조직 안에서 미국인처럼 연장자가 쓴 보고서를 거리낌 없이 비판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일본인은 말은 간접적이지만 의사는 전달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본인은 무슨 일이든 사전 조율과 준비를 끝낸 뒤, 의식으로서의 토론만을 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자유롭고 자발적인 토론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본인의 경우,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보다도, 말했을 때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주위에서 어떻게 볼지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큰 듯합니다.
이 점에 대해 미나미 히로시(南博1914~ 2001 교수 심리학자))는 '일본적 자아' 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아 불확실감은 자기 평가에 의한 내적 객체보다, 타인의 평가에 의한 외적 객체가 더 중시됨으로써, 그 결과 주체적 자아가 소극적으로 되는 데서 비롯된다.”
즉,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스스로 위축되고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주변의 눈을 신경 쓰는 한, 비판력을 기를 수는 없겠지요. 어떤 문제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한다는 것은, 필요하다면 고립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35. 집단적 사디스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 미쓰코시의 오카다 전 사장, 도츠카 요트스쿨의 도츠카 교장, 도쿄의과치과대학의 이케조노 교수. 이 사람들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마도 일대일로 만난다면 고개를 조아릴 것 같은 사람일수록, 집단이 되면 엄청난 기세로 그들의 부정행위를 규탄합니다. 집단이 되면 목소리가 커지는 버릇이 있는 것이죠.
일본 언론도 이상한 점이 있는데, 다나카 씨에 대해서는 그렇게 떠들썩하게 보도하면서도, 다른 정치인들의 비슷한 행위에 대해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미쓰코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건은 다케히사 미치(竹久みち1930~2009 실업가)라는 미인의 등장까지 겹쳐 저널리즘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지만, 공사를 혼동하는 경영자가 오카다(岡田 茂-おかだしげる1914~1995) 씨 한 사람뿐일 리는 없지요.
의과치과대학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다른 의대들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 걸까요? 특정 인물만을 제물처럼 끌어내리는 방식은 집단적 사디즘의 음산함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며, 지켜보는 쪽으로서는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런 사람들을 제물로 삼아 놓고, 자신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을 하거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모습을 보며 가학적인 쾌감을 느낀다는 점도 참으로 불쾌합니다.
도츠카 씨를 공격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전국적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는 가정 내 폭력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철저한 연구도 토론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마침 자기 집안에 폭력을 행사하는 가족이 없으면 “남의 집 문제”, “가정교육이 나빴겠지” 하고 무관심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므로, 우리가 만들어 온 사회 전체의 병이라고 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또 교수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현금을 주고받는 일은 비난받지만, 승진을 위해 인상을 좋게 해 두려는 속셈으로 상사에게 중원(中元:백중)이나 세모 선물을 들고 가는 샐러리맨은 셀 수 없이 많지 않습니까?
백만 엔 단위면 나쁘고, 만 엔 단위면 괜찮다는 말이라도 하려는 걸까요? 자기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성도 없이, 나쁜 관행을 고치거나 근본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남에게만 비난과 공격을 퍼붓는 태도는 과연 옳은 것일까요. 집단적 사디즘은 고등학교 운동부의 린치 같은 형태로도 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상급생이 하급생을 ‘혹독하게 다루는 것’은 운동부에서는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어, 온몸이 내출혈로 새까맣게 되었다거나, 이가 부러졌다, 고막이 찢어졌다는 정도로는 신문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병원에 실려 가거나 사망에 이르러야 사건이 되지만, 그래도 “조금 지나쳤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운동부에는 ‘기합’이 따르는 법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
1983년 4월 20일자 아사히신문 '천성인어(天声人語)' 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청년조(若者組), 청중조(若衆組)라는 전통이 있다. 이는 일종의 교육기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집단의 폭압이 정당화되는 기관이기도 했다. 제멋대로이거나 건방진 사람이 있으면 제재가 가해졌고, 거친 멍석 위에 앉혀 장작으로 때리는 일도 있었다. 야나기타 구니오는 이를 ‘다수의 평범함에 굴복시키는’ 행위라고 불렀다.”(중략) [*若衆-わかしゅ: 젊은이, 특히 江戸 시대에 관례(冠禮)하기 전의 남자]
우리는 ‘건방진’ 개인에게 집단의 폭압을 가하는 행위에 꽤 익숙한 듯합니다. 미나미 히로시 씨는 '일본적 자아' 에서 일본인의 집단적 사디즘의 한 요인으로 ‘집단적 무책임성’을 들고 있습니다. 미나미 씨는 전시 중 일본 병사들의 사디즘을 논하면서, 전후의 ‘일억 총참회’와 관련해 전쟁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천황의 무책임성이라는 점에서 끝내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된 사실로 귀결된다고 말합니다.
이 전후의 국가적 무책임성이 국민의 책임감을 약화시키고, 책임감에 의해 뒷받침되는 자아의 확실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미나미 씨는 주체성이 결여된 ‘자아 불확실감’을 일본인의 자아 구조에서 두드러진 특징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이 자아 불확실감의 공허함을 메우려다 사디즘, 특히 약자 괴롭힘으로 치닫는 경향도 보인다고 합니다.
앞에서 말한 ‘건방진 자를 다수의 평범함에 굴복시키는’ 경우와는 달리,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약자를 철저히 괴롭히는 태도입니다. 1983년 요코하마에서 일어난 소년들의 노숙자 습격 사건이 그 예였습니다. 노숙자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소년들은 자아 불확실감의 구멍을 메우려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폭주족도 아니었고, 학교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얌전한 아이들이었다고 합니다(1983년 2월 18일자 아사히신문 등).
성적은 나쁘고, 가정환경도 넉넉하지 않은 아이들. 자신이 강하다는 것,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 줄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학교 성적만이 전부인 사회를 만들어 버린 어른들은 지금, 아이들로부터 강력한 역습을 받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사나 부모 같은 어른들로부터 ‘전인적으로 부정’당해 자아를 둘 곳이 없는 상황이 아이들을 폭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교사가 피폭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것을 ‘약점’으로 이용하려고 중학생들이 “원폭병”이라고 외치며 교사를 놀립니다. 폭력이 가해지는 대상은 몸이 약한 사람, 장애인, 노인, 노숙자 등 사회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로 한정됩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36. 여성용 물건은 왜 작은가
이를테면 부부 찻그릇이나 부부 젓가락을 보십시오. 서양 요리에서는 여자의 접시가 남자의 접시보다 작다거나, 여자의 나이프와 포크가 남자의 것보다 짧다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명함조차도 여성에게는 소형을 주는 경우가 있지요. 제가 일본 신문의 기자가 되었을 때 받았던 것도, 모서리를 둥글게 깎은 이 작은 명함이었습니다.
저는 몹시 화가 나서 곧바로 보통 크기의 네모난 명함으로 바꿔 달라고 했습니다. 그 신문사에는 저 말고도 여성 기자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요즘은 여성 기자들도 모두 일반 크기의 명함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모서리를 둥글게 깎은 소형 명함은 바나 카바레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미도리’나 ‘사쿠라’, 요즘에는 ‘루카’나 ‘피피’ 같은 국적 불명의 예명(源氏名)을 새겨 넣기에 딱 어울리는 물건이지요.
