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족은 일요일 아침, 쓰카모토 토라지(塚本虎二) 선생의 예수전을 읽습니다. 성서신애에 김형철 선생님의 번역으로 연재되고 있는 글입니다. 벌써 178강을 읽었고, 이제 179강을 할 차례인데, 그 제목이 '반역의 예고'입니다. 유월절,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지요.
'만찬'은 한자로 晩餐, '저물만 먹을 찬'으로 된 단어라, 단순히 저녁식사라는 뜻인데, 그 뜻이 변하여, '만찬' 하면 우리들은 화려한 식사를 떠올립니다. 그래서 차라리 '최후의 식사'라고 이름붙이는 편이 낫지않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림과 함께 쓰카모토 선생의 감상을 함께 읽어봅시다. 쓰카모토 선생은 우찌무라의 제자이며, 독립 성서 연구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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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쓰카모토 토라지
이탈리아의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그라체 수도원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명한 Cenacolo(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제자들과 최후의 저녁식사를 할 때에 "너희들 가운데 한 명이, 나를 팔려고 한다."라고 생각지도 않은 말을 하여서, 제자들이 놀람과 걱정에 사로잡혀있는 바로 그 순간의 장면을 그렸습니다. 이것 외에도 최후의 만찬 그림은 적지않은데, 이 그림은 너무나 유명하여, 많이 다뤄졌지만, 유젠문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참고하여 좀더 설명을 하려 한다. 물론 고금명화(古今名畵)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이 그림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오로지 성서에 관계된 부분에 그칠 것이다.
그리스도가 혼자서 중앙에 자리를 차지하고, 그 좌우에 세 사람씩 한 조를 이루어 2조씩, 합계 12명이 있다. 이 중 베드로와 요한과 유다 정도는 알려져 있지만, 나머지 아홉 명은 분명하지 않다. 어느 학자의 설명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오른쪽(우리가 볼 때, 왼쪽)에, 얼굴을 숙이고, 탁자위에 양손을 모으고 경건과 온유와 믿음을 나타내고 있는 이가 주의 사랑을 받은 요한이며, 주가 누구에 대해 말씀하시는지 들어보려 집중하는 이가 베드로이다. 그 앞에 오른쪽 팔꿈치를 탁자에 대고, 오른손으로 돈주머니를 쥔 채, 왼손은 음모가 드러났음을 알고도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메부리코의 번들번들한 얼굴의 남자가 유다이다. 이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있지만, 다른 조와 달리 유다는 두 사람에게서 독립적이다.
그 다음이 안드레, 작은 야고보, 바돌로매의 한 조.
그리스도의 왼편(우리가 볼 때, 오른쪽)에서 손가락을 세우고, 그 반역자를 위협하는 듯한 모습의 도마, 놀라서 팔을 벌리고 있는 이가 야고보, 선 채로 가슴에 손을 대고 "저입니까?" 묻고 있는 청년이 빌립보이며, 이 세 사람이 한 조.
다음이 마태와 다대오와 시몬.
이중 정면을 향하고 있는 이는 예수와 요한 두 사람 뿐으로, 남은 여덟 명은 옆얼굴, 세 명은 3/4정도만 정면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정면의 요한과 옆얼굴의 두 사람 베드로와 유다가 한조. 나머지는 3/4정면 한 명과 옆얼굴 두 명씩이 한 조이다. 오직 다대오만 셈족의 얼굴이며, 나머지는 유대인이 아니라, 세계인류의 얼굴을 형상화하였다. 그리고 유다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순진소박하며, 전직 어부다운 들사람의 모습이다. 그리스도의 얼굴은 미완성이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두 명의 야고보를 그렸는데, 멋지게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릴 수 없어 미완으로 남았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그림은 밀라노의 수도원장이 부탁하여 그리게 되었는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자, 한 귀족을 통해 재촉하였다. 다빈치가 대답했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얼굴이 두 개입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이고, 또 하나는 유다입니다. 그리스도 쪽은 아직까지 그런 이상적 얼굴을 지상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성육신하신 하나님 특유의 완전한 아름다움과 천국의 우아함을 그려낼 상상력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유다 쪽도, 바다와 같은 은혜를 주신 주와 우주의 창조자를 배신할 정도로 비열한 인간의 얼굴을 아직 찾지못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쪽은 만일 적당한 얼굴을 못찾는다면, 무례하고 시끄러운 수도원장의 얼굴을 빌려오려고 생각중입니다."
이래서 수도원장도 결국 고집을 꺾었다는 이야기인데, 어쨌든 1497년에 완성된 것 같다.
각인의 표정은 한 명 한 명 모두 다르지만, 옷은 매우 단순하여, 노란 속옷에 빨간 겉옷과 물색 망토 정도이다. 그 점에서는 그리스도도 다르지 않다. 특히 후광을 생략하고, 창 위의 활 모형으로 그것을 대신한 점이 눈에 띈다. 또한 방은 하나의 장식도 없다. 주의를 인물에 집중시킨 것이다. 모두가 이상화(理想化)되었기 때문에 식탁도 유대식의 길게 앉는 모양이 아니라 의자에 앉은 것으로 되어 있다. 유월절 식사로 그려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리스도의 위엄과 자비와 비통에 가득찬 얼굴, 열 한 명의 순진하고 경건한 표정, 유다의 악독한, 내심 놀라면서도 천연덕스러운 태도 ㅡ 이 셋의 대조는 생각컨대, 세 사람들(예수-제자들-유다)의 심정을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새삼스레 대천재의 영혼이 담긴 붓에 빠져든다.
이 그림만을 보아도 유다의 변호는 불가하다.
첫댓글 예수님과 유다의 얼굴은 동일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만, 사실이 아닌 것 같아요. 또 예수님 곁의 청년 요한을 여자(막달라 마리아)로 보고, 예수님이 결혼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이도 있었죠. 다빈치코드라는 소설 말이에요. 허허허, 웃어야지요.
마지막까지 유다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하신 예수님의 애타는 심정이 느껴지는 저녁식사 장면입니다.