어떤 남성은 집에 돌아가기 전에 그날 받은 명함 묶음에서 모서리가 둥근 소형 명함만을 재빨리 버려, 아내의 쓸데없는 의심을 사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명함은 버려도, 마음에 든 아이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으니까요.”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우산이나 손수건, 만년필에서 자전거에 이르기까지, 여성용 제품은 어째서인지 모두 작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여자는 몸이 작기 때문이라고 하실 건가요? 확실히 평균적으로 보면 남성이 여성보다 키도 크고 체중도 더 나갑니다. 하지만 ‘모든 남자’가 ‘모든 여자’보다 큰 것은 아닙니다. 여성 평균보다 작은 남성도 상당히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몸이 작다는 이유로 작은 찻그릇이나 짧은 젓가락을 쓰지는 않습니다.
몸집의 크기와는 관계없이, 여성용은 작아야 한다는 관념이 있는 것이지요. 작은 것이 “귀엽다”, “여성스럽다”고 여겨집니다. 일본에서는 여성이 “귀여운 것”이 좋은 일로 여겨지고, 남성은 귀여운 여성을 좋아하며, 여성 역시 귀여워지려 합니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성인 여성이 “귀엽다”는 평가는 그다지 환영받지 않습니다.
남성은 “그녀는 그저 큐트할 뿐이잖아”라며 얕잡아보고, 몸집이 작은 여성들은 “귀여워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크루티에르 자매가 쓴 '쇼트 시크(Short Chic)' (팬텀 북스, 1983년)라는, 키가 작은 여성을 위한 패션 가이드북이 미국에서 출간되었는데, 그 안에서도 “소녀처럼 보이는” 디자인은 피하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내 다리는 짧지만, 머리는 풀사이즈예요.” 라는 박사 과정 학생의 말도 등장하는데, 키가 작다는 것이 “귀여움”이나 “유치함”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미국 여성들은 애를 씁니다. 일본 여성들은 “아담하고 어려 보이는 것”을 기뻐하지만요. 일본에서는 미국과는 반대로, 키가 큰 여성이 열등감을 느껴 굽이 낮은 신발을 신고 허리를 굽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전 일본 여자 배구대표팀 감독이었던 오이누마 스미에 씨 같은 분은 예외겠지요. 그녀는 1983년 9월 18일자 아사히신문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가토 기요미 씨와 함께 전국의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배구 지도를 하기 위해 여행을 다닌다고 하는데, 가토 씨는 180cm, 오이누마 씨는 171cm로 둘 다 장신입니다.
“남자로 오해받는 일도 종종 있지만, 큰 가방을 들고 있어서인지 사람들이 길을 비켜 주어 오히려 편하다. 키가 크면 서로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도 쉽다. 목소리도 커서 금방 찾을 수 있다. 큰 키를 고민하는 여성이 적지 않은 것 같지만, 우리는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예전에 인생 상담에 이런 투고가 왔습니다.
“늘 굽이 낮은 신발을 신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봐서 부끄럽습니다.” ―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하이힐을 신으세요. 이런 넉넉한 사람이 많아진다면, 일본도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되겠지요.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37. 목욕 좋아하기와 번쩍번쩍한 자동차
디트로이트 시장 콜먼 영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도쿄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하나같이 반짝반짝한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확실히 미국이든 유럽이든 아시아든, 더러운 차들이 많이 다니는 편이니 일본 자동차의 청결함은 다소 특이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일본인은 차의 외관만 번쩍이게 닦는 것이 아니라, 내부 장식에도 유난히 공을 들입니다.
대부분의 차는 좌석에 커버를 씌워 두지요. 손뜨개 무늬가 들어간 니트이기도 하고, 프릴이 달린 프린트 천이기도 합니다. 운전대에도 가죽이나 천 커버를 씌우고, 작은 인형이나 어느 신사의 ‘교통안전’ 부적이 매달려 흔들리고 있습니다. 조화가 꽂힌 꽃병이 창가에 붙어 있기도 하고, 향수가 든 장식품이 놓여 있기도 합니다.
좌석 뒤에는 반드시 커버가 씌워진 상자에 넣은 휴지가 놓여 있습니다. 이런, 운전에 직접 필요하지도 않은 액세서리들이 택시 안에까지 넘쳐납니다. 카라디오 없는 차는 거의 없고, TV나 가라오케 세트까지 실은 택시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안전벨트를 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벨트 역시 하나의 장식품에 불과한 셈이지요.
뉴욕에 사는 제 친구 중 한 사람은 직원이 몇 명 있는 출판사의 사장인데, 겨우 굴러가기만 하는 중고차를 사 와서, 카펫처럼 두꺼운 천을 커터칼로 직접 잘라 차 내부에 붙이고 다닙니다. 차 바깥을 씻는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일본인은 스스로를 깨끗한 민족이라 생각하며, 다른 나라 차들이 더러운 것을 보면 불쾌해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일본인의 청결감이라는 것은 가만히 관찰해 보면 꽤 흥미롭습니다. 맨발로 걷거나 앉는 장소에는 몹시 신경을 쓰지요. 공원 벤치에 앉을 때 손수건이나 신문을 깔고 앉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 번 신발을 신으면, ‘구두로 걷는 곳’은 아무리 더러워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일본인뿐 아니라 중국인이나 한국인도 마찬가지로, 길에 아무렇지 않게 가래나 침을 뱉습니다.
위생적으로 본다면 이는 진흙이 묻은 자동차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불결한 행동입니다. 꽃의 긴자든 롯폰기든, 도로에는 가래와 침 자국이 눈에 띕니다. 도시에서는 모래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사라지고, 흙 묻은 옷을 입은 아이를 보기도 힘들어졌습니다. 모두 말끔한 차림을 하고 있지요. 위생상으로는 좋은 일이겠지만, 지나친 깔끔함은 역시 위험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이 특정 아이를 괴롭힐 때 “더럽다”, “냄새 난다”, “세균이다”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런 태도가 병자나 노인에 대한 냉담함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병자나 노인을 “더럽다”고 보는 시선이 아이들 사이에 뿌리 깊게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 역시, 이런 과도한 청결감과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 역시 한 달이나 목욕을 하지 않는 프랑스인에게는 질릴 때가 있지만요. 아무리 세련된 옷을 입은 파리의 여인이라도 손톱에 때가 끼어 있으면 역시 위화감을 느끼게 됩니다.
일본인의 목욕 좋아함은 유명한데, 이 정도로 습도가 높다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요. 다만 일본인은 하루 종일 같은 옷을 입고 있다가 밤에 한 번만 목욕하는 것이 보통인 듯하지만, 미국인들은 아침에 외출하기 전에 샤워를 하는 데다 하루에 한두 번씩 몸을 씻는 사람도 많습니다. 서양에서는 집에서 저녁을 먹든 밖에 나가든, 옷을 갈아입는 것이 당연한 습관입니다.
프랑스인은 낮에 입었던 옷을 벗고 밤옷으로 갈아입기만 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미국인은 샤워를 하거나 욕조에 몸을 담근 뒤에 옷을 갈아입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일본인은 통근 시간이 길어서인지, 일하는 옷을 벗고 한 번 목욕을 한 뒤에는 파자마나 잠옷 차림이 되어 버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GNP 세계 3위라고는 해도, 생활의 실상에는 어딘가 조금 쓸쓸할 만큼 빈곤한 면이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빽빽하게 모여 살면서도 거리가 그다지 더럽지 않고, 만원 전철에 흔들리면서도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생각해 보면 일본인의 깔끔함이 어느 정도는 구해 주고 있는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38. 벌의 한 방
런던에서 발행되는 '이코노미스트'지는 1983년 1월 29일자에서 '필로우(Pillow, 베개)의 사회' 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일본인의 혼외 관계에 대한 관대함을 전하고 있다. 기사는 프랑스의 원로 정치가인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1849~1940 정치가 공작) 공이 70세 때 베르사유 평화회의에서 자신의 애첩을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소개했다는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그리고 최근의 호텔 뉴재팬 화재 사건과 미쓰코시 백화점의 공사(公私) 혼동 사건을 통해 드러난 사실로서, 뉴재팬의 요코이 사장도, 미쓰코시의 오카다 사장도 모두 첩을 두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우연히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런 사장급 인물들이 첩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외국인 기자들이 알게 되었을 뿐, 일본인이라면 첩을 둔 정치가나 사업가가 그다지 드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외국 기자들이 놀라는 점은,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도 혼외 관계의 윤리 문제가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 일본 사회의 도덕성이다. 물론 서구 사회에도 혼외 관계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나 공적인 자리에 애인을 동반하는 일은 없고, 혼외 관계는 철저히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된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는 ‘첩’이 아니라 ‘연인’이며, 따라서 상대방의 직업도 다양하다. 비서와 상사의 관계가 비교적 많긴 하지만 말이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과거에는 기생을 거느리는 형태, 오늘날에는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에게 가게를 차려주는 형태, 혹은 그 변형이 많은 듯하다. 소수의 남성에게 부가 집중되고, 여성이 직업을 통해 자립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했던 시대라면 몰라도, 이처럼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는 이미 한참 전 시대의 유물처럼 보이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1983년 10월, 영국에서는 파킨슨 통상·산업 장관이 대처 내각의 중요한 직위에서 물러났다. 이 사건에 대해 아사히신문의 와다 슌 특파원이 아주 흥미로운 해설 기사를 썼다 (10월 20일자). 파킨슨 장관의 실각 원인은 비서인 키즈 씨와 친밀한 관계가 되었고, 그녀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대처 총리가 파킨슨 장관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보수당 전국위원장을 지낸 유력 정치인이었고, 그를 물러나게 하면 선거에 불리하다는
정치적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총리실은 “이번 사건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이며, 장관으로서의 공적 직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따라서 장관의 경질은 있을 수 없다” 고 발표했다.
연애 관계는 개인적인 문제이며, 파킨슨 씨의 정치가로서의 능력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었다.
여론도 이를 납득했고, 한때는 이대로 수습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와다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키즈 씨가 ‘벌의 한 방’이 되는 사실을 신문에 호소했다고 한다. 파킨슨 씨는 1979년 이후 여러 차례 결혼을 약속했고, 그 말을 믿고 임신을 했는데, 1983년 9월이 되자 갑자기 결혼은 할 수 없다고 말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와다 기자는 이렇게 쓴다. 이것이 ‘벌의 한 방’이 된 이유는 전적으로 영국인이 가진 페어(fair-정직)와 언페어(unfair-부정직)의 감각 때문이다.
키즈 씨의 이야기를 듣는 한, 장관의 초기 해명과 TV 회견에는 사실처럼 꾸민 거짓이 있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을 공개하고, 실제로는 키즈 씨와의 약속을 어겼다. 즉, 언페어했다는 것이다. (중략) 언페어한 사람은 장관을 맡을 수 없다.일본의 토양과는 상당히 달라서 무척 흥미롭다. 일본에서는 첩을 두는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관대하지만, 재혼에 대해서는 강한 저항감이 있는 듯하다.
1983년 10월 14일자 아사히신문 '히토토키(한때)'란에 요코하마에 사는 익명 희망자의 다음과 같은 투고가 실렸다. ㅡ 나의 아버지는 7년 전 3월, 61세의 나이로 어머니와 사별했다. (중략) 그해 연말, 당시 독신이던, 별거 중인 동생들과 함께 아버지와 설을 쇠기 위해 아들과 함께 귀성한 나는 경악했다.
중매로 알게 되었다는 간호사라는 여자가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까지 다녀왔다며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다. 전혀 사전에 들은 바 없었다. 나에게도 어머니 쪽 친척들에게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나가 주세요. 아직 어머니의 1주기도 지나지 않았어요.”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었다. (중략) 내가 침묵하는 것이 아마도 효도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받은 상처는 너무나도 깊고 크다. (후략) ㅡ
이 투고자는 도대체 아버지의 행복해질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무슨 권리로 “나가 주세요”라는 말을 다른 사람의 아내에게 할 수 있는 것일까. “받은 상처가 너무나 깊고 크다”고 쓰고 있지만, 딸에게 “나가 달라”는 말을 들은 아버지의 슬픔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일까.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39. 현금과 카드
일본인이 많은 현금을 들고 다니는 민족이라는 사실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각국의 도둑들 사이에서는 일본인만 보면 “한탕 할 수 있겠군” 하고 노린다고 한다. 일본인이 입는 피해 총액이 상당할 텐데도, 현금을 들고 다니는 습관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국내에서 수표나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문화가 놀랄 만큼 퍼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소비시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개인소비지출이 GNP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일상적인 지출을 오직 현금으로만 해결하고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예전에 모피와 보석 패션쇼를 취재하러 간 적이 있는데, 쇼 자체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그 뒤에 열린 즉석 판매회였다. 수백만 엔, 수천만 엔짜리 물건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매자들 가운데는 자영업을 하는 여성 사업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전업주부였다.
남편이 중소기업 사장이거나 의사인 경우가 많았는데, 호텔 행사장에서의 매너를 보건대—실례지만—평소에 드레스업하고 외출할 기회가 많은 삶을 사는 분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저 비싼 모피와 보석을 대체 어디에 하고 나가실까 싶었지만, 그건 뭐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언제 착용하시나요?”라는 질문에는 대개 아주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관심사는 그게 아니라, 왜 굳이 현금을 들고 다니느냐는 점이었다.
일본신용카드협회에 따르면 1982년 말 기준 전국의 신용카드 보유 매수는 4,300만 장이나 된다. 숫자만 보면 꽤 대단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제일권업은행이 1983년 초 도쿄의 회사원 카드 보유자 500명을 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세 명 중 한 명 이상이 지난 1년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평균 사용 횟수는 연 6.3회. 연간 사용 금액 평균은 21만 4천 엔. 1회당 평균 사용 금액은 3만 4천 엔.
카드를 가진 사람의 3분의 1 이상이 1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는다니, 도대체 무슨 용도의 카드인지 모르겠다. 물론 여러 장을 갖고 있다 보면 거의 쓰지 않는 카드도 생기긴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1회 사용 금액이 평균 3만 4천 엔이라니 꽤 크다.
결국 고가 상품이나 중원·세모 같은 선물세트 구매에만 카드가 쓰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는 카드 결제를 꺼리는 가게도 많다. 입구에 카드 사용 가능 스티커가 붙어 있어 믿고 들어갔는데, 계산할 때 되면 “아, 카드 결제는 안 됩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나도 있다.
지하경제에서는 어느 나라든 현금이 압도적으로 많다는데, 카드 결제를 싫어하는 건 역시 세금 회피 때문일까. 이용자 쪽을 보면 성격이 급한 사람이 많아, 점원이 신용조회 전화 한 통 하는 것조차 못 기다리는 사람도 꽤 있다.
일본인은 사과를 남발하는 민족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안 하는 날이 없을 정도다. 기다리는 걸 싫어하고, 기다리게 했으면 무조건 사과해야 한다.
이런 성격 급한 사람들에겐 지폐와 동전만 세면 끝나는 현금이 더 잘 맞는지도 모른다. 소매치기나 흘린 물건을 가져가는 행위가 있는 한편, 택시 안에 큰돈을 두고 내려도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던 비교적 안전한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현금을 들고 다녀도 안전하고, 잃어버려도 돌아온다는 상황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경제성장이 좋았기 때문에 남의 지갑을 노리다 감옥 가는 것보다 일해서 버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만, 실업률이 다른 나라들처럼 높아진다면 사정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일본은 범죄율이 낮다고들 하지만, 단지 범죄의 종류가 다를 뿐이지 일본인의 윤리의식이 특별히 높은 건 아니다. 사회 전반에서 뇌물과 부패가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소매치기나 절도가 비교적 적었던 건 낮은 실업률과, 한 번 범죄를 저지르면 인생 내내 이력서가 망가진다는 사회 구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국 같은 경우는 살인 같은 중범죄는 별개로 치더라도, 가벼운 범죄라면 다른 주로 옮겨 새 출발이 가능하다. 그래서 소매치기나 만취 절도, 상점 절도가 많은 반면, 과거에 가벼운 범죄 전력이 있었어도 낙인 없이 기회를 잡아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훗날 스타가 된 인물 가운데 가벼운 범죄 경력이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어쨌든 일본인도 현금을 들고 다니는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는 꽤 큰코다칠 일이 많아질 것 같다. 1983년 10월에도 TV 일로 브라질에 갈 예정이던 일본인 기자가 출발 직전에 현관에 둔 가방 속 현금 3만 2,500달러를 도난당했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이렇게 큰돈을 현금으로 들고 다닌다는 걸 알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 깜짝 놀랄 겁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ちょっとおかしいぞ、日本人 (1988年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 40. 방향치(길을 잘 못 찾는 사람)
이것은 어디까지나 여자에게 많은 특성이긴 하지만, 남자에게도 꽤 보입니다. 택시 운전사 중에도 지도를 싣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제법 있지요. “○○동 ×번지까지 부탁합니다” 하면 “어떻게 가죠?” 하고 묻습니다. 어떻게 가는지 모르니까 택시를 탄 건데 말이에요. 그래서 요즘은 모르는 곳에 갈 때는 도로 지도를 들고 나갑니다.
택시 안에서 지도를 보며 “다음 신호에서 좌회전하세요” 돌고 나서는 “두 번째 골목에서 다시 왼쪽으로요” 이렇게 일일이 알려줘야 합니다. 지도를 건네며 “목적지는 ○○동 ×번지입니다”라고 말해도 지도조차 못 읽는 운전사도 있으니까요.
또 미리 물어볼 수 있다면, 눈에 띄는 건물 같은 걸 물어보고 외출하지요. 일본인은 이걸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문명국에서는 드문 일입니다. 어느 정도 이상 발전한 나라에서는 도로에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큰 길은 물론이고 작은 골목이나 막다른 길까지도 전부 이름이 있어요.
외국의 도로 이름은 사람 이름이 가장 많지만,
‘단풍거리’, ‘느릅나무거리’처럼 가로수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아주 간단하게 알파벳 순으로
‘A가’, ‘B가’처럼 붙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길에 이름이 있으니 지도 색인에서 바로 찾을 수 있고, 알파벳 순이라면 지도를 보지 않아도 감이 오지요.
반면 일본의 도시들은 교토나 삿포로, 도쿄의 긴자를 제외하면 도로가 계획성 없이 뒤엉켜 있습니다. 도시 형성이 계획적이지 않았으니 그건 그럴 수 있지만, 길에 이름이 없다는 건 정말 불편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네 이름이나 번지는 자주 바꾸면서 길에 이름을 붙일 생각은 하지 않지요.
그럴 바엔 모두 함께 길 이름을 붙이는 편이 훨씬 편리할 텐데 말입니다. 더 신기한 건, 이렇게 불편한 도시에 살면서도 지도를 갖고 다니지 않는 일본인이 의외로 많다는 점입니다.
특히 여자에게 많습니다. 여자와 약속할 때는
“몇 호선 몇 역, 어느 출구로 나와서…” 하고
아주 세세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도 “길을 잃어서…” 하며 늦는 사람이 있다니까요.
전화로 장소 설명을 할 때 “잠깐만요, 지금 지도를 볼게요”라고 말하는 여자는 정말 드뭅니다. 심한 경우 메모조차 안 하는 것 같아서
“알겠어요?” 하고 물으면 “대충 알겠어. 가다가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지 뭐”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항상 약속 시간보다 30분 넉넉히 잡는다고 하는데,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은 좋겠지요.
이런 사람은 자기 집 오는 길 설명도 형편없습니다. “빵집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요”라고 해서 가보면 그 길에 빵집이 두 군데나 있는 겁니다. 첫 번째겠거니 하고 돌았더니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 버립니다. 자기 머릿속에는 ‘늘 자기가 도는 그 지점의 빵집’만 존재하는 것이니 곤란한 거죠.
부모들은 딸들에게 꼭 ‘방향 감각을 기르는 것’과 ‘지도를 읽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향치인데도 운전하는 여자도 있어서
엉뚱한 곳으로 끌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일본인은 남녀 모두 매우 근시안적으로 자기 주변 일만 보는 버릇이 있지만, 여자는 특히 그 경향이 강하다고 봅니다. 혼자 낯선 곳에 나가는 습관이 없어서인지 자기 집 근처밖에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해외여행을 여러 번 다닌 OL이라 해도 손에 이끌려 다니는 패키지 여행으로는 방향 감각이 길러지지 않습니다. 방향 감각이란 단순히
어딘가를 틀림없이 찾아갈 수 있는 능력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기 인생에서 현재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아는 능력,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는 능력 — 그런 것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요.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41. 양손(両手)의 매너
맥주병을 두 손으로 들고 따르는 사람이 있지요. 또 술 이야기냐, 이 여자 꽤나 술꾼인가 보다 하고 오해하지는 마세요. 이 항목의 핵심은 ‘술’이 아니라 ‘두 손’에 있습니다. 사케(일본술)를 따르는 도쿠리(일본술병)뿐만 아니라 맥주병도 따를 때 두 손으로 드는 일본인이 참 많습니다. 여자들만 그러는 줄 알았더니 유심히 보니 젊은 남자가 윗사람처럼 보이는 연배의 남자에게 따를 때도 역시 두 손으로 하더군요.
아마 원래는 연회 자리에서 게이샤가 손님에게 술을 따르던 예법이었겠지요. 그런데 보통 여자들도 남자들과 함께 술집에 드나들게 되면서, 게이샤 흉내를 내어 양손으로 도쿠리를 들고 따르기 시작했고, 지금은 도쿠리뿐 아니라 맥주병도 같은 매너로 따르며, 남자들까지 그것을 따라 하게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남녀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보통 여자가 남자에게 술을 따라주거나 담배에 불을 붙여 주는 모습은 외국인 눈에는 무척 기이하게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도쿠리처럼 가벼운 물건을 두 손으로 드는 것도 이상하게 보인다고 하지요.
물론 일본에서는 물건을 한 손으로 건네는 것은 윗사람에게 무례로 여겨지고, 두 손으로 하는 것이 공손하다고 여겨집니다. 아마도 아름다운 풍습이겠지만, 다소 지나친 감도 있습니다.
그 전형이 명함 교환입니다. 그렇게 가벼운 종이를 두 손으로 주고받아야 하니 얼마나 번거로운지요. 상대의 명함을 ‘받들어 올려’(이럴 때는 이런 한자를 쓰고 싶어집니다) 머리를 두세 번 숙인 다음에야 비즈니스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제가 인터뷰하던 사람이 설명하려고 종이에 뭔가 쓰려다 자기 볼펜을 사용했는데, 잉크가 다 떨어져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그의 부하가 즉시 자신의 양복 안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찰칵’ 소리를 내며 바로 쓸 수 있게 만든 뒤, 그것을 두 손으로 상사에게 내밀더군요.
이걸 아름다운 매너라고 생각하십니까? 코를 풀 때조차 일부러 두 손을 쓰는 경우도 있잖아요. 일본인이 아주 우아한 민족인가 싶으면서도, 또 전혀 그렇지 않은 면도 잔뜩 있습니다.
일상 매너에서도 예를 들어 코트 입는 법이 그렇습니다.
하오리를 입듯이 코트를 휙 등 뒤로 던져 걸치고 허리를 흔들며 양팔을 뻗어 소매에 끼우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식당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런 행동을 하면, 옆 테이블 사람은 코트 자락이 자기 접시에 들어오지 않을까, 먼지가 음식 위로 떨어지지 않을까 신경이 곤두섭니다.
서양식 옷을 입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먼저 한쪽 팔을 조용히 소매에 넣고, 코트를 등 뒤로 천천히 돌린 뒤 다른 팔을 넣고, 살짝 어깨를 들어 코트를 몸에 맞추는 방식으로 입습니다. 코트 자락이 허공을 날 일도 없고 먼지가 일지도 않지요.
그리고 일본인은 식사 매너가 꽤 지저분한 민족에 속하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아는 한 일본인보다 매너가 더 나쁜 사람들은 한국인과 중국인 정도입니다.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식사 중 말을 더 많이 하는데, 입에 음식을 넣은 채로 말하는 바람에 음식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인 중에는 생선 가시나 과일 씨를 테이블 위에 뱉는 사람도 있어서 함께 앉아 있기가 괴롭습니다.
일본인은 우선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쪽 팔꿈치를 괴고 식사하는 남녀를 자주 보게 되지요. 또 입 안에서 쩝쩝, 찝찝 소리를 내며 씹는 사람, 국물을 “즈즈즈—” 소리 내며 마시는 사람, 식사 중 담배를 피우는 사람, 식탁에 몸을 덮치듯 숙여 먹는 사람, 식탁에서 이쑤시개로 이 사이에 낀 음식을 쑤셔 빼내는 사람(이쑤시개를 식탁 위에 올려두는 습관은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이는 세면대에서 할 일이지요. 그러니 이쑤시개는 세면대에 두세요),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 식탁에서 기지개를 켜는 사람 등등. 이렇게 적고 보니 상당히 끔찍한 테이블 매너지만, 동시에 일본인에게는 매우 우아한 매너도 존재합니다.
외국인이 감탄하는 것이 바로 귤 먹는 법입니다. 겉껍질을 흩어지지 않게 한 장으로 깔끔하게 벗기고, 속을 먹은 뒤 찌꺼기를 다시 껍질에 싸서 뒤집어 보기 흉하지 않게 남겨 두는 것 — 이것은 참으로 우아합니다. 또 일본 요리에는 장식용 잎사귀 같은 것이 곁들여져 있기 때문에, 생선 가시 등을 접시 한쪽으로 모은 뒤 그 위에 잎을 덮어 놓는 것도 정갈하고 정다운 예법이지요.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42. 게으른 전업주부
일본인은 온대 지방에 살면서도 꽤나 게으른 민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여자 쪽부터 보자면, 전업주부의 일하는 모습을 비교했을 때 일본의 전업주부 가운데 서양의 전업주부보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은 아마 매우 적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식사입니다. 일본 음식은 조리 시간이 거의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일본 주부가 부엌에 서 있는 시간은 서구보다 훨씬 짧습니다만, 그뿐 아니라 음식에 들이는 정성 자체도 점점 간단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서양에서는 전업주부들 가운데 디저트를 손수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한 이유겠지요. 물론 일본에서는 ‘집안의 기둥’이라 불리는 남편이 저녁 시간에 집에 없는 경우가 많으니, 주부만 탓할 수는 없겠습니다. 일본인은 사람을 집에 초대하지 않기로 유명한데, 흔히 ‘집이 좁아서’라는 핑계를 대지만, 남편은 물론 아내 역시 요리에 자신이 없는 것이 진짜 이유라고 봅니다.
사실 사람을 초대하는 데 요리 솜씨가 문제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인은 손님을 부르면 반드시 진수성찬을 차려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지요. 외국에서는 요리가 서툴러도 아이디어 있는 플레이팅이나 재미있는 대화로 손님을 대접합니다. 어쨌든 다른 나라에서는 손님을 맞이하는 일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는데, 일본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아마 그런 이유도 있어서인지 식단도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인 집이 대부분인 듯합니다. 청소도 서양에서는 가구를 옮기고 카펫 아래까지 청소하는 대청소를 해마다 몇 번씩 하는데, 이때는 부부와 큰아이들까지 모두 동원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연말 대청소 딱 한 번, 그것도 남편은 거들지 않으니 큰 가구는 몇 년씩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서양의 전업주부라면 냅킨이나 시트에 풀을 먹여 다림질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일본 주부 가운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물론 이는 전업주부 이야기이고, 서양에서도 일을 하는 여성들은 가사에 손을 많이 놓습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손님을 초대하는 사람이 많고, 청소 역시 일본인보다 훨씬 철저하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집안일을 직접 하지 않는 사람은 청소부를 고용하기도 합니다. 남자들의 게으름에 대해서는 새삼 적을 필요도 없겠지요. 손님이 오면 음료 취향을 묻고 직접 잔을 준비하거나, 식사 후 접시를 치우는 서양 남편 같은 일본 남자를 보면, 괜히 한참 쳐다보게 됩니다.
서양에서는 아이 방을 손수 만들거나 집 안팎에 페인트칠을 하거나 잔디를 깎는 일은, 아내가 전업주부일 때도 남편의 몫입니다. 일본 남성은 통근 시간이 길다는 사정이 있기는 해도, 회사에서 일하고 돌아온 뒤 또 다른 종류의 일을 할 에너지가 없는 듯 보입니다.남자도 여자도 에너지 수준이 전반적으로 조금 낮은 것 같습니다.
국제회의나 국제 협상 자리에서도 일본인은 금방 지친다는 평이 있습니다. 같은 동양인이라도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훨씬 에너지 넘치고 끈질기다고 하더군요. 최근에 일본인의 게으름을 강하게 실감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의 원고를 마친 직후 뉴욕으로 이사할 예정인데, 그 이사를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직접 하려 합니다.
즉 남에게 맡기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스스로 하는 것이지요. 왕족도 아닌데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힘들겠다, 전부 직접 해?” “업자에게 맡기면 되잖아?” 라고 말하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학생이 아닌 이상 일본에서 회사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드물고, 많은 비용이 회사 부담으로 처리되다 보니 가장 편한 방법을 택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겠지요.
예를 들어 뉴욕에서 집을 구하는 일입니다. 맨해튼에는 빈 아파트가 매우 적어 괜찮은 집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출발 전에 '뉴욕 타임스' 같은 현지 신문의 광고란을 뒤져 제 조건에 맞는 집을 취급할 것 같은 부동산 중개업자를 골라 편지를 보냈습니다. 예산, 희망 지역, 도착일 등을 알려 두었으니 후보를 정리해 두겠지요.
하지만 중개업자에게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수수료를 내야 하므로, 가능하다면 집주인과 직접 교섭하고 싶어 독서인 대상 잡지에 “일본인 여성 저널리스트, 임대 아파트 구함” 이라는 광고도 냈습니다. 작가에게 집을 빌려주고 싶어 하는 집주인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또 뉴욕에 사는 친구들에게도 조건을 적어 “빈 집 소식이 들리면 즉시 알려 달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정도 수고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은 전임자의 집으로 그대로 옮겨 가거나, 부동산이 그날 가지고 있는 물건 중 하나로 쉽게 결정해 버립니다. 이사 이야기 김에 짐을 배로 보내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독점적으로 시장을 장악한 대형 운송회사에 맡기는 사람이 대부분이지요.
저는 영자신문 광고를 보고 세 군데 회사를 골라 견적을 받았습니다. 한 곳은 견적은 나왔으나 견적서를 보내지 않아 제외했고, 또 한 곳은 책과 약간의 의류, 식기 외에 가구가 몇 개뿐인데도 백수십만 엔을 부르길래 포기했습니다.
세 번째 회사는 대부분의 포장을 본인이 하고, 상자 내용 목록을 작성하고, 뉴욕 항구에서 통관 수속을 직접 하고, 항구에서 집까지 운송할 트럭회사도 직접 연락하면 비용을 4분의 1 이하로 줄일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회사를 택했는데, 약간의 수고를 아끼려다 네 배의 비용을 지불하는 일본인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인의 심한 ‘편지 쓰기 귀찮아 함’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 나라 사람들로부터 불평을 듣습니다. 일본인을 식사에 초대하거나 누군가를 소개해 주어도, 귀국 후 감사 인사 한 줄조차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많은 일본인은 타자기를 치지 못하는 탓도 있어, 특히 외국인 상대일수록 편지를 더 안 씁니다.
반대로 서양인의 부지런한 필력에는 늘 감탄하게 됩니다. 바쁜 사람일수록 더 부지런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친구인 미국인 비즈니스맨은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그 항공사 편지지를 승무원에게 받아 기내에서 개인 편지를 몇 통씩 쓰는 습관이 있습니다. 손글씨인데다 비행기가 흔들리면 글씨도 흔들리지만, “언젠가 책상 앞에 앉아서 제대로 써야지 하고 미루면 편지는 영원히 못 써.” 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여러 나라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다 보니 각국의 정치인, 사업가, 기자들이 “만나고 싶다”고 연락해 옵니다. 만나서 일본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그들은 귀국 후 반드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편지를 보내옵니다. 반 페이지짜리 짧은 것도 있고, “그때의 토론에 대해 나중에 생각해 보니…” 하며 긴 편지를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43. 쇼핑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
도쿄를 처음 방문한 네덜란드 여성 기자가 도심 백화점에 가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평일 낮인데도 일본 여성들이 매장 안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고 있더군요. 유럽 여성들은 대부분 직업이 있거나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어서 낮부터 느긋하게 쇼핑할 수가 없어요. 낮에 쇼핑을 하는 사람이라면 관광객 아니면 노인쯤이겠죠.” 이에 도쿄에 사는 미국인 여성 기자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미국 여성도 예전에는 쇼핑을 참 좋아했어요. 자기표현의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남보다 먼저 유행 옷을 사거나 주방용품 신제품을 사는 데 열을 올렸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여성도 직업이나 여러 영역에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새 옷을 계속 사거나 주방을 신제품으로 가득 채우는 데 흥미를 잃었어요. 일본 여성은 아직 사회에서 자기표현 수단이 제한돼 있으니까 쇼핑에 집착하는 게 아닐까요?”
그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일본인의 쇼핑 열풍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국제공항에 가든 면세점에 몰려 있는 건 늘 일본인들이라는 게 정설이죠. 그래서 안내판에 일본어가 쓰여 있고 일본어를 하는 점원이 있는 공항도 드물지 않습니다.
나리타행 비행기에서 일본인 단체 관광객과 함께 탄 적이 여러 번 있는데, 열 시간이 넘는 비행 동안 대화의 대부분이 “어디서 뭘 얼마에 샀다” 는 이야기뿐이었습니다. 여자들만이 아니라 일본 남자들도 정말 쇼핑을 좋아합니다. 물론 쇼핑의 상당 부분은 ‘기념품’입니다. 국내 여행이라도 출장이라면 직장 동료에게 선물이 필요하고, 고향에 갈 때도 손에 선물 하나 없이 가는 법이 없지요.
일본인의 여행에는 언제나 기념품이 따라붙습니다. 말로 표현하는 데 서툰 일본인은 무엇이든 물건으로 표현하려 합니다. “여행 중에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어요”라는 뜻으로 기념품을 사고, “나는 돈이 많아요”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입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를 드레스를 삽니다. 게다가 일본에는 아직도 물질만능주의가 뿌리 깊게 남아 있습니다.
다음은 '주간 주택정보' 에 실린 광고입니다.
"두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고 ㅡ 둘 다에게서
청혼을 받았다면 ㅡ 역시… 집 딸린 쪽으로 가게 되는 나 ㅡ 나쁘지 않지?" 주택 잡지 광고라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물질주의를 내세우는 데에는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어느 나라에나 욕심에 사로잡혀 재산을 불리는 데만 인생의 의미를 두는 사람은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 때부터 “몇 살까지 몇백만 엔 모으는 게 꿈”이라거나 10대부터 “몇 살까지 단독주택을 갖고 싶다”는 건, 아무리 봐도 정상적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물건에서 벗어나는 시대”라고들 하지만, 물건에 대한 집착은 아직도 강해 보입니다. 특히 이렇게 좁은 일본에서 한 조각 땅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적당한 교외에 단독주택을 갖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되도록 망하지 않을 것 같은 회사나 관청을 직장으로 고르는 사람도 적지 않지요.
왜 그렇게 소박하고 안정적인 삶만을 원하는 걸까요? 10대, 20대부터 마치 정년퇴직 후처럼 인생 설계를 해 두는 일본인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적당한 행복”, “소소한 행복” 같은 말을 대학생 입에서 듣게 되면, 젊음답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태도는 모두 젊은 나이에 한곳에 뿌리내리고 부동산을 소유하려는 보수적 성향으로 이어지는 듯한데, 어떨까요.
물건은 가질수록 도난, 파손, 오염 같은 걱정이 늘어나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눈에 보기에,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 “일본이 가장 잘나간다”고 믿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젊을 때부터 “일본 안에서 살 수 있는 범위에 빨리 집을 사자”는 경향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일본 이외의 문화와 사회를 경험해 보기도 전에 성급히 결론을 내려버리는 젊은이가 늘고 있는 듯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말이죠!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44. 기자회견
일본인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예는 셀 수 없이 많지만, 내가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는 곳은 보도의 세계다. 일본의 언론계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바로 ‘기자클럽’ 제도다. 외무성 같은 관청이나 게이단렌 같은 경제단체 건물 안에 특정 언론사 기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대형 신문사, 통신사, 주요 방송국 기자들은 이 클럽을 거점 삼아 취재 활동을 한다. 여기에 속하지 않은 기자는 ‘유군(遊軍)’이라 불리며 소수파다. 클럽 회원은 정해진 언론사의 기자만 가능하고, 외국 언론 기자는 일본어가 아무리 유창해도 가입할 수 없다. 일본의 잡지나 지방지 기자, 프리랜서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제도는 일본에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뉴스 제공처인 관청·정당·업계 단체와 기자클럽 회원들 사이의 관계는 매우 미묘하다. 나 역시 도쿄신문 경제부 기자로 일하며 클럽에 속한 적이 있는데, 비판 기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늘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브레이크가 걸려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뉴스 제공처와 기자클럽 사이에는 해마다 몇 차례 ‘간담회’가 열리고, 비용은 취재원 쪽이 부담한다. 외국 기자들은 대접을 받아도 거리낌 없이 비판 기사를 쓰지만, 클럽에 속한 일본 기자들은 늘 조심스러운 선택을 해야 한다. 정말 대형 특종이라 회사 전체가 지지해 줄 확신이 있을 때는 취재원과 다른 기자들을 모두 적으로 돌려도 쓰겠지만, 그런 일은 흔치 않다.
일상의 취재는 매우 소소하다. 그러다 보니 “이 정도 기사로 취재원을 화나게 하는 건 장기적으로 손해다”라고 생각하는 기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언론과 취재원 사이의 일종의 유착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금맥(부패)을 폭로한 사람은 프리랜서 기자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1940~ 2021)였는데, 당시 정치부 기자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알고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또 클럽 기자들은 지나치게 비판적인 기사도 쓰기 어렵고, 반대로 칭찬 기사도 쓰기 어렵다. 칭찬하면 “아첨 기사(ちょうちん記事)”로 보일까 두렵기 때문이다. 뉴스 발표 방식에 대해 호주 '오스트레일리언 파이낸셜 리뷰' 도쿄 특파원 마이클 번즈는 이를 “주인이 애완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의식 같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교단 위 교사가 말하고 학생들이 받아 적는 듯한 풍경이 흔하다.
총리 기자회견을 보면 질문이 사전에 정리돼 전달됐다는 게 훤히 보인다. 총리의 답변은 길고 핵심을 벗어나는 경우도 많지만, 기자들은 되묻지 않는다. 이는 미국 대통령 기자회견과는 완전히 다르다. 미국에서는 기자들이 몰아붙이듯 질문하며 끝까지 파고든다. 일본의 기자회견은 의식(儀式)에 가깝고, TV 인터뷰나 좌담회도 사전 조율이 지나치게 많아 연극처럼 되어 자연스러움이 사라진다.
나는 영국·미국·호주·한국의 방송에 출연해 봤지만, 대부분 간단한 소개와 주제 설명만으로 바로 본방에 들어간다. 일본만 유독 한 시간 전부터 와서 세세하게 맞춘다. 이런 의식적 질서, 취재원과 언론의 친밀함이 과연 자유로운 보도와 양립할 수 있을까? 다른 나라 기자회견에 참석해 보면 그 사회가 얼마나 개방적인지 바로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프리랜서든 외국 기자든 신분 확인만 하면 백악관 브리핑에 들어가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다. 다른 선진국도 비슷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외국 기자는 대개 참석조차 못 하고, 허용돼도 방청만 가능하며 질문은 못 한다. 또 외국 언론용 회견을 일본 기자용과 따로 영어로 여는 경우도 흔하다.
기자를 구분해 정보 접근을 차별하는 것은 다른 선진국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본 기자들 사이에서 기자클럽 폐지론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외무성이 어떤 기자에게 “이 회견 내용은 호주 신문에만 쓰고 영국 신문에는 쓰지 말라”고 요구한 일도 있었다. 밖에서 보면 웃지 못할 일인데, 일본에선 이것이 일상이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45. 후기(맺음말)
이 책을 탈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뉴욕으로 이사했다. 그전까지 9년 동안 일본에 살며 세계 각국의 신문과 잡지에 일본의 정치·경제·사회 동향을 보도해 왔는데, 이제는 세계 곳곳에 살면서 그 지역의 움직임을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전하는 일을 해보려는 것이다.
우선 첫걸음으로, 일본인이라면 대개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을 도시인 뉴욕에 살아보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솔직하게 말하는 미국인들과 어울리다 보면, 돌려 말하고 속을 감추는 일본인들과의 관계에 비해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뉴욕의 꽤 괜찮은 레스토랑에서도 웨이터가 동료와 수다를 떨며 대충 따라주는 커피를 마시다 보면, 일본의 찻집에서 정성스럽게 내려 주던 커피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앞으로 어디에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본과 내가 사는 나라를 오가며 일본과 일본인을 계속 관찰하게 될 것 같다.
ㅡ 1985년 8월 뉴욕에서. 저자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5년 치바 아츠코 저,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46. 해설- 소소한 가필 <나카야마 치나쓰>
[나카야마 치나쓰(中山千夏, 1948~ ) 작가·가수·배우·사회자·탤런트·성우·참의원 의원]
이 책을 읽고 나면 곧바로 자신의 ‘일본인 지수’를 재어 보고 싶어지지 않을 수 없다. 독자들의 참고가 되도록, 43개 항목 가운데 몇 가지를 골라 내 ‘일본인 지수’를 먼저 공개해 보겠다.
× : 나에게 없는 것
△: 조금 있는 것
○ : 있는 것
◎ : 아주 많이 있는 것
*소품에 집착하는 남자들◎ : 나는 여자지만, 소품에 집착하는 남자들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인사 측정기△ : 악수보다 절이 좋다. 하지만 형식적인 절은 싫다.
*슬리퍼 규칙 ◎ : 세어 보니 우리 집엔 내 것, 손님용, 부엌용까지 세 종류나 있었다.
*남녀 불문하고 금방 삐친다△ : 독자들의 반감을 사지 않기 위해 삐친 듯한 표현을 활용한 경험은 있지만, 본래 삐치는 건 싫어한다.
*정해진 말 ‘힘내!’ ◎ : 도대체 이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는 걸까!
*옆 건물까지 양치하러 간다△ : 남이 뭐라 하든 상관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고 있다.
* 5·7·5와 계절감○ : 취미로 시 모임에도 속해 있다. 하지만 틀에 박힌 계절 감성엔 역시 질린다.
*남자가… 남자가… ×××!
*다음 주에 또 전화해○ : 정말로 “되는 대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머뭇거리는 여자들× : 외국인 앞에서도 머뭇거리지 않는 사례로 내가 언급돼 깜짝 놀랐다. 머뭇거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자유로운 것도 아니라고 덧붙이고 싶다.
*균형과 감점주의 × : 이건 꽤 피해를 많이 입었다.
*이중 잣대 × : 즉, 일본 정치인은 못 된다.
*대립을 싫어함 ◎ : 정말 싫다.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뭐든 대립으로 해결하려는 남성적 태도엔 의문이 든다.
*선물 천국 ○ : 허례허식은 반대. 하지만 본질적으로 선물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환영받지 못하는 비판 정신 × : 비판 정신이 지나쳐 살기 힘들다.
*집단적 사디즘 × : 어릴 때부터 소수 편에 서는 버릇이 있었다.
*여성복은 왜 작을까 ○ : 그러게, 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가 작아서겠지. 작다고 무시당하면 화나지만, 귀엽다는 말엔 또 기분이 나쁘지 않다. 참 곤란하다.
*방향치 ○ : 단, 지도 보는 건 잘한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이 또한 저자가 말한 ‘삐딱한 문장’의 전형의 표현이다. 동시에 ‘대립을 싫어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하는 말에 대해 독자들이 별거 아니라고 화를 냈을 때, 그래서 처음에 그렇게 말해 뒀다고 양해를 구하기 위함이다.) ‘서양인이 보는 일본인상’에 깊은 관심을 갖는 것 역시 일본인의 습성이다. 게다가 일본인은 험구 듣기를 은근히 좋아한다고도 한다. 그래서 이 책도 1985년 8월 출간 이후 87년 12월까지 무려 17쇄를 찍었다.
이는 아마 메이지 유신 이후 계속된 현상일 것이다. 서양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 비웃음 당하지 않으려 일본인은 늘 서양의 평가를 신경 써 왔다. 하지만 오늘날 이 책이 읽히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저자가 '쇼핑 좋아함' 에서 지적했듯, 우리는 강력한 물질주의를 갖고 있다. 그 덕에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국이 되었다고 우쭐대는 분위기 속에서, 이처럼 신랄한 일본인 비판은 좋은 약이 될 것이다.
실제로 읽다 보면 “조금 이상하다”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이상한 민족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인간이 자아를 확립하고 성장하려면 타인의 존재가 필수다. 다른 사람을 알고, 타인에게 비친 나 자신을 알 때 비로소 자아가 형성된다. 일본인은 역사적·지리적으로 오랫동안 이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외국인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무비판적으로 동화하려 들거나, 혹은 “일본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모두 어린아이의 반응이다. 한마디로 말해, 치바 아쓰코는 일본인이 어른이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쓴 것이다. 책 곳곳의 질문 ―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 도 그 표현이다. 저자는 분명한 의견을 말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길 원한다. 자기 생각을 갖는 것이 어른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어디에 살게 될지는 모르지만…’이라 적은 지 2년 뒤, 저자는 뉴욕에서 암 재발로 세상을 떠났다. 도쿄신문 기자를 거쳐 해외 특파원을 지낸 그녀는 날카롭고 에너지 넘치는 기자였다. 하지만 남성 중심 사회였던 일본 언론계가 그녀를 온전히 평가했는지는 의문이다. 1981년 암 발병 이후 그녀의 저작 활동은 폭발적으로 늘었고, 남긴 13권 중 12권이 그 이후에 나왔다. 마치 병이 그녀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킨 듯하다.
그녀는 세계 여성의 움직임을 전하는 뉴스레터도 발행했다. 나는 끝내 만나지 못했지만, 뛰어난 기자이자 페미니스트를 잃은 것이 몹시 아쉽다. 특히 그녀가 한국 같은 이웃 나라에서 일본을 바라볼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더욱 안타깝다. 한국인의 시선에서 본 「좀 이상한 일본인」을 그녀가 썼다면, 우리 성장에 엄청난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언어학자 와타나베 요시토키는 일본어와 한국어가 매우 비슷하지만 문화는 크게 다르다고 지적한다. 한국인 역시 일본인의 모호한 표현, 형식적인 인사, 화합 우선, 토론 회피 등을 이상하게 여긴다. 일본인의 ‘계절감’도 마찬가지다.
“벌써 매화가 피었네요.” “네, 홍매화예요. 재작년에 이웃에게서 받았죠.” “색이 참 예쁘네요.” 이런 대화는 일본인에겐 자연스럽지만, 한국인에겐 화제 선택도 전개 방식도 논리적이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정말 웃지 못할 정도로 비논리적이다. 타인은 서양인만이 아니다. 서양의 비판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고, 아시아의 비판엔 얼굴을 붉히며 화내는 것도 일본인의 습성이다. 어른이 되려면 다양한 타인의 시선이 필요하다. 이 책은 서양의 시선을 중심으로 하지만, 치바 아쓰코는 아시아의 눈 또한 중요함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작은 보충 글에 동의해 주리라 믿는다. (1988년 3월,